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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퇴장하였으나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 <대부>

<대부>는 관객 모두를 진지하게 스크린에 몰입시키고 숨죽이게 만드는 작품이다. 마리오 푸조의 원작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영상으로 다시 재창조한 이 작품은 한 편의 위대한 서사시라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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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The Godfather, 1972년, 파라마운트)
음악: 니노 로타(Nino Rota)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촬영: 고든 윌리스(Gordon Willis)
원작: 마리오 푸조(Mario Puzo)
주연: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로버트 듀발

2009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극장에서 <대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디지털 작업으로 복원한 깨끗한 필름이었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오래된 미술 작품을 복원하던 장면처럼, 사람들의 손끝을 거쳐 먼지들을 털어 내고 극장에서 처음 개봉하는 듯한 상태로 되돌아가 있었다. 극장 안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관객들은 적었으나, 영화가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역시 <대부>는 관객 모두를 진지하게 스크린에 몰입시키고 숨죽이게 만드는 작품이다. 마리오 푸조의 원작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영상으로 다시 재창조한 이 작품은 한 편의 위대한 서사시라 해도 좋겠다. 175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군더더기가 없다. 코를레오네 가족들과 다양한 캐릭터의 인간 군상들이 한 명씩 소개되면서,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복선이 치밀하게 깔린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옛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버지 세대는 석양처럼 지고, 아들의 시대가 새벽의 미명 속에 떠오른다.

<대부>의 오리지널
포스터
개인적으로 원작 소설을 가장 훌륭하게 영화로 각색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대부>이다. 원작자인 마리오 푸조가 직접 코폴라와 함께 작업한 시나리오는 원작의 내용을 명료하게 축약하고 있다. 소설에 쓴 내용을 하나도 놓치는 부분 없이 알차게 시각적으로 옮겨 놓고 있다. 코폴라는 소설을 읽을 때 상상했던 내용을 완벽한 미장센으로 채워 낸다. 디테일은 그렇게 하여 살아 숨쉬게 된다. 도입부의 결혼식 시퀀스는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절묘한 장치이다.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세상과 암흑가의 이야기가 그 안에서 교차한다. 햇살 찬란한 정원과 대부의 어두운 집무실은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조명만으로도 바깥세상과 마피아들의 세계가 극단적으로 상이함을 드러낸다. 결혼식이 벌어지는 바깥은 시끌벅적하지만, 집무실에서는 즐겁게 떠드는 그 소리들이 멀리서 들려올 뿐이다. 조명과 음향의 극적인 대비가 상징하듯이, 두 세계는 전혀 다른 곳이다. 뒤쪽에서 들어오는 빛을 배경으로 삼아 집무실 전면의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포착해 낸 것은 카메라맨 고든 윌리스의 솜씨이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네덜란드 그림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배후 조명으로 인해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지지만, 바로 그 때문에 표정의 작은 변화에서도 더 복잡하고 풍부한 내용들이 드러난다. 대부는 집무실에서 축하 인사를 받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딸의 축복받은 결혼식 날이기에 사람들의 어려운 부탁을 들어준다. 법으로는 공정하게 처리할 수 없는 어두운 세계의 일들을. 그것이 시칠리아의 전통이다.

즐겁고 행복한 결혼 파티와 대부의 어두운 세계는
스크린의 색채로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음악은 아름답다. 트럼펫 소리가 낭만적이고 아련하게 울린다. 도입부를 이끄는 곡은 니노 로타의 「Godfather Waltz」이다. 시칠리아에 근거를 둔 마피아 조직과 이탈리아다운 분위기를 담기 위해 70대의 노장 작곡가가 품위와 분위기를 더한다. 니노 로타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음악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때로는 뉴욕과 같은 도회적인 느낌도 들지만, 동시에 시칠리아의 토속적인 느낌도 잘 묘사하고 있다. 바깥은 결혼 축하곡을 부르는 흥겨운 소리로 가득하다. 나이든 이탈리아 할아버지가 신나게 이탈리아 민요를 부르고, 인기 가수 조니 폰테인(알 마티노)이 방문해서 「I Have but One Heart」를 유쾌하게 열창한다. 영상과 음악이 이렇게 결합되면서, 시칠리아와 뉴욕의 먼 거리를 한 시공간에서 잇는 마피아와 대가족의 끈끈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제시된다.

