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시대를 지배하는 트렌드가 있다. 한때는 같은 리듬을 차용한 곡이 인기를 끌고, 비슷한 풍의 멜로디가 계속 히트를 하며, 이것을 익숙한 분위기로 이끄는 코드 진행이 존재한다. 처음 들어본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고, 2009년의 신곡과 10년 전 발표곡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다면, 이는 분명 우리가 음악 시간에 줄기차게 외웠던 음악의 3요소, ‘리듬, 멜로디, 화성(코드)’의 3가지 중 하나 이상의 유사함이 있을 것이다.
이 중 ‘하모니(Harmony)’라고도 불리는 ‘화성’은 작곡가의 가장 예민한 감성을 반영한다. 똑같은 ‘미’ 음을 멜로디에 넣더라도 그 코드를 C 메이저로 잡느냐, 혹은 A 마이너로 가져가느냐에 따라 후에 이어질 진행이, 더 나아가 곡 전체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진행 방식이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에게 가장 듣기 좋은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라 우리가 ‘코드워크’라 부르는 것도 사실은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2008년, 그리고 2009년에도 어김없이 이어진 ‘후크송’에도 분명 이런 진행이 존재한다. 물론 비슷한 편곡 방식, 이를테면 일렉트로니카의 효과음을 가장 중요한 4마디 부분에 집요하게 사용한다거나, ‘Gee, gee, gee’나 ‘Sorry, sorry’ 등 입에 척척 붙는 가사를 무한 반복하는 다른 요소들의 포인트도 후크송의 인기를 견인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원더걸스의 「Tell me」를 부르다 은근슬쩍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어쩌다」로 넘어가고, 투피엠의 「Again and again」로 마무리하는 식의 유사함은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이는 바로 같은 코드에서 나오는 멜로디의 한정성 때문이다.
후크송을 이해하는 한 가지 코드워크, Am - Dm - E7
(기본적으로 가수들의 음역에 따라 사용하는 스케일이 다르므로 코드의 동일성을 설명하기 위해 모두 ‘A 마이너 스케일’로 통일하였다)
‘Am - Dm - E7’이라는 코드는 어느 화성학 책을 펴보아도 ‘마이너의 코드 진행’의 챕터에 늘 등장한다. 그만큼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는 얘기일 텐데, 우선 A 마이너와 D 마이너 사이에는 베이스의 5도하행(4도상행)이라는 기본 공식이 자리한다. 흔히, ‘5도권 진행’이라 부르는 이 패턴은 완전 5도 하행, 또는 완전 4도 상행으로 순환하는 도미넌트의 모션을 일컫는다. 이것의 코드패턴을 살펴보면, Am - Dm - (G7) - (C) - E7의 형태로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E7이라는 코드는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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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 장윤정 | |
혹시 이 진행의 감을 잡기가 힘들다면, 간단히 장윤정의 「어머나」를 들어보면 된다.
2009년의 히트한 후크송들은 이와 똑같은 코드를 두고 일렉트로니카의 사운드 장치, 클러비한 비트, 단 한 부분에 포인트만을 준 가사와 결합시켜 전혀 새로운 음률들을 탄생시켰다.
후크송의 틀을 마련한 박진영의 「Tell me」 2008년을 뜨겁게 달군 원더걸스의 「Tell me」는 디지털 음원 시대와 맞물린 후크송의 시작이었다. 어서 빨리 하이라이트를 듣고 싶은 팬들의 수요에 맞춰 곡 전체를 이루는 테마 4마디를 아예 인트로부터 꺼내어 반복시키고, 유치하지만 유쾌했던 ‘뿅뿅’ 사운드, 단순한 패턴에서 끄집어낸 캐치한 선율로 ‘반복과 복고’를 대중가요의 최고의 미학으로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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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l me」 - 원더걸스 | |
뒤이은 원더걸스의 히트곡
「Nobody」는 앞서 말한 전형적인 마이너 5도권 진행에 후렴구는 역시 이 코드를 기본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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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ody」 - 원더걸스 | |
「Tell me」를 시작으로 역시
「Nobody」에서도 근간을 이루는 이 3가지 코드를 박진영은 2009년 투피엠(2PM)의
「Again and again」, 최근의
「Heartbeat」에서도 실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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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beat」 - 2PM | |
앞서 보듯, 악센트를 주는 사운드와 리듬의 다양함을 꾀해도 어딘지 알 수 없는 비슷한 두 곡의 분위기는 바로 같은 코드에서 나온 멜로디라는 것에 기인한다.
후크송의 최대 수혜자, 용감한 형제의 「어쩌다」 원더걸스의
「Nobody」가 서서히 인기몰이를 시작할 무렵
「Tell me」와 아주 똑같은 패턴의, 그러나 그 한정적인 코드에서 뽑아낸 멜로디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세련된 선율을 가진
「어쩌다」가 서서히 차트 순항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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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 브라운 아이드 걸스 | |
시종
「어쩌다」를 가르는 이 4마디는 분명
「Tell me」를 연상시키는 접근법을 택했다. 어느 순간
「Tell me」로 넘어가려는 아슬아슬함을 피하면서 결국엔 ‘널 사랑하게 됐는지, 내가 왜 이꼴이 됐는지’에 확실히 심어둔 선율의 한 방으로 후크송의 최고 히트곡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작곡가인 용감한 형제는 비슷한 시기에 손담비의
「미쳤어」에서 다시 한 번 이 패턴을 시도한다.
