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 1965년)
음악: 모리스 자르(Maurice Jarre)
감독: 데이비드 린(David Lean)
제작: 카를로 폰티(Carlo Ponti)
원작: 보리스 빠스쩨르나끄(Boris Pasternak)
각본: 로버트 볼트(Robert Bolt)
주연: 오마르 샤리프, 줄리 크리스티, 제럴딘 채플린, 로드 스타이거
<닥터 지바고>는 무려 197분에 달하는 대작이다. 작품 곳곳에 러시아의 눈 덮인 평원이 한없이 펼쳐진다. 그 설원 속에 빠져들 듯이 우리는 스크린에 몰입하게 된다. 화려했던 제정러시아 말기부터 귀족과 민중이 대립각을 세우던 혁명의 시간들까지,
<닥터 지바고>는 거대한 역사의 시간 속에 내던져진 한 개인의 삶을 그려나간다.
동토의 제국 러시아는 역사상 아무도 제압하지 못한 영역이다. 막강했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의 군대가 무너진 것도 러시아로 진입하면서 광대한 영토에 군사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원정에 실패하고 쓴맛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들 강력한 외국 세력들조차 퇴각하게 만든 러시아가 정작 흔들린 것은 다름 아닌 민중의 힘 때문이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1912년부터 1925년에 이르는 격동의 시간들을 필름에 담아낸다. 십여 년의 시간 동안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소비에트 인민공화국이 들어선다. 과거의 유산들은 한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야 하는가, 아니면 거부해야 하는가. 격동의 세월 속에서 개인의 존재 가치란 무엇인가. 절박한 시대 상황에서 개인의 사랑이란 불가능한 것인가. 보리스 빠스쩨르나끄의 원작이 던지는 질문들은 데이비드 린의 영상을 통해 다시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사랑과 격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거기엔 「라라의 테마」(Lala’s Theme)가 함께 울려 퍼진다.
<닥터 지바고>를 보러 서울아트시네마에 간 것은 어느 일요일 점심시간이었다. 휴일이었지만 극장 안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서 관객들의 면면이 다 들여다보였다. 어느 중년 부부는 맨 뒷좌석에 느긋하게 앉아서 영화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에 충만한 표정이었다. 얼마 만에 두 양반은 영화를 보러 함께 나들이 나온 것일까. 불이 꺼지고 긴 어둠 속에서 영화가 끝나자 두 부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면서 출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간다. 휴게 공간에서는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 담배를 한 대씩 나눠 피우며 이야기를 나눈다. “야, 배우들 카리스마 장난 아니던데. 빅토르 역할 맡은 배우는 정말 세더라.” 로드 스타이거에 대한 논평을 하는 중이다. 그런 이야기를 엿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이런 느낌이 얼마 만인가. 관객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2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가 존재한다는 게 반갑다. 거대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가 마련해주는 여러 세대의 공감대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성공을 거둔 데이비드 린은 전작처럼 규모가 크고 액션이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내심 관객들에게 친숙한 사랑 이야기까지 포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소피아 로렌의 남편이던 이탈리아의 거물 제작자 카를로 폰티도 부인을 위한 영화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이 손을 잡게 된 작품이
<닥터 지바고>이다. 소련에서 출판되지 못한 이 소설은 1957년 이탈리아에서 발간되자마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이듬해 노벨문학상에 선정되었으나 소련 당국의 거부로 인해 보리스 빠스쩨르나끄는 수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 작품의 영화화가 결정되자마자 범 유럽의 거물들이 속속 합세했다. 영국 감독, 이탈리아 제작자, 미국 자본, 소련 원작자, 마지막으로 프랑스 음악가까지. 그야말로 국제적인 대작을 제작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게다가 타이틀 롤로는 이집트 출신의 오마르 샤리프가 발탁되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데이비드 린과 호흡을 맞추긴 했지만 오마르 샤리프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소피아 로렌은 영화에서 빠지게 된다. 대신 영국 배우 줄리 크리스티가 라라 역을 맡는다.
| | 전장터에서 우연히 조우한 지바고와 라라 | 지바고가 끝없이 설원을 헤매는 이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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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라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촬영을 할 수 없었다. 스태프들은 영화에 어울리는 공간을 찾아 전 세계를 헌팅했다. 스페인, 캐나다, 핀란드 등지에서 로케이션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유리 지바고(오마르 샤리프)와 그의 부인 토냐(제럴딘 채플린)의 가족이 모스크바를 떠나 지방 영지로 향하는 겨울철 기차 여행은 전부 캐나다에서 찍었다. 기차 안에서 사람들은 굶주리고 공포에 떤다. 그들은 내일이 되면 자신들에게 또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가 없다. 바깥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마을은 불타고, 사람들은 학살당한다. 기차가 지나가면서 비쳐지는 마을 풍경은 아비규환 그 자체다. 혁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장대한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처럼 스케일 큰 장면들을 CG가 아닌 현실 공간에서 찍어내던 영화의 대가 언제부터 끊어지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데이비드 린이 만들어낸 영화적 공간에는,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땀이 배어있다. 이런 점들이 데이비드 린의 영화가 ‘진짜 영화’답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이유이다.
