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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돌담 아래 옛 향기가 머무는 길 - 창덕궁길

창덕궁길은 창덕궁 정문에서부터 창덕궁 돌담을 따라 빨래터까지 이르는 원서동 일대의 주요 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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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길은 창덕궁 정문에서부터 창덕궁 돌담을 따라 빨래터까지 이르는 원서동 일대의 주요 도로다. 이 주변은 관상감(觀象監, 조선 시대에 천문과 지리 등의 사무를 맡아 보던 관청)이 있어 ‘관상감골’로, 함춘원(含春苑, 창경궁 홍화문 밖 동쪽에 있던 정원), 또는 정업원(淨業院, 고려와 조선 시대 때도 성안에 두었던 여승방(女懼房, 창경궁 서쪽, 지금의 중앙중학교 자리에 있었다)이 있어 ‘원골’로 불리던 자연 마을이었으나, 일제시대부터 창경궁의 서쪽 지역이라 하여 ‘원서동’(苑西洞)으로 명명되었다.

창덕궁길은 창덕궁 정문에서부터 창덕궁 돌담을 따라 빨래터까지 이르는 원서동 일대의 주요 도로다. 이 주변은 관상감(觀象監, 조선 시대에 천문과 지리 등의 사무를 맡아 보던 관청)이 있어 ‘관상감골’로, 함춘원(含春苑, 창경궁 홍화문 밖 동쪽에 있던 정원), 또는 정업원(淨業院, 고려와 조선 시대 때도 성안에 두었던 여승방(女懼房, 창경궁 서쪽, 지금의 중앙중학교 자리에 있었다)이 있어 ‘원골’로 불리던 자연 마을이었으나, 일제시대부터 창경궁의 서쪽 지역이라 하여 ‘원서동’(苑西洞)으로 명명되었다.

근래 들어 원서동이란 동명 대신 원래 이름을 찾자며 공청회, 주민 찬반 투표 이야기가 있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원서동을 버리고 새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지금의 북촌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는 이후 축적된 과거가 많고, 북촌 전체가 그러하듯, 원서동은 계속 새 집이 들어서며 변해 가는 진행형 동네이기 때문이다.

창덕궁 담 안 적산 가옥

창덕궁 담을 끼고 흐르는 천변에는 큰 한옥과 관청이 있었고, 언덕 쪽으로는 상궁과 내시들이 살았지만, 이 모든 것보다도 나무가 더 많았다고 한다. 원서동 일대가 일반 주택 지역으로 바뀐 것은 1923년 이후부터이며, 특히 한국 전쟁 직후 창덕궁에서 마구잡이로 베어 낸 나무로 작은 한옥들을 지었다. 원서동 토박이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창덕궁 담을 의지해 일단 집을 지으면 곧 내 집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게 된 것이라고 한다.

박인환 유년기 집터(원서동 134-8)

원골에 살았던 시인으로는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이 있다. 천인(賤人) 출신이지만 유유자적하는 삶의 심경을 그린 한시를 잘 지었고, 상례(喪禮)에도 밝아 사대부들과의 교류가 잦았다는 유희경은 부안의 명기 매창(梅窓)과의 러브 스토리로도 유명하다.

유희경의 집터에 관한 기록을 보면 원골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상상할 수 있다. 정업원 아래로 맑은 물이 흘렀고 그 시냇가에 있던 유희경의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다. 유희경은 이를 침류대(枕流臺)라 부르며 거기서 바라본 북악 단풍 등을 시로 남겼다. 조선 시대 한성의 역사를 서술한 『한경지략』(漢京識略)에 보면 “창덕궁 요금문 밖에 촌은의 옛집이 있었는데, 그 뜰이 후에 창덕궁 담장 안으로 편입되었으니, 현재 창덕궁 규장각 뒤뜰에 있는 오래된 전나무가 바로 유희경이 심은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희경의 집터는 빨래터 위쪽 부근이다. 따라서 그로부터 300여 년 후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朴寅煥)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원서동 134-8번지는 유희경의 집과는 떨어져 있지만, 그래 보았자 조그만 원골 안이라 언덕 너머 5분 거리다. 근래 박인환이 살던 집에 대한 보존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미 1970년대에 없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번지수를 찾아가 보니 언젠가 인터넷 기사에서 보았던 다음 인용문과 비슷한 집이 있었다.