영화 전반을 이끌어나가는 강력한 카리스마는 대부인 비토 코를레오네이다.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의 연기는 절정에 이르고 있다. 코를레오네는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지만, 과거의 거인이다.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는 그는 고독한 존재이다. 돈 코를레오네는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가 연출한 <표범>에서 버트 랭카스터가 연기했던 돈 파브리지오와 동일한 상징성을 지닌 인물이다. 버트 랭카스터가 저물어가는 시대를 묵묵히 바라보듯이, 브란도도 자기 세대가 끝나고 아들들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돈 코를레오네는 그런 모든 변화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보스는 자신이 평생 구축한 권력을 이제 아들들에게 이양하려 한다. 그 모습을 그려내는 브란도의 연기는 어떤 마피아보다 더 위압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낸다. 굳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라는 명대사를 날리지 않더라도.

194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대가족 코를레오네의 역사가 전개된다. 마이클(알 파치노)은 케이(다이언 키튼)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아버지가 총에 맞아서 쓰러졌다는 신문을 보게 된다. 비토 코를레오네가 바르지니 패밀리의 기습을 받고 쓰러지는 신은 <대부>에서 극적인 전환점을 이룬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마이클만큼은 마피아와 다른 세계에 살게 하려던 비토의 바람이 무너지고 그 역시 ‘가족들의 사업’에 개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협상을 가장하고 나가서 뉴욕 경찰서장을 살해하고 시칠리아로 도피행을 떠난다. 영화가 중반을 향해 치닫는 이 지점에서 처음으로 「사랑의 테마」(Love Theme)가 흘러나온다.

다행히 비토 코를레오네는 살아나지만 시간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강물처럼 흘러간다. 함정에 빠진 장남 소니(제임스 칸)는 톨게이트에서 기관총에 맞아 무참하게 살해된다. 시칠리아에서 청순한 시골 처녀와 결혼한 마이클도 상대 조직에게 신부를 잃는다. 조직들은 대타협에 들어간다. 안전을 보장 받은 마이클은 시칠리아에서 돌아온다. 그리고 조직의 실권을 장악해 나간다. 모범생다운 청년에서 차갑고 냉정한 마피아가 되어가는 것이다. 마이클은 조직의 안녕을 위해서 다른 패밀리의 보스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 나간다. 손자와 행복하게 놀던 비토는 가부키 배우처럼 표정 없는 가면을 쓴 채 정원에서 죽는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전 세대들의 퇴장을 의미한다. 세대의 바뀜을 상징하듯이 마이클은 교회에서 어린 조카의 대부가 된다. 이제 그가 가족들을 이끌어 가는 위치가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조직 내의 모든 배신자들과 뉴욕을 분할 지배하던 다른 조직의 보스들을 처단한다. 그중에는 큰형 소니를 함정에 빠지게 만들었던 매부 카를로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형과 아버지, 매부까지 죽으면서 거대했던 대가족은 해체된다. 영화는 누이인 코니(탈리아 샤이어)의 성대한 결혼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성대함처럼 코를레오네 패밀리의 관계도 더욱 공고해지리라 믿었지만, 결국 패밀리의 구성원들은 하나씩 세상을 떠나고 가족의 역사가 담긴 대저택은 팔리게 된다. <대부>는 코를레오네 가족을 통해서 보는 미국의 현대사이자, 한 시대를 지배한 ‘밤의 대통령’에 관한 전설적 갱스터 무비이다.

<대부>의 OST LP.
원작 소설의 표지와 영화 포스터, 그리고 OST 앨범까지 일관된 이미지가 쓰였다.
<대부>는 이례적으로 두 곡의 테마 음악이 영화를 받쳐주고 이끌어간다. LP 시대의 사운드트랙 구성은 그런 점에서 두 곡 모두를 살리고자 신경을 쓴 흔적이 남아있다. 1면 첫 곡은 메인 타이틀 곡인 「The Godfather Waltz」이고, 2면의 첫 곡은 「사랑의 테마」이다. 앞뒤 면 구분이 없는 CD로 이 곡들을 듣는 느낌은 LP로 듣는 것과 완연히 다르다. CD로 듣다 보면 「사랑의 테마」가 중간에 끼어서 밋밋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LP에서는 두 개의 곡이 각각 한쪽 면을 이끌어나가는 주도적 역할을 맡는다. 턴테이블에 음반을 뒤집어 올려놓을 때마다 그 면에서 흘러나올 음악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게 된다.

