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길은 본래 북악과 삼청 공원의 여러 물길이 합쳐져 흐르던 천으로, 물길은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앞을 지나 중학천으로 흐르고, 광교 아래 청계천으로 이어졌다. 삼청동 물길과 옥인동 쪽에서 흘러온 물이 청계천의 발원지인 것이다. 1957년에 복개되고, 그 끝에 삼청 터널이 뚫렸다. 이후 활처럼 굽은 길을 4차선 도로로 반듯하게 넓히려다 그대로 놔두어, 은행나무 그늘이 남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다.
삼청동이란 이름은 태청(太淸), 상청(上淸), 옥청(玉淸)의 3위를 모신 도교 사당 삼청전(三淸殿)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산이 맑고(山淸) 물이 맑아(水淸) 사람 마음 또한 맑아진다(人淸)하여 삼청(三淸)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북촌골에서도 제일 경치 좋은 곳이었다는 삼청동엔 예부터 시인 묵객들이 찾아들어 아름다운 풍광을 시로 읊었다.
삼청동
지팡이 짚고 오솔길 찾아
산에 오르니 상쾌함 깨닫네
잔잔한 시냇물 태고로 흐르고
푸른 산 벽은 천 년을 지켜왔네
수많은 산골짝 가을 소리 퍼지고
외로운 기러기 저물녘 안개 속 나르네
옷 벗고 풀밭에 한가로이 앉으니
흥겨움에 빠져 돌아갈 길 잊는구나대사헌, 형조판서를 지냈다는 이관명(李觀命)의 시다. 이 시를 마음에 담고 삼청동길을 걸어 본다.
진선 북카페(팔판동 150, 02-723-5977)
삼청동길과 청와대 앞길이 갈라지는 지점이라는 좋은 위치에다, 한자리를 오래 지킨 덕분에 삼청동길의 터줏대감이 되다시피 한 곳이다. 진선 출판사가 모태가 된 북카페의 선두 주자로, 정원에 테이블을 내놓아 한가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실내에는 3천여 권의 책을 구비해 두었다. 바로 옆엔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진선’을 두고 있다.
삼청 감리교회(팔판동 49-1, 02-734-1054, www.samchung.or.kr)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삼청 감리교회’는 삼청동길의 현실에 적극 동참하는 교회다. 삼청로 문화 축제에 참가하는가 하면, 교회 담을 허물어 나무를 심고 파라솔과 의자를 내놓은 ‘북카페 엔’(En, ‘샘물’이라는 뜻이란다)을 운영하고 있다. 삼청동에 내로라하는 커피숍이 적지 않지만, 이곳 또한 전문 바리스타가 독일 왕실 커피 브랜드인 달마이어 원두를 가공하여 제대로 된 커피를 내놓는다. 북카페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는 6천5백 권의 도서를 갖춘 어린이 도서관 ‘꿈과 쉼’을 만들었다. 삼청동길에서 누군가를 만날 요량이면 북카페 엔을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수와래(삼청동 35-116, 02-739-2122, www.mr-kang.com)스파게티로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내겐 추억의 사진을 남겨 준 곳이어서 잊을 수가 없다. 생일이라고 했더니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그 이전까진 사진을 제대로 찍어 본 적이 없어, 이 스냅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토이키노 박물관(삼청동 35-116 수와래 3층, 02-723-2690, www.toykino.com)장난감(Toy) 영화(Kino)의 합성어가 말해 주듯, 만화 영화나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 장난감을 모아 놓은 곳이다. 영화
<스타워즈>가 개봉된 1977년부터 모은 캐릭터 10만여 점 중 5만여 점 정도만 1, 2관에 전시해 놓았다는 손원경 관장. 미국 S.F 영화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우리 만화 영화의 영웅들이 총망라되어 있어 추억에 잠겨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애니메이션
<몬스터주식회사>의 주인공 설리반의 실물 크기 털 인형과 자주 대화하는 나는 손 관장의 캐릭터 사랑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캐릭터가 10만 개나 되면 애정을 일일이 어떻게 나누어 주지?
