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동굴 같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과 공감하며 보는 예술 장르로 출발했다. 그러나 영화 탄생 100년 만에 단관 대형 극장은 멀티플렉스에 밀려났고, 예의를 아는 관객 또한 핸드폰 발광, 팝콘 씹는 소리와 냄새, 뒷자리 관객의 발차기, 시도 때도 없이 웃고 떠드는 젊은 연인들의 무지에 질려 극장을 떠났다. 한 후배 감독이 “예의 없는 관객을 볼 때마다 살인 충동을 느낀다”고 했는데, 나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요즘 관객들에게서는 가장 늦게 발달한 영화가 이전의 모든 예술 장르를 뛰어넘는 완벽한 경지에 도달한 데 대한 경외심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에서 영화의 지위는 불법 다운로드하여 혼자 숨어 보는, 겨우 줄거리 확인만 하는 오락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난 직업윤리상, 영화를 만든 이들에 대한 예의상, 영화가 내게 준 가르침과 행복 때문에라도 반드시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이른 아침, 20여 분의 산책 끝에 도착한 쾌적하고 첨단 시설이 갖춰진 극장에는 두서너 명의 관객밖에 없다. 어둠 속에 앉아 영화 상영을 기다릴 때의 두근거림을 세상 어떤 행복과 바꾸겠나. 기자와 평론가, 극장주를 위한 시사회에 참석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로부터 “열심히 찍었으니 예쁘게 봐 주세요”라는 인사를 받은 후, 가장 먼저 한국 영화를 관람하고 평가할 때는 자부심도 느낀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남산 국립 극장에 세 들어 있던 시절, 3년간 영화 심의를 한 나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이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를 보고 난 감동을 추스르지 못해, 후배 심의위원들과 남산을 거닐며 영화 이야기를 했고 “지금 우리가 가장 아름답고 여유 있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자축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제천음악영화제에서 내 ID 카드를 찾은 후, 하루 네 편의 영화를 볼 때의 충만감을 영화에 문외한인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바닷가를 거닐거나 혹은 계곡 텐트에서의 잠으로 영화 관람 후의 피곤을 풀 수 있어서, 부산과 제천 영화제를 즐겨 찾는다. 충무로국제영화제는 서울에서 열리는 신생 영화제이고, 고전을 많이 상영해 3회 연속으로 빠지지 않고 다녔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명동에서 와플에 커피를 곁들여 먹을 때의 달콤한 에너지 충전 시간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를 잘, 많이 보려면 튼튼해야 한다. 스크린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나와야 하므로 많이 먹고 충분히 쉬어야 한다. 요가 수업에 빠지지 않는 것도, 걷기 모임에 나가는 것도 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각박한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 영화를 본다고들 하지만, 나는 영화 세계에 오래 머물기 위해 현실 세계에 잠시 발을 딛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으로 산다.
영화 보는 게 취미고 직업이고 생의 전부인 만큼 나는 영화 보는 환경에 무척 예민하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인공 방향제를 뿌려 눈이 아프고 숨이 막히는 극장은 가지 않으려 한다. 서울에 수많은 극장이 있지만, 내가 기꺼이 찾는 영화관은 몇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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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 |
북촌에 있는 영화관은 ‘아트선재센터’ 지하의 ‘씨네코드 선재’가 유일하다. 서울시네마테크가 임대하여 시네마테크 운동을 의욕적으로 펼치다 옛 허리우드 극장으로 옮겨간 후, 지금은 영화사 ‘진진’이 맡아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지 않는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한다.
영화 상영관으로 지어진 곳은 아니지만 아담하고 쾌적하며, 운영 실무진이 씩씩한 여성들이어서 홍보에 적극적이고 친절하다.
