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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멍텅구리가 아니다

팔리 모왓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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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미래-사슴 부족 이누이트들과 함께한 나날들』(장석봉 옮김, 달팽이출판, 2009)은 캐나다 작가 팔리 모왓(Farley Mowat, 1921- )의 첫 작품이다.

『잊혀진 미래-사슴 부족 이누이트들과 함께한 나날들』(장석봉 옮김, 달팽이출판, 2009)은 캐나다 작가 팔리 모왓(Farley Mowat, 1921- )의 첫 작품이다. 우리말로 옮겨진 그의 책으로는 다섯 번째다. 모왓의 산 경험이 토대가 된 이 책은 사라져간 사슴 부족에게 바친 송가(頌歌)다.(‘에스키모’는 인디언들이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이누이트’는 그 사람들이 자기 부족을 스스로 일컫는 명칭으로 ‘인간’이라는 의미다.)

20세기 전반기, 이할미우트 부족의 인구는 급감한다. “1886년 캐나다 북부에 사는 이할미우트 부족의 수는 7,000명이었다. 1946년 스물다섯 살 난 팔리 모왓이 북극 지방에 2년간 머물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수는 고작 40명으로 줄어 있었다.”(뒤표지에서)

이할미우트 부족을 멸족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총’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백인들에 의해 학살당한 것은 아니다. 총은 문명의 상징물이다. 원시와 문명의 경계에 설치된 교역소를 통해 그들은 문명의 달콤함을 맛본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힘겨운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버리게 된다. 하지만 모피 값이 하락하자 백인들은 교역소에서 철수한다.

하여 아무리 훌륭한 사냥꾼도 “황동으로 된 긴 탄약통에 화약이 없어 그의 오래된 총을 발사해도 사냥감을 쓰러트릴 수 없”게 된다. 총이 없던 시절의 사냥 방법으로 되돌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나 “이할미우트 부족 사내들은 활이 필요 없어진 긴 세월동안 뿔로 빈틈없는 활 만드는 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반면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엄혹한 환경에서의 생존법이기도 했다. “눈보라는 단지 하루 동안 불었지만, 스텔라가 캠프로 돌아오는 데는 보름이 걸렸다. 이 소녀가 거의 아무 음식도 없고 침구도 없이 2주 이상을 지내며 툰드라의 한겨울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그 아이들이 이 땅의 한 부분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진정한 척도다.”

한편으로, 아니 거의 전적으로 모왓은 유머러스하다. 다소 심각한 『잊혀진 미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모왓의 익살은 좀 고답적이랄지. 비유하자면 며칠 전 처음 본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이순재 선생, 김자옥 여사, 정보석 씨의 (내게) 친숙한 연기에 가깝다. 이 시트콤에 나오는 젊은 연기자들의 ‘연기 문법’은 내게 낯설고 어색하다.

독자의 눈높이를 약간 높여 주면 청소년 소설로도 볼 수 있는 논픽션 『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곽영미 옮김?임연기 그림, 북하우스, 2005)는 곳곳에 ‘웃음 지뢰’가 있다. 하지만 독자는 웃음 지뢰의 뇌관을 밟아야 비로소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아버지의 수고는 보람이 있었다”는 역설적 표현이 그러한데 이런 문장들이 덧붙는다.

“서쪽으로 나아갈수록 우리의 ‘바퀴 달린 배’-선원들은 이렇게 불렀다-가 거의 뒤집어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옆이 평평하고 거대한 트레일러는 바람만 불면 바람의 먹이가 되었다. (중략) 가장 나쁜 것은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그때는 뒤따르는 커다란 배가 작은 차를 깔아뭉개려 하거나, 아니면 어머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의 속도로 어들리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작은 차’는 ‘어들리’를 말한다. 트레일러 위에 올려놓은 살림 시설을 갖춘 “배의 뼈대가 굵고 덩치가 커서, 초라한 어들리-지붕을 접을 수 있는 포드 A형 자동차-가 기중기에 끌려가는 예인선처럼 작아 보였다.” 밋밋한 유머를 또 하나 들자면 이렇다. “머트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아버지와 내가 그것을 떠벌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1929년 8월의 어느 날, 모왓의 어머니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소년한테서 단돈 4센트에 “종자를 알 수 없는 지저분한 강아지”를 넘겨받은 것은, 모왓네 가족이 온타리오에서 서스캐처원의 대초원 지대로 온 지 채 한 달이 되기 전의 일이었다. 어머니의 선심은 아버지가 앞서 데리고 왔던 2백 달러를 호가하는 사냥개 아이리시세터의 대항마적인 성격이 있었다.

