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더위도 모자라 시시각각 변하는 변덕 날씨, 그리고 높은 습도.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날 보내기 힘드시죠? 집에서 시원한 냉커피에 선풍기 바람을 쐬며 들으면 좋을 앨범 3장을 소개하겠습니다. 보니 엠의 「Sunny」를 샘플링한 「Sunny」로 벌써부터 익숙한 리오의 신곡, 댄서블한 하우스음악에서 세련된 흑인 음악에까지 접근하는 ‘하우스 룰즈’, 마지막으로 더 강력한 사운드로 돌아온 피더(Feeder)의 신보도 감상해보세요.
리오(L.E.O) <The Third Piece: 보물섬>(2010)
미국 록계에서는 기타 하나로 잭 존슨(Jack Johnson)이 하와이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셈이라면, 국내에서도 하와이안 사운드를 표방하는 지역구 아티스트가 있다. 한국 힙합 신에서 백전노장 급에 속하는 ‘떠버리’ 리오(L.E.O)가 와이키키 해변의 흥겨움을 세 번째 앨범
<The Third Piece: 보물섬>에서 파도타기 래핑으로 담아왔다.
앨범 재킷의 면을 빌려 밝혔듯이 자신의 고향인 하와이에서 보낸 망중한(忙中閑)이
<The Third Piece: 보물섬>의 콘셉트를 결정지은 핵심 모티브다. 막간에 배치된 스킷은 크루즈 파티를 연상시키지만, 신나는 트랙들의 향연은 오히려 청룡열차의 질주에 가깝다.
타이틀곡 「Sunny」부터 롤러코스터 레일을 쾌속질주 하며 아드레날린 발산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보니 엠(Boney M)의 동명 곡을 샘플링하여 구축한 펑키한 분위의 비호 아래 리오는 남미의 드리블러처럼 필드를 정신없이 뒤흔든다. 일렉트릭 사운드가 대세이긴 하지만, 올드한 사운드의 힘을 빌려도 충분히 스테이지를 요동칠 수 있다는 확신에서 기인한 접근법이 고무적이다.
올드스쿨에 대한 애착은 「Old school 2 new skool」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투박하지만 정공을 추구하는 비트 위에 과거부터 전해 내려오는 주요 랩 가사를 오마주로 되새김질하는 뜻밖의 재미를 선사했다. 지극히 복고적인 향취를 담은 이상향, ‘보물섬’을 탐험하는 경로에서 예기치 못한 아이템을 하나씩 얻어가는 느낌이다.
지금은 스나이퍼 사운드(Sniper Sound)에 둥지를 틀고 있지만, 리오는 크루를 초월한 인맥을 자랑하는 힙합계의 마당발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총 스물두 명이나 되는 피쳐링 군단을 대동하였는데, 더욱 놀라운 점은 2집
<검은띠>의 참여 아티스트와 비교해도 중복되는 인원이 불과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북적북적한 잔치판이 벌어지며, 그 정점은 스나이퍼 사운드의 반상회 송인 「일기장을 펼치고」에서 극한에 이른다.
불가피하게 다소 우왕좌왕하는 혼란스러움도 있는지라 완벽한 콘셉트 앨범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근래 들어 힙합 아티스트들과 잦은 교류를 나누는 김도향과 함께한 「꿈의 선장」도 기대치를 밑돌 뿐만 아니라, 샘플링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부적절한 예로 기억될 공산이 크다.
몇몇 취약점을 제외하고는 여름을 공략한 힙합 앨범으로서 합격 기준에 미달하지는 않았다. 하와이안 셔츠를 걸쳐 입고, 쉴 새 없이 요동치는 래핑을 선사하는 이로써 리오 밖에는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 아니던가. 황혼에서 새벽까지 잠들지 않을 리오의 랩은 자타가 공인하는 ‘도깨비’ 스타일이 틀림없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하우스 룰즈(House Rulez) <Magic Television>(2010)
서로는 트랙을 어떻게 구성해야 청취자에게 박진감과 전율을 제공할 수 있는지 정확히 꿰고 있는 뮤지션이다. 그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하우스 룰즈(House Rulez)의 음악은 역동성과 탄탄함을 과시한다. 게다가 흡수하기에 좋은 멜로디까지 써내니 그룹은 리듬과 선율 모두를 장악하는 근사한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주는 것이다. 세 번째 정규 앨범
<Magic Television>에서도 그 능력은 어디 가지 않는다.
타이틀곡 「Michael vs Jackson」은 서로의 뛰어난 재능을 확인하기에 가장 좋은 노래다. 비트의 정교한 분절,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특유의 추임새를 샘플로 써 이를 적절한 자리에 배치한 것, 따라 부르기에 쉬운 후렴, 보컬을 마치 악기처럼 이용한 것, 역동성을 발산하는 녹음 등 요소, 요소가 잘 짜인 작품이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영민함을 재차 감지하게 된다.
열네 편의 수록곡은 하나같이 유려하고 수려하며 긴장감을 잃지 않는 흐름을 보인다. 하우스를 중심 장르로 소화하고 있지만 저마다 다른 모양새를 갖춰 식상한 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어떤 음악인은 피아노가 곡을 리드하는 하우스를 한다든가, 또 다른 이는 현악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하우스 작법을 특화하기도 하나 그것을 강조한 나머지 모든 노래가 엇비슷하게 느껴지는 불상사를 맞이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하우스 룰즈는 하지만 곡들에 각기 다른 스타일을 부여해 동일화 현상을 피한다. 서로가 색소폰을 주로 삽입함에도 닮았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 게 이 때문이다.
