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 차분하게 인상주의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오르세 미술관
나에겐 오르세가 루브르보다 훨씬 더 멋진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곳이기 때문이다. 언제와도 로비에서부터 은은한 베이지 빛 감성이 온몸으로 부드럽게 몰아치는 그런 곳. 루브르가 화려함과 웅장함에 비견될 수 있다면, 오르세는 수수하지만 강직하고 차분한 예술의 오로라를 느낄 수는 곳이다.
현대 회화의 시작
미술에 조예가 깊은 방송인 조영남씨는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에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라는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피카소, 세잔, 칸딘스키, 뒤샹 등이 자주 거론되지만, 그는 벌건 대낮에 풀밭 위에 앉은 두 신사와 나체의 여인을 그린 이 그림이야말로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 이 그림으로 인해 미술의 판도는 영원히 바뀌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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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풀밭 위의 점심」, 캔버스에 유채, 208?264cm, 1863, 오르세 미술관, 파리 | |
「풀밭 위의 점심」은 마네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계기로 작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탄력을 받을 수 있었고,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의 탁월한 표현기법과 빛을 표현하는 뛰어난 감각 그리고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로 인해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그 의미가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다. 200여 년 동안 나체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앉아 있는 여인은 지금도 오르세 미술관에서 우리들의 가식적인 모습에 뚫어져라 질타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여자가 되게 하얗고 빛이 나는 것 같아요. 꼭 저를 빤히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보는 사람이 무안해지는 것 같아요.”
민석은 그림 속 여자에게 가장 먼저 시선이 간 것 같았다. 그림의 구도와 채색면에서도 벌거벗은 모습으로 앉아 정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 여인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장을 차려 입은 파리의 상류층 남자들과 대비되는 여인의 도발적이고 당당한 시선은 당시 남성과 이 작품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는 듯했다.
“마네가 자신의 메시지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밝게 표현한 것일 거야.”
「풀밭 위의 점심」은 1863년 프랑스 〈살롱〉에서 낙선한 작품들을 모아서 열린 전시회 〈낙선〉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당시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적 풍경에 나체의 여인을 등장시킨 마네의 대담함은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키며 큰 파장을 낳았다. 신화나 성서에 나오는 우아하고 성스러운 여성이 아닌 향락적이고 도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을 나체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 화단에서 요정이나 천사가 아닌 여성을 나체로 표현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작품 속 여인은 당시의 시대상을 풍자한 것으로 추측된다. 마네가 활동했던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는 도시 재개발 사업 때문에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당시 파리의 상류층 남자들은 낮에는 신사처럼 지냈지만, 밤이 되면 향락을 즐기는 위선적인 이중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이 그림 속 신사들은 잘 차려입었지만 오히려 벌거벗은 여인이 당당히 관객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당신은 얼마나 도덕적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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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 「전원 교향곡」, 캔버스에 유채, 105?137cm, 1510년경, 루브르 박물관, 파리 | |
이 그림의 가치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마네는 정물화를 회화의 시금석이라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바탕이 정물화를 그리는 데에서 나온다는 의미이다. 이 작품에서도 마네의 뛰어난 정물화 실력을 볼 수 있다. 나체의 여인 아래로 보이는 빵과 과일 바구니, 물병의 세부묘사는 매우 뛰어나다. 또 마네는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과 티치아노의 「전원 교향곡」을 모티프로 하여 그림의 구도와 인물들의 포즈를 완성했고 이것을 <살롱>에 제출했다. 이는 마네가 오래된 거장들의 작품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고전과 근대를 연결하는 중계자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증거이다.
「풀밭 위의 점심」 「올랭피아」 등의 그림은 당시 화단을 벌집 쑤시듯 요동치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실제 음란한 생활을 그대로 들킨 것에 대한 당혹감에서일까? 당시의 관객들은 너나없이 그림에 욕설을 퍼부어서 결국 작품 위치를 외진 구석으로 옮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홀로 옷을 벗고 앉아 있어서 문제를 일으킨 모델이 「올랭피아」에서 도발적인 포즈로 관객들을 빤히 바라보던 빅토린 뫼랑이라는 전문 모델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마네가 살았던 19세기의 프랑스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산업이 발달하고 정치적으로도 소요가 끊이지 않는 등 프랑스 사회는 격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 모든 분야가 그 변화 속도를 따라잡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술도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나 성경 속의 이상적인 세계와 인물들이 가득한 아카데미즘 미술이 주류를 이루었다. 설사 여성의 나체화를 그린다 해도 신화 속의 인물로 포장하여 논란을 피해갔다. 이런 아카데미즘의 전환점을 마련한 화가가 바로 마네다. 그래서 마네의 그림들이 현대회화의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이 그림 이후 꽃을 피운 인상주의 화가들의 수많은 작품들도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항상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르누아르의 따뜻하고 풍성한 색채의 그림들과 드가의 독특한 구도와 재빠른 스케치의 그림들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며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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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ads ★ 뒤집힌 상황
특유의 병 모양을 주위의 모든 환경에 대입시키는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는 이미 창의력과 감각적인 연출을 인정받았다.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깊은 인상을 주는 것까지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앱솔루트 보드카가 「풀밭 위의 점심」을 놓치지 않고 광고 소재로 사용했다. 또한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이브생로랑은 「풀밭 위의 점심」의 상황을 뒤집어서 나체의 두 남자와 정장 차림을 한 여성이 앉아 있는 패션 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은 강력한 이미지와 메시지로 광고 제작자들에게 번쩍이는 영감을 주어 복잡한 머릿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