엉겁결에 “머트(mutt. 잡종 개, 똥개-옮긴이)”라고 불리게 된 그 강아지는 한동안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다가 숨은 본능을 되찾아 뛰어난 새 사냥개로 거듭난다. 새 사냥개로서 혁혁한 전과를 올려 ‘머트의 청둥오리 못’으로 알려진 늪은 공교롭게도 머트가 첫 사냥에서 죽을 쑨 곳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세월이 흘러 노쇠해진 머트는 주인과 함께 새봄맞이 산책길을 나선다. 그런데 그만 난폭운전자의 트럭에 치이고 만다. 이와 동시에 소년 팔리 모왓의 가장 즐거운 나날도 막을 내린다. “머트와 나 사이의 영원의 약속은 끝이 났다. 머트를 잃은 나는 몇 년을 어둠의 터널 속에서 지내야 했다.”

『걸어다니는 부엉이들』(곽영미 옮김?임연기 그림, 북하우스, 2005)과 『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는 같은 날 한국어판이 나왔다. 두 권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두 권은 뒤표지날개를 통해 상대방을 알린다. 『걸어다니는 부엉이들』의 내용은 『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 뒤표지날개에 있는 소개 글로 대신한다.

“팔리 모왓이 들려주는 또 한 조각의 추억 속에는 걸어다니는 부엉이 월과 윕스가 있다. 심한 폭풍에 엄마와 형제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겁없는 새끼 부엉이 월과, 기름범벅이 된 채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극단의 공포를 경험한 윕스. 두 부엉이는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그래서 더 멋진 환상의 콤비가 되어 모왓 가족에게 기쁨을 준다.”

모왓의 책 가운데 맨 먼저 우리말로 옮겨진 『울지 않는 늑대』(이한중 옮김, 돌베개, 2003)는 “어느 해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그가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또한 “삶을 이해하는 데 유머가 차지하는 역할이 지극히 중대하다는” 모왓의 소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기도 하다.

“내 ‘본연의’ 임무는 보다 공적인 특성을 띤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몇 달 동안 실제로 나는 부빙(浮氷)을 타고 북극점 주의를 떠다니며 마찬가지로 부빙에 떠다니는 러시아인들을 정찰했다는 것이었다. 내게 있던 곡물 알코올 두 깡통은 보드카로 알려졌다.”

모왓은 캐나다 자치령 야생생물보호국 소속으로 늑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탐사대원이지만, 이런 식의 오해는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그가 지닌 물품에 대한 허드슨 만 연안의 처칠 시 주민들의 넘겨짚기는 말이다. 프랑스 혁명 2주년 기념행사장에서 여인들의 치마 속을 훔쳐보려고 높은 관람석 아래쪽에 숨어든 두 얼간이의 요깃거리 등속은 성난 군중에 의해 테러 장비로 둔갑한다.

“이 소문이 급속하게 사람들의 입을 타고 퍼지자 음식을 넣어 두었던 바구니는 화약통이 되었다. 또 와인을 담았던 병은 기름이거나 가연성 액체로 탈바꿈해 두 사내가 행사 건물에 불을 지르려 했다는 이야기로 번져나갔다.”(『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추한 것-바라보기』, 11쪽)

무엇보다 『울지 않는 늑대』는 뛰어나고 흥미로운 야생동물 탐사보고서다. 하지만 “불행히도 늑대는 다른 종에게 위협을 주지 않으며, 인간에게 위험하지 않을뿐더러 경쟁자가 되지도 않는다는 나의 주된 주장은 대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1993년 판 「작가의 말」) 팔리 모왓이 관찰한 ‘조지’ 일가의 습성, 그 중에서도 ‘조지’와 ‘앤젤린’의 부부애는 인간보다 낫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혼인 서약 구절이 인간들에게는 한낱 조롱거리일 뿐이지만, 늑대에게는 하나의 단순한 사실이다. 늑대는 엄격한 일부일처주의자이다. 비록 내가 이것을 반드시 탄복할 만한 특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사실은 우리가 늑대에게 부여한 무절제한 난잡함이라는 평판이 꽤 위선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모왓이 위계질서가 뚜렷한 야생생물보호국 상관의 눈 밖에 나 북위 66도에서 북위 60도 언저리 사이의 아북극(亞北極) 불모지대에 특파된 것은 그곳의 늑대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의 주된 임무는 늑대들이 순록 무리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거였다.