<닥터 지바고>는 대형 스크린에서 볼 때 비로소 제 맛이 나는 영화다.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묵묵히 굴러가는 역사 속에서 펼쳐지는 건 지바고의 사랑 이야기이다. 시대의 변화를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의사이자 시인인 지바고. 내심 혁명에는 동조하지만 결코 행동가는 될 수 없는 지식인 유형이다. 문학과 사랑을 꿈꾸는 그 역시 역사 속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 토냐가 있음에도 지바고는 라라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더군다나 그녀의 남편은 혁명가요, 그녀를 사랑하는 권력자 빅토르(로드 스타이거)까지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가 함께 있을 때만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느낄 뿐이다. 인고의 세월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객들을 동화시키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쓴 부분이 음악이었다. 데이비드 린과 모리스 자르는 음악을 작곡하면서 긴 토론을 나누었다.
원래는 주제 음악으로 「라라의 테마」가 아니라 러시아 민요를 편곡해서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스케일과 주인공들의 감정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모리스 자르가 직접 작곡을 하는 게 훨씬 낫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모리스는 초벌 작업으로 몇 곡을 써보았으나 영화의 이미지들과 동떨어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그에게 데이비드 린은 영화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한다. 그래서 모리스 자르는 여자친구와 함께 산 속으로 들어간다. 지바고처럼 고립된 공간에 갇혀서 절박한 가운데서도 지순한 사랑의 감정이란 어떤 것인가를 몸소 체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모리스 자르는 몇 달 동안 산중에서 작업하면서 떠오른 악상들을 정리해서 감독에게 들려준다. 몇 소절에 불과했지만 「라라의 테마」가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라라의 테마」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다. 모리스 자르가 고독한 상황을 만들어내면서까지 고민하면서 작곡한 테마 음악은 감독이나 제작자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안겨 주었다. 낭만, 아름다움, 애정, 그리움, 불안과 고통 같은 복합적인 감정들이 이 음악 속에는 모두 담겨 있다.
「라라의 테마」는 라라의 캐릭터를 대변한다. 라라를 위해서 작곡된 음악이지만,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아우르는 보편성이 있다. 멜로디는 낭만적이면서도 떨림이 있다. 「라라의 테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러시아 민속악기 발랄라이카를 뜯으면서 내는 울림은 러시아다운 느낌과 동시에 간절한 사랑의 느낌을 고조시킨다. 또한 악기의 여린 울림은 사랑하는 이들의 불안한 상황을 대변하기도 한다. 데이비드 린은 영화 전체적으로 「라라의 테마」를 더 많이 사용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작자와 의논한다. 라라의 캐릭터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를 꿰뚫고 이어줄 만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리스가 작곡한 다른 곡들을 대부분 들어내고 「라라의 테마」를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삽입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나면 테마 음악 이외에는 다른 멜로디가 거의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처음에 모리스 자르는 이런 선택에 반대했다. 자신이 애써 창작한 음악들이 폐기처분됨은 물론이요, 창작의 폭이 제한되고 주제 음악만 지나치게 강조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린은 영상과 결합된 음악을 들려주면서 그를 납득시켰다. 결과는 엄청났다. 「라라의 테마」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했고 영화만큼이나 유명해졌으니 말이다.
<닥터 지바고>를 통해 모리스 자르는 영화음악가로서 확고부동한 국제적 명성을 누리게 된다. 「라라의 테마」는 아름답다. 그러나 절박한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인간애라는 느낌을 정서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이렇게 해서 「라라의 테마」는 영화를 위해서 작곡된 오리지널 테마 음악이라는 명확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오리지널 테마 음악을 얘기할 때 이 곡이 대표적인 원형으로 언급되는 이유인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종로통 뒷골목의 미로 같은 길을 걸어가는데,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아직도 영화의 강렬한 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무언가에 이끌린 듯 무의식적으로 「라라의 테마」를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시간이 흘러도 러시아의 풍경, 라라와 지바고의 사랑, 모리스 자르의 음악은 여전히 뇌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Tip 1] 모리스 자르는 3회에 걸쳐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1962년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1965년
<닥터 지바고>, 1984년
<인도로 가는 길>의 음악감독으로 수상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들은 모두 데이비드 린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들이다. 모리스 자르가 작고한 것은 바로 얼마 전인 2009년 3월. 거장이 하나둘 떠나는 시대가 안타깝다.
[Tip 2] 모리스 자르의 음악은 영화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먼저 코니 프랜시스가 노래로 불렀다. 「모정」(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 「Green Leaves of Summer」 등을 작사했고 세 차례에 걸쳐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폴 프랜시스 웹스터가 가사를 쓴 「Somewhere My Love」이다. 1966년에는 레이 코니프도 이 노래를 리바이벌해서 녹음했다. 듣기 편하면서 사랑의 감정이 듬뿍 실린 「Somewhere My Love」는 빌보드 차트 9위까지 오르면서 인기를 끌었다.
[Tip 3] 러시아 민속악기 발랄라이카(balalaika)의 애절한 탄현음(彈絃音)은 「라라의 테마」를 성공시킨 또 다른 숨은 요소다. 영화 시작 장면에서 어린 지바고가 어머니의 장례식 때 들고 다니던 악기가 바로 발랄라이카이다. 기타 비슷하지만 울림통이 삼각 모양이고 현은 세 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