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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칼럼니스트 표절 사건

자, 마지막으로 오늘의 결론 두 가지! (은서를 위한) 하나! 표절, 아니 복사하면 경찰이 잡아간단다. 조심해라. (준석을 위한) 또 하나!!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세상을 나누지 마라~잉. 네가 부시냐? 아니면 OOO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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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님, 생각 좀 하며 삽시다
무소유가 아니라 무개념…… ‘창문 뚫고 다이빙’ 하고픈 일가족 글쓰기의 그늘을 폭로함

“다음엔 ‘창문 뚫고 다이빙’이야.”

문화방송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 종영된 건 한 달 전의 일이다. 지훈과 세경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마지막 편에서 목도한 아이들의 눈은 글썽였다. 초딩 은서는 눈물을 닦은 뒤 말했다. “아빠, 다음엔 제목이 뭐야?” “무슨 제목?” “응, <거침없이 하이킥> 끝난 뒤에 <지붕 뚫고 하이킥>이었잖아. 다음엔 무슨 하이킥이야?” “두 번이나 하이킥을 했으니, 이번엔 다이빙을 해야지. ‘창문 뚫고 다이빙!’으로 한대.”

엉덩이에 본드를 붙여야 안전합니다

은서는 뭔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빠의 의뭉스런 표정을 읽었는지, 엄마와 오빠에게도 달려가 되물었다. 창문 뚫고 다이빙! 그럴 리가 있나. 농담이다. 투신자살을 부추기는 그런 반사회적 제목을 지을 리는 없다. ‘창문 뚫고 낙하산’이라면 모를까.

‘창문 뚫고 다이빙’은 내 어떤 마음의 병을 환기시켜 주는 조어임을 고백한다. 6년 전 잡지에서 매주 시사 풍자 칼럼을 쓸 때였다. 오로지 아이디어와 유머로 승부해야 하는 글이었다. 어찌 매주 재기 넘치는 글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랴. 나의 모자람에 절망할 때마다 홀로 이렇게 울부짖어야 했다. ‘정말이지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어.’ 앞으로 이 연재물을 쓸 때도 그런 충동이 찾아오지는 않을지 두렵다. 증상이 심각해질 경우를 대비해 엉덩이에 본드라도 붙이고 자판을 두드려야 할까.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얼마 전 옛 직장 후배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수요일 밤만 되면 ‘건드리지 마시오’ 혹은 ‘누가 날 건드려 볼 테냐’ 모드가 된다. 여러분 글 쓰는 남자 사귀지 마요. 마감 날엔 사이코 혹은 미친개가 됩니다.” 또 다른 후배도 댓글로 맞장구를 쳤다. “글 쓰는 녀자도 마찬가지. 그야말로 인간기뢰 ㅋㅋ.” 글은 때로 변비 환자의 고통스러운 똥 같은 것이다. 볼일 못 봐서 미친다.

이야기가 빗나갔다. 신세 한탄의 요점은 다른 데 있다. 정작 요즘의 문제는 내 글쓰기가 아니다. 딸의 글이다. 황당하고 대책 없는 무개념 문장들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오빠 준석은 그런 동생을 가리켜 ‘무소유’가 아니라 ‘무개념’이라며 키득거린다). 복장이 터져 ‘창문 뚫고 다이빙’ 하고 싶을 지경이다. 지난주 이 칼럼에서 ‘일가족 글쓰기’의 장점을 찬양했다면, 오늘은 반대로 그 감춰진 그늘을 폭로하는 셈이다.

“돌아가신 분이 무려 46명이나 됩니다. 46명이면 그 크고 무거운 오토바이를 들을 수 있는 수입니다. (중략) 나야 감동받아서 울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들의 가족들, 애인들, 친구들은 정말 너무 슬퍼서 울 것입니다.” 뭥미? 웬 오토바이? 천안함 침몰 사고로 죽은 군인 아저씨들에게 보낸 편지인데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감동받아서 울지 않았다고? 뒤에 가선 울었다고 말을 바꾼다.