“너덜거리고 금이 간 시멘트 담벽을 두른 대문을 지나면 낡은 한옥 한 채와 남쪽으로 큰 창을 낸 일본식 이층집이 자리하고 있다. 10평 남짓한 마당은 시멘트로 덮여 한옥의 정취를 잃었고, 한옥 건물 역시 추녀선이나 용마루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었다. 비가 새는 듯 지붕 전체를 천막으로 덮은 탓이다. 하지만 이곳은 『목마와 숙녀』를 지은 모더니스트 시인 박인환이 한때 살았던 집이다. 주인 유경남 씨는 “일본식 2층 가옥 서쪽 방에서 시인이 작품을 썼다고 들었다.”고 했다. 삐걱거리는 좁다란 마루를 지나 시인의 방에 다가섰지만, 자물쇠로 잠긴 상태였다. 일본식 건물은 방마다 세를 놓았다.

‘은덕문화원’(원서동 129-5, 02-763-1155)과 ‘싸롱 마고’

은덕문화원

원래 이 터에는 1682년에 세워진, 창덕궁 서쪽 외곽 경비를 담당했던 금위영 서영이 있었다고 한다. 원불교 신도인 고(故) 전은덕이 2000년에 이 터와 한옥들을 희사하여 원불교 종로 수양원으로 쓰이다가 3년의 수리 끝에 2007년 10월 은덕문화원으로 개원하였다. 520평 대지에 법당인 대각전, 원불교 서울대교구 교수 숙소인 사은당, 1층 한옥 위에 일본식 집이 올라선 독특한 구조의 세심당, 사무실 겸 다실로 쓰이는 인화당, 멋지게 몸을 튼 소나무가 있는 정원, 능소화가 늘어진 꽃담 등을 볼 수 있다. 내외국인에게 원불교와 한국 문화를 알리는 사랑방 역할을 하며, 각종 행사와 공연을 펼치고, 주로 인문학 강의를 하는 소태산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이곳은 그야말로 창덕궁길을 빛내 주는 곳이다.

싸롱 마고

은덕문화원과 붙어 있는 ‘싸롱 마고’(麻姑, 우리나라와 동북아 신화에 나오는 생명, 창조, 평화를 상징하는 여신 마고, 혹은 마고 할머니)는 원불교 측에서 시인 김지하 선생에게 내준 문화 사랑방이다. 반 2층을 들였을 만큼 천장이 높아 소리가 울리는 데다 흰색 벽 마감, 환한 조명, 전통차 위주의 메뉴, 조용한 분위기, 짧은 영업시간 등으로 여느 카페처럼 편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문득 병원 휴게실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석학을 초청해 강연 및 토론회를 진행하는 학구적인 행사가 자주 열리는 곳이라서 더욱 조심스럽다.

한국불교미술박물관(원서동 108-4, www.buddhistmuseum.co.kr)

한국불교미술박물관 뒤뜰

1993년 5월에 개관한 불교 미술 전문 사립 박물관으로 불상, 불화, 공예를 비롯하여 도자, 민속품 등 총 6천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두 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는 원서동 본관에서는 <미얀마의 삶 그리고 마음> 등의 기획 전시회에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유물 설명회 등, 일반인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종로구 창신동에 사찰 박물관 ‘안양암’(安養庵) 별관을 두고 있다.

원서동 본관의 탑이 있는 앞마당은 평범하지만, 건물 뒤로 돌아가면 가을 느낌이 나는 운치 있는 작은 정원이 있으니 반드시 둘러보길 권한다. 이 뜰을 바라볼 수 있는 찻집 ‘연암다원’이 있었는데, 외진 곳에다 손님이 적어서였는지 없어지고 말았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동사무소나 학교에서 투표를 하지만, 북촌 주민은 이 박물관에서 투표하는 특별한 혜택을 누린 적도 있다. 2009년 ‘서울문화의 밤’ 행사 때, 미얀마 불상의 미소를 홀로 감상하던 밤 아홉 시의 방문을 나는 또한 잊을 수 없다.

동네커피(원서동 86-7, cafe.naver.com/dongneacoffee)

요금문

한뼘 공원

외지인을 상대하는 점포가 없던 호젓한 창덕궁길에 최근 들어선 첫 커피숍이다. 복덕방, 슈퍼마켓, 미장원, 경로당, 세탁소, 놀이터, 식당, 정육점, 비디오 가게 등 오래된 주민 편의 시설만 올망졸망 있던 이 길에서 장사가 될까 걱정스러워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통유리 앞에 앉아 창덕궁 담과 김옥균이 청군에 쫓겨 피신해 왔다는 요금문(曜金門), 구닥다리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는 놀이터를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창덕궁길에서까지 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는 걸 보면, 이제 이 길의 상점들도 새 주인을 맞아 알록달록 단장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1번 마을버스 정류장 빨래터의 ‘한뼘 공원’ 옆에 들어선 건축 사무소 ‘EAST4’(원서동 20-2, cafe.naver.com/east4korea)의 젊은 건축가들이 인테리어에 도움을 주었다 한다. 쿠션과 작은 조각품을 팔기도 한다.