두 곡의 테마 음악은 일흔 줄에 접어든 니노 로타의 원숙미를 잘 보여 준다. 영화 전반에 걸쳐 「The Godfather Waltz」가 지속적으로 깔린다. 트럼펫 소리가 인상적이다. 고독하게 흐르는 트럼펫 솔로는 막 동이 틀 때의 어스름처럼 신비롭고 아련한가 하면, 새벽안개처럼 몽환적이다. 트럼펫이 주제부를 연주하며 음악을 시작할 때마다 사뭇 슬프고도 불안한 여운이 감돈다. 멜로디는 이국적이면서 신비롭다. 코를레오네의 고향이 시칠리아임을 일깨워주듯 반복적으로 연주되면서 주제를 심화시킨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죽음, 가족과 마피아 조직 간의 갈등을 감싸 안으면서 한 시대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솔로 연주는 무엇보다 고독한 인상을 풍긴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마저 조직을 위해서라면 처단할 수밖에 없는 대부의 고독 말이다. 누구와도 고민을 나눌 수 없는 대부의 외로움이 음악으로 표현된다. 니노 로타의 이력을 상기해보면, 영화 <길>(La Strada)에서 그랬듯이 트럼펫 소리가 매우 인상적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허공에 퍼지는 아련한 트럼펫 소리는 공통된 정서를 이끌어낸다.

반면 「사랑의 테마」는 다른 형식으로 쓰인다. 영화가 중반부에 접어들고 나서, 마이클이 숨어있는 시칠리아를 보여 주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사랑의 테마」가 등장한다. 시칠리아에서 벌어질 마이클의 사랑이 암시되는 것이다. 그 음악은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시칠리아의 풍광과도 어우러진다. 초반부터 바이올린 연주가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격정적이 되게 한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황량한 시칠리아의 경관이 눈앞에 다가온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탈리아 남부라는 이국적인 풍경을 시각적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광 아래서 펼쳐지는 사랑의 열정과 더불어, 슬픈 우수를 동시에 담아내는 테마 음악이다. 어느 콘서트에서 「사랑의 테마」를 들으며 감동에 젖어 눈물짓는 여인을 본 적이 있다. 이 음악에는 마음을 흔드는 애잔함과 여운이 깔려있다.

뉴욕으로 돌아간 마이클은 이성적인 판단 끝에 케이와 결혼하기로 한다.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자신에게는 케이와 같은 안주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칠리아에서 만나 결혼식을 올린 아폴로니아와의 사랑은 그와는 다른 것이었다. 마피아가 아닌, 한 젊은 청춘으로서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아폴로니아가 살해되면서 비극적으로 끝나고 마는 불행한 사랑의 전조 역시 「사랑의 테마」에는 담겨있다. 그래서 이 음악은 더욱더 아련하게 가슴을 울린다. 「사랑의 테마」는 메인 테마가 아님에도 영화를 대표하는 의미로 「대부의 테마」(The Godfather Theme)라 불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Tip 1]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와 동명 소설인 람페두사(Giuseppe Tomasi di Lampedusa)의 『표범』(El Gattopardo)이나 마리오 푸조의 『대부』 모두 시칠리아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두 작품 모? 시대가 바뀌어 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두 거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Tip 2] 영화 속에서 「사랑의 테마」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으로 나온다. 이 곡에 래리 쿠식(Larry Kusik)이 곡을 붙이고, 앤디 윌리엄스가 불러서 인기를 끌었던 노래가 「Speak Softly Love」이다.

[Tip 3] 영화 속에서는 알 마티노가 조니 폰테인 역으로 등장한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모델이었다. 그가 대부에게 부탁을 해서 출연하게 된 영화는 실제로는 <지상에서 영원으로>였다고 한다. 그는 결혼식 장면에서 「I Have but One Heart」를 멋들어지게 부른다. OST 앨범에서는 이 노래가 메인 타이틀 곡 다음으로 이어진다.

[Tip 4] 마이클과 케이가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같이 본 영화는 <성 메리 성당의 종>(The Bells of St. Mary’s)이다. 1945년 레오 맥커레이(Leo McCarey) 감독이 연출했고, 빙 크로스비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을 맡았다.

[Tip 5] 비토 코를레오네가 얘기하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I’m gonna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는 미국영화연구소(AFI) 선정 명대사 2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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