북카페 내서재(팔판동 27-6, 02-730-1087, www.mybookcafe.co.kr)
짙은 갈색 나무 책장에 3천 권의 책을 비치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게 한 북카페다. 북마스터를 꿈꾸었다는 주인이 홈페이지를 통해 책을 추천하고 또 추천도 받으며, 판매하기도 한다. 진선 북카페가 오랜 세월 이 동네의 이정표 노릇을 했다면, ‘북카페 내서재’는 책에 좀 더 집중한 곳으로 단골의 사랑을 받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이 자리에는
『삼국지』의 주인공 관우와 관련된 조각, 공예품 150여 점을 전시해 놓은 ‘운장 갤러리’가 있었다. 이처럼 자리 바뀜이 심한 동네라 북카페가 오래도록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삼청동수제비(삼청동 102, 02-735-2965, www.sujaebi.kr)대학 때도 가본 기억이 있는, 삼청동을 대표하는 유명한 서민 음식점이다. 점심시간에는 줄 서서 기다려야 겨우 한자리 차지할 수 있다. 멸치 국물에 감자, 호박, 고추, 당근, 양파 등을 넣어 끓이는 항아리 수제비가 대표 음식이고 찹쌀 수제비, 감자전도 있다. 펄펄 끓인 단품 요리이며, 김치를 각자 덜어 먹을 수 있게 했기에 위생을 걱정하지 않아 좋다. 그러나 엄청난 소음과 북적임 속에서 후다닥 먹고 나가야 하는 집이라는 게 아쉽다. 장사가 잘되어 옆집까지 확장했으니 이제는 실내 인테리어나 서빙하는 이들의 복장, 특히 그릇에도 신경을 쓸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최근 이 일대 간판이 디자인 감각을 살린 새 간판으로 교체되어, 수제비집도 새집 같은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허름한 집인데 홈페이지가 있을 줄이야……. 홈페이지를 만들었으면 그간의 역사, 가격 변화, 단골손님 소개 등 꼼꼼한 기록으로 정보 가치를 높이면 좋을 텐데. 앞으로 기대해 봐야겠다.
옥호정터(삼청동133-1과 2로 추측)옥호정은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기반을 조성했던 순조의 장인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의 집이다. 장생(張生)의 소유였다는 옥호산서(玉壺山墅)를 사들여, 1815년에 손을 봐 여가를 즐겼던 별서로 짐작된다. 1815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되는 ‘옥호정도’(玉壺亭圖)를 보면 조선 사대부 민가의 격조와,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조원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을 상상할 수 있다. 웃뜰(上園)바위에 새겨진 일관석(日觀石, 해를 맞이하는 바위)만이 북악 동쪽 산 중턱에 위치한 개인 소유의 집에 남아 있다.
백련사 터와 함께 옥호정 터의 과거를 상상해 보려면 칠보사 뒤 골짜기나 삼청 공원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소연전통인형연구소(삼청동 20-10, 02-722-2527)
전통 인형 제작 기능보유자 소연(素鉛) 임소연 씨가 조선 시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생활상을 소재로 전통 인형을 제작하는 과정을 구경하고 작품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인형 얼굴을 만들 때는 헝겊에 풀을 먹여 다리고, 머리카락도 한 올씩 심으며, 자연 염색한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힌다고 한다. 쇼윈도를 통해 ‘옛 인형 일기’라는 인형 전시를 볼 수 있어 복잡한 삼청동길에서 조용히 발길을 붙든다.
눈나무집(雪木軒, 삼청동 12-5, 02-739-6742)한자로 읽어도 우리말로 읽어도 예쁜 옥호다. 떡갈비로 유명한 집이었는데, 지금은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야식으로 먹던 김치말이 국수와 김치말이 밥으로 더 손님을 끄는 것 같다. 차가운 물김치에 삶은 계란, 참기름, 깨소금, 김 등을 넣고 밥이나 국수를 말아 낸다. 한여름에 살얼음 낀 김치말이 국수는 더위를 가시게 하는 별미임이 분명하지만, 지하 식당만 운영하던 예전이 여러모로 더 나았다. 그때는 길 밖에까지 줄을 섰다가 차례로 불려 내려가 먹고는, 다시 좁은 계단을 가득 메운 사람들 속을 비집고 나와야 했다. 원래 가게도 운영하면서 건너편에 3층 건물을 지어 넓힌 이후엔 맛도, 양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