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놀고 있나요?
“일단 잘 놀아.” 후배들이나 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요리를 열심히 하라는 말 이전에 꼭 이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술 마시고, ‘밤 문화’를 즐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고뇌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라는 것이다. 열심히 놀면서 즐기는 시간을 보낸 후, 스트레스가 사라진 순간 조용히 생각해보는 것이다. 내 인생에 대해서.
고등학교 시절, 아마도 사제가 되려는 꿈이 어른들의 만류로 무산된 후부터였을 텐데, 참 열심히 놀았다. 패거리를 이뤄 놀 정도였으니까. 비행 청소년까지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삐딱하게’ 살았다. 결국 대학입시에 실패해 재수를 했고, 재수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양식 집에서 처음 요리를 만났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군 입대를 늦추려고 전문대학 조리과에 입학했고, 또 열심히 놀았다. 놀기만 하다가 입대를 했고, 어느새 이십 대 초반 제대를 앞둔 병장이 되어 있었다.
제대를 육 개월 남기고 내 인생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게 됐다. 원래 요리를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군대 가기 싫어 탈출구로 찾은 대학이었다. 지금이야 전국에 183개의 조리과가 있고 매년 3만 6천 명의 전문 조리 인력이 배출되지만 그때만 해도 조리과는 전국에 딱 다섯 군데뿐이었다. 그나마도 군대는 가기 싫고, 대학은 가야겠다 싶은 아웃사이더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나 역시 수업도 건성으로 들으며 아웃사이더로 살다가, 결국 군인이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대를 하고 난 뭘 해야 하나. 보초를 서며 고민하는데, 눈앞에는 어둑한 밤하늘만 보였다. 그런데 칠흑 같은 밤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깜깜해 보이는 내 미래에도 반짝이는 별이 있을 것 같았다. 이왕 시작한 요리사의 길, 누구보다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기만 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잠시 후회가 밀려왔지만, 오히려 고마웠다. 만약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인생과 미래에 대한 고민도 없었을 것이다. 미리 겪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친답시고 인생을 허비하지 않아도 됐다. 이미 그간의 다양한 경험들로 그릇된 것과 옳은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인격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제대 후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한 계단, 한 계단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 최고 호텔 버즈알아랍의 수석 총괄 주방장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렇다고 노는 것을 멈추었느냐, 그건 아니다. 나 자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한계점 안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논다. 일단 놀아보라는 건, 스스로 노는 법을 터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연속이다. 인생 자체가 그렇다. 그런 것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은 경험뿐이다. 놀면서 즐기고, 즐기면서 경험하고,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아직 제대로 놀아보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밖으로 나가서 놀아라. 즐겨라. 고민하고 생각해라.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인생인지, 나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하는지. 그리하면 저 멀리서 빛나는 나의 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노력을 담는 작은 노트가 있습니까?
그날따라 동생이 배가 고프다며 투정을 부렸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부엌에 들어가 떡볶이를 만들게 됐다. 그런데 열심히 만든 떡볶이를 한입 먹은 동생이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가 전부 토해버리는 게 아닌가. 그때까지 떡볶이를 고추장으로 만드는 줄 몰라 케첩으로 양념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시큼하고 느끼하기만 한 요상한 맛. 그런 떡볶이가 나의 첫 요리이다.
사람들은 내가 미감을 타고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아니다. 고추장과 케첩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요리에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만으로도 맛을 조합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은 모두 노력의 결과이다. 성공은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재능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던가.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은 그 재능 없음을 철저히 인식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걸 믿고 게을러져 성공 가능성이 낮아진다. 물론 재능을 가진 사람이 노력까지 한다면 노력만 하는 사람들과는 경쟁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 나갈 수 있지만 말쳀다. 적성에 맞는 걸 선택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선택한 것에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특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 전 “이게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조리과에 갔으면 한번 해보자, 후회 없이 해보자.” 하고 다짐한 후 정말 미친 듯이 요리에 매진했다. 모르는 것을 ?고, 그것을 알기 위해 책을 뒤졌다. 실습 기간에는 선배 조리사들이 짜증을 낼 정도로 질문을 많이 했다. 당시 처음 요리를 시작할 때 작은 노트를 하나 샀다. 이백 장 정도 되는 작은 메모지였는데, 매일 배운 것들을 적어나갔다. 돈이 없어 사지 못한 값비싼 원서들을 찾아 레시피를 베끼고, 선배 조리사들에게서 배운 각종 노하우와 요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적기 시작했다. 어느새 메모지 이백 장이 다 채워졌다. 이후 나는 실습 나온 후배들에게 그것을 제본할 수 있도록 했다. 어렵게 노력해서 모은 자료들이지만, 이미 충분히 내 것이 되었고 후배들이 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력이 쌓이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그 노트를 잃어버리게 됐다. 아쉬웠지만 지난 시절의 추억 정도라고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십오 년 만에 잃어버린 노트를 찾게 되었다. 정확히 말해 노트의 복사본을 발견한 것이다. 어느 대학에 특강을 나갔는데, 어느 한 분이 그 노트를 가지고 있었다. 실습생들 사이에서 건너 건너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이 그 노트를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나는 무얼 하든 언제나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더 단단히 다짐했다.
나는 늘 인생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라고 한다. 그래야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여기서 성공은 내 기준의 성공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성공은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매력 없는 것이 노력 없이 얻은 성공이다. 나 자신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노력한 뒤 얻는 성공이야말로 진짜 성공이다. 이 시대에 열정과 패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꿈을 위해 얼마만큼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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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에드워드 권
요리사, 버즈알아랍호텔 전 수석 총괄 주방장,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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