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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가 아닌 ‘음악가’로의 상승을 꿈꾸다 - 신해철 <Myself> (1991)

학교 축제나 응원가로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브라스 사운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대학가의 레퍼토리가 되었죠. 그 무한궤도 시절을 지나 솔로 1집에서 획득한 대중성, 그리고 이 2집에서는 음악적으로도 절정의 감성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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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축제나 응원가로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브라스 사운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대학가의 레퍼토리가 되었죠. 그 무한궤도 시절을 지나 솔로 1집에서 획득한 대중성, 그리고 이 2집에서는 음악적으로도 절정의 감성에 올랐습니다. 아마, 이때의 초등학교, 중학교의 학창시절을 지낸 음악 팬들이라면 「안녕」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비롯해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정도는 따라 부를 수 있었죠. 이 외에도 확실한 멜로디 라인을 갖춘 발라드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도 오랜만에 다시 감상을 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신해철의 2집입니다.

신해철 <Myself> (1991)

그룹 무한궤도의 짧은 활동 뒤 1990년, 신해철은 솔로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와 「안녕」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인기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되지만 그가 주목 받았던 원인은 노래가 좋았고 외모가 수려했기 때문이다. ‘가수’의 이미지였고 스타의 이미지였다. 그의 ‘작곡 능력’은 아는 사람만 아는 비고(備考)였을 뿐이다.

신해철에게 있어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이 소녀 팬들의 지지로 귀결되었다면 두 번째 앨범은 작곡 실력을 바탕으로 음악 마니아까지 아우르는 팬 저변의 확대로 이어진다. 그만큼 2집 <Myself>는 신해철의 곱살하고 세련된 이미지에 집중된 대중의 시선을, 그에게 잠재해 있던 음악성으로 돌려놓는다. 가수 아닌 ‘음악가’ 로의 상승!

기계음을 기반으로 하는 격이 높아진 사운드 메이킹과 사랑 타령의 비(非)개성에서 벗어난 자기 성찰적인 가사로 축약될 수 있는 그의 ‘2차 도약’은 동시대 여타 음악인들 가운데에서도 괄목상대할 만한 것이다. 앨범은 시작부터 당당하다. 장난스러운 음성 변조를 통한 신해철의 소개 멘트 후 이어지는 “너희가 진정한 팝을 아느냐”는 당찬 영어 가사에서 새 앨범에 대한 그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The greatest beginning」이라 명명된 이 짧은 서곡은 재즈적 접근법의 피아노 연주를 통한 활기찬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앨범의 타이틀곡 「재즈 카페」는 1집 이후 새로운 음악을 기다려왔던 팬들의 기대와 사랑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며 스매시 히트를 기록한다. 재즈 카페와 그곳을 찾은 외로운 사람들을 묘사한 감각적인 노랫말과 건반과 색소폰의 화려한 솔로가 일품인 이 한 곡을 통해 앨범을 구입하지 않은 음악 팬들조차도 그의 변신을 쉽게 가늠하게 된다. 얼마 후 신해철은 변진섭과 함께 조인트 앨범을 발매하는데 여기에는 「재즈 카페」가 새롭게 리믹스되어 수록된다. 캡틴 퓨처(Captain Future)로 잘 알려진 송재준이 편곡을 맡은 리믹스 버전은 중간에 영어 랩이 첨가되고 원곡의 세련미보다는 춤을 자극하는 쪽으로 변형된다. (「재즈 카페」 활동 후반에는 결국 이 리믹스 버전이 활용되며 신해철은 화려한(?) 다리춤을 팬들에게 선사한다)

「나에게 쓰는 편지」는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자기 고백적인 가사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두 번째 앨범의 주요 트랙으로서 자리 잡는다. 탄력적인 댄스 비트 위에 펼쳐지는 애절한 멜로디, 중반부에 차분하게 풀어놓는 랩까지 하나하나가 듣는 사람을 몰입시킨다.

신해철 특유의 중저음 보컬이 중심에 선 「다시 비가 내리네」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가사가 블루지한 멜로디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이어지는 「그대에게」는 화려한 브라스 건반 연주에 이은 깔끔한 로큰롤 편곡이 앨범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1988년도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에 빛나는, 지금도 스스로 수작으로 꼽는 곡 「그대에게」는 이후 그의 팬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꾸준히 애청되며 신해철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다.

「재즈 카페」와 더불어 본 앨범의 또 다른 히트 곡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는 데뷔앨범의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와 닮아 있는 팝 발라드. 인트로를 수놓는 데뷔 앨범의 숨은 조력자 정석원의 피아노 연주는 서정적이며, 가슴 뭉클하도록 진지한 노랫말을 편안한 코러스 라인에 실은 후렴은 전보다 확장된 그의 발라드 작법을 적절히 드러내 준다.

이정식의 색소폰 연주와 함께 관능적인 편곡이 눈에 띄는 「아주 오랜 후에야」는 몽롱하면서도 따뜻하며, 노후를 염려하는 이색적인 노랫말 위를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관조하는 「50년 후의 내 모습」은 몽환적이면서도 차갑다. 특히 뒤 곡은 전자음악에 대한 신해철의 관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곡으로서 나중 그가 주조해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이 한 곡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출발한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앨범의 끝을 알리는 슬로우 템포의 곡 「길 위에서」는 영화 음악 <Chariots of fire (1981)>의 「Titles」를 연상케 하는 장대한 편곡 안으로 푸근하게 스며든 전자음이 귓전을 울린다. 그대에게 털어놓는 삶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다짐의 가사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영리한 팝 앨범이다. 데뷔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뚜렷한 기승전결의 곡 구조나 담박한 멜로디 라인은 기저로 하되 전작에서 부족했던 시도의 윤곽은 뚜렷하다. 각 곡들이 고유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앨범 내의 어떠한 곡들이 서로 닮아 보이지도 않는다. 전자음의 굵은 줄기로부터 음악적 요소들이 가지를 뻗은 듯 중심도 잘 잡혔다. 전곡의 작사 작곡과 프로듀싱을 모두 도맡아 한 20대 초반의 한 젊은 음악인은 이처럼 놀라운 역량을 과시한다. 전작으로부터 불과 한 해가 흐른 시점. 그 짧은 시기에 이룩해낸 「진화」야말로 앨범의 으뜸 미학이다.

신해철은 이제 자기 음악을 할 줄 아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음악적 각성(覺醒)의 진행에 따라 아이돌 스타의 길을 접고,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창작자의 한 사람으로서 솟아오른 그는 이 시기부터 가수 아닌 음악가의 길을 숨 가쁘게 그리고 외곬으로 파고든다. 신해철은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다. (어여쁜 노래를 부르던 브로마이드의 주인공은 이제 ‘집(Home)’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글 / 김두완 (ddooba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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