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베짱이처럼 사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인가?

개미의 노동보다 베짱이의 생활 방식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개미의 활동은 그 목적의 필요성 때문에 이루어진다.

한여름, 그리고 인생은 느긋하다, 다는 아니어도 누군가에겐. 우리의 떠돌이 기자는 전원생활을 경험하면서 시골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뭐지? 별스럽게…… 그녀는 베짱이와 개미를 인터뷰하고 있다.

“하루 종일 뭐 하시나요, 베짱이 양?”

“푸른 들판을 뛰어다니며 노래하고 춤추고, 춤추고 노래해요.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밝고 뜨거운 햇살에 날개를 적시고 말이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네요, 베짱이 양. 그런데 개미 씨, 베짱이 양의 생활 방식을 비난한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당신도 그런 삶을 인정하면 안 돼요. 이 젊은 아가씨나 다른 베짱이들한테 인생은 그저 느긋하기만 해요. 하지만 우리 일꾼들은 그렇게 빈둥거리면서 보낼 시간이 없어요. 우리는 밤낮으로 허리가 휘도록 일합니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허리가 있다면 말이죠. 보세요, 저 야시시한 옷을 나풀거리면서 게임이나 하는 게을러터진 베짱이하곤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매일 달구지를 끌고 음식을 모으고, 춥디추운 겨울철에 대비해 그걸 열심히 저장하죠.”

“이봐요, 개미 아저씨, 그렇게 호통 칠 필요 없잖아요? 이리 와서 같이 놀아요. 노래하고 춤추고, 춤추고 노래해요. 당신이 하는 일은 다 무용지물이에요. 그런 노동, 일, 비참한 노고를 대체 뭣 땜에 하는 거죠? 그건 아무 의미 없어요.”

“내가 그 의미를 말해 주겠소, 젊은 처자. 장담하건대 아가씨는 큰 실수를 하는 거요.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는 거요. 그리고 잘 들으시오. 들판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춥고 배고플 때 우리 집 문을 두드리게 될 거요. 그땐 후회하게 될 걸. 내 말을 잘 새겨들어요!”

“하지만 내일은 무수히 많아요. 오늘을 생각해요. 자, 이리 와서, 같이 놀아요.”

“부질없는 짓이고, 시간 낭비요. 내가 왜 아가씨와 얘기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일이나 계속 해야지.”

“자, 이제 잠시 스튜디오로 돌아가 교통 상황을 점검하겠습니다. 청취자들께서는 베짱이 양의 논리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베짱이들은 일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카드 대금을 갚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솝 우화는 여기서 신중함을 배우라고 암시한다. 우리가 오늘 시간을 낭비한다면 내일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만일 베짱이가 겨울에 문을 두드리고 음식을 구걸한다면 개미는 그녀를 도와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가? 베짱이는 겨울에 굶주릴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지내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굶주림은 그녀 자신의 잘못일 것이다. 그녀는 개미처럼 한여름의 태양 아래서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겨울에 불행이 찾아온다면 그건 순전히 그녀 자신 책임이다. 하지만 이 우화는 무책임한 타인을 우리가 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하는가의 문제와는 다른 퍼즐을 불러일으킨다. 그 퍼즐은 다음과 같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베짱이와 개미의 대조는 여가와 노동, 무위도식과 생산적 활동의 대조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위도식은 가치가 거의 없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위도식’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그것은 해변에 그냥 누워 푸른 하늘을 보면서 따뜻한 햇살을 즐기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일까? 그것은 가치 있는 삶의 일부일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이상의 것을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가?

베짱이는 무엇인가를 하긴 하지만 개미와는 반대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상징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베짱이는 놀고, 개미는 일한다. 개미는 일 자체가 가치 있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목적ㅡ즉, 겨울에 잘 먹는 것ㅡ을 위한 수단으로써 일을 한다. 베짱이는 논다. 노는 동안 베짱이는 무엇인가를 하긴 하지만, 놀이의 목적은 힘들게 성취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목적 자체가 바람직할 필요도 없다. 가치 있는 것은 놀이 그 자체다. 놀이는 대개 게임과 관계가 있고, 혹자에 따르면 게임은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자발적인 시도라고 한다.

출처: //www.flickr.com/photos/8076101@N05/1648625267/

일과 게임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하지만 게임의 경우 목표는 대개 게임의 일부일 뿐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개미의 입장에서 볼 때 만일 그가 겨울에 잘 먹고 지내지 못하면 베짱이보다 훨씬 더 불행할 것이다. 반면에 순수한 게임 참가자는 골프공이 홀을 외면하거나, 축구공이 골대를 벗어나거나, 낱말 맞추기를 완성하지 못해도 크게 불행하지 않다. 게임의 매력은 추구하는 목표가 완전히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상금 획득처럼 그 이상의 목표가 추가될 수도 있다.

