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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설렘이 만들어낸 그리움의 역사

프랑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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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세 끼를 먹는 것처럼 자주 말하는 작은 꿈이 내겐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파리에 가는 것.


파리로 향하는 불확실한 어느 날인 ‘언젠가’를 꿈꾸는 나는 매일 밤 프랑스와 파리의 여행 책자를 들추고,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도, 티켓을 예약할 수 없는데도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좌석을 조회하기도 한다.

내 마음은 이미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그에게 혹은 그곳에 가 닿고 싶으나 이처럼 가 닿지 못한 곳에 대한 그리움은 역사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역사라는 것은 거창한 그 무엇이라기보다 그야말로 설렘이 만들어낸 그리움의 역사인 것이다.

내게 파리는 8월 한여름의 태양을 닮았던 열정을 쏟아 부었던 무대이기도 했고, 낭만을 꿈꾸는 도시의 산책자이기도 했으며, 여전히 그곳으로 향할 수 있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리운 곳이다.

하루 종일 내가 머무르는 일터의 이름 일부가 파리이고, 그곳에서 샹송 듣기를 고집하는 것도 당장 가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오늘, 바로 나의 역사인 것이다.


매서운 바람이 불었던 가을, 처음 방문했던 프랑스 동북부 낭시에서 만났던 마뉘도 그랬다.

“파리는 정말 커? 에펠탑은 얼마나 높아? 물가가 정말 비싸다면서? 한 달 집세가 얼만데?”

한 번에 대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퍼부어대는 마뉘의 질문에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인인 마뉘가 한국인인 내게 파리에 대해 물었으므로.

나는 마치 잘난 척하는 서울 쥐가 시골 쥐에게 무용담을 들려주듯 돈키호테처럼 무모했던 황당한 에피소드, 내가 살았던 파리의 어느 한 동네와 빵과 케이크를 구웠던 학교, 즐겨 찾았던 카페와 빵집, 오르세 미술관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 매년 10월이면 열리는 대규모 초콜릿 축제, 파리를 찾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 마레 지구의 작은 공원, 파리지앵들의 아침 출퇴근 풍경들을 들려주었다.

철도국 티켓 판매원인 루시가 늘 여권을 가지고 다니며 해외로의 첫 여행을 꿈꾸는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주인공처럼 마뉘는 그만의 방식으로 파리를 꿈꾸며 파리에 대한 그리움을 희석시키는 작업 대신 부푸는 빵과 함께 특별한 파리로의 첫 여행을 꿈꾸고 있는 듯했다.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뉘는 마치 나와 함께 파리를 여행하는 듯한 행복한 얼굴을 하면서 내게 물었다. “너는 왜 파리를 다시 찾고 싶은데?”

파리에 중독된 철새, 매일 밤 파리 지도 위를 서성이다


나는 왜 늘 파리를 꿈꿀까. 왜 그곳으로 향하고 싶을까.

파리에서 몇 년 동안 둥지를 틀긴 했지만 철새처럼 매년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은 이유는 그곳에서 머무르는 동안만큼은 나의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고, 서툴지만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고, 매번 다시 꿈을 꿀 수 있도록 파리로부터 용기를 선물받는 것에 중독됐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파리에 머무르는 동안 미루고 미루다 결국 실행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내가 매일 밤 파리 지도를 펼치는 이유일지도.



 

그중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대한 집착은 벌써 수년째다.

파리 유학 시절, 내 몸 하나 맡길 집이 있었지만 꼭 단 하룻밤이라도 지내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밤을 지새우며 책 한 권을 다 읽지 못해 할아버지에게 혼쭐이 난다고 해도 말이다. 파리 5구 노트르담 성당과 센느 강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가난한 작가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든 ‘작가의 방’이라 불리는 책이 가득 채워진 2층의 작은 방. 그리고 그곳을 나올 땐 한국에서 가져온 다 읽은 책을 두고 나오는 것이다. 두서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책들 사이에 한글로 된 책을 스윽 밀어두고 온들 할아버지가 뭐라 하실까.

떠나고 싶은데, 어디로는 떠나고 싶은데, 막상 멀리 도망가지 못할 때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은 곳이 필요했다. 그곳에 가면 무심코 집어든 책이 나에게 내가 풀지 못한 의문부호에 대한 해답을 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좀처럼 용기가 나질 않았고,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만 곳이다. 왠지 지금이 아니라 다음에 더 간절히 그곳을 원할 때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초콜릿 가게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달콤한 초콜릿을 골라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나, 우리의 인생은. 내가 고르지 않은 쓰디쓴 초콜릿을 너무 오래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간절히 도망가고 싶을 때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이 서점 안엔 이런 글귀가 있다.

‘이방인을 냉대하지 마라. 그들은 위대한 천사일 수도 있으니.’

그리고 또 하나. 지난해 10월, 또 다른 작은 이유가 생겼다.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난 후 지인들과 함께 숙소 근처의 한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그만 짐을 놓고 와버린 것을 알아차린 것은 자정이 다된 시간 귀가한 후였다. 다시 찾으러 가기엔 귀찮기도 했고,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인적이 드문 그 시간 카페까지 걸어서 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 영수증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 혹시 테라스 좌석에 두고 온 분홍색 비닐 봉투를 봤느냐고 물었더니 종업원이 가지고 있다고 했고, 나는 다음날 찾으러 가겠다고 했다.

