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마라도나’ ‘마라도나의 재림’이라는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를 막느라 11명의 태극전사들이 전원 수비로 나섰던 것이 직접적인 패인이 되어버렸다. 최전방 공격수인 박주영까지 골문 앞에 나섰다가 어이없는 자책골을 허용하고 말았으니……. 그 다리는 우리를 위한 슈팅에 쓰일 다리인데 왜 하필 정강이에 맞았을까?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일 수밖에 없었다. 보는 사람도 그런데 정작 선수 본인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동안 얼마나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자신에게 화가 났을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아마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서 자신의 다리가 엄청 미워보였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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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Guardian | |
어쨌거나 전반은 아예 수비만 하겠다고 작정한 듯한 우리의 전술은 실패로 돌아갔고 체력조차 그들을 압도하지 못한 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보다도 더한 골 차인 1-4의 패배를 안게 됐다. 4골 모두 메시로 인해 만들어진 골이었다. 핸들링과 오프사이드라는 석연치 않은 반칙과 자책골까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수많은 불행 가운데 몇 가지 요인이 모두 겹쳐서 나타난 경기였다. 허정무 감독으로서도 마라도나의 오만한 태도를 제압할 만한 실력을 보여 주지 못했기에 두고두고 가슴에 남을 것 같다.
경기 전 허정무 감독의 옷 스타일부터 봤다. 2-0 승리를 가져다주었다는 일명 ‘허정무 넥타이’라는 행운의 넥타이를 하지 않고 나타난 순간 왠지 느낌이 안 좋았다. 박주영의 자책골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구아인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한 것은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극단적 수비 전략도 먹히지 않았지만 오범석 카드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고 염기훈 선수의 초반 경고 장면과 후반 결정적 찬스를 날려버린 점 등은 계속해서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후반 37분 이동국 선수의 교체는 또 뭔가? 12년 만에 드디어 출전하게 되는 월드컵인데 이런 식으로 패전 처리병 같은 출전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컨디션 조절 차 짧은 시간이나마 투입해서 다음 나이지리아전에 대한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스트라이커로서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허정무 감독의 깊은 듯이 있었을 테니 나이지리아전에서는 선발로 당당히 나서서 스트라이커로서의 본능을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다.
경기는 이렇게 1-4로 완패했지만 그나마 이청용 선수의 골 장면은 우리 대표팀의 희망으로 등장했다. 이미 다 이겼다는 안도감에 정신줄 놓고 있던 아르헨티나 진영을 요리조리 뚫고 들어가 완벽한 골을 만들어냈으니…… 경기 전 ‘그라운드에 서면 메시는 그저 똑같은 선수일 뿐이다’라고 인터뷰하며 당당히 대응했던 그가 메시 앞에서 골을 넣는 모습을 보니 더욱 자랑스럽고 어디까지 발전할지 앞으로 그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기만 한다.
비록 이구아인에게는 이번 대회 첫 해트트릭을 만들어준 경기가 됐고 아시아 지역 이변의 주인공에서 잠시 밀려난 듯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나이지리아전이 남아 있다. 나이지리아전에서만큼은 실험이 아닌 실전용으로 선수 구성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작전 또한 승리 방정식에 딱 맞아 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각 사람의 장점이 모두 어우러져 해외 원정 첫 16강 진출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대한민국인의 기백을 널리 널리 알려주기를 바란다. 침략과 굴곡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꿋꿋이 버텨내고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는지를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다시 한 번 당당하게 보여주자.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그저 홈 어드밴티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아시아 축구의 수준이 그들 못지않음을 당당히 보여주고 돌아오자.
처음부터 이기기 어려운 경기라고 보고 1패를 예상했던 팀이니 손해 본 거 없다. 얼른 툭툭 털어버리고 주전들의 부상과 퇴장으로 어수선한 나이지리아를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에게는 16강 진출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 하나만 남았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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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문이 아닌 천국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비난과 욕설로 질책하지 말고 더 큰 목소리로 지구 반대편의 태극 전사들에게 기를 불어 넣어주자.
“허정무 감독님! 똑같은 스타일이라도 괜찮으니 행운의 넥타이 부탁해요~ 나이지리아전에서만큼은 우리의 실력에 운까지 더해질 수 있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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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하 스포츠 전문 MC로 1971년 2월 22일 태어났다. 1995년 MBC 라디오 공채 리포터로 입사해 스포츠 전문 리포터로 활동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MBC 라디오 ‘이은하의 아이 러브 스포츠’ MC로 등극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여성으로서는 단독으로 스포츠 전문 MC로 활약하는 첫 번째 주인공이 되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기점으로 스포츠에 입문했으며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프로그램을 제작하였다. 그녀의 마이크를 거쳐 간 스포츠 스타들은 1,000여 명이 넘을 정도. 스포츠 리포터로 시작해서 스포츠 VJ, 스포츠 MC, 스포츠 칼럼니스트, 스포츠 캐스터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스포츠와 오랜 사랑에 빠져 있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뒤늦게 성균관대학 스포츠과학대학원에서 스포츠 사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허정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으로부터 “누구나 쉽게 축구와 사귈 수 있는 최적의 가이드”라는 찬사를 받은
『축구 아는 여자』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