게임의 목표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그 목표 성취에 필요한 수단이 괴팍하다는 사실과 잘 어울린다. 참가자는 공을 홀에 떨어뜨리거나, 축구공을 들고 골대 안으로 들어가거나, 해답을 들춰 보면 안 된다. 게임의 규칙에는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 포함돼 있다. 게임은 단지 게임으로서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좋은 게임은 성공이 너무 쉽지 않아야 하는 동시에 불가능하지도 않아야 한다.

개미의 노동보다 베짱이의 생활 방식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개미의 활동은 그 목적의 필요성 때문에 이루어진다. 개미의 활동은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을 위한 것이다. 아마 이것이 그 활동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다. 놀이와 게임에는 그런 외적 압력이 없다. 물론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는 반드시 닥치기 때문에 개미는 결국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승리의 대가는 무엇인가? 단지 잘 먹기 위해ㅡ그러나 또다시 노동을 하기 위해ㅡ힘들게 일한다면 힘든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베짱이의 삶은 비록 짧지만 노동의 굴레에서 자유롭다.

내친김에 우리는 ‘놀이’가 외적인 목표와 무관하게 충분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림과 음악ㅡ창조와 감상ㅡ은 외적인 목표와 완전히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평가된다.

사람들ㅡ심지어 철학자들ㅡ은 종종 흑백의 답과 선명한 구분을 선호한다. ‘A에서 B로 가기 위해 여행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여행을 하지 말고 B에 있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것은 가끔 사실일 수 있지만, 우리가 B로 여행할 때에는 종종 그 여행도 유익하다. 우리는 필요한 목적을 위해 취하는 활동이 그 자체로 유익할 수 있고, 그 자체로 유익한 활동이라면 유익한 다른 어떤 것(목적)에 이르는 수단으로써 추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만일 베짱이의 놀이 역시 겨울을 위한 식량 저장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더 좋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만일 헬스클럽에서 사이클 페달을 밟으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그와 동시에 전기를 생산한다면 얼마나 더 좋겠는가?

위의 논의는 두 가지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첫 번째 문제는 다음과 같다. 비트겐슈타인은 비록 단어들에 어떤 종류의 정의가 없다 해도 어떻게 해서 우리가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의 예로 ‘게임’이란 단어를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위에서 요약한 것처럼 ‘게임’의 정의는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자발적 시도일 것이다. 그러나 등산과 하이쿠 작시는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자발적인 시도지만, 대개 게임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필요한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단지 게임인 경우도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게임’에 대한 생각이 옳든 그르든, 단어들은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명백히 규정해야만 정의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그의 생각은 분명히 옳다. 우리는 종종 형식적인 정의를 따지기보다는 단어들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새로운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다. 한여름에 개미는 왜 겨울에 살아갈 것을 걱정하는가? 미래가 불확실한데ㅡ그리고 세월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음에 따라 미래의 재미가 줄어드는데ㅡ왜 지금 노예로 살아야 하는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퍼즐을 만나게 된다. 무엇이 현재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과거의 어떤 사람 그리고 미래의 어떤 사람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게 만드는가? 내 개인적인 경우에, 왜 나, 피터 케이브는 욕구와 믿음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는데도, 1년 전이나 20년 전의 피터 케이브 그리고 1년 후의 피터 케이브와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가?

개미로 돌아가 보자. 개미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왜 미래의 개미가 지금의 개미, 한여름의 개미를 지배하는가? ‘미래의 개미도 여전히 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대답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또다시 ‘흑백’의 답에 빠진 것은 아닐까?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

<피터 케이브> 저/<김한영> 역11,700원(10% + 5%)

유쾌한 공상과 기발한 역설로 오늘을 도발한다 일상을 전복하는 철학의 카타르시스! 해학과 유머로 무장한 질문을 통해 삶을 관통하는 33개의 논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 속에 자리한 철학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나를 살리는 딥마인드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저자의 신작.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절망과 공허함에 빠진 이들에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말인 '딥마인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행복과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딥마인드 스위치를 켜는 방법을 진솔하게 담았다.

화가들이 전하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

이창용 도슨트와 함께 엿보는 명화 속 사랑의 이야기. 이중섭, 클림트, 에곤 실레, 뭉크, 프리다 칼로 등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남긴 화가 7인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남긴 감정을 살펴본다. 화가의 생애와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해석은 작품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필사 열풍은 계속된다

2024년은 필사하는 해였다. 전작 『더 나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에 이어 글쓰기 대가가 남긴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이번 편은 특히 표현력, 어휘력에 집중했다. 부록으로 문장에 품격을 더할 어휘 330을 실었으며, 사철제본으로 필사의 편리함을 더했다.

슈뻘맨과 함께 국어 완전 정복!

유쾌 발랄 슈뻘맨과 함께 국어 능력 레벨 업! 좌충우돌 웃음 가득한 일상 에피소드 속에 숨어 있는 어휘, 맞춤법, 사자성어, 속담 등을 찾으며 국어 지식을 배우는 학습 만화입니다. 숨은 국어 상식을 찾아 보는 정보 페이지와 국어 능력 시험을 통해 초등 국어를 재미있게 정복해보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