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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내릴 때면 우리, 사랑을 하자 - <러브 스토리>

&lt;러브 스토리>의 성공 요인이 단순히 눈물만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를 꼽으라면 알리 맥그로우가 연기한 제니의 캐릭터와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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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토리> (Love Story, 1970년)
음악: 프란시스 레이(Francis Lai)
감독: 아서 힐러(Arthur Hiller)
원작, 각본: 에릭 시걸(Erich Segal)
주연: 라이언 오닐, 알리 맥그로우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무엇이 모차르트보다 더 좋겠어?”
제니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아니면 바흐? 아니면 너?”
“제니, 내가 바흐나 모차르트랑 같은 등급인 거야?”
“비틀스하고도.”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녀가 살아오면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들과 동격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사랑에 빠진 제니(알리 맥그로우)와 올리버(라이언 오닐)는 주변 사람들이 눈을 흘길 정도로 꼭 붙어 다닌다. 둘이 같이 소파에 기대어 누운 채로 공부하다가 제니가 갑자기 “사랑해.”라고 말한다. 카메라는 올리버의 방에서 공간을 이동해서 눈 쌓인 공원으로 옮겨간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놀라는 것처럼 올리버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눈 위에 털썩 드러눕는다. 제니도 그를 따라 눈 위에 눕는다. 아무런 반주도 없이 기타 소리가 전주를 시작하면, 여성 보컬의 목소리로 가사 없이 허밍으로만 부르는 노래 「눈 장난」(Snow Frolic)이 화면 가득 흐른다. 그 음악 속에서, 온 세상이 새하얀 눈밭 위에서, 두 사람은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하얀 눈을 먹고, 뒹굴고, 웃으면서 눈사람을 만들다가 입을 맞춘다. 캐치볼을 하면서 뛰어놀고 키스를 나눈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필요하지가 않다. 이 세상에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눈밭 위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간다.

<러브 스토리> ‘눈 장난’ 장면

「눈 장난」이 끝나면서 카메라도 소규모 연주회장으로 옮겨간다. 바흐의 「Concerto No. 3 in D Major(Allegro)」가 밝은 톤으로 연주되고 있다. 음악은 현대적인 선율에서 바로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두 연인의 교감과 사랑이 깊어 간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다. 두 연인에게는 아무런 걱정도 없다. 지금은 그저 음악에, 사랑에 취해 있으면 될 뿐이다. 제니는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올리버는 그녀를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다. 바흐의 음악을 통해 두 사람은 교감을 나눈다.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도 들리지만, 올리버 눈에는 제니밖에는 그 무엇도 들어오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남자, 지금 그에게는 제니가 세상의 전부인 것이다.

프란시스 레이는 이렇게 자신이 작곡한 「눈 장난」과 바흐를 연결시키면서 사랑의 감정으로 충만한 순간을 정서적으로 끌어올린다. 연이어 나오는 음악은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그러나 프란시스 레이는 눈 덮인 공원과 연주회장을 극적으로 연결시킨다. 그렇게 두 개의 시퀀스가 이어지면서 두 사람이 만난 시간과 공간들, 깊어져 가는 감정이 정서적으로 짜여지는 것이다. 스크린에 이 두 시퀀스가 펼쳐지는 동안 대사는 한 마디도 없다. 영상과 음악만으로 모든 내용이 전달된다. 제니와 올리버가 모든 면에서 서로를 공유하고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음악은 정서적인 연결고리이다. 음악가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행복을 위해 바치는 음악처럼 느껴질 정도다. 프란시스 레이가 선사한 음악의 세계 속에서, 음악이 주는 도취감 속에서, 관객들도 두 사람의 예쁜 사랑을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뉴욕, 두 사람이 행복하게 뛰어놀 때처럼 눈 덮인 겨울이다. 그러나 철책이 쳐진 황량한 공원을 비추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들려오는 건 피아노 소리뿐이다. 감미롭지만 애잔하게 흐르는 피아노의 리듬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올리버의 내레이션과 함께 회상이 시작된다. “스물다섯 살에 죽은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름답기 때문에 더더욱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프란시스 레이는 피아노 하나만으로도 훌륭하게 전달한다. 그 피아노 소리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오버랩되면서 도서관을 비춘다.