아트선재센터 1층에는 카페와 아트숍, 유명한 인도 레스토랑 ‘달’이 있으며, 위층 전시장에서는 훌륭한 미술 전시회가 끊이질 않는다. 본관 옆에는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한옥과 작은 마당이 있어 쉬어 가기 좋다. 감고당길 주변이 데이트하는 젊은이들로 시끄럽게 된 것은 무척 아쉽지만, 인왕산과 노송과 아트선재센터가 함께 보이는, 나의 북촌 10경 중 6경인 북촌길 언덕에 서면 여전히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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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 |
낙원 상가 4층에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다. 영화 문화의 다양성 보장을 위해 2002년 1월, 전국의 열다섯 개 시네마테크 단체가 연합하여 출범한 사단법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 2005년 4월 아트선재센터에서 낙원 상가 내 옛 허리우드 극장으로 옮겨 왔다. 서울아트시네마는 각국 대사관 등의 도움을 받아 일반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고전을 주로 상영하며, 영화를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도록 토론과 연구서 출간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낙원 상가 주변의 어수선함과 오래된 시설 등은 쾌적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 때문에 서울아트시네마는 마니아의 낙원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옛 허리우드 극장 안에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에 소속되어 있는 또 다른 영화관 ‘필름포럼’이 있었다. 그래서 낙원 빌딩에 들어서면 두 단체가 상영하는 고전과 예술영화를 보며 종일 놀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소속 단체들이 모두 그러하듯, 필름포럼 역시 숙원 사업인 안정적 상영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이화여자대학교 후문으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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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포럼 | |
2005년에 개관한 필름포럼 역시 영화를 보는 공간으로 그치지 않고, 각종 강좌를 통해 영화를 제대로 읽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도서출판 한나래를 통해 ‘시네마 시리즈’ ‘ 필름 메이킹 시리즈’ 등 수준 높은 영화 서적도 많이 출간하고 있는데, 7권까지 펴낸 <필름 컬처>는 국내 영화 잡지 중 가장 진지하고 지적인 잡지이다. 또한 (주)이모션 필름을 통해 예술영화를 수입하고 국내 독립영화 제작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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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포럼 | |
서대문의 필름포럼은 허리우드 극장에 있을 때보다 접근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공간이 쾌적하고 시설도 좋아 지금의 필름포럼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북촌에 사는 나로서는 걸어서 다닐 수 있었던 허리우드 시절이 더 좋았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 이렇게나마 시네마테크가 자리 잡게 된 데에는 ‘문화학교 서울’의 공이 크다. 사간동길에 있었던 프랑스문화원, 남산에 아직도 있는 독일문화원에서 영어 자막을 읽느라 고생했던 나는 문화학교 서울에서 우리말 자막이 달린 고전을 볼 수 있어, 불편한 교통에도 불구하고 시간만 나면 사당동의 그곳을 찾았다. 두 문화원이 쾌적한 공간에서 필름 상영을 한 데 반해, 문화학교 서울은 수도 없이 복제해 지글거리는 비디오를 틀었다. 그 시절의 영화광들은 그렇게라도 고전을 볼 수 있다는 데 감사했고, 그게 밑거름이 되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만들어졌으며, 그때 영화 공부를 하며 책자를 만들었던 젊은이들은 현재 예술영화 상영, 독립영화 제작, 시네마테크 운동을 이끌고 있다.
영화 마니아 1세대를 배출한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문화학교 서울의 재정은 사당동에 있는 ‘혜민국한의원’ 원장 최정운 씨가 도맡았고, 이분은 지금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신다. 까마득한 시절, 사진 찍기 동호회를 통해 알게 된 한의사 선생님이 영화를 위해 이토록 오랫동안 돈을 쏟아 부을 줄은 몰랐다. 문화학교 서울 출신인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 등은 ‘고아 같은’ 자신들을 거두며 영화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한 최정운 씨에게 국가가 훈장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북촌 재동초등학교 정문 건너편 빌딩에, 지금은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에 흡수된 문화학교 서울의 간판이 여전히 걸려 있는 걸 보며, 그곳과의 인연을 떠올려 보곤 한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영화를 보고 글을 써 온 나로서는, 사당동의 문화학교 서울을 드나들던 때가 가장 열심이었던 시절이었다. 영화도 공부하며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예술임을 알았던 건 아마도 이 땅의 비디오 세대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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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 광화문 | |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지하에는 영화사 백두대간이 운영했던 ‘씨네큐브 광화문’이 있었지만, 2009년 9월 문을 닫았다. 