천안함 46인에 오토바이가 왜 나오는데?

“그 사건이 얼마나 크게 터졌으면 학교에서까지 사이렌이 울리겠습니까? 저도 이 사건을 다시 들으니 눈물이 다 나옵니다. 그 분들께서도 슬퍼하시는 가족들, 애인들, 친구들을 보면 정말 너무 슬플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면 죽은 것이 미안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계셔서 행복하십니까? 슬프십니까? 저 같으면 슬펐겠습니다. (중략) 남자로 태어나지 말걸, 이라는 생각도 들 것 같습니다. (중략)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생각이 가난하다. 아니, 생각하기를 귀찮아한다. 아직 불행을 몰라서, 죽음의 의미를 이해 못 해서인가보다.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추모의 마음이 묻어나기를 바랐지만 억지 투성이다.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 주고, 궁금한 점은 인터넷 뉴스를 찾아본 뒤 다시 쓰라고 시켰다. 유감스럽게도 차이가 없었다.

앞으로 아이의 가난한 생각과 투쟁해야 한다. 은서야, 아빠 창문 뚫기 전에 제발 생각 좀 하며 하이킥!!

복사하면 경찰이 잡아간대~

(이 이야기를 써야 하나, 감춰야 하나. 어린이 명예훼손? 에라 모르겠다.)
은서의 ‘생각 없음’은 결국 표절 사건을 부르고 말았다. 혐의를 포착한 아빠는 자신의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던 은서를 ‘피의자 신분’으로 연행했다. 조사는 거실 탁자에서 이뤄졌다. “이거, 네 생각대로 쓴 게 맞아?” 헤헤헤, 대답은 안 하고 배시시 웃기만 하는 은서. ‘내장 비만’에 관하여 이상한 글을 써 놓고 시치미를 뚝 떼 왔는데, 역시 웃음에 죄책감이 스민다.

자, 지나가던 개도 은서가 썼다고는 판단하지 않을 문제의 글을 요약했다.


비만클리닉 OOO원장은……

난 내가 혹시 내장비만이라는 생각을 종종가지고 산다.
내가 내장비만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이유는 내가 내장비만의 증세와 같기 때문이다.
내장비만은 겉에는 속이 전혀 안 졌다. 하지만 내장에는 기름기가 잔뜩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랐지만 비만이라는 것이다.
내장비만이 왜 안 좋냐면, 내장비만은 복부비만과 내장에 지방이 많아지는 내장비만은 건강의 적신호로 합병증인 고혈압, 고지혈증과 깊은 관련이 있고 뇌졸증이나 협심증, 급사의 원인이 되는 심근경색증의 발생을 늘리기 때문이다.
(중략)
즉, 몸무게가 적게 나가더라도 다른 구성요소에 비해 체지방이 많거나 복부 등 특정 부위에 체지방이 집중됐다면 비만 진단을 내리게 된다. 쉽게 비만도를 체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은 체중을 신장의 제곱으로 나누는 체질량지수이다. 무엇보다 비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몸무게에만 연연하기 보다는 적정량의 근육을 가지고 있는지를 체크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비만클리닉 OOO 이선호 원장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면 목표를 전체 체중 감량보다 체지방률을 정상으로 만드는 것에 두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즉 체지방량을 줄이고 근육을 늘이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 잘 알려져 있듯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사를 조절하고 유산소 운동을 함과 동시에 근육량을 늘리기 위한 근력운동을 해야 한다.(이하 생략)
2010. 4. 27

은서, 표절을 실토하다

헐~ 원본은 두 배가 넘는다. 가장 기가 차는 대목은, 비만클리닉 OOO 원장의 코멘트다. 전화로 취재까지 하셨나? 수준이 언제 이렇게 높아지셨나? 아무튼 은서는 결국 실토하고 말았다. “음…… 사실은 복사했어”라는 말로. 복사, 카피, 그러니까 ‘ctrl+c’에 뒤이은 ‘ctrl+v’ 말이다.

