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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단어는 아름다우면서도 위험하고,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단어입니다. 한반도의 경우 일제 36년간 억압당한 역사의 흔적 덕택에 자유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 박혀 있고, 특히 남북 간에 대살육이 벌어졌던 기억은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의 사람들에겐 자유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남다릅니다.
그러나 이런 자유는 사실 굉장히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제1공화국의 여당이었던 ‘자유당’이 이야기한 자유는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되어 민족국가로서의 주권 통치자가 된 국민과 국가의 ‘자유’였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에 권력과 힘으로 억눌렀던 것은 독재와 부당에 대한 의사 표현에 대한 ‘자유’였고, 가끔 시위 현장에 등장하는 ‘자유 대한’ 구호는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의 반의어로 존재하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한참 유행하는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의 유동성을 의미하는 ‘자유’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가리켜 자유주의자라고 하는 게 일반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회입니다. 다만, 그 자유주의자가 무엇의 자유를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짚어내기 위해서는 사회가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부르주아의 등장부터 천부인권 사상으로 이어지는 근대 정치학의 흐름을 짚어보는 방식이 정석이겠으나, 꼭 그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반증’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칼 포퍼는 그의 대표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바로 그 자유민주주의사회라는 현대사회의 보편 명제에 대해서 특유의 스타일로 명쾌한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워낙에 쉽게 쉽게 글을 풀어나가는 특성 덕택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라면 저는 오히려 정치학 고전보다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추천하곤 합니다. 그의 손쉽고 명쾌한 정의를 따라가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책 제목인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반 이상을 설명합니다. 포퍼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사회는 ‘열린 사회’며,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그 열린 사회를 해치는 ‘적’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인류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 책의 큰 결론입니다.
열린 사회란 그럼 무엇일까요? 칼 포퍼는 과학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과학철학자로서 명성을 날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열린 사회’ 개념은 그 과학적 방법론에 상당히 기대어 있습니다. 따라서 포퍼의 과학적 방법론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이야기하는 ‘열린 사회’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칼 포퍼의 과학적 방법론을 통칭할 수 있는 이름은 바로 ‘반증’입니다. 반증이란, 그렇지 않은 사례가 있음을 들어 주장을 부인함으로써 진리에 다다르는 방법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과학 방법론인 귀납적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100마리의 까마귀를 살펴보고, 그 경험에 의거해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100% 정확한 결론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선가 흰 까마귀가 나타난다면, 그 결론은 바로 깨어지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귀납적 방법에 의한 주장은 언제나 진리가 아닐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포퍼는 그러나 귀납적 방법이 갖는 함정을 함정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역으로 말해 ‘반증가능성이 없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앞서 들었던 까마귀의 예를 계속하자면,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주장은 흰 까마귀의 출현 가능성에 의해 부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습니다. 포퍼는 이 가능성이 바로 진리를 향해 더더욱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보며, 이러한 반증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그는 종교를 예로 듭니다.)는 과학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 반증가능성에 관한 이론을 포퍼는 사회로 들고 나옵니다. 그가 말하는 열린 사회란, 바로 그 반증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제도와 관습, 법률과 윤리가 영원히 올바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사회제도이고, 그렇기에 포퍼는 최상의 사회는 현재의 체제에 대해 구성원과 체제 스스로가 언제나 그 반증을 손쉽고 편리하게 제시할 수 있는 사회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포퍼가 말하는 ‘열린 사회’의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열린 사회는 항상 자유로워야 합니다. 구성원과 체제는 체제 스스로를 부정해버릴 수도 있는 주장과 행동까지도 모두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모든 변화에 있어 능동적이고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열린 사회의 가동을 통해 인류 사회는 늘 이전보다 발전하고 앞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포퍼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열린 사회를 막는 적을 지목합니다. (사실 책의 상당 부분은 이 적들에 대한 비판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적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사상은 두 가지로, 바로 서양 사상의 원류라 일컬어지는 플라톤이 첫 번째, 그리고 누구보다도 변혁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마르크스가 두 번째입니다.
포퍼는 플라톤이 구상했던 이상적인 국가야말로 닫힌 사회의 표본이라고 주장하며 시종일관 비판합니다. 실제로 포퍼의 열린 사회 개념에서 보면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플라톤은 자신의 이데아 개념을 국가철학에 투영하여, 국가는 ‘이데아의 현상화’라고 생각합니다. 불변의 진리인 이데아를 닮아야 하는 것이 국가이기에, 국가의 변혁은 곧 이데아로부터의 멀어짐, 즉 퇴보입니다. 그렇기에 플라톤의 정치 체제에서는 변혁을 인류의 퇴보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시종일관 변혁을 주장했던 마르크스는 어떨까요? 포퍼는 마르크스와 헤겔을 묶어 그들의 사상이 갖는 예언자적 관점을 비판합니다. 마르크스 사상의 한 축을 이루는 중심점인 역사관이 주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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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저/<이한구> 역23,750원(5% + 1%)
열린 사회The open society란 전체주의와 대립되는 개인주의 사회이며 사회 전체의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차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점진주의 사회이다. 닫힌 사회The closed society란 불변적인 금기와 마술 속에 살아가는 원시적 종족 사회로서 국가가 시민생활 전 체를 규명하며 개인의 판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