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고르(Andre Gorz, 1923-2007)의 『D에게 보낸 편지』(임희근 옮김, 학고재, 2007)는 그의 아내 도린 케어(Doreen Keir, 1924-2007)에게 바치는 응어리 같은 변명이랄 수 있다.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한 사람의 84년간의 결곡한 삶의 궤적이 이 한 권의 ‘편지’에 고스란히 담겼다. 일생 철학자로, 생태주의자로, 또 언론인으로 수많은 논저와 기사에서 남긴 많은 글에 미처 담지 못했던 것이, 아니 단 몇 줄을 ‘잘못’ 썼던 것이 못내 마음에 남아, 그 모든 글보다도 훨씬 소중했던 아내에게 남긴 글이다.”(「옮긴이의 말」)
(『D에게 보낸 편지』는 전체 분량이 100쪽에 약간 못 미친다. 그런데도 옮긴이의 「텅 빈 세상에서, 떠난 이의 글을 옮기다」와 강수돌 교수의 해설 「도린과 앙드레의 사랑과 삶」을 따로 묶었다. 한국어판 곁 텍스트를 별책부록 형태로 편집한 것은 꽤 괜찮아 보인다.)
『D에게 보낸 편지』는 연서다. “E에게 편지를 썼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본질적인 단 하나의 일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썼지요. 당신이 본질이니 그 본질이 없으면 나머지는, 당신이 있기에 중요해 보였던 것들마저도, 모두 의미와 중요성을 잃어버립니다. 최근 쓴 책의 헌사에서 당신에게 그 말을 했지요.”
앙드레 고르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삼스레 다짐한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내 앞에 있는 당신에게 온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걸 당신이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내게 당신의 삶 전부와 당신의 전부를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동안 나도 당신에게 내 전부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아내한테 잠시잠깐이나마 건방졌던 지난날에 대한 남편의 뼈저린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발단은 1958년 펴낸 그의 첫 저서인 『배반자(Le Traitre)』에 살짝 내비친 아내와 관련된 식언이다.
“도합 열한 줄로 된 재를 난 스무 쪽에 걸쳐 세 번 뿌려댔던 겁니다. 하찮은 세 번의 붓놀림으로 당신을 깎아내리고, 당신의 모습을 왜곡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겪은 일을 7년 후에 쓰면서 말입니다. 그 세 번의 붓놀림이 우리 삶에서 7년의 의미를 앗아갔습니다.”
하면 어째서 앙드레 고르는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까? 우선 치기가 발동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프티부르주아의 감정으로 치부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가 말하는 첫 번째 동기는 난해하다. “내가 겪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초월하여 그것을 이론화하고 이성적으로 체계화하여 투명하고 순수한 정신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적 요구였습니다.”
앙드레 고르는 “그저 원칙상의 희생이 아니라 지극히 실제적이었던 당신의 희생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며 반성한다. 그리고 『배반자』가 출간되고 나서야 당신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당신은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게 돕느라고 당신의 모든 것을 준 사람입니다.”
도린 케어와 앙드레 고르 부부는 매우 이상적인 한 쌍이다. “우리는 가치관이 똑같았습니다.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무엇인지, 삶에서 의미를 앗아가는 것은 무엇인지, 이런 것의 개념이 같았던 것이지요.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늘 ‘호사스러운’ 생활 방식과 낭비를 싫어했습니다. 당신은 유행을 거부하고 당신 나름의 기준에 따라 유행을 판단했지요.”
남편이 아내의 스승 역할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긴 하지만 아내가 남편의 스승이 되는 것도 그에 못잖게 바람직한 일이다. 앙드레 고르는 자신의 못남과 도린의 현명함을 대비하여 거듭 강조하곤 한다.
“그날 나는 당신이 나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현실을 읽는 내 틀에 들어맞지 않아 내가 미처 못 알아채는 실상을 당신은 파악하곤 했습니다. 나는 더 겸손해졌지요. 내 기사나 원고를 제출하기 전에 당신에게 먼저 읽어봐달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왜 당신은 항상 옳은 거지!’라고 투덜대면서도 당신의 비판을 참고하곤 했지요.”
