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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

도전과 응전만이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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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 분과에서 가장 유명하면서 논쟁점이 많은 책이 『역사의 연구』입니다. 아놀드 토인비의 대표작인 『역사의 연구』는 사실 매우 일상적인 관용어로 알려진 문구 하나만으로도 대중에게 익숙한 책이지만,

동굴에 숨어 비를 피하고, 자생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던 한 생물군이 지구 대부분을 덮을 정도로 번성했다는 건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과정을 정리하고 연구한 것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릅니다.



 

이 역사를 연구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역사철학이라는 분과입니다. 역사는 어떻게 발전했는가, 또는 인류가 걸어온 길은 어떤 면에서 장단점을 갖는가. 같은 사안을 놓고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 이해인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합니다.

역사철학 분과에서 가장 유명하면서 논쟁점이 많은 책이 『역사의 연구』입니다. 아놀드 토인비의 대표작인 『역사의 연구』는 사실 매우 일상적인 관용어로 알려진 문구 하나만으로도 대중에게 익숙한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논지 전개와 핵심이 그리 널리 알려진 책이라고 보기엔 또 무리가 있습니다.

“도전에 대한 응전”

토인비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바로 이 문구입니다. 『역사의 연구』에서 핵심으로 작용하는 요소는 바로 도전과 응전의 원리입니다. 역사의 발전은 주체에 대한 도전이 들어올 때, 주체가 그에 대한 응전response을 보임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익숙하게 알려진 예시가 바로 나일 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과 황하 유역의 중국 문명입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이야기하는 고대 4대 문명의 발흥은 인더스 강의 인더스 문명,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 강의 이집트 문명, 황하의 황하 문명입니다. 네 가지의 고대 문명을 들면서 교과서는 담수를 구하기 용이하고 취락 조건이 형성된, 이른바 ‘환경 요건’ 이 풍부한 지역적 요소가 문명의 발흥 이유라고 이야기합니다.

토인비의 ‘도전-응전’은 이 주장과 정면으로 상충합니다. 애초에 나일 강과 황하가 그리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지역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장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양자강과 황하 중 인간이 살기 좋은 쪽은 오히려 양자강 유역입니다. 황하는 그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다시피 잦은 홍수와 범람으로 한해 농사를 망치기가 일쑤였습니다. 나일 강도 마찬가지여서, 비록 범람 후의 나일 강이 농사에 유리한 구조라고는 하지만 범람하는 지역 자체가 인간의 거주지로 유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어려움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문명이라고 토인비는 이야기합니다. 이집트의 천문학과 수학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천문을 통해 범람의 주기를 읽고 범람 이후의 토지 구획을 위한 측량술 개발이 절실했기 때문이었고, 황하의 흙탕물이 음용수로 부적합했기 때문에 중국은 차 문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전과 응전’입니다. 인류가 모여 사는 사회는 그 사회 자체만으로는 정적이며,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변화와 발전이 발생하는 지점은 현재 머무르는 사회가 새로운 요소로 인해 그 안위를 ‘도전’ 받는 순간입니다. 집단의 삶이 위기에 처했을 때, 집단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게 되며, 이것이 바로 ‘응전’ 입니다. 위협적인 조건에 맞서기 위한 이 응전은 집단의 생활 방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며, 이러한 변화가 발전을 이끌어 이른바 문명의 진보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연구』는 바로 이 도전과 응전의 협주를 중심으로 해서 지구 상에 존재했던 26개의 개별 문명을 살펴봅니다. 각기 다른 지역과 시간대에서 발흥하고 패망했던 문명들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무언가를 저자는 찾아내기 위한 시도를 벌이고, 그 과정에서 도전과 응전이라는 개념을 도출해 낸 것입니다.

이는 『역사의 연구』가 나오기 전까지의 시대가 품고 있던 사고와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급격한 발전으로 전 지구를 아우르게 된 유럽 중심의 서구 문명이 지배하는 학계에서 역사란 곧 서구 문명의 발전사였습니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세계로 팽창해 이면서 가졌던 생각의 흐름도 결국 서구 중심의 발전된 산업사회의 전파가 전 인류의 문명화와 역사의 발전을 이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연구』는 그 단일 선상에서의 역사 발전 가정에 대한 의문을 품습니다. 서구 문명의 발전이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토인비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역사는 문명의 패망이 포함되는 역사입니다.

『역사의 연구』에서 토인비는 고대 로마, 그리스와 같은 문명들의 패망을 살펴보면서 순환론적 역사관을 주창합니다. 모든 문명은 그 시작이 있듯 최종적인 패망의 단계가 존재하며, 그 패망 이후에 새로운 문명이 다시 시작을 알린다는 것입니다.

