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지하철 안에 ‘시프트’ 광고판을 걸어 놓았다.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만화로 그려진 이 시프트 광고판을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광고에는 20년간 집 걱정 없이 저렴한 전세보증금으로 거주할 수 있는 것이 시프트(Shift)라며 이런저런 장점을 늘어놓았다. 집을 살 만한 돈이 없고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바라는 서민들에게 시프트는 좋은 제도 중 하나다.
시프트를 정확하게 정의하면 서울시가 20년 장기전세주택으로 주변 전세 보증금의 70~80%로 싸게 내놓은 임대 주택을 의미한다. 일반 공공임대 주택이 저소득층만을 겨냥한 것이라면 시프트는 중산층에게도 매력적인 주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주택 보급을 늘리는 차원에서 뉴타운 사업을 추진한 데 비해 현 오세훈 시장은 시프트를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운다. 뉴타운이 보상, 이주, 원주민 정착률 등 많은 부작용을 낳은 반면 시프트는 자신의 주택 소유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하지만 주거 안정에는 확실히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수요자 입장에서 시프트는 저렴한 ‘장기 전세’라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공급 측면에서는 시프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SH공사가 직접 건립해 공급하는 건설형 시프트와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 용적률 상향 등 인센티브를 주고 일부를 싸게 매입해 공급하는 재건축 시프트가 있다. 강일지구와 신내지구, 장지지구 등에 공급된 것이 SH공사가가 직접 건설해 공급한 시프트이고 반포 자이와 반포 래미안 등 강남 재건축 단지에 나온 것은 재건축 시프트에 속한다.
시프트의 청약 자격은 공급 유형이나 면적에 따라 다르다.
전용면적이 59㎡보다 적은 것은 다른 공공주택이나 국민주택과 같이 일정 소득 수준 이하이어야 하고 또 소득이 입주 때보다 30% 이상 오르면 전세보증금을 20%나 더 내야 한다. 전용면적 59㎡가 초과하는 주택은 이런 제한이 없다. 85㎡ 넘는 것은 중형은 매월 납입하는 청약저축이 아니라 청약예금 가입자가 대상이다.
당초 59㎡ 초과 85㎡ 이하 시프트에 대한 청약 기준은 달랐다. 건설형 시프트는 청약저축 가입 기간과 납입액을 기준으로 하는 일반 공공주택 분양 제도와 비슷했고 재건축 시프트는 서울시가 따로 만든 가점제를 기준으로 당첨자를 가렸다.
즉 건설형 시프트 59㎡ 초과 85㎡ 이하에 청약하려면 청약 저축에 가입해 2년이 지났거나 매월 약정 납입일에 월 납입금을 24회 이상 납입해야 1순위 자격이 됐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런 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다음 달부터 재건축 시프트와 같은 가점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두 유형의 시프트 입주자 선정기준을 단일화한 셈이다.
따라서 그동안 재건축 시프트에 적용됐던 가점제를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일반 주택을 분양받을 때는 부양가족수와 무주택거주 기간, 청약통장 가입기간에 따라 점수가 산정된다. 그러나 재건축 시프트는 서울 거주 기간과 무주택 기간, 세대주 나이, 부양가족 수, 20세 미만의 미성년 가족 수에 따라 당첨자가 갈린다.
서울 거주 기간이 20년 이상이면 5점, 15년에서 20년 미만이면 4점, 10년에서 15년 미만이면 3점, 5년에서 10년이면 2점, 5년 미만은 1점이다. 무주택 기간도 기간별 배점이 같다. 세대주 나이가 50세 이상이면 5점, 45~50세는 4점, 40~45세는 3점, 35~40세는 2점, 35세 미만은 1점으로 계산한다. 부양가족은 5인 이상일 때 5점, 4인 4점, 3인 3점, 2인 2점, 1인 1점이고 미성년 자녀는 3자녀 이상이면 3점, 2자녀 2점, 1자녀 1점이다. 만 65세 이상 노인을 3년 이상 모시는 가족은 보너스로 2점을 준다. 모든 항목에서 최고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25점 만점을 받는다. 예를 들어 서울 거주 기간 12년(3점), 무주택 기간 13년(3점), 나이 48세(4점), 미성년 자녀 2명(2점), 부양가족 4명(4점)이면 총 16점이다. 이 정도 점수면 그다지 높은 점수는 아니다.
따라서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 나오는 재건축 시프트에 당첨되기 어렵다. 미성년 자녀 수가 많든가, 65세 이상 노부모를 모시고 있든가, 부양가족 수가 많아야 유망한 단지의 재건축 시프트에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9년 반포 자이나 반포 래미안에서 나온 재건축 시프트 당첨 가점은 매우 높았다.
건설형과 재건축 시프트의 청약 자격을 단일화한 것과 함께 다음 달부터 시프트에 당첨된 뒤 중복 신청하면 감점하는 조치도 실시된다. 입주자모집공고일 기준으로 3년 이내 계약 사실이 있으면 10점, 5년 이내는 8점, 당첨된 지 5년이 넘었어도 계약 사실이 있으면 6점이 감점돼 불리해지니 주의해야 한다. 특히 경쟁률이 높은 유망 단지에서 이 정도의 감점이 있으면 당첨되기 쉽지 않다. 시프트의 청약 자격과 공급 예정 단지는 SH공사 인터넷 홈페이지(
//www.i-sh.co.kr)의 첫 화면에 나와 있다. 청약하기 전에 반드시 숙독할 필요가 있다.
시프트의 청약전략은 간단하다.
원하는 곳을 먼저 신청하고 당첨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서울시는 시프트를 계속 공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강남구뿐 아니라 광진구, 마포구, 영등포구, 강서구 등 서울 대부분 지역에 공급 예정 물량이 있다. 서울 거주와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등 가점과 관련이 있는 항목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다. 그렇지만 노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등 가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
자금 여유가 있는 무주택자는 85㎡ 이상 대형 시프트 단지를 노려보는 것도 좋다. 재건축 시프트에서는 이런 주택이 잘 나오지 않지만 SH공사가 서울 외곽에 짓는 단지에서는 대형 시프트가 심심치 않게 공급된다. 중소형에 비해 경쟁률이 높지 않아 당첨 확률이 높은 편이다. 또 현재 주택을 보유하고 있어도 입주 시점에서 집을 처분하면 된다. 물론 현재 집을 가지고 있으면 무주택자에 비해 조건이 불리하다.
시프트는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집을 사는 순간 자격을 잃는다. 집을 바로 비워야 한다. 집값이 폭등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높아지면 시프트를 찾는 사람들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수억 원대 집을 보유하고 있으면 기회비용이 크다. 집을 살 때 드는 자금을 금융상품에 투자하거나 일반 예금을 들면 매월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시프트는 재테크 전략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10억 원짜리 주택에서 사는 기회비용을 따져 보자. 연이자를 5%로 잡으면 매달 500만 원 가까운 월세를 내고 사는 셈이 된다. 만약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2억원의 전세보증금을 내는 시프트에 살고 나머지 8억 원을 연 4%의 이자를 주는 예금에 넣더라도 연 2,400만 원, 월 2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만약 원금 손실을 감수하고 좀 더 공격적인 금융 상품을 활용하면 이보다 훨씬 큰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집값은 여전히 불안하다. 서울은 특히 그렇다. 돈이 시중에 풀리면 서울과 수도권 집값은 폭등하기 십상이다. 이때 시프트에 거주하는 무주택자는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질 수 있다. 올해 시프트 청약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특징을 잘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