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에서 어떤 이는 아주 난해하고 복잡한 음악을 만들어서 이목을 끌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기존 스타일에 큰 변화를 가해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유명 프로듀서와 음악가를 초빙해 음악팬들의 시선을 유도하기도 하죠. 방식은 다 다르지만, 결국에는 모두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자 마케팅의 일환일 것입니다. 평단의 호평을 들으며 데뷔한 신예 힙합 뮤지션 키드 커디, 록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밴드 에디터스, 메인스트림 R&B 뮤지션 마리오, 이들 세 팀은 나름대로 더 많은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만의 방식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키드 커디(Kid Cudi) <Man On The Moon: The End Of Day>(2009)
래퍼와 프로듀서를 넘어 이제는 작가로 성장 중인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의 레이블 굿 뮤직(GOOD Music) 소속으로 데뷔 이전부터 힙합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키드 커디(Kid Cudi)의 첫 정규 앨범이다. 지난해 여름 발표한 믹스테이프 <A Kid Named Cudi>로 목소리를 선보인 지 1년 만에 정식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대개 데뷔작은 상업적 성과를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 대중성을 최우선에 두기 마련인데 키드 커디는 특이하게도, 그리고 과감하게도 콘셉트 앨범을 구상했다. ‘The End Of Day’ ‘Rise Of The Night Terrors’ ‘Taking A Trip’ ‘Stuck’ ‘A New Beginning’ 이렇게 총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음반은 마치 공상과학 소설을 읽는 듯한 생각을 들게 할 만큼 독특하고 비현실적인 노랫말들로 꾸며져 있다. 사랑과 길거리 삶을 다루지 않았음에도 인기다. 이러한 유별남이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오히려 더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종말의 날에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은 감상을 자아내는 처녀작은 사실 그리 재미있는 앨범은 못 된다. 래핑에 박력이 넘치거나 비트가 굉장히 호화롭지도 않다. 인디 음악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래태탯(Ratatat)과 MGMT, 키드 커디의 사장님 카니예 웨스트, 대선배이자 소속사 동료인 커먼(Common)이 도움을 주고 있으나 피처링 진도 화려하다고 단언할 수만은 없는 상태다. 남들과 다른 구상과 짜임으로 가치를 올리는 앨범이라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테다.
에밀 헤이니(Emile Haynie), 프리 스쿨(Free School), 플레인 팻(Plain Pat) 등 많은 프로듀서가 참여하다 보니 통일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것도 단점이다. 반주는 대체로 키드 커디의 차분한 래핑과 조화하는 편이지만, 무척 싱거운 탓에 어필하는 힘이 부족하다. 이와 같은 콘셉트라면 차라리 웡키(wonky) 비트로 전체를 도배하는 것이 나았을 것, 단번에 청각 신경을 휘어잡지도, 계속해서 맛을 우려내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카니예 웨스트라는 간판이 그의 존재를 부각함에는 성공했지만, 앨범 자체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랩 스타일에 변화를 기하지 못하거나 대중의 귀를 장악할 반주를 장만하지 못한다면 다음번에는 대중의 외면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부족함을 보완하기 어렵다면 키드 커디는 다시 한 번 다수의 이목을 끌 매력적인 콘셉트 앨범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
- 글 / 한동윤 (bionicsoul@naver.com)
에디터스(Editors) <In This Light On This Evening>(2009) 에디터스(Editors)의 기존 팬들이라면 이들이 ‘록’ 밴드라는 점을 추호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앨범을 플레이하자마자 첫 곡 「In this light on this evening」에서 초반 3분 동안 신시사이저 음만 웅장하게 울리는 것을 듣고 있으면 뭔가 대단위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직감하게 될 것이다. 그 뒤로 나오는 기타 연주 역시 이펙터를 잔뜩 머금고 지독히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다. 그리고 2번 트랙부터는 거의 기타가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록’ 밴드에서 흔히 활용되는 식으로 연주되진 않는다.
에디터스는 지금 신스 팝으로 가고 있다. 둘 사이의 완전한 분리선을 긋는 ‘록 기타 연주’가 빠졌으므로 적절히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강을 건넜다고 봐야 한다. 단순한 신시사이저 리프가 점점 커다란 스케일로 점층해가는 곡 「Bricks and mortar」는 마치 테크노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간 순서로 풀어놓은 듯이 들린다. 에디터스의 데뷔 후부터 지금까지의 음악적 행보는, 전 세계적인 포스트 펑크 붐을 ‘펑크 팝’ 형태로 체화한 춰에서도 영국적이었고 이것을 ‘신스 팝’ 형태로 발전시킨 과정 또한 영국적이다.