“뭘 복사했어?”
“뉴스 있잖아, 인터넷 뉴스.”
“몇 군데나?”
“두 군데. 그래도 글이 (두 팔을 한껏 벌리며) 이만큼이나 돼.”
“그걸 왜 베꼈어?”
“내가 아는 게 없어서.”
“베끼면 돼, 안 돼?”
“안 돼.”
“왜?”
“발표하는 글이잖아.”
“복사 같은 거 하면 경찰 아저씨가 잡아가. 왜 그런 줄 알아?”
“알아.”
“왜?”
“그거 있잖아. 저작권.”
“저작권이 뭔데?”
“남의 글 갖다 쓰는 것.”
“잘못했지?”
“응, 잘못했는데 이것도 글로 쓸 거야?”
“창피한 건 아는구나.”
“흥!”

사실 두 번이나 고쳐 쓴 글이었다. 초고가 미흡하게 느껴져 한 번을 더 쓰게 했다. 그때까지는 자기의 경험에 기초한 내용만 담았다. “내장 비만에 관해 인터넷에서 더 알아보고 글을 보완하라” 했더니 자기 에피소드에 관한 부분은 쏙 빼고 인터넷 뉴스만 짜깁기한 것이다. 원래의 글보다 더 못난 꼴이 된 셈이다. 그럼 그 이전의 글을 보도록 하자.

먹어도 살 안 찌는데 혹시 내장비만?

