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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가 ‘노’를 의미할 때
잭은 질을 원하지만 단지 그녀가 잭을 원하지 않을 때에만, 즉 단지 그녀가 그의 청혼에 ‘예스’라고 답하지 않을 때에만 그녀를 원한다.
우리 인간은 종종 얻기 어려운 것을 추구한다. 잭은 질을 향한 열정이 뜨겁지만, 그녀가 냉담하고 손에 넣을 수 없는 동안에만 그렇다. 그의 청혼에 그녀가 ‘예스’라고 말하면 그의 욕망은 에테르처럼 증발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잭은 질을 원하지만 단지 그녀가 잭을 원하지 않을 때에만, 즉 단지 그녀가 그의 청혼에 ‘예스’라고 답하지 않을 때에만 그녀를 원한다. 여기에는 어떤 모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술궂은 인간 본성의 불행이 숨어 있다.
우리 인간은 종종 얻기 어려운 것을 추구한다. 잭은 질을 향한 열정이 뜨겁지만, 그녀가 냉담하고 손에 넣을 수 없는 동안에만 그렇다. 그의 청혼에 그녀가 ‘예스’라고 말하면 그의 욕망은 에테르처럼 증발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잭은 질을 원하지만 단지 그녀가 잭을 원하지 않을 때에만, 즉 단지 그녀가 그의 청혼에 ‘예스’라고 답하지 않을 때에만 그녀를 원한다. 여기에는 어떤 모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술궂은 인간 본성의 불행이 숨어 있다.
이제 질이 현명하고 낭만적인 여자라는 조건을 추가해보자. 그녀는 단지 잭이 그녀를 원할 때에만 ‘예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만일 그녀가 ‘노’라고 말하면 잭은 그녀를 원한다. 그러면 이제 그녀는 ‘예스’라고 말해야 하지만, 그러면 잭이 그녀를 원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그녀도 잭을 원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잭은 다시 그녀를 원하게 된다. 상황은 이렇게 흘러가고, 추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프로타고라스와 관련된 법적인 논쟁을 살펴보자.
프로타고라스는 가난한 학생인 에우아틀루스에게 법률 공부를 시켰다. 그는 에우아틀루스가 처음 맡은 소송에서 이기면 그때 수업료를 받겠다는 조건을 정했다. 공부를 마친 후 에우아틀루스는 정치 분야로 진출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법률을 포기했다. 프로타고라스는 수업료를 걱정했지만, 에우아틀루스는 첫 번째 소송에서 이길 때까지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지적했다. 그래서 프로타고라스는 에우아틀루스를 상대로 수업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그럼으로써 우리를 논리의 미로에 빠뜨렸다.
프로타고라스는 자신이 소송에서 이기든 지든 에우아틀루스는 그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프로타고라스가 소송에서 이기면, 그것은 곧 에우아틀루스에게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그가 소송에서 지면 에우아틀루스는 자신의 첫 번째 소송에서 이긴 것이 되므로, 계약에 따라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프로타고라스는 이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굳이 재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론 변호사들은 그의 마지막 말에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에우아틀루스는 다른 쪽으로 생각한다. ‘만일 내가 소송에서 지면 첫 번째 소송에서 이기지 못한 것이니까, 나는 분명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또한 소송에서 이기면 법원의 결정에 따라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어느 쪽이든 나는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굳이 재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론 변호사들은 그의 마지막 말에도 역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에우아틀루스가 자기 자신을 직접 변호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만일 다른 사람이 그를 변호해준다면 그들은 이기거나 지게 될 것이다. 만일 프로타고라스가 지고 에우아틀루스가 이긴다면 그것은 에우아틀루스 본인의 첫 번째 소송이 아니므로 그는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프로타고라스는 돈을 받아낼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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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케이브> 저/<김한영> 역11,700원(10% + 5%)
유쾌한 공상과 기발한 역설로 오늘을 도발한다 일상을 전복하는 철학의 카타르시스! 해학과 유머로 무장한 질문을 통해 삶을 관통하는 33개의 논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 속에 자리한 철학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