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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화가의 어머니」 캔버스에 유채, 41x33cm, 1888,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관 | |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년)의 어머니
알린-마리 고갱(Aline-Marie Gauguin)
결혼 전 성은 샤잘(Chazal)
고갱의 어머니 알린-마리 고갱은 유명한 페미니스트 작가인 플로라 트리스탕의 딸이었다. 플로라는 몇 대째 페루에 살고 있던 스페인 귀족 가문의 자손이었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사생아의 설움을 겪어야만 했다. 게다가 플로라는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아서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다녀야 했고, 자신의 어린 딸인 알린을 남편에게 납치당하기도 했다. 알린은 여성도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방침에 따라 재봉사로 일하다가, 정치 기자인 남편 클로비스 고갱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남편이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가족과 함께 페루의 친척을 찾아갔다. 대서양을 건너는 항해 도중에 클로비스는 죽었으나, 알린은 어린 아들과 함께 살아남을 결심을 하고 리마의 부유한 친척들 곁에서 수년간 머물렀다.
1855년 파리로 돌아온 그녀는 양재점을 열고 생계를 꾸리면서 아들을 엘리트 학교에 보냈다. 졸업 후 고갱은 선원이 되어 다시금 대서양을 건넜으며, 그가 떠나 있는 동안 알린은 세상을 떠났다. 훗날 그는 절절한 심정으로 어머니를 추억했으며, 특히 리마에서 보낸 시절을 그립게 회고했다. 그가 항상 지니고 다니던 소지품 중에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이 있었으며, 이 초상화는 그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다.
초상화는 사진과 많이 다르며, 아마도 그가 잠시 반 고흐와 함께 아를에 머물던 시절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고흐 역시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렸다. 고갱이 그린 알린은 미소를 띠면서도 직선적인 대담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그는 어머니의 입술은 실제보다 두텁게, 코는 더 펑퍼짐하게 그려 스페인 내지는 페루 혈통을 강조했다. 또한, 선을 단순화하여 얼굴 주위에는 숱 많고 곧은 머리칼을 늘어뜨렸으며, 옷의 레이스 칼라와 리본을 단순한 모양으로 변형시켜 밝은 노란 빛깔(고흐가 좋아하던 바로 그 색)의 바탕과 대조를 이루게 했다. 이런 단순화는 그가 다른 후기인상파 화가들과도 공유하던 화풍이다.
고갱의 이국적인 취미는 아마도 어린 나이의 남미 여행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그는 브르타뉴에서든 타이티에서든 다른 사람들의 본성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이 야만인의 혈통을 타고났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플로라 트리스탕의 친구였던 조르주 상드는 친구의 딸인 알린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이 아이는 천사와도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