내장비만에 대한 글
나는 내장비만 인가? 이라는 생각을 난 종종가지고 산다.
왜냐하면 나는 안 좋은 것을 많이 먹는데도 살이 안 찌기 때문이다.
난 처음엔 내장비만이 무엇인지 몰랐다. 내장비만이라는게 무엇인지 알게 된 날은 오늘 아빠, 오빠와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러 밖에 나간 날부터 알게 되었다. 우리는 돌아올 때 맛있는 떡볶이 집에서 ‘오뎅’만 먹고 돌아왔다.
(그래도 떡볶이는 싸왔다.)
나는 오뎅을 먹으며 돌아올 때 오빠, 아빠에게 뽐내며 나는 아무리 먹어도 절대로 비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오빠가 헐~ 그러면서 “너, 그냥 비만이 아니라 내장비만일 수도 있어” 라고 했다.
나는 절대로 절대로 내장비만이 아니라고 오빠에게 강요했다. 하지만 난 그때 내장비만이 뭔지를 몰랐고, 정확히 내가 내장비만이 아닌지는 몰랐다.
아빠에게 내장비만이 뭐냐고 물어보자, 아빠는 내장비만이 안 좋은 것을 많이 먹는데, 겉으로는 살이 안 쪘고, 속 (내장)이 기름기로 쌓인 것을 말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나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나는 많이 먹는데도 별로 살이 찌지 않는다. 그 이유에는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내가 겉은 아니고, 속 (내장)에 기름기가 쌓여있다든가, 아니면 내가 너무 학원 갈 때마다 걸어다녀서, 그 걸어다니고 뛰는 것이 운동이 되어서 몸이 튼튼해졌던가, 그 둘 중의 하나이다.
사실 나도 살에 대한 고민이 조금 있다. 그 고민은 조금 이상하다. 사람들이 나보고 자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고민이다. 이 소원은 사람들이 날 미워할 소원이다. 나는 사실 살이 좀 쪘으면 좋겠다. 엄마도 나와 같은 소원이라고 하셨다. 사실 몸이 통통해지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찌고 싶은 사람도, 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난 비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냥 통통해지고 싶다. 내 친구 채원이나 선아같이 통통하면 귀엽다. 예쁘다. 하지만 남자 아이들은 통통한 것과, 비만인 것을 구분 못 한다. 가끔 아이들은 통통한 애를 “야! 돼지갈비!” 라고 놀리기도 한다. 통통해지는 것은 좋지만, 아이들이 놀리는 것은 싫다.
흠, 어차피 아이들이 놀리면 혼쭐을 내 주면 되니까, 놀리는 것은 별로 신경이 안 쓰인다.
하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오빠가 내가 뚱뚱하다고 놀리는 것이다. 오빠가 놀리면 기분이 나쁘다. 때리고 싶다. 그렇다고 진짜 때릴 수는 없다. 못 때리는 이유는 오빠가 나보다 나이가 위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위여도 그냥 때리면 안 되냐고? 그냥 때려도 안 된다. 왜냐하면 내가 오빠를 때리면, 오빠도 나를 때리고,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오빠가 나보다 힘이 세다. 나보다 힘이 세면 반복되면서 맞을 때마다 배가 아프다. 그래서 오빠에게 시비 걸기와, 싸우기는 싫다. 그런데 나도 내가 내장비만인지는 정확히는 모른다. 내가 내장비만인지, 내장비만이 아닌지, 구분이 안 된다. 난 안 좋은 것을 많이 먹는다. (하지만 어쩔 때는 조금 적게 먹는다.)
그런데도 살이 찌지 않는다. 겨우 겨우 살이 찔 때는 30.5kg 정도 된다. 그런데 그것도 살이 찐 것이 아니라, 나의 무게를 잰 체중계가 고장이 난 것이다. 내가 내장비만일 수도 있다. 그렇게 장담하는 이유는 내가 좀 비실비실하고, 어쩔 때는 변비도 걸리고 그런다. 그리고 많이 먹기는 하지만, 어쩔 때는 밥투정도 한다. 아니, 안 좋은 것을 많이 먹을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몸이 아프다. 겨울에는 맨날 저주에 걸린 것처럼, 감기에 반복되며 걸린다. 하지만 봄이 되면 나는 그 독감이 싹~ 낫는다. 그리고 내가 내장비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는 맨날 뛴다. 밥 먹을 때도 급한 일이 있어서 뛰고, 오빠에게 장난을 쳐서 도망을 치느라 뛰고, 학원 늦어서 뛰고, 학교도 지금 늦었다고 엄마에게 투정부린 다음 뛰고, 난, 참 많이 뛴다. 그리고, 빨리 급식 받으려고 뛰고, 그래서 여러 번 아이들보다 걸음이 빠르다.
그래서 달리기는 남들보다 뛰어나다. (어쩔 때는 남들에게 뒤처질 때도 있지만.)
왜냐하면 자꾸 자꾸 뛰면 달리기를 못 하던 사람도 잘 뛸 수 있다. 난 많이 많이 뛰어서, 다리가 잘 단련되어, 달리기 잘 하게 된 것이다.
난 내장비만이 되는 것이 싫다. 그냥…… 난…… 그냥 통통해졌으면 좋겠다.
내장비만은 속이 뚱뚱한 것이어서 싫다.
아니, 뚱뚱한 것 자체가 싫다. 뚱뚱하면 놀림 받고, 또 놀림받으면 기분이 나쁘다.
또한 기분이 나쁘면 그 날의 일이 잘 안 돌아간다.
난 그래서 뚱뚱한 것과, 내장비만이 싫다.
2010. 4. 26

은서야, 흉내 내면 지는 거야

살이 좀 쪄서 통통해지면 좋겠는데, 뚱뚱하다는 놀림당하기는 싫고, 특히 오빠가 놀릴까 봐 싫은데 그 이유는 나보다 힘이 세 혼내 줄 수가 없어서다. 결론적으로 살짝 통통해졌으면 좋겠는데, 내장 비만은 싫다는 내용이다. 조리는 없지만 나름 귀엽다. 영 말이 안 되지는 않는다. 이게 앞의 복사물, 즉 표절로 뒤범벅된 글보다는 백 배 낫다. 이쯤에서 아빠는 은서에게 글쓰기에 교훈이 될 만한 폼 나는 이야기를 하나 던져 주고 싶다.