개성 있는 객원 가수의 참여도 각 노래를 유니크하게 보이도록 하는 데에 일조한다. 평상시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톤으로 노래하는 웨일, 카랑카랑하고 사뿐한 음색의 사파이어, 목소리에서 고혹의 기운이 묻어나는 채연 등이 노래를 한층 다채롭게 꾸며 준다. 보컬 곡과 더불어 캘리포니아 출신 래퍼 덥스택 크리지(Dbstk Crzzy)가 마이크를 잡은 「This Corea」 같은 랩 곡이 들어간 덕분에 그룹의 음악 팔레트는 더 넓어진 상태다.
앨범은 또한 흑인음악에도 접근한다. 「This Corea」는 베이스 프로그래밍이 부각되는 탓에 일렉트로 펑크(electro funk) 느낌의 바운스를 퍼뜨리며 「Channel guide」는 필라델피아 중창 그룹 스타일리스틱스(The Stylistics)의 「Can't give you anything (but my love)」의 도입부를 재가공해 소울 향을 낸다. 「Pako」는 립싱크(Lipps Inc)의 「Funkytown」을 차용해 디스코 분위기를 겸했고 「My fantastic island」는 쿨 앤 더 갱의 「Summer madness」를 들여 아련한 재즈 공기를 흩뿌린다. 일련의 노래들은 이렇게 일렉트로니카 마니아 외에도 흑인음악팬들이 들었을 때 관심을 둘 요인을 갖추고 있다.
자신들이 좋아하고 공감하는 채널을 선택해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콘셉트에 맞게
<Magic Television>은 내용물이 유쾌하고 다양하다는 것이 매력이다. 즐거움과 다중을 확보하는 중에도 노래들은 개별적으로 알차며 음반 전반에 걸친 흐름도 무척 매끄럽다. 작곡과 편곡, 프로듀싱이 다 잘되고 깔끔하게 화합을 이룬 공간이다. 앨범에서는 댄서블한 하우스 음악뿐만 아니라 서로의 역량과 감각이 자라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글 / 한동윤(bionicsoul@naver.com)
피더(Feeder)Renegades(2010)
음악에서 초심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쌓이는 흥행의 요소들은 회사와의 이해타산에서 때놓을 수 없는 관계들이기 때문이다.
<Comfort In Sound>(2002)의 성공 이후, 서정성의 기운만이 짙었던 피더(Feeder)가 공식 데뷔 13년 만에 처녀? <Polythene>(1997)으로 돌아왔다면 믿겠는가. 아니, <Polythene>보다 더 강력한 사운드로 말이다.
처음 이들이 나왔을 때, 평단은 일제히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와 너바나(Nirvana)를 합친 듯한 브리티시 록 밴드라고 말했다. 육중하고 거친 기타 리프는 얼터널티브와 펑크 사이를 헤엄쳤고, 교묘하게 합쳐지는 연주 스타일은 나름의 색채를 띄우고 있었다. 1990년대를 광란했던 록의 회오리 속에서 충분한 공간을 마련했던 것이다.
힙합과 일렉트로닉이 아니면 차트 상위권에 얼굴도 내밀기가 어려운 시대에서 <Renegades>는 잠시 잊었던 그때의 파괴력을 다시 꺼내 들었다. 밴드의 강펀치는 귓구멍을 사정없이 때려대고, 록에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험한 사운드스펙트럼을 과감 없이 토해낸다. 팀은 시간을 무시한 듯 거짓말처럼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Renegades>는 피더의 음반 중 가장 자유스러운 앨범이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듣기 좋은 3분대의 안전한 편곡은 찾을 수 없다. 곡 대부분은 2분대로 짧게 쳐버리며 마무리에서도 예상할법한 규칙적인 패턴은 지워버렸다. 작곡에서 편곡까지, 그 어느 하나 작위적이지 않다.
자칫 건방져 보이는 자신감일 수 있으나, 그 의혹은 음악에서 충분히 풀어준다. 첫 번째 싱글로 컷 됐지만, 선율의 동선을 늘어뜨리지 않는 「Call out」, 좌우로 사정없이 움직이며 드럼의 맛을 살리는 「This towm」, 공연장의 헤드라이트처럼 쏘아대는 기타 리프가 일품인 「Home」, 시작부터 보컬의 외침이 터져버리는 「Down to the river」 등 전곡 모두 편안한 자세는 취하지 않는다. 특히 기타의 왕성한 활동량은 듣는 내내 심장 박동을 뛰게 한다. 마치 록이란 전장에서 사정없이 공격해버리는 대공포(對空砲) 같다.
일곱 번째 앨범에서 내린 이런 결단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새 드러머 칼 브라질(Karl Brazil)을 영입하며 진용을 재정비했고, 무엇보다 본인들이 직접 레이블을 세우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게 됐다. 하드커버로 이루어진 이번 <Renegades>의 한정판 패키지만 봐도 그전의 피더의 앨범에선 찾을 수 없던 디자인. 13년 만에 얻어진 해방에서 팀의 바람들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2010년, 자칫 아류로 분류될 뻔했던 1990년대의 밴드가 기나긴 세월을 지나 지금도 이런 모습을 지키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수많은 록밴드가 등장했었지만, 신보보다 해체의 소식을 더 들려주었다. 그사이 이들은 버텨냈고, 과거의 본때를 보여주고 말았다. 이제 피더에겐
<Comfort In Sound>만 있는 게 아니다. <Renegades>도 있다.
글 / 이종민(1stplanet@gmail.com)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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