레드클리프 여대생 제니는 도서관에서 사서로 아르바이트 중이다. 그녀 앞에 하버드에 다니는 올리버가 등장한다. 제니는 책을 한 권 빌리려는 올리버를 말끝마다 물고 늘어지면서 비꼬고, 심지어 ‘애송이’(puppy)라고 불러댄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가 맘에 든 제니가 일부러 골리는 것이다. 제니는 올리버에게 커피 한잔 사달라고 청하고,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된다.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태생이 다르다. 제니의 집은 평범한 빵집을 하지만, 올리버의 집안은 하버드에 건물을 기증할 정도로 갑부이다. 여자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음악도이고, 남자는 과격한 하키 선수에 법대생이다. 함께하기에는 조건이 너무나 맞지 않다. 그러나 사랑이란 이런 모든 걸림돌을 넘어서 이루어진다.

올리버의 집안은 그녀와의 결혼에 반대한다. 그러나 올리버와 제니는 집안의 반대를 무시하고 결혼하고,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까지도 거부해버린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렵게 학교를 마친 올리버는 마침내 뉴욕의 일류 로펌에 취직한다. 젊은 시절의 고생은 끝나고 이제 두 사람의 행복한 삶만 남은 것이다. 그러나 그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제니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러브 스토리>는 이처럼 애절한 사랑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굵은 줄기는 신분 차이가 너무 심한 젊은 연인, 진정한 첫사랑, 부모의 반대, 불치의 병으로 이어지는 통속적인 소재들이다. 최루성 멜로 영화답게 관객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나칠 경우 유치해질 수 있다는 약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감상적인 영화에 대해 평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러나 여성 팬들의 손수건을 쥐어짜게 함으로써 대중적으로는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러브 스토리>의 성공 요인이 단순히 눈물만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를 꼽으라면 알리 맥그로우가 연기한 제니의 캐릭터와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1970년이라는 시점에서 볼 때 제니는 무척이나 모던하고 당찬 캐릭터이다. 자기 맘에 드는 올리버에게 먼저 대시하지만 사랑한다는 표현은 좀체 하지 않는다. 자립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며,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올리버에게 현실적으로 나은 재혼을 권한다. 제니가 연약하고 가련한 주인공이었다면 <러브 스토리>가 현대판 신파에서 헤어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뚜렷하게 자기주장을 가진 현대적인 여성상으로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시킬 수 있었기에 더더욱 비련의 히로인이 될 수 있었다.

이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고급스럽게 포장해주는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이다. 그가 작곡한 스코어들은 관객들의 귀에 쏙 들어올 만큼 쉽고, 아름답다. 영화를 위해 만든 스코어들과 더불어 다른 삽입곡으로는 클래식들이 쓰였다. 프란시스 레이가 선곡한 바흐, 모차르트, 헨델의 음악은 슬픈 이야기에 고전적인 비극성을 부여하고 있다. 신파적이고 감상적인 요소들을 정서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음악은 아름답게 흐르면서 슬픈 내용을 감정적으로 배가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결과적으로 주연을 맡았던 알리 맥그로우가 음악가를 고른 선택은 탁월했다. 영화를 찍을 당시 그녀의 남편은 <로즈마리의 아기>의 제작자로 실력을 입증했던 프로듀서 로버트 에반스였다. 에반스는 이후 <대부><차이나타운> 같은 작품에도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지만, 파라마운트 사를 경영하면서 흥행성 높은 영화들의 제작을 총괄하고 있었다. <러브 스토리>의 여주인공을 맡게 된 알리 맥그로우는 <남과 여> <파리의 정사> 등을 통해 이미 미국에 잘 알려져 있던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을 좋아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부탁해서 레이를 초빙했고, 프란시스 레이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낭만 풍의 음악을 유감없이 들려준다. 레이의 음악은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연주될 때도 좋지만, 몇몇 악기만을 이용해서 소품으로 연주될 때도 아름답다. 관객들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넘친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서적인 울림을 주는, 영화 음악가로서 프란시스 레이의 장점이다. 그가 작곡한 멜캷디는 감미롭고도 부드러우며, 무엇보다 관객들의 가슴 속을 파고드는 마력이 있다.