“은서야, 흉내 내면 지는 거야.”

지난해 여름 <스타일>이란 TV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었다. 박기자 역으로 나온 주인공 김혜수가 ‘엣지’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그 드라마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스타일이 있다”. 은서에게도 은서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 없으면 개발하면 된다. 남이 하는 걸 줏대 없이 따라 하기보다는, 조금은 모자라더라도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을 고집하는 쪽이 보기 좋다. 글도 마찬가지다. ‘자기 언어’가 참 중요하다. 자기만의 말투다. 내용이 좀 딸린다고, 인터넷에 남이 올린 걸 그대로 긁어다가 자신의 글인 것처럼 꾸미는 일은 반드시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족해도 자기 입으로 말해야 한다. 남의 입을 훔치면 안 된다. 오늘은 은서를 심하게 혼냈다. 준석이라도 칭찬을 좀 해 줘야겠다. 다음은 지난 2월 14일 졸업식 직후에 준석이가 쓴 글이다.


맞짱과 내신관리, 험한 생활의 시작

2010년, 새해이다. 내가 열네살이 되는 해이자, 이번주 화요일날 가는 중학교부터 중학교 생활이 이어진다. 다르게 말하자면 ‘졸업’이다.
졸업식이 중요하고 성대하며 엄숙하다고는 1학년 아니 그 이전부터 생각해왔지만, 이번에는 뭔가 확실히 달랐다. 예전에 졸업식을 보았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학교에 있던 의자를 일일이 모래로 덮인 운동장에 배치하여 추운 겨울날 몸을 떨고 손을 비비고 입김을 불며 졸업식을 진행하였었다. 하지만, 그런 졸업식을 한 반면, 이번 2009학년도 6학년 졸업식은 각자 반에서 하기로 하였다. 사실 반에서 따뜻하게 졸업식을 맞이한다기보다는 추운 곳에서 몸을 부르르 떨며 진행하는 졸업식이 훨씬 더 좋은데……. 어쨌든 가장 분하고 가슴아픈 사실은 ‘졸업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6학년 전교생의 잽도 안되는 수의 학생들 밖에 상을 타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왠지 모르게 6학년 전교생을 제외하고 나만 상을 타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아이들이 상을 받을 때 박수를 쳐주어야 할 때는 정말 기분이 상하고 남 앞에 얼굴 들추기가 부끄러웠다. 엄마에게 얘기를 듣기로는 선생님께서는 준석이가 상을 타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아요 라고는 하셨지만, 기분이 나아질 건 없다. ‘아쉽다 좀만 더하면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해봤자 상을 못 받는 건 마찬가지니까. 생각해봐라. 쇼트트랙에서 3위와 4위의 시간차이가 0.5초밖에 안된다고 치자. 그렇다고 4위에게 메달을 줄 수는 없는 법이잖나. 아쉽지만, 좀만 더 하면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결국 한탄해봤자 받지도 못하는 것 어쩔 수 없다.
나는 졸업식을 진행하고 난 후, 가족끼리 점심을 먹었다. 우리 철이 덜 든 동생 고은서는 감히 종업식과 졸업식을 도토리키재기로 취급하면서 ‘종업식 하는데 왜 나는 꽃하고 선물 안줘……’하면서 징징거렸다. 동생은 이제 ‘고학년도 아닌 고학년’으로 취급되는 4학년으로 올라가게 된다. 생각해보아라.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마지막까지 종업식은 열 번이 훨씬 넘는다. 그에 비하면 졸업식은 일생에 단 네 번뿐이다. 누가 감히 이들을 도토리 키재기로 비교하겠나? 동생이 철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집은 참 신기하다. 동생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면 그와 동시에 나는 오마중학교를 동시에 졸업하게 되고, 또 동생이 중학교를 졸업하게 된다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결국 같이 다닐수 있는 학교는 단 두 개의 학교, 첫 번째와 마지막인 초등학교와 대학교 밖에는 없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렇다. 중학교라, 중학교…… 중학교를 간다는 것은 ‘새출발’의 의미이다. 그러나 중학교 출발이 꼭 초등학교처럼 순조롭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한 학교등급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천지차이이다. 초등학교에 가면 1학년들은 누구나 순수하고 맑고 착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중학교에 가면 맞짱과 내신관리, 입학사정관제, 사춘기 동급생 등등 엄청난 과제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싸움은 하지 않으니 그다지 문제될 건 없지만, ‘돈’을 들고 다니면 안 된다. 삥을 뜯기기 때문이다. 갖고 다니더라도 2~3,000원 사이로 들고 다니는게 좋다. 나는 한번 삥을 뜯긴 경험이 있는 사람인지라 돈을 되도록 들고 다니지 않는다. 삥은 무섭다. 돈을 뜯는 것 보다는 강제요구, 폭력행사, 갑작스런 충격 등이다. 그때 내가 울었는데, 내가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순간적인 충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공부는 못하더라도 양심 있고 개념 있고 착하고 활발한 사람만 세상에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단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단점은 ‘없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선과 악으로 사람을 창조한 반면 악마를 만드시고, 지금도 선과 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번 거칠고 나쁜 사람들 사이에서의 서바이벌 게임에 우리같은 선인을 미션캐릭터로 집어넣으셨으니 살아남아야지, 이 험한 중학교 생활에서!
2010. 2