“나는 내 인생을 직접 산 게 아니라 멀리서 관찰해온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한쪽 면만 발달시켰고 인간으로서 무척 빈곤한 존재인 것 같았지요. 당신은 늘 나보다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차원에서 활짝 피어난 사람입니다. 언제나 삶을 정면돌파했지요. 반면에 나는 우리 진짜 인생이 시작되려면 멀었다는 듯 언제나 다음 일로 넘어가기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D에게 보낸 편지』는 유서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중략)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책에는 표지사진을 포함한 도린과 앙드레 부부의 사진이 세 장 실려 있다. 셋 다 비껴 찍은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청춘남녀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런 사랑을 60년 동안 초지일관한 노부부의 모습은 너무도 다정스럽다. 정겹다.
작고한 문순홍 선생의 『생태위기와 녹색의 대안』(나라사랑, 1992)에서 앙드레 고르는 생태사회주의자로 분류된다. 앙드레 고르는 “경제적 합리성을 대체해 줄 합리성은 생태적 합리성이며, 이것은 경제적 합리성의 원칙인 ‘보다 많이, 보다 나은’과는 반대로 ‘보다 적게, 보다 나은’의 형태를 띠게 된다고 주장한다.”
앙드레 고르의 타계 후 원서가 출간된
『에콜로지카』(임희근?정혜용 옮김, 생각의나무, 2008)는 앞뒤로 인터뷰 두 꼭지와 각주가 붙은 에세이 다섯 편으로 이뤄져 있다. 머리말을 대신하는 인터뷰 「정치적 생태학: 해방의 윤리」에서 그는 크게 영향 받은 중요한 만남으로 아내, 그리고 사르트르와의 만남을 꼽는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나를 받아들이는 데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또 사르트르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사고의 도구를 찾지 못해, 내 가족과 역사에 의해 형성된 나를 뛰어넘지 못했을 겁니다.”
「자본주의의 퇴조는 이미 시작되었다」에서 앙드레 고르는 경제적 합리성의 원칙과 확실히 결별하는 동시에 생태적 합리성을 지향하는 삶의 모델을 재설정하기 위한 기본 전제를 제시한다. 그건 다름 아닌 “정작 소비하는 것은 전혀 생산하지 않고 정작 생산하는 것은 전혀 소비하지 않는 문명과의 결별”이다.
「자동차의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않는 한 전기자동차의 실용화와 자전거도로의 확충은 공염불에 그치리라. “자동차가 널리 확산될수록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정유업계의 거물들이었다.” 석유가 고갈되기 전까지 전기자동차는 개발만 거듭할 게 거의 확실하다.
“자동차를 없애고 그 대신 자전거, 전차, 버스, 운전사 없는 택시를 타는 것은 더 이상 로스앤젤레스, 디트로이트, 휴스턴, 트라프, 브뤼셀 같이 자동차를 위해, 자동차에 의해 설계된 고속도로 상의 도시에서는 적용할 수조차 없는 방법이다.” 이 나라의 대도시, 특히 새로 조성된 신도시의 교통 여건은 뭐가 다르랴! 첨언하면, 걷는 길을 도외시한 자전거도로 확충은 기만적인 정책일 따름이다.
마무리 인터뷰 「가치 없는 부, 부 없는 가치」에서 앙드레 고르가 지적하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생산하기, 더 많이 생산하기”가 아니다. “문제는 생산한 것을 지불능력이 있는 구매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노동을 점점 더 적게 투입하여 이루어지며, 점점 더 적은 지불수단을 불규칙적으로, 불공평하게 공급하는 생산의 유통이 문제입니다.”
또한 앙드레 고르는 ‘노동’과 ‘자본’은 한통속임을 직시한다. “‘노동력 상품’, 즉 노동자와 그들의 조직이, 무슨 대가를 치르든지 현재의 상황에서 고용을 옹호하고 고용을 옹호하기 위해 당장의 경제성장과 투자 수익률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과 투쟁하는 한, 이러한 파괴와 약탈의 공동책임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에콜로지카』 뒤표지 날개에선 앙드레 고르의 대표작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의 출간을 예고하는데, 다음은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근간 안내문의 일부다. “이 책에서 앙드레 고르는 노동계급이 혁명의 주체임을 부정하며, 대신 비노동자, 노동시장 분화에 의해 주변화된 자, 노동할 수 없는 자, 자동화로 인해 직장을 잃은 자, 즉 비계급을 혁명의 주체로 내세워 임금노동을 거부하고 자활노동을 창조할 것을 주장한다.” 잉, ‘나’가 혁명의 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