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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컨스터블, 「앤 컨스터블」 캔버스에 유채, 76x63.5cm, 1804, 콜체스터, 캐슬 박물관 | |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년)의 어머니
앤 컨스터블(Ann Constable)
결혼 전 성은 와츠(Watts)앤 와츠는 열아홉 번째 생일을 사흘 앞두고 결혼했다. 남편 골딩 컨스터블은 서포크 지방에 많은 토지를 상속받은 곡물 상인으로, 아마 런던의 곡물 시장에 왔다가 앤을 만난 것 같다. 앤은 남편을 따라 서포크로 가서 살림을 차렸으며, 그는 그곳에 물방앗간 두 개를 사들이고 집을 지었다. 그녀는 검소하고 독실하며 가정적인 여성으로, 자녀 양육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들은 여섯 자녀를 두었으나 맏이가 정신지체였으므로, 둘째 아들인 존이 방앗간들을 물려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존은 화가가 되고 싶어 했고, 1799년 런던에 가서 왕립미술원(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츠)의 견습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앤은 자주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용돈을 보내 집에 자주 다녀가게 했으며, 그럴 때면 빨랫감까지 가지고 오게 했다!
앤은 존이 초상화가로 성공하리라 믿었다. 영국 왕립미술원의 초대 원장이었던 조슈아 레이놀즈 경이 세상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레이놀즈 경은 학생들을 위한 훈화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었다. “훌륭한 초상화란 인물과 비슷하고 성격과 표정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생김새를 정확히 묘사하고 부분들을 세밀히 그리는 것보다도 화가가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효과에 더 많이 달려 있다.”
컨스터블은 어머니가 등받이가 똑바른 의자에 앉아 무릎에 강아지를 올려놓은 일상적인 모습을 그렸다. 그는 레이놀즈 경이 권장했던 대로 전체적인 효과를 추구하는 대신, 어머니의 이목구비와 머리칼과 보닛의 세부들을 자세히 그렸다. 이 그림은 웅장하고 공식적인 초상화가 아니라, 가족의 한 사람을 격의 없이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모사한 또 한 장의 「앤 컨스터블」은 좌우가 반대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남편의 초상과 마주 보게 하기 위해 그렇게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앤은 존의 재능을 굳게 믿었고, “성공해서 명성을 얻으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격려하곤 했다. 그녀는 헌신적인 어머니였지만, 그녀의 편지에서는 현실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우리의 계획과 생각을 세상에 맞출 필요도 있단다.”
마침내 그는 고향의 전원을 그리는 풍경화가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는 풍경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물방앗간의 물소리, 버드나무, 오래되어 썩은 판자들, 미끈미끈한 말뚝과 벽돌담,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