‘디온 워윅’하면 무엇이 첫 번째로 떠오르시나요? 아마, 팝의 디바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휘트니 휴스턴의 이모로 먼저 알게 된 음악 팬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허스키한 저음, 그리고 곡을 이끄는 안정적인 보컬로 청감을 확 사로잡는 깊은 매력을 가지고 있죠. 스티비 원더, 앨튼 존 등 그의 거장 친구들과 함께한 「That's what friends are for」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디바를 꿈꾸는 보컬 지망생들이 꼭 한 번씩은 부르는 아름다운 멜로디의「I'll never love this way again」도 빼놓을 수가 없겠죠. 디온워윅의 베스트 앨범입니다.
디온 워윅(Dionne Warwick) <Greatest Hits 1979-1990> (1989)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은 한 번도 1등인 적이 없었다. 음악적 시작이 다른 탓에 흑인음악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두 살 아래인 ‘퀸 오브 소울’ 아레사 프랭클린에 비해 덜한 평가를 받아 왔고, 대중적인 인기 면에서는 네 살 아래의 다이애나 로스의 그늘에 가려져 왔기 때문이다.
백인 취향의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혹자는 디온 워윅을 ‘영혼(Soul)없는 소울가수’라 칭하기도 했지만,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 근 50년간 비교적 뚜렷이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하는 그녀는 이후 1985년 휘트니 휴스턴으로 이어지는 ‘어덜트 컨템포러리 알앤비/팝’(이하 AC 알앤비/ 팝) 계보에 더없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히트곡 모음집
<Greatest Hits 1979-1990>는 ‘셉터’(Scepter) 레이블에서의 성공 후 ‘워너 브라더스’ 시절의 부진을 뒤로하고, 다시 한 번 재기에 성공한 ‘아리스타’ 레이블 시절의 결과물들을 담고 있다. 셉터 레이블과 워너 브라더스 시절의 히트곡들을 담은 베스트 음반은 여러 종류로 발매되어 국내에서도 쉬이 접할 수 있지만, 제2의 전성기인 아리스타 시절의 히트곡들을 온전히 담은 유일한 앨범이라는 점에서 상업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이 앨범은 큰 의미를 지닌다.
아리스타 시절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함'이다. 데뷔 때부터 함께하며 「Don't make me over」 「Anyone who had a heart」 「I say a little prayer」 「I'll never fall in love again」 등 33곡의 차트 히트곡을 양산했던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 할 데이비드(Hal David)와의 관계를 청산한(버트 바카락은 1985년 앨범 <Friends>에서 그녀와 다시 재회한다) 디온 워윅은 레이블 동료인 배리 매닐로우, 비지스의 배리 깁, 2005년 사망한 루더 밴드로스와의 작업을 통해 팝이라는 큰 틀 속에서 전보다 좀 더 대중적이고, 세련되며, 폭넓은 음악스타일을 선보인다.
앨범은 그녀의 후기 최대 히트곡이자 2000년 아리스타 레코드 25주년 기념공연에서 엔딩 곡으로 불려진 1986년 1위 곡 「That's what friends are for」로 시작한다. 작사가 캐롤 베이어 세이거(Carole Bayer Sager)의 친구이자 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의 아이디어로 싱글 수익금 전액을 에이즈 단체에 기부했던 이 곡은 원래 1982년 로드 스튜어트가 불러 영화 <나이트 쉬프트(Night Shift)>에 수록했으나 곡의 가벼운 분위기가 로드의 남성적이고 강한 이미지와 맞지 않아 싱글 발매가 무산된 바 있었다.
이후 「That's what friends are for」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영화
<빨간 옷을 입은 여인(Woman In Red)>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하던 디온 워윅에게 전해져 스티비 원더, 엘튼 존, 글래디스 나이트 등 거장 친구들과 다시 부르게 된다. 스티비의 하모니카 연주를 시작으로 뚜렷한 기승전결을 갖춘 대?적인 곡의 전개방식, 취지에 부합하는 의미 있는 가사, 따뜻한 멜로디를 기반으로 빅4의 탁월한 보이스가 조화를 이루는 이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4주간 1위에 오름과 동시에 그 해 결산차트에서도 역시 1위를 기록했으며, 이듬해 열린 29회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올해의 노래’, ‘최우수 듀오/그룹 팝 보컬 상’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또한,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며 바브라 스트라이잰드, 케니 로저스 등 수많은 가수들에게 히트곡을 선사퇇 바 있는 비지스의 곡들도 눈에 띈다. 전형적인 깁 형제들의 미드템포 팝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Heartbreaker」(1982년 10위, AC차트 1위), 「All the love in the world」(동년 AC차트 16위)를 비롯해 상반되는 잔잔한 분위기와 디온 워윅의 애잔한 보컬이 절정을 이루는 「Yours」, 비지스의 곡에 배리 매닐로우가 듀엣으로 참여한 러브 송 「Run to me」가 수록되었다.
배리 매닐로우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그녀의 아리스타 데뷔앨범인 <Dionne>에서는 레이블 이적 후 첫 성공이자 부활의 계기가 된 1979년 싱글차트 5위곡 「I'll never love this way again」 그리고 「Deja vu」가 선택되었다. 「I'll never love this way again」은 건반과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전개 속에 디온의 허스키한 저음과 그에 못지않은 힘 있는 고음이 어우러지는 중후한 백인취향의 발라드이며 「Deja vu」는 소울의 전설 아이작 헤이스(Isaac Hayes)의 곡으로 키보드와 베이스 연주에 맞춰 디온의 허스키한 보컬이 전과는 사뭇 다른 중량감을 선사하고 있다. 디온은 이 두 곡으로 1980년 22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여자 팝 보컬상’과 ‘여자 알앤비 보컬상’을 동시 수상해 두 부문을 동시에 거머쥔 최초의 아티스트가 되기도 했다.
더불어 루더 밴드로스가 프로듀싱과 작곡을 맡은 「So amazing」, 그와의 듀엣곡 「How many times can we say goodbye」, 강렬한 색소폰 연주가 인상적인 제프리 오스본(Jeffrey Osborne)과의 듀엣곡 「Take good care of you and me」, 또 다른 듀엣곡이자 1987년 히트곡인 「Love power」(A/C차트 1위)도 수록되었다.
이렇듯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때로는 신비롭게, 때로는 경쾌하게 또, 때로는 애절하게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전체에 내재되어 있는 일관된 편안함은 보컬의 힘에 따른 것이다. 힘들이지 않고 나직이 내뱉는 묵직하며 허스키한 저음에다가 얇고 예리한 고음의 조화는 각 곡에 저마다의 흡인력을 부여한다. 이런 점이 험난한 팝 음악계에서 디온 워윅을 오랫동안 지켜준 하나의 무기가 된 셈이다.
레이블 초기히트곡인 「No night so long」이나 조니 매디스(Johnny Mathis)와의 듀엣곡 「Friends in love」, 「All the time」 등이 국내를 포함한 세계 발매 반에는 누락된 점과 그녀의 음악을 기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4페이지로 구성된 성의 없는 부클릿은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에 담긴 주옥같은 음악을 통해 그녀의 가장 의미 있는 한 시절을 되짚어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상기한 단점을 충분히 보완하고도 남는다.
이 앨범은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한 아티스트의 길고 긴 음악 인생 중 한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1980년대 기성세대층에 부합한 'AC 알앤비/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며, 그 후 후배들에게 이 장르의 기본을 일깨워 주는 몇 안 되는 모범답안이 아닐 수 없다.
글 / 성원호 (dereksungh@gmail.com)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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