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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혁명을 선도한 힙합 수작 - 에릭 비 앤 라킴(Eric B And Rakim) (1987)

라임(각운)을 매끄럽게 이어 나가는 것은 랩 뮤지션들에게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이자 자존심이기도 해요. 이 라임 연출에 있어서 혁명적인 인물이 된 이가 바로 라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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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음악이 공식적으로 대중 앞에 선보인 지 올해로 30년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젊은이와 소통하고 있는 이 장르에는 플로우, 메시지, 라임 등을 특별한 구성 요소로 두는데요, 특히 라임(각운)을 매끄럽게 이어 나가는 것은 랩 뮤지션들에게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이자 자존심이기도 해요. 이 라임 연출에 있어서 혁명적인 인물이 된 이가 바로 라킴입니다. 그는 얼마 전에 출시된 드렁큰 타이거의 신보 <Feel gHood Muzik: The 8th Wonder> 중 「Monster (English Ver.)」에 참여해 한국 힙합 팬들을 열광시키기도 했어요. 그가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명반 <Paid In Full>로 힙합 역사의 결정적 순간을 접해보세요.

에릭 비 앤 라킴(Eric B And Rakim) <Paid In Full>(1987)

힙합이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한 지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굵직한 사건들이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작성해 나갔고, 불세출의 랩 슈퍼스타들을 탄생시키며 크고 작은 부침을 겪기도 하였다. 대중적 성공을 획득한 음악 장르는 필연적으로 세분화된 하위 장르를 생성하며 가지를 뻗어나간다. 다양한 장르만큼이나 독특한 개성을 겸비하며 작금의 랩 게임 판도를 휘어잡은 래퍼들의 원류를 더듬기 위해서는 198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미 동부지역을 기반으로 점진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가던 래퍼 라킴(Rakim)과 DJ였던 에릭 비(Eric B)는 자기 스스로도 1987년 발표한 데뷔 앨범 <Paid In Full>이 이처럼 힙합 음악사에 거대한 획을 그으리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 런 디엠씨(Run DMC)와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등이 몰고 온 힙합 열풍이 전국적인 범위로 확산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었으나, 이들 콤비가 대중에게 내놓은 앙상블은 유별난 미적 감각을 불러일으킨 존재, 그 이상의 의미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의 진보가 특정한 결정적 순간에 의해 촉발된다면, 힙합의 라임 혁명은 약관에도 못 미치는 19세 소년 라킴의 손을 통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라킴 이전의 힙합 라임은 이렇다 할 방법론 내지 스타일의 견고함이 치밀하게 구축되지 않았을뿐더러, 단어 배열의 묘미 역시 미성숙한 수준에 그치고 있었다. 라임의 강박관념에 지나치게 침윤된 나머지, 라임을 완성하는 단어가 동시에 내재하고 있어야 할 메시지의 유효성까지 침해하는 우매의 늪도 라킴은 슬기롭게 피해간다. 오히려 물 흐르듯이 전개되는 랩의 유동은 그의 가사에 의해 확연하게 증명된다.

Knowledge will begin until I finish this song
(내가 이 노래를 마칠 때까지 지식은 생성될 거야)
Cuz the rhyme gets rougher as the rhyme goes on
(내 라임은 내뱉으면 점점 더 거칠어지기 때문이지)
You sweat as you step about to get hype
(너는 최면에 빠지면서 땀을 흘리고 있거나)
Or should you just listen to the man on the mic
(마이크를 쥐고 있는 내 랩을 그냥 들어야만 하겠지)
- 「As the rhyme goes on 중」


운율에는 두운(頭韻), 중간 운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요운(腰韻), 각운(脚韻)으로 크게 구분될 수 있지만, 초기 힙합의 곡들은 대부분 악절의 끝 부분에 라임을 맞추는 각운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라킴은 요운(Internal Rhyme)의 개념을 그의 가사에 접목시킨 사실상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라임이 등장하는 간격을 단축시키면서 청취자의 주의를 최대한으로 끌어당기는 기교는 분명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Standing by the speaker, suddenly I had this
Fever, was it me or either summer madness
My mind starts to activate, rhymes collaborate
Cuz when i heard the beat, I just had to make
- 「Move the crowd 중」


20여 년 전이나 21세기에 당도한 지금이나 랩 검투가 펼쳐지는 아레나에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우월감을 과시하는 가사는 결코 빠질 수 없는 묘미이자 필살의 일격이다. 역시 라킴도 남들보다 한 차원 진보하는 가사의 표현 능력을 굳이 감추지 않고 아우라가 되어 번져 나오는 당당함으로 일갈한다. 「Ain`t no joke」나 「As rhyme goes on」 등의 주요 트랙을 듣고 있자면 마치 나 자신이 지하 깊숙하게 자리 잡은 클럽 스테이지 위에서 펼쳐지는 일대일 프리스타일 배틀을 지켜보는 듯 착각에 빠지게 된다. 에미넴(Eminem) 주연의 영화 <8 Mile>처럼 말이다.

주목할 점은 랩 가사의 창작 능력뿐만 아니라 곡의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는 래핑 스타일 또한 당대의 올드 스쿨 힙합을 주름잡던 박력 있는 포효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윽박지름이 아니더라도 청취자의 폐부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악센트가 라킴의 플로우에는 존재했다. 부드러움의 미학 속에 숨어 있는 묵직한 위력은 촌철살인을 몸소 증명해 준 살아 꿈틀대는 가사에 연유한 바가 크다. 즉 라킴의 입을 거쳐 발화된 랩은 라임, 메시지, 플로우의 삼박자가 황금 비율을 이루면서 무엇 하나 뒤처지지 않은 깊은 유산을 남긴 것이다.

<Paid In Full>을 필두로 왕성한 작업 활동을 진행해 온 모습을 돌이켜 보았을 때, 현재 잠잠하기만 한 랩의 전설의 행보는 아쉬울 따름이다. 자신을 롤 모델로 삼으며 거대한 포부를 개진해 나간 힙합 아이콘들의 자기 복제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턴테이블 하나와 마이크 하나만 있어도 화수분 라임을 쏟아내던 라킴의 래핑이 더욱 가치를 빛내는 오늘이다.

-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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