그런데 캐나다 누나부트 준주 키웨이틴 지역에 서식하는 늑대의 주식(主食)은 순록이 아니었다. 키웨이틴의 늑대들은 쥐를 주로 먹는다. 그곳의 늑대는 물고기도 먹었다. 순록은 늑대가 이따금 맛보는 별식이었다. 외려 늑대와 순록은 공생관계에 있다. 모왓은 이누이트인 우텍의 말을 빌려 이를 강조한다.

“순록이 늑대를 먹여 살려. 하지만 순록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건 늑대야. 늑대가 없다면 순록도 금방 없어져버릴 건 뻔한 사실이야. 나약함이 퍼져서 모두 죽을 테니까.” 그러면 캐나다의 순록을 1930년 약 400만 마리에서 1963년 17만 마리 아래로 떨어뜨린 주범은? “늑대는 절대 재미로 죽이지 않는다. 아마 늑대와 사람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일 것이다.”

『안 뜨려는 배』(이한중 옮김, 양철북, 2009)는 뉴펀들랜드의 작은 어촌 머디홀에서 큰 항구가 있는 대도시 몬트리올까지 “2,253킬로미터의 사투”를 담은, 때로는 짠한 사연이 우리를 숙연하게 하지만, 요절복통 항해기다. 동료 선원 여럿이 해피어드벤처 호를 거쳐 가나, 팔리 모왓은 줄곧 그 배를 지킨다.

‘대항해’용 배를 마련하는 것부터 쉽진 않았다. 모왓은 어렵사리 모왓 일행의 지불능력에 맞는 배를 찾는다. 덥석 구입하긴 했어도 그 배는 손볼 데가 아주 많았다. 결국 배를 만든 이에게 개보수를 맡긴다. 4년 전 그 배를 만든 장본인과의 첫 만남에서 모왓은 이 배의 선주들이 그에게 바가지를 씌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건넨 뱃값을 말해 주자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다가 럼주를 딱 절반 비우고서야 겨우 진정했다. 겨우 숨을 다시 쉬면서 그가 소리쳤다. ‘이런 도적넘들! 나는 그 도적넘들한테 200달러에 맹글어 줬는데!’ 그 소리에 나는 술을 뺏어 들고 나머지 반을 깨끗이 비워 버렸다.”

캐나다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한반도 절반 크기의 뉴펀들랜드 섬은 남미 최남단의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을 떠올린다. 섬의 면적과 항구 숫자는 크게 차이나지만. “나른하고 정다운 풍경이었다. 그것은 수세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 큰 섬의 들쭉날쭉한 해안에 아직도 붙어 있는 1,300개에 이르는 항구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39쪽)

후한 인심 또한 다를 게 없다. “선장 아저씨, 저 땜에 아침 시간 베려 뻐렸으면 어쩌지요?”(58쪽) “머디홀의 어민들은 하나같이 인정 많고 넉넉했다.”(94쪽) “뉴펀들랜드 어민들의 친절함은 겪어 보지 않으면 그 진가를 알 수 없다.”(128쪽) “뷰린인렛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온 차가운 세상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들이었다.”(155쪽)

다만, 모왓이 뉴펀들랜드에서 겪은 친절 사례 네 가지 중 하나는 그의 첫 번째 동료에게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요절복통 항해기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으리라! 하여 나는 그럴듯한 평가를 발견하면 굳이 이를 변조하거나 각색하는 수고를 아끼는 나의 오랜 관행에 따라 한국어판 뒤표지에 인용된 어느 외국 언론사의 시각을 그대로 옮긴다.

“정말 대단한 유머다. 너무 웃기고 때로는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에 대한 찬가다. 더 멀쩡하고 둔한 사람들은 분명코 팔리(Farley)를 멍텅구리(Folly)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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