과거 분사 써야 해? 선악으로 나눠야 해?

먼저, 졸업상을 타지 못한 아쉬움이 깊이 배어 있다. 더불어 “나도 종업식했는데 꽃다발 안 주냐”는 동생 은서에 대한 야유, 초등학교와는 비교도 안 될 험난한 중학교 생활에 대한 걱정이 담겼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랄까. 준석의 글에 미소가 번지는 이유는, 자신의 주관과 스타일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배운 어려운 개념을 들이대지는 않는다. 자신이 경험하고 자신의 머리로 정리된 알맹이를 골라 자신의 스타일로 풀어낸다. 남의 글 흉내 내지 않아 좋다. 오늘은 준석에게 두 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하나는 문장에 관한 지적이고, 또 하나는 중요한 어떤 철학에 관해서다.

먼저, 어색한 문투다. 오늘은 과거 분사에 대해서만 짚고 넘어가겠다. 어른들도 습관적으로 이런 과거 분사 표현을 많이 쓴다. 준석이는 “예전에 졸업식을 보았었던 적이 있다”라고 썼다. 보았었던 적이 있다? “예전에 졸업식을 본 적이 있다”라고 하면 된다. 훨씬 간결하다. “그때에는 (…) 손을 비비고 입김을 불며 졸업식을 진행하였었다”라고도 썼다. “그때에는 (…) 진행했다”라고 하면 부드럽게 다듬어진다. 영어 번역투의 표현이라서 배격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문장 구조를 괜히 뚱뚱하게 해 발음이 부자연스러워져서일 뿐이다.

둘째, 맨 마지막 부분에 언급된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관해서다. 준석은 “하나님이 선과 악으로 사람을 창조한 반면 악마를 만드시고, 지금도 선과 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라고 했다. 아주 위험한 논리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 부시가 이런 세계관에 입각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단다. 그런 이분법은 무협지 또는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이건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자. 분명히 밝히자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삐뚤어지면 아무리 글 솜씨가 훌륭해도 손가락질당하기 십상이다.

자, 마지막으로 오늘의 결론 두 가지! (은서를 위한) 하나! 표절, 아니 복사하면 경찰이 잡아간단다. 조심해라. (준석을 위한) 또 하나!!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세상을 나누지 마라~잉. 네가 부시냐? 아니면 OOO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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