고희동 가옥(원서동 16)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선생이 살았던 고택이다. 고희동은 1908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해 서양화를 공부한 한국인 최초의 미술 유학생으로, 1915년에 귀국하여 북촌에 있던 휘문, 보성, 중동 등의 학교에서 서양화를 가르쳤다.

원서동 집은 1918년에 고희동이 직접 밑그림을 그려 지은 저택으로는 외부는 한옥, 내부는 서양식과 일본식이 섞여 있는 네 개의 단층집이다. 고희동 화백은 죽기 전 6년을 제외한 41년 세월을 이 집에서 살았다.

궁중음식연구원(원서동 34, 02-3673-1122, www.food.co.kr)

궁중음식연구원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된 조선왕조 궁중 음식을 전수하고 교육하는 곳이다. 의궤 연구를 바탕으로 한 궁중 의례의 재현과 전시, 드라마 <대장금>을 비롯한 각종 방송 자문, APEC 만찬과 남북 정상 회담 상차림, 음식 관련 도서 출판, 음식 개발 및 컨설팅 등을 하고 있다. 조선 시대 마지막 수라 상궁인 한희순과 그에게 궁중 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은 황혜성, 그리고 황혜성의 딸로 현재 궁중음식연구원장인 한복려가 대를 이어 가며 조선 왕조 궁중 음식의 맥을 잇고 있다. 크고 화려한 꽃문양을 넣은 담이 눈에 띄는 정갈한 한옥에 들어서면, 창덕궁 담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2층의 조리실과 사무실, 장독과 우물이 있는 안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옥의 장점을 살린 공간 활용이 들고나는 이 많은 곳임에도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 연구원이 개원했을 때, 봄가을 연수생 음식 발표회 때 얻어먹은 떡과 차가 무척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빨래터

빨래터
창덕궁 서쪽 담 끝, 신선원전 담장과 맞닿아 있는 곳에 창덕궁을 돌아 나온 물이 흐른다. 궁의 여인들이 세수할 때 쌀겨나 조 등을 사용했더니 옷의 때가 잘 빠져, 궁의 나인과 주민이 이곳에 모여 빨래하면서 어울려 놀았다고 한다. 심지어 가마솥을 걸고 궁의 빨래를 전문으로 삶아 빨아 주던 이도 있었다.

창덕궁 담장을 따라 흐르다 창덕궁 내부를 지나 와룡동으로 흘러갔다는 물길은, 창덕궁 담을 안으로 밀어내고 길을 내면서 빨래터 부근만 남겨 놓고 복개해 버렸다. 몇 년 전까지도 빨래터에서 남정네들이 등목을 했고, 지금도 맑은 물이 흐르는 빨래터를 찾으면 주민들이 간단한 빨래를 하거나 제사 음식을 두고 가는 걸 볼 수 있다. 또한 이 부근 담장이 허술하여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가 버찌를 따 먹은 추억이 있다는 어르신도 계시다.

창덕궁 담장을 따라 물이 흐르고, 그 물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가 울려 퍼졌을 옛날을 상상하면 할수록 천을 복개한 것이 속상하기만 하다. 도심 복판에 작은 천을 그대로 놔두고, 주변을 쉼터로 꾸며 배가 오르내렸던 옛날 사진과 설명을 함께 붙여 둔 일본이 정말 부럽다. 창덕궁 내 하수관을 밖으로 빼고, 창덕궁길 전선을 지하로 묻기 위해 창덕궁 담 밑을 파는 공사(‘가회배수분구 하수관거정비공사’라는 알아듣지 못할 현수막을 걸어놓았다)가 한창이던 2009년 9월, 나이든 인부들조차 이곳에 천이 흘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내 설명을 듣고서야 “아 그래서 모래가 많이 나오는가?” 했다.

동대문운동장을 부순 것도 모자라 성터 발굴과 복구도 성가셔하고, 서울시의 옛 청사도 부순 서울시니, 이제는 작은 흔적만 남아 있는 빨래터도 조만간 시멘트로 덮어버리는 건 아닐까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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