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그룹 열풍이 장기전이네요. 소녀시대의 「Oh!」, 투애니원(2NE1)의 「날 따라해 봐요」가 컴백하자마자 가요계를 접수하고 있습니다. ‘후크 송’ ‘일렉트로닉 댄스’ ‘포인트 춤’ 등 주류에 머무르는 동안 가요계에 던진 화제와 유행 코드도 하나 둘이 아닙니다. 벌써 3년이 되어 가네요.
너무 한쪽에만 햇빛이 들면서 상대적으로 음지로 변한 영역이 있습니다. ‘솔로’ 여가수들이죠. 특히 직접 곡을 쓰거나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심지 굳은 뮤지션들은 이젠 가요계의 중심에서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찬란한 스포트라이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작지만 희망적인 불씨들 아닐까요? 음악성과 깊이로 승부하는 재능 있는 여성 뮤지션들의 음반들 소개할게요. 황보령의 3집과 알리의 데뷔 EP입니다. 10년 만에 돌아온 「By your side」의 주인공 샤데이의 신보도 소개합니다.
황보령 <Shine In The Dark Collective Edition> (2009)
지난해 발표된 황보령 3집 부클릿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밴드를 상징하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음악과 싱크로율이 맞지 않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불만은 비단 필자 뿐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황보령 3집이 <Shine In The Dark Collective Edition>으로 새롭게 단장해서 발매됐다.
황보령은 가수뿐 아니라 화가로도 유명한데, Edition 앨범에서는 그녀의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표지 그림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액자 구조, 게다가 5장의 그녀의 그림은 CD를 소장하는 기쁨을 배로 충족시킨다. 또 「한숨 sign」을 어쿠스틱으로 연주한 보너스 트랙까지 듣고 있자면 비로소 그녀의 작품을 온전히 소유했다는 뿌듯함이 든다.
황보령은 흔히 홍대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분류되고 있지만 그녀의 음악은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홍대 여신들이 기타 하나를 호젓이 들고 자신의 일상이나 내면을 이야기하는 반면, 그녀의 음악은 소란스럽고 묵직하다. 아니 차라리 독특하고 실험적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스맥소프트’라는 그룹을 만들어 싱어송라이터보다는 밴드의 면모를 더 갖추었다.
그녀의 앨범을 꺼내 그 속에 있는 그림을 본다. 대부분이 추상화이다. 그녀의 자화상 위로 복잡한 선이 엉클어져 있다. 채도가 낮은 색은 강렬하지만 섬뜩하다. 곧이어 그 그림을 토해 낸 여자에게서 나온 음악을 듣는다. 둘은 청각과 시각의 경계를 넘어 쌍생아처럼 닮았다. 암호처럼 얽힌 그녀의 그림처럼 음악도 겹겹이 쌓여서 입체적으로 전개된다.
황보령의 음악은 4차원적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귀를 기울이면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소리와 만나게 된다. 「돌고래노래」에는 “투명하게 맑은 그대여.”라는 가사를 글라스를 부딪쳐 소리로 표현했다. 이어 「식물펑크」에서 꽃망울이 터지는 듯한 파열의 순간을 청각적으로 구현해 낸다. 또한 5분여 동안 “돌아가는 / 돌아가는 별만”이라는 가사만 반복하는 「돌아가는 별」, 음을 가열해서 폭발시키는 듯한 「한숨」은 다른 차원의 우주를 만나는 것처럼 신기하고 경이롭다.
내가 이렇게 힘이 드는데 너는 더 힘들겠구나 - 「식물펑크」 中에서
너가 하는 말 전부를 믿고 싶어 - 「비상」 中에서
지나가는 지하철소리가 파도소리 같다 - 「해 海 解」 中에서
황보령은 뒤틀거나 돌려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1집이나 2집에서처럼 외로움과 소외, 불안함을 노래한다. 하지만 더 이상 좌절이나 원망을 담지 않는다. 혼자 고뇌하며 외로이 떠돌던 그녀의 우주는 이제 우리를 포용할 만큼 팽창하고 성숙해졌다.
-글 / 김반야(10_ban@naver.com)
알리(Ali) <After The Love Has Gone> (2009) 2005년, 히트를 기록한 리쌍의
「내가 웃는 게 아니야」를 기억하는지. 둔중한 베이스의 리듬을 가르며 그루브를 이끌었던 파워풀함, 그 음색에 묻어 있던 왠지 모를 블루지한 감성을 되새기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의 이름이 낯설다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보컬의 그 8마디를 피처링한 가수, ‘알리(Ali)’의 데뷔작이다.