아놀드 조셉 토인비
(A. J. Toynbee, 1889~1975)
앞서 언급된 도전과 응전 개념과 순환론적 역사관은 하나의 문명을 이루는 알파이자 오메가가 됩니다. 새 문명은 문명이 처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선지자들의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 문명은 문명이 처한 위협이 마무리되면서부터 나태한 평화의 시기를 맞이하며, 종국에는 그러한 정체로 인해 주저앉고 맙니다.

저자의 순환론적 역사관을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사용한 ‘미메시스’라는 개념 또한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미학에서 거론되는 미메시스가 현실에 대한 예술에서의 모사, 모방의 개념이었다면, 토인비 역사학에서의 미메시스는 문명의 발전과정에서 거론되는 모방입니다.

문명을 이끄는 소수의 지배자들이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만들어 낸 성과, 다시 말해 기술, 철학과 같이 집단의 삶을 구성하는 양식들은 곧 집단 전체 구성원에게 확산됩니다. 지배자들이 앞서 보여준 성과를 구성원들은 배움으로써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재산, 편리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이에 곧 성공한 응전의 양식은 사회 전체의 양식이 됩니다.

토인비는 이러한 지배자?피지배자로의 미메시스가 곧 문명의 창시에서 정착까지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라고 설명합니다. 응전으로 창시된 문명은 미메시스를 통해 전체 집단의 질서가 되며, 더 이상의 도전이 없을 경우 패망한다는 순환론의 완결입니다.

서구 문명의 보편화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문명들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기존까지 문명사를 좌우했던 시각들ㅡ지리 환경적 요인, 우생학적 인종론ㅡ등은 오히려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토인비의 이야기는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론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토인비의 주장은 그러나 지금까지도 매우 많은 비판과 논란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도전과 응전’ 개념입니다.

토인비가 들어 설명한 도전과 응전은 사실 어떤 면에서는 도그마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모든 환경적 어려움이 도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 즉 적당한 수준의 어려움이 도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상식적으로도 남극 한가운데 거주하는 집단이 그 추위와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는 건 불가능하고, 이런 것은 도전의 요소는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그 애매함이 개념을 도그마로 밀어 넣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과연 응전을 일으킬 수 있는 적당한 도전이란 무엇일까요? 시간이 지난 후의 사후 평가에선 그렇다 쳐도 당장 동시대에서 이것이 과연 응전을 부르는 도전인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성공한 문명이 겪었던 난점은 훌륭한 도전이 되고, 그렇지 못한 문명이 받은 어려움은 도전이 아니라는 제멋대로의 해석이 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종교 부분입니다. 재미있게도 토인비의 연구는 개신교 계통에서 꽤 칭송을 듣고 있는데, 이는 바로 토인비가 문명의 패망을 막기 위한 요소로서 고등 종교를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이 초반의 지배자들을 미메시스하는 이유는 그들의 방식이 성공적임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미메시스의 확산이 문명을 만듭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이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 미메시스는 철회되며, 이로부터 문명의 붕괴가 시작됩니다. 토인비는 이러한 현상을 막는 방식으로 종교적인 이유를 꺼내 듭니다. 단적으로 드는 예가 로마 제국의 흥망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위치입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부합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기독교가 국교로 선포된 이후 로마는 도전?응전의 개념이 아닌 논지 전개가 불가능한 절대개념?신을 사용한 통합을 이룩합니다. (그 통합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통합이 이론적으로 문명과 종교가 분리되는 현상 (로마는 망했지만 로마 국교는 현재 놀라운 번성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등에 대해서는 해석이 부족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선택한 사례들이 절대적인 사례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장 급격한 발전을 통해 세계 문명의 표준이 된 서구 문명의 발흥기는 사실상 산업혁명과 르네상스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과연 이러한 변화가 어떤 도전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전란에 시달렸던 유럽과 세계대전을 통해 별 도전 없이 큰 혜택만 받아온 미국이 오늘날 가지고 있는 영향력의 차이만 생각해봐도 도전?응전의 이야기가 과연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개념인지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역사의 연구』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매력적인 개념을 사용해 많은 이들의 입에 회자되기도 하고, 특히 그 선지자와 같은 문명 초반의 지배자들 역할이 강조된 덕분에 비전과 미션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나 개신교 계열 서적에 자주 인용되는 도서입니다. 하지만 역사철학서 자체만의 문제로 본다면 아직도 논쟁 중인 지점이 많은 책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책 구절의 한 부분을 외워 써먹는 수준의 독서보다는 저자가 제시하는 논점들에 대한 성찰과 토론에 더 큰 무게가 실려 있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어울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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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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