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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의 가능성 - 전람회 <Exhibition> (1994)

<Exhibition>은 대중적인 흡수력이란 것이 이미지의 화려함만을 좇는 것이 아님을, 스타일에 함몰되지 않아도 음악적 자주(自主)를 실현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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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마다 ‘대안’이자 마니아들의 자존심인 음악 그룹들이 있습니다. 록, 힙합, 일렉트로니카, 인디 등등. 요즘은 ‘싱어송라이터들’이 그 중심을 차지했다고 봐도 되겠죠? 김동률을 빼놓고 이 신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의 야심 찬 첫 앨범, 전람회의 <Exhibition>을 소개합니다.

전람회 <Exhibition> (1994)

어쩌면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를 라디오 키드들에게는 그들만의 동화가 절실했다. 요란한 춤 리듬의 가공한 확산 속에는 ‘어떤 날’의 정서의 공백이 커져만 갔고,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의 댄스 화염 속에는 동화적 순수함을 간직한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만이 홀연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막 약관을 넘긴 두 청년이 발표한 「기억의 습작」이 서서히 라디오 전파를 잠식하던 때도 바로 이즈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김동률이 습작한 곡들에 반해 베이스를 들고 찾아간 서동욱과 김동률이 의기투합한 전람회의 탄생은 이러했다. 그들의 이름이 인쇄된 음반을 갖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던 그들에게는 수상자들의 곡을 실어주는 ‘대학 가요제’가 동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고, 그 꿈이 이뤄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록 넓은 무대에 피아노 한 대, 베이스 하나만을 들고 나온 그들에겐 프로적인 화려함은 없었지만 무엇보다 종래의 가요계에선 볼 수 없었던 때 묻지 않은 감수성과 순수한 기대 지평이 실려 있었다. 결국 조심스럽게 재즈적인 터치로 접근한 「꿈속에서」란 곡으로 그들은 그해 특별상과 더불어 대상까지 거머쥐게 된다.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그들의 감성을 일찍이 확인한 이는 다름 아닌 ‘신해철’이었다. 기존의 패턴에 젖지 않았음에도 충분한 호소력을 지녔던 그 감수성을 정확히 끄집어낸 것이었다. 담담히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순수함, 솔직하게 엮어낸 삶의 단상들, 무엇보다 확실히 귀를 잡아끄는 비범한 멜로디 능력에 ‘고급 가요’에 목말라 하던 팬들은 실로 오랜만에 그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신해철과 작곡가 김형석, 그리고 그들의 셀프 프로듀싱으로 만들어진 전람회의 1집은 그렇게 대중들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때는 1994년이었다.

타이틀 곡 「기억의 습작」을 위시한 「향수」 「하늘 높이」 등은 다분히 피아노가 주도하는 선율과 클래식적 화성에 접근한 정통적인 발라드가 주를 이룬다. ‘유재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이런 우직한 정공법이 때론 시대를 지배하는 어떠한 트렌드라도 돌파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라디오를 아지트로 삼은 키드들은 화려한 이미지와 시각에 지친 마음을 족히 불혹을 넘어야만 나올 것 같은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 가슴 저린 미담, 지성과 감성의 조화로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는 그들의 음악으로 위무했다.

전람회 음악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김동률’의 작법은 사실 지금과 다른 점이 없다. 늘 애정을 품어왔던 재즈적 감성의 「삶」, 필살의 멜로디와 유려한 코드 워크의 전형적인 발라드 「기억의 습작」은 물론이고, 앨범 중 팬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하늘 높이」, 후에 2집 「J's bar에서」에서도 비슷한 작법으로 이어지는 「여행」 등의 스타일은 이 앨범이 그 시작이자 근원이었다.

재래의 문법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어쩌면 선율적인 흐름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이 앨범의 결정타는 바로 「너에 관한 나의 생각」이었다. 곡을 리드하는 주된 리듬조차 신시사이저로 해결해 버리고 당연히 기타가 주도해야 할 난타 되는 리듬을 이끄는 것도 건반이었다. 이렇듯 고집스레 화성적인 접근을 중시했던 이 앨범이 ‘좋은 멜로디의 모음’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터.

코드가 바뀌며 터져 나오는 트럼펫의 솔로가 감정의 전환까지 일궈내는 「기억의 습작」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가요제의 선배인 신해철과의 듀엣 「세상의 문 앞에서」도 키를 자유자재로 전환하는 듀엣곡의 탁월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서동욱과의 화음이 듣기 좋은 「그대가 너무 많은」도 마찬가지.

사실, 전람회는 ‘김동률’과 ‘서동욱’으로 이루어진 명백한 그룹의 형태였지만, 모든 곡의 선율을 작곡하고, 대부분의 가사와 건반까지 담당한 김동률에 비해 서동욱의 영역은 너무나 좁았다. 허나, 후에 발표된 김동률의 솔로 음반들이 이때 마련한 그 충직한 재현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함에도, 전람회 음악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있다슴 것은 바로 이때의 서동욱이 있어야 나올 수 있었던 그 서정성에 기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동욱이 습작한 글을 보고 단 5분 만에 작곡했다는 「하늘 높이」, 나지막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향수」, 두 사람의 대화가 삽입된 스윙 리듬의 「여행」은 비록 음악적인 무게감은 적었을지 몰라도, 그 정서적인 존재감만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이 데뷔작이 진부한 기대를 무참히 깨고 오랜만에 신선한 파격이라는 부제를 씌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Exhibition>은 대중적인 흡수력이란 것이 이미지의 화려함만을 좇는 것이 아님을, 스타일에 함몰되지 않아도 음악적 자주(自主)를 실현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비록 무공해 신인의 수줍은 데뷔작이었지만 가슴 저변의 민감한 감성을 건드리는 표현력은 수준급이었던 그들의 경쾌한 발걸음이었고, 김동률에게는 후에 어떠한 음악적인 방황도 허락하지 않는 든든한 음악 여정의 초석으로 남겨진다.

-글 / 조이슬(esbow@hanmail.net)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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