보통 낯선 이름의 가수를 마주하면 그만이 가진 재기와 순수성을 기대할 법하지만,
<After The Love Has Gone>은 그런 강점과 혹은 신인의 핸디캡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26세(1984년생)의 가수에게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에 능란하고 여유로운 가창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쨌든, 힙합과 재즈로 단련된 가공할 만한 호흡과 뛰어난 성량만으로도 분명 주목해야 할 뉴 페이스의 등장이다.
아마 프로듀서 ‘최준영’이 캐치한 가수의 정확한 음색 파악이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을 수 있고,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을 넘어 곡마다 톤을 달리하는 재능이 이런 감상을 유도했을 수도 있다. 시종 일렉트로니카의 효과음이 어지러이 수를 놓는 「뱀파이어」는 바로 프로듀서와 가수의 최상의 합일점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잘게 쪼개진 멜로디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가사에서 이뤄지는 호흡 조절, 스캣에 이르러서 풀어내는 솟구치듯 질러 대는 이런 파워 가창은 알리의 스타일을 단 한 곡으로 압축한다.
「뱀파이어」에서 다른 가수들이 가지지 못한 성량과 비트에 어울리는 바운스감을 획득했다면 타이틀 곡 「365일」에서는 섬세한 감정 처리로 접근한다.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지배하는 발라드든, 펑키(funky)한 리듬의 편곡이든 이 모든 걸 압도하는 건 바로 기본기 확실한 그의 목소리이다. 그게 아니라면 「Crazy night」과 「첫인사」의 음색 깊이의 차이, 「365일」과 「울컥」의 톤을 구현해 내는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수라면 으레 동반되어야 하는 표현력은 앨범의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버스(verse)와 ‘알리’의 코러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그래서 힘을 탑재해 점점 정점으로 치닫는 섬세한 보컬 디렉팅의 「첫인사」야말로 목소리와 음색, 테크닉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다.
이미 그녀는 「Ain't no mountain high enough」의 펑키(funky)함이나 뮤지컬
<드림걸스>에 삽입된 「And I'm telling you I'm not going」과 같은 스케일이 큰 곡들을 라이브 무대에서 무리 없이 소화하면서 선전 중이다. 아쉬움이라면 음반상에서도 언뜻 비치던 발성의 과함 탓에 고음의 힘 조절이 실제 무대에선 조금 힘겹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 허나 이 역시 감상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데뷔작인 미니 앨범에 실린 5곡의 수가 알리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전혀 적게 느껴지지 않는다. ‘보컬’이 단순히 멜로디를 읊조리는 게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표현을 담아내는 분명한 예술임을 그녀는 목소리 하나로 오롯이 표현하고 있다. 음악팬들이 기다리는 뉴 페이스의 분발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글 / 조이슬(esbow@hanmail.net)
샤데이(Sade) <Soldier Of Love> (2010) 야속하게 10년 만에 귀향했지만 우리는 긴 부재를 탓하기는커녕 지극의 반가움으로 샤데이를 맞는다. 2002년의 라이브 앨범을 치더라도 8년 만이다. 신보의 타이틀이자 첫 싱글
<Soldier of love>는 공백 10년을 시원하게 날리려는 의지가 작용한 듯 프로그래밍을 통한 스네어 드럼 비트를 앞세워 꽤 힘차게 전개된다. 마치 행군하는 군인의 위풍당당한 발걸음처럼(뮤직비디오도 이 분위기를 담았다).
25년 전인 1985년 「Smooth operator」 이후 샤데이가 내놓은 「Your love is king」 「The sweetest taboo」 「Jezebel」 「Never good as the first time」 「Paradise」 그리고 10년 전의 「By your side」 등 어떤 곡들과 비교하더라도 조금은 터치가 강하다. 이번 신보 공개와 함께 정확히 만 51세가 되는 나이(1959년 1월생)를 생각하면 예상 밖이다. 관록의 느긋함을 드러내야 할 나이에 도리어 강골(强骨) 에너지의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Soldier of love」가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사운드만큼이나 당당하다.