<러브 스토리> OST의 원판 재킷과 라이선스판 재킷. “사랑이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 거야.”는 재킷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명대사였다.

올리버는 아버지의 60살 생일 파티에 참석하는 문제로 인해 처음으로 제니와 다툰다. 올리버가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까지 거부하면서 화를 내자 제니는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정신을 가다듬은 올리버는 그녀를 찾아 동네 세탁소에서부터 대학교 음악 연습실까지 뒤지면서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테마 음악은 여기서 변주되어 연주된다. 「Search for Jenny」라는 부제를 달고 독립적인 인상을 전달한다. 레이의 음악은 이렇게 평소와는 다른, 감정의 미세한 변화까지 포착하려 든다. 이 테마음악은 제니를 애타게 찾는 올리버의 걱정과 감정적으로 겹친다. 멜로디는 때로는 긴박하게, 때로는 불안정하게 흐른다. <러브 스토리>의 테마 음악은 이렇게 극 전반에 쓰이면서 디테일에 변화를 주고, 감정을 이어주며, 두 사람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추운 밤거리를 달리면서 제니를 찾던 올리버는 집으로 돌아온다. 제니는 얼어붙은 겨울 공기를 마시며 계단에 쓸쓸하게 앉아있다. 열쇠 챙기는 것을 잊어버려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올리버는 괜시리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제니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 대답한다. “사랑이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올리버는 제니를 살리려고 노력하지만, 그녀는 백혈병으로 죽고 만다. 고통을 참으면서 침대 위에서 영원히 잠든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병원으로 찾아온다. 항상 명령만 내리고 무뚝뚝하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올리버에게 사과를 한다. 올리버는 울먹거리면서 말한다. “사랑이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제니가 죽고 난 후에야 부자는 겨우 서로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올리버는 눈이 녹으면서 지저분해진 거리를 걸어간다. 영화가 시작될 때와 마찬가지로 올리버가 공원으로 접어들 때 피아노 선율로 테마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러브 스토리>는 같은 주제 음악으로 시작되고 끝을 맺음으로써 수미일관을 이룬다. 아름답고 슬픈 선율이 올리버의 가슴처럼 황량한 겨울 풍경을 비춘다.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으로 인해 <러브 스토리>는 더 슬픈 사랑의 연가가 된다.


[Tip 1] 에릭 시걸은 파라마운트에 시나리오를 팔았다. 영화를 촬영하던 중 영화사에서는 그에게 역제안을 했다. 시나리오를 다시 소설로 출판하자는 것이었다. 영화사의 홍보 전략과 맞물려 소설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영화는 빅 히트로 이어졌다. <러브 스토리>는 또한 <하버드 천재들> <닥터스> 등 에릭 시걸의 하버드 시리즈의 제1탄이기도 하다.

[Tip 2] 영화를 본 사람치고 이 대사를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이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야.”(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이 대사는 AFI(미국영화연구소) 선정 ‘최고의 명대사’ 13위에 올랐다.

[Tip 3] 영화가 성공을 거둔 후 스탠더드 팝의 제왕이랄 수 있는 앤디 윌리엄스는 메인 테마에 가사를 붙여 불렀다. 제목은 「(Where Do I Begin?) Love Story릡였다. 빌보드 팝 차트 4위까지 올랐으며, 많은 가수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Tip 4] 인간미 넘치는 배우 토미 리 존스는 <러브 스토리>로 영화에 데뷔했다. 그는 실제로 1969년에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 풋볼 팀에서 맹활약했던 전력도 갖고 있다. 올리버가 기숙사에 돌아왔을 때 담배를 꼬나물고 카드를 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Tip 5] 영화에서 제니는 올리버에게 파리로 유학 가서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에게 배울 거라고 말한다. 나디아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여성 작곡가이다. 그는 전문적인 음악가들에게 더욱 수준 높은 음악 수업을 제공한 뛰어난 음악 선생이기도 했다. 제니가 유학을 가겠다는 시점에도 여러 제자들을 두고 있었다. 1887년생인 나디아 불랑제는 1979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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