록 밴드가 전자음 필드로 이사했으니 전반적인 프로듀싱에 있어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필요에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 플러드(Flood)가 응답했다. 그는 유투(U2)가 일렉트로닉 색깔을 가지게 했으며, 디페시 모드(Depeche Mode)의
<Violator>,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The Downward Spiral> 같은 테크노 사운드에 개가를 올린 앨범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낸 사운드 거장이다. 그가 지휘를 맡고 에디터스가 변신의 노력을 기울여
<In This Light On This Evening>이 만들어졌다.
앨범은 무척 어둡다. 간간히 록 밴드적 에너지를 발휘할 때에도 이것은 블러(Blur)보다는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에 가깝다. 「You don't know love」에서 보컬 톰 스미스(Tom Smith)의 창법은 암흑 같고 유혹적인 보컬의 대명사인 디페시 모드의 데이브 개헌(Dave Gahan)과 닮았다. 가사들의 내용 또한 신이 없음, 깨진 사랑, 세계정세에 대한 개탄 등으로 상당히 염세적이다.
다소 의외인 것은 타이틀곡 「Papillon」인데, 장르적으로 댄스 플로어를 겨냥해 만든 디스코 넘버다. 신스 팝으로의 변화가 핵심이지만 이것에는 라 루(La Roux), 레이디 가가(Lady GaGa) 등의 1980년대 풍 복고 일렉트로닉 댄스 붐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음을 나타낸다.
근래 들어 영국과 미국을 막론하고 대중들은 록 밴드들에게 파티 음악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고, 몇몇 밴드들은 그에 대한 훌륭한 완성도의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In This Light On This Evening>에서 기타가 신시사이저로 대체된 사실 뒤에 감춰진 것은 에디터스 역시 그 대열에 끼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 결과물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기에 앞서 그 의도 자체를 겨냥해보고 싶다.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 씨에스에스(CSS) 등이 열광적 환호를 받은 것도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런 앨범은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엔 2009년을 살아가는 록 밴드들이 ‘변화’와 ‘대중성’을 동시에 잡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해가고 있는지가 담겨져 있다.
- 글 / 이대화 (dae-hwa82@hanmail.net)
마리오(Mario) <D.N.A.>(2009) 우리나라에서 선호하는 R&B 싱어들 가운데 마리오(Mario)가 차지하고 있는 지분은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의 마리오를 있게 해 준 빌보드 No.1 싱글 「Let me love you」가 엄연히 회자되고는 있지만 이를 뛰어넘는 후속타가 잠잠했다는 점이 뇌리 속에 충분히 그를 각인시키기에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지적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어느덧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 된
<D.N.A.>의 첫 싱글로 낙점된 「Break up」은 다소 만족하기 힘든 일련의 안주 기간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릴 웨인(Lil Wayne)의 괴물 트랙 「A milli」를 프로듀싱한 방글라데시(Bangladesh)의 손을 거치고 래퍼 구찌 메인(Gucci Mane)과 션 가렛(Sean Garrett)이 뒤를 밀어주고 있지만, 지금까지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등을 위시해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클럽 튠을 또다시 직면한다는 점에서 당혹감을 금치 않을 수 없다.
허나 트렌드에 성실하게 복무하여 상업적인 성과를 획득하기 위한 의도는 용인 가능한 수준에서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Let me love you」 이후 최고의 차트 성적을 수확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면도 없지 않다. 사실 이후로 안락하게 펼쳐지는 멜로디컬한 발라드 트랙들은 마리오의 미성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Starlight」는 깔끔하게 재단된 흥겨운 업 템포 리듬 위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마리오의 안정된 보컬을 만끽할 수 있는 트랙이다. 흡사 과거 R&B 댄스곡의 향취를 상기시키게 하는 패턴 진행과 후반부에 도달하여 유기적으로 융합되는 코러스 라인은
<D.N.A.>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다.
여기에 또 달콤한 러브 송이 빠져서는 안 된다. 연인들만이 속삭일 수 있는 순도 100%의 세레나데를 「I choose you」에서 준수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마초적인 성향과는 동떨어진 연약하고 여린 남자의 마음을 아련한 고음의 보컬로 진솔하게 묘사하고 있는 「The hardest moment」는 마리오의 곡 해석 능력을 반증하는 사례이기에 충분하다.
기실
<D.N.A.>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완성도를 확보하게 된 경위에는 현재의 흑인 음악계를 휘어잡고 있는 거물 프로듀서들이 전진배치 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 뒤떨어지지 않은 완성도의 느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대급부가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앨범 명이 은근히 자신감 있게 내포하고 있는 독자적인 음악적 형질은 아직은 불완전한 진화 단계이다.
-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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