기본 3코드 사이에 등장한 ‘Bm7 - 5’라는 코드는 재즈 화성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연주법인 ‘투 파이브 원’ 진행을 갖는다. 도미넌트에서 토닉으로 해결하기 전 도미넌트 코드 앞에 2도인(마이너 스케일에서 - Ⅱm7b5 - V7 - Im7) Ⅱm7b5를 넣어 코드를 리하모니제이션(reharmonization:기본 코드를 변화있게 만들기 위해 원래의 코드를 나누거나 변경하는 것)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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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 손담비 | |
정점을 찍은 후발 주자 SM의 「Sorry sorry」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히 가져가던 SM의 간판 작곡가 유영진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주요 4마디의 집중적인 반복, 멜로디와 리듬까지도 똑같이 쪼개
「Sorry sorry」 혹은 비슷한 라임의 ‘Shawty Shawty’로 일관하는 가사는 이제껏 모호하던 ‘후크송’의 개념을 명확히 했다. 인트로에 나오는 전자음의 4마디의 코드는 계속 반복하되, 멜로디는 같음 음을 찍거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을 포인트로 한다. 인트로로 시작해 ‘딴딴 딴따다 따 따딴다’로 쌓아올린 코러스로 이어지는 이 패턴 역시 ‘후크송의 주요 코드’가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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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y sorry」 - 슈퍼주니어 | |
미드템포 발라드에서 후크송으로, 티아라의 「거짓말」 ‘한’스러운 보컬로 한 때 ‘소몰이 창법’이라 비판을 받아야 했던 미드템포 발라드도 마이너 스케일을 주(主)로 삼았고, 그러다 보니 후크송의 코드가 곳곳에 사용되었다. 이 부분을 주요 테마로 끌어온 것이 바로 ‘후크송’이라 정의한다면, ‘미드템포 발라드’를 전면에서 지휘했던 작곡가 조영수도 이 매력을 그냥 지나칠 순 없었을 것. 티아라의
「거짓말」에서는 이 세 가지 기본코드에 특유의 ‘뽕끼’스러운 선율을 그려 넣어 독특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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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티아라 | |
신나는 ‘어이해’ 춤에도 숨어 있는 Am - Dm - E7, 카라의 「Wanna」 명색이 ‘제2의 핑클’을 만들어야 하는 ‘디에스피(DSP)’엔터테인먼트의 ‘한재호, 김승수’ 콤비도 무언가 강력한 ‘타이틀’ 하나가 필요했다. 별 힘을 쓰지 못했던 데뷔작을 지나
「Pretty girl」로 서서히 성공 그래프를 그려가고, 「미스터」의 엉덩이춤으로 정점을 찍기 전, 바로
「Wanna」가 있었다. 가사에 쓰인 ‘어이해’로 인해 ‘어이해 춤’이라고 불린
「Wanna」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트로트, 기존의 댄스 히트곡, 미드템포 발라드에도 있는 후크송의 코드가요의 히트곡을 일별해 보면 소위 ‘뽕끼’ 발라드라고 부르는 마이너 진행의 ?로디가 인기였다. 단, 마이너 자체에서 오는 약간의 구슬픔으로 인해 그 슬픔을 너무 강요하면 안 되었고, 스트링의 사운드로 감정을 극대화 시킬 수는 있되 템포는 충분히 올려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의 법칙이었다. 2005년, 디지털 음원 시장과 맞물려 히트한 ‘미드템포 발라드’는 이것의 완벽한 조합이었고, 이전의 트로트, 댄스 히트곡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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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 엄정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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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미안해」 - 태진아 | |
김창환 작곡의 「몰라」는 원더걸스의
「Nobody」의 진행과 일치하고, 태진아의 「미안 미안해」는 지금껏 설명하던 후크송의 코드와 딱 맞아떨어진다. 위의 두 곡이 그렇듯 이 부분은 늘 노래의 가장 중요한 후렴구에 쓰였고, 이것은 마이너 스케일의 수많은 패턴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소리의 진행이라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다시 말해,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 부분을 앞으로 빼고 무한 반복시키는 곡의 형식이 ‘후크송’이라면 이는 지금까지의 마이너 댄스곡들, 미드템포 발라드의 후렴부분의 한 파트를 띄어낸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코드가 Am - Dm - E7처럼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후크송’은 장르의 개념이 아닌 곡 형식의 ‘일탈’ 정도로 보면 정확하다. 단 8초 만에 곡의 테마가 결정되는 ‘후크송’이 기존의 곡들처럼 절차를 밟아 하이라이트로 진입할 필요도, 많은 코드가 쓰일 필요 또한 없는 것이다. 다소 지루한 ‘버스(verse)’ 부분을 줄이고 무조건 ‘후렴’에서의 ‘한 방’을 위해 온갖 편곡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키(key)의 흐름을 바꿔 놓는 조바꿈까지 감행했던 ‘미드템포 발라드’가 ‘후크송’ 이전의 히트 방법론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본다면 말이다.
상기하듯, 이 단순한 세 코드 안에는 ‘안전한 진행, 긴장, 해결’이 주는 화성의 체계가 모두 들어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청감을 사로잡아야 하는 ‘후크송의 비밀 코드’는 이 진행이 가져다주는 강렬한 포스와 캐치한 매력 덕에 아마 당분간은 계속될 것 같다.
- 글 / 조이슬(esbow@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