‘난 지금 내 믿음의 경계에 처해 있고/ 헌신도 벽지에 갇혀 있고/ 이러한 내 자신 투쟁의 전선에서/ 난 그러나 아직 살아있어 (…)’ 그는 수도 없이 자신의 삶을 찾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밤낮으로 사랑을 기다리며 사랑하고 있고 그리고 살아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글로벌 혼탁과 일상의 피로감에 시달리는 우리에게는 적지 않은 위안이요, 사기진작의 선물이다.
이런 자세를 갖기까지 샤데이 본인도 오랜 시간 (우리는 왠지 모를) 갈등과 상처에 시달린 것 같다.
‘난 안이 찢기어졌고/ 내팽겨져 쳤지/ 그래서 난 오르는 거야/ 난 살아야 할 의지가 있어/ 이 황량한 서부에서/ 난 고난을 시험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 살아 있기 위해서/ 난 사랑의 군인이야 (…)’ 그녀가 겪었을 고통은 「Morning bird」 「Babyfather」 「Long hard road」 「Bring me home」과 같은 처연한 슬픔이 흐르는 노래들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어쩌면 「Soldier of love」를 제외한 수록곡 전체가 슬픈 기조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가운데 「Long hard road」는 길고도 험한 길이라는 곡목에서 감을 잡을 수 있듯 첼로와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를 동원해 비감(悲感)의 극치를 선사한다. 아마도 지금까지 샤데이의 여섯 장 스튜디오 앨범 가운데 가장 아리고 쓰린 애수(哀愁) 분위기의 앨범일 것이다.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정서의 대전환이다.
「Smooth operator」로 대변되는 샤데이 음악의 이미지는 은은한 커피향이 감도는, 좁으나 화려한 실내장식의 카페와 맞닿아 있다. 거기서 시간은 멈추고 공간감도 정지된다. 중독의 유혹이 넘실대는 품위와 격조가 있다. 그 이미지는 샤데이만의, 재즈 터치의 R&B 음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영국산 뉴 웨이브,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부활한 모타운 팝, 마돈나의 댄스 그리고 팝 메탈이 주류의 선두 다툼을 벌이던 그 시절, 샤데이의 독특하고 탁출한 음악은 등장과 동시에 단박에 브랜드로 성장했다.
오죽했으면 일반적으로 음악가 소식은 다루지 않던 인색한 시사 주간지 <타임>이 게다가 신인을 영예의 커버스토리로 취급했겠는가. 당시 특집의 제목이 다름 아닌 ‘Smooth operator’였다. 잡지는 바로 그 각별한 샤데이의 ‘스무드’한 음악을 특별 대우한 것이다. 그런 스무드한, 부드러운 음악이 이번에는 슬픈 음악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신보는 다름 아닌 이 대목에서 가치를 발한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에 찬바람이 부는 현실에서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정직한 시야의 발로라고 할까. 그러면서 상업성을 위해 과장된 재미와 자극으로 일관하고 있는 대중음악 판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흔히 샤데이 하면 샤데이 아두(Sade Adu)만을 생각하지만 실은 밴드의 이름이다. 밴드는 철저히 가려져 있고 오로지 리드 싱어인 샤데이 아두만을 부각하기 때문인데 신보의 사운드도 앤드류 헤일(건반), 스튜어트 매츄먼(기타, 색소폰), 폴 덴먼(베이스) 연주와의 합이다. 이들은 단순한 세션에 그치지 않고 샤데이 아두와 함께 작사, 작곡, 편곡하고 연주하는 공동 작업자들이다. 신보 대부분의 곡을 샤데이, 앤드류 헤일, 스튜어트 매츄먼이 같이 썼다.
음악은 젊음의 패기 못지않게 관록의 심도도 중요한 것 같다. 25년 동안 신보라고 여섯 장밖에 내지 않는 전형적인 과작(寡作) 아티스트임에 불구하고 괜히 샤데이 샤데이 하는 게 아닌 것이다.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스튜어트 매츄먼과 오랜 동료이자 동료 소니 아티스트인 맥스웰(Maxwell)은 신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날 믿어라. 신보는 하나의 집적된 덩어리다. 아마도 사람들은 부들부들 떨게 될 것이다!” 샤데이가 돌아왔다. 이것은 근래 우리가 놓치고 있던 전율과 흥분의 컴백이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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