대신 다른 영화사에서 지금까지의 프로그램 수준을 유지하며 씨네큐브를 운영한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현대 미술품으로 장식된 로비, 꽃집에서부터 음식점까지 편의 시설도 충분하며, 건물 3층엔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www.jpf.or.kr, 2009년 11월, 신촌역 부근 버티고 빌딩으로 이전한다)가 있고, 건물 건너편엔 서울역사박물관이 있어 남는 시간을 보내기 좋았던 씨네큐브 광화문 시절이 무척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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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하우스 모모 | |
백두대간이 수입한 영화라면 안심하고 본다고 할 만큼, 예술영화 상영관의 개척자로 기록될 이 영화사의 수입작은 이화여자대학교 안 ECC이화캠퍼스콤플렉스 건물에 들어선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계속 볼 수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인공 계곡 형태의 대규모 지하 캠퍼스가 멋지고, 서점과 카페 등도 이용할 수 있으며, 덤으로 이화여대 캠퍼스를 산책한다거나 학교 앞 상가를 윈도우 쇼핑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그러나 모모는 영화 상영관으로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파른 좌석 배치가 다소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겐 무섭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화여대와 그 앞 상가는 여고 시절의 추억이 많은 곳이다. 내 선생님과 학교 대강당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자주 갔고, 그때마다 그린하우스 제과점에서 샌드위치와 고로케를 먹었다. 내 선생님이 대학 입학 기념으로 정장을 맞춰 주신 곳도 이대 앞 양장점이다. 그 옷의 질감과 디자인과 색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건만, 그 많던 양장점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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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스페이스 | |
흥국생명 빌딩 건너편에는 ‘미로스페이스’가 있다. 씨네큐브보다는 못 하지만, 상영작 수준으로 보나 단관 극장 시설로 보나 격을 지키고 있다. 120석 규모는 영화를 볼 줄 아는 이들만 모였다는 연대감을 형성하기에 안성맞춤이고, 건물 내에 카페도 있으며,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다. 더 좋은 건 서울역사박물관과 경희궁이 바로 옆에 있으며, 뒤쪽으로는 미술관과 음식점이 많아서 영화를 본 후 산책하거나 식사하기에 적합하다는 거다. 미로스페이스에서 시사회가 열리면, 나는 경복궁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걸어오곤 한다.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은 주변 환경으로 치자면 가장 위치가 좋다. 성공회가 인접한 호젓한 조선일보사 앞, 멋진 카페 테라스가 있는 씨스퀘어 빌딩 1층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85석의 극장은 앞사람 머리가 신경 쓰일 정도로 경사도가 낮고, 좌석도 편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다지 친절한 편이 아니다. 프로그램은 나쁘지 않지만 하드웨어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운 상영관이다.
대학로에 가면 동숭아트센터 내 ‘하이퍼텍 나다’를 찾는다. 하이퍼텍 나다는 좌석에 영화배우, 감독들의 이름을 붙여 놓아 좌석을 찾는 관객들에게 재미를 준다. 상영관 우측에 있는 유리창 너머로 아름다운 정원이 보이는데, 영화 상영이 시작될 때쯤이면 검은 커튼이 서서히 쳐지면서 불이 꺼진다. 이 또한 이곳을 찾게 만드는 즐거움 중 하나다. 최근 리모델링한 화장실은 디자인이 얼마나 멋진지 국내 극장 가운데 가장 럭셔리하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손을 씻으러 가기도 한다. 동숭동의 번잡함이 몹시 싫지만, 창경궁 담을 따라 걷다가 서울대학교병원을 가로질러 가는 산책 코스는 정말 일품이라 주로 애용한다.
창덕궁과 종묘를 가르는 율곡로를 공사해 서로 연결되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무성한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걷다 보면 이 또한 학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 버스 노선, 간판, 문화재 관리 등 서울의 모든 행정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자, 다시는 고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후손이 보아도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보존하게 만들자, 이런 정신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 서울시는 오래된 건 죄다 부수고 있는데, 그렇다면 조상님이 만든 건 다 못난 것이다, 뭐 이런 발상이란 말인가? 부수는 것만 보고 자란 우리 아이들이 훗날 경복궁과 창덕궁도 밀어 버리겠다고 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크다.
그러고 보니 내가 즐겨 찾는 영화관은 멀티플렉스가 아닌, 사대문 안 내지 사대문 인근 단관 상영관들이다. 시끄러운 게 싫고, 차를 타고 멀리 다니는 건 더더욱 싫은 나이가 되었다. 내가 북촌에 사는 한, 이 영화관들도 내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지금의 자리를 지켜 줬으면 참 고맙겠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북촌 탐닉>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