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오늘 같은 밤,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른다
장필순 <5집 :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1997)
헤어진 연인은 완전히 잊고 지내는 것 같다가도 서늘한 바람이 불고 외로운 날이면 다시 생각나곤 하죠. 장필순은 이것을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른다고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나온 지 13년이 지난 지금도 라디오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명곡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수록된 장필순의 5집은 곡의 명성뿐만 아니라 앨범의 완성도도 널리 손꼽힙니다.
헤어진 연인은 완전히 잊고 지내는 것 같다가도 서늘한 바람이 불고 외로운 날이면 다시 생각나곤 하죠. 장필순은 이것을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른다고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나온 지 13년이 지난 지금도 라디오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명곡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수록된 장필순의 5집은 곡의 명성뿐만 아니라 앨범의 완성도도 널리 손꼽힙니다. 이번 주는 애틋한 허스키 보이스의 대명사 장필순의 최고작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장필순 <5집 :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1997)
랩이 대중화되고 모든 매체가 댄스로 물들어버린 1990년대의 말, 장르는 댄스 아니면 발라드 안에서 해결되어야 잠시 잠깐의 스포트라이트라도 받을 수 있었던 때에 잊힘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장의 음반이 나왔다.
허스키하지만 거칠지 않은 음색으로 묵묵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장필순은 온기가 살아있는 음악인이다. 포크 음악에 기반을 두고 1980년대 초부터 대학가를 시작으로 노래하기 시작해 기교 부리지 않는 목소리만큼이나 깊고 또 꾸준한 음악 스타일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가고 있다.
들국화와 조동진, 그리고 해바라기로 대표되는 한국 포크 음악의 대선배 무대에 코러스와 게스트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가수 인생의 출발점을 찍고 1989년에 1집 <어느새>를 발표했다. 당대 떠오르는 별이었던 김현철이 프로듀스한 1집 앨범은 솔직히 김현철의 작품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장필순의 색깔을 제한적 틀에 가두고 있지만 후에 트리오 ‘오, 장, 박(오석준, 장필순, 박정운)’ 활동으로 그의 보이스가 제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는 「내일이 찾아오면」의 히트에서도 알 수 있듯 장필순의 목소리로 높여지는 곡의 완성도는 그녀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느냐에 대한 논지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본격 포크맨으로의 가도를 달리게 된 건 그때 이미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1990년대를 가로지르며 꾸준히 앨범을 내고 4집으로 가면서 서서히 숨겨뒀던 색채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1, 2년 간격으로 부지런히 앨범을 선보이던 그녀가 3년이란 공백 기간을 둔 후 가져온 5집 앨범은 보컬 장필순이 아닌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 시점과 맞물리면서 부재의 이유가 이것이었음을 시사한다.
조동진이 만들고 시를 붙인 첫 곡 「첫사랑」은 오랜 사부이자 동료로 장필순과 음악 인생을 함께 걸어온 그가 정말 잘 주었다 싶은 곡이다. 장필순이 지닌 분위기를 최대로 끌어 올려주는 차분한 구성은 싱어 장필순을 잘 아는 그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어지는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는 라디오를 통해 조용히 알려지면서 1집 「어느새」에 이은 장필순표 히트 바통을 이어받은 곡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 곡부터 주목할 만한 트랙들이 이어진다. 「스파이더맨」의 리듬과 「TV, 돼지, 벌레」의 가사는 포크 ‘록’의 그것에 한층 더 가까워진 듯한데, 주의 깊게 귀 기울이지 않아도 몸에 잘 맞는 티셔츠 한 장을 걸친 것처럼 편안히 귀에 꽂힌다. 그리고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 와 「넌 항상」 「사랑해 봐도」에 다다르면 나지막한 속삭임으로만 주지되었던 목소리가 록 보컬로도 꽤나 어울림에 놀라게 된다. 장필순이 가진 매력 중에서 단연히 돋보이는 층층이 겹친 음색은 「첫사랑」과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제외한 전곡이 키보드가 없는 심플한 연주를 하고 있음을 바로 잡아내지 못하게 할 만큼 곡의 여백을 다부지게 채워주고 있다.
장필순은 알아도 포크 음악에 대해서 세 줄 이상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드러냄에 있어 익숙하지 않고 노래를 통해 자신을 녹여내는 몇 안 되는 고무적 성격의 뮤지션이지만, 5집을 접한 후의 누구든 포크와 장필순, 그리고 그녀의 음악관에 대해 펼치고 싶은 이야기가 입 안에 맴돌게 되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라도 장필순의 음악을 인연으로 만들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음반은 갖춰지지 않아 오히려 순수했던 1980년대를 지나, 외부 문화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1990년대의 험한 길을 거쳐 온 티를 찾아볼 수 없는 순수지향성 짙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포크 음악의 존재가 바래는 걸 부정할 수 없었던 그때 장필순은 어떤 심정으로 작업에 임했을지, 두려움과 의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 한 장의 음반으로 말미암아 그녀의 포크에 대한 믿음과 욕심은 탄탄하게 메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평단으로부터 다시금 ‘국내에 몇 안 되는 여성 아티스트’라는 영예를 쾌척했다.
장필순 본인은 “조금씩 문을 열고 싶었고 변화하려는 욕구를 상당히 구체화한 앨범”이라고 설명한다. 작업 중단의 역경을 딛고 간신히 2002년에 나온 6집도 “5집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1990년대의 수작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제대로 빛을 쪼이지는 못했다. 대중의 갈채는 여전히 인연이 없었다. 아쉬움이 남지만, 세월이 지나도 살아남는 것이 명작이라면 다섯 번째 이 앨범 역시 그대로 사라져버리진 않을 것이란 믿음이 든다. 포진하고 있지만 티 내지 않는 지지자들이 그녀의 곁엔 존재할 것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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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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