다음날, 내 육체의 구석구석 모든 감각기관이 얼음송곳처럼 날카로워져 있었다. 아마도 변덕스러운 파리의 겨울 같은 가을 날씨 때문일 거라고 여겼다. 먹는 것마다 토할 것 같았고, 모든 냄새가 비위 상해 급기야 모든 스케줄을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오래 시간 데친 시금치 같았던 나는 놓고 온 짐을 가지러 카페에 들렀다. 평소 같았으면 짐을 돌려받으면서 밝게 인사를 건넸겠지만 그날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했더니 종업원이 날 불러 세우며 냉장고에서 전날 슈퍼마켓에서 샀던 요구르트를 꺼내어 주었다.

그제야 비닐 봉투에 붙어 있는 메모지 한 장을 발견했다.

- 동양 여자 손님이 두고 간 비닐 봉투니 찾으러 오면 돌려줄 것.
- 봉투 안에 하얀색 타월과 음료수 하나가 있었는데, 요구르트는 냉장고에 넣어 뒀으니 잊지 말고 줄 것.

행여 요구르트가 상할까 전날 근무자가 다음날 일할 동료에게 메시지를 남겨 놓고 비닐 봉투에도 메모를 남겨 놓은 것이다.

어느새 맑게 갠 화창한 날씨가 무색케 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던 나의 마음을 다독거려준 사람 냄새. 깊어져가는 가을, 진한 사람 냄새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뤽상부르그 공원의 분수대에서 아빠와 함께 배를 띄우며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의 아이들도 저들처럼 행복했으면 좋겠고, 연세 지긋하신 노인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걷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 내가 걸어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고, 혹 외로운 길일지라도 그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고 싶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파리에서는.

아마도 마음이 불편하고 나를 내놓을 수 없는 곳이라면 자꾸만 숨겨 놓은 애인을 만나러 가는 것과 같은 설렘과 그리움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매일 세 끼를 먹는 것처럼 자주 말하는 작은 꿈이 내겐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파리에 가는 것.

이십 대의 내 젊은 시절을 보냈던 파리에서 내가 머물렀던 동네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도 땀을 흘렸던 학교와 편지를 쓰고 싶을 때마다 들렀던 퐁 네프 다리 아래의 작은 섬과 95번 버스를 타고 몽마르뜨르 언덕에 가는 것. 그 이상의 모든 것들을 함께하고 싶다.

파리의 유명 관광지 순례도 빼놓지 않겠지만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둘만의 파리의 추억을 만들고 싶다. 사진으로 찍어 놓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떠한 형태로든 흔적으로 남지 않아도 좋다.


내가 사랑하는 파리를 나처럼 좋아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함께 우리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날이 마뉘처럼 내가 꿈꾸는 파리로의 진짜 첫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클릭만 하면 되는 파리행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빵을 반죽하고 오븐에 굽는 일보다 간단할 수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또 살아내는 하루하루는 나와 마뉘, 당신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음 가는대로 당장 가 닿을 수 없는 파리를 그리워하는 것은 이방인인 내게도, 프랑스인인 마뉘에게도, 매일 파리를 여행한다는 파리지앵에게도 각자 하나씩은 가슴에 품고 있는 혹은 품고 싶은 풍경을 마음에 걸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는 어느 날 그 ‘언젠가’를 꿈꾸는 나는 오늘도 일터에서, 또 잠자리에 들기 전 지도 위를 서성인다.

파리는 그 도시에 안착하게 되는 경험을 하기도 전에 근사한 풍경 하나를 우리에게 선물하는, 마법을 부리는 도시인 것이다.

양진숙
『빵빵빵, 파리』
성신여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르 꼬르동 블루’ 요리학교에서 프랑스 제과?제빵을 전공했다. 졸업 후 파리 ‘플라자 아테네’에서 근무했고, 여러 잡지사의 프랑스 통신원을 거쳐 귀국 후 한 잡지사의 기자로 근무하기도 했으며, 2007년 12월 『빵빵빵, 파리』라는 여행 에세이를 펴낸 후 현재 홍대에서 책과 같은 이름의 베이킹 아뜰리에 카페를 운영 중.
좋아하는 빵도 굽고 샹송을 들으며 늘 파리로의 도피를 꿈꾸는 철없는 삼십 대.
파리 Paris

편집부 저 | 시공사/시공사브랜드전(기획사)
파리 100배 즐기기

홍연주,홍수연 공저 | 랜덤하우스코리아
빠담 빠담, 파리

양나연 저 | 시아출판사
30일간의 파리지앵 놀이
생갱 글,그림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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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빵, 파리

<양진숙> 저10,800원(10% + 5%)

만약 이 책을 읽는 당신이 파리에 가게 된다면 최고로 맛있는 빵집과 초콜릿 가게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리는 순간, 틀림없이‘파리를 닮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열풍으로 파티쉐는 이제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이 책은 르꼬르동 블루를 졸업한 파티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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