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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가슴에 내리는 처연한 빗물 - 이장혁 <Vol. 1>

나약해진 사람에겐 힘 빠진 읊조림조차 위로가 된다. 길게 노래하지만 많은 말을 뱉지 않는 이장혁의 노래는 메마른 가슴에 내려야 할 빗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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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장마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비가 많이 내리던 요 며칠 동안은 정말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질 만큼 매섭게 쏟아지는 빗방울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귀찮고 짜증나는 것이 비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긴 해도 때로는 그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기분이 울적하다든가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마치 이 비가 내 마음의 상처를 알아주고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것 같거든요. 싱어송라이터 이장혁의 노래를 들을 때면 상심한 순간에 내리는 빗물처럼 느껴집니다. 약간은 무심한 듯하지만, 20대 청춘들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단상이 서려 있거든요. 그의 데뷔작은 아픔과 심난함을 안고 있는 청년들의 가슴을 달래는 상냥한 빗방울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장혁 <Vol. 1>(2004)

대한민국에 포크 음악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지 않았을 뿐 우리에겐 숱한 포크 뮤지션이 존재해 왔다. 그중에서도 이장혁의 음악은 포크를 잊고 있던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각성제 역할을 했다. ‘루시드 폴’로 대변되는 서정성 깔린 맑고 예쁜 음악이 현재 숨 쉬는 포크의 큰길이라면,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이장혁이 걷는 길은 전혀 다른 쪽이다. 냉철하게 내면만을 들여다보며 더 깊이 파고들어가는 자폐적 성향에 가깝다고나 할까. 음악적 태도 하나로 가수의 모든 것을 미루어 볼 수밖에 없는 제3자의 오류를 인정하고 얘기하자면, 그는 틀림없는 염세주의자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인 그때는, 뻗으면 닿을 만큼의 거리에 늘 자리하던 것이 포크 음악이라고 수많은 통기타는 말해 왔다. 낡은 기타 줄 하나에 울고 웃었던 세대는 이제 생각처럼 가주지 않는 젊은이들을 쥐고 흔드느라 음악을 잊어야 했고, 그 다음 세대는 회상에만 젖어 있을 뿐 행동으론 전혀 드러내지 않는 어른들을 보며 그들이 하던 음악에 냉소를 쏟아 왔다. 알기에 그리워하고 모르기에 궁금해 하는 것이 당연할진데 이 땅의 음악은 반대로만 흘러온 것이다.

왜 하필 포크 음악인가. 여럿의 포크 뮤지션이 있어 왔고 누구의 인터뷰에서나 통과의례처럼 왜 포크인지, 무엇이 당신을 포크로 이끌었는지 집요하게도 물어댔다. 장르에 높낮이가 없다곤 하지만 록 음악, 그중에서도 포크 록은 자립할 수 없는 음악으로 단단히 못 박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지금에 이장혁의 음악은 현실의 화려한 간판 아래 취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우리를 흔들어 깨워 찬물을 끼얹는 흔하지 않은 출현인 것이다.

이장혁은 이석원(언니네 이발관), 김민규(델리 스파이스), 조윤석(미선이, 루시드 폴)등과 함께 ‘인디 1세대’로 불리고 있다. 1999년 ‘아무밴드’로 활동하며 첫 앨범을 내고 「사막의 왕」 「지렁이」 같은 곡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거칠고 투박했던 보컬, 사색을 부르는 가사와 멜로디에 주목하는 이가 늘어갈 무렵 아무밴드는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4년 후에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예의 다른 이들에 비해 그의 이름 세 글자는 여전히 침묵에 가깝지만,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 뒤편엔 잔잔히 흐르는 강물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모든 곡의 제목은 두 글자에서 길어봤자 세 글자지만 2분 30초에 못 미치는 단 한 곡을 제외하면 전부 5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듣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노래들로 채워진 앨범. 가사를 보면 그 혼란은 가중된다. 어둡고 섬뜩하기까지 한 제목 아래 나열된 몇 줄의 이야기는 예상을 뚫어버리려는 듯 눈물을 흘리고 사랑을 말한다.

우는 모습을 수도꼭지에 비유한 「누수」,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이장혁을 잊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인 「스무 살」. 유일하다 싶을 정도의 밝은 톤 안에 스며든 냉소적인 가사는 ‘세상과 상관없는 나’를 살아가는 스무 살의 뇌를 가진 사람들에게 화살처럼 꽂혀들었을 것이다. 맑게 울려 퍼지는 아르페지오의 도입부가 인상적인 세 번째 곡 「동면」에서는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의 「Between the bars」가 오버랩 된다. 뒤를 잇는 「성에」는 왜 사람들이 그의 음악 뒤에 ‘어떤 날’과 ‘시인과 촌장’을 나열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트랙이다. 아무밴드 때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줄 수 있을 듯한 「자폐」, 꿈이라는 단어를 머금고도 결코 희망을 말하지 않는 「꿈을 꿔」, 한 곡 한 곡 이어질수록 앨범은 점점 한 가지 색으로 바래 간다. 정면으로 사랑을 노래한 「칼」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대곡 스타일을 따 어지러운 샘플링으로 15분을 채우며 아픔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겨울보다 여름에 듣는 발라드가 더 애절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쨍쨍한 하늘 아래 혼자만 비구름에 가려진 느낌 혹은 모두 웃고 있는 와중에 혼자만 울상 지은 채 찍혀 버린 사진을 떠올려 보라. 그만큼 처연한 그림이 또 있을지. 지독스럽게도 회색빛 구름만 가득한 이 한 장의 앨범은 날카로운 단면으로 헤집기만 할 뿐 다독여주는 법이 없기에 어떤 이에겐 외면하고만 싶은 대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한 사람에겐 힘 빠진 읊조림조차 위로가 된다. 길게 노래하지만 많은 말을 뱉지 않는 이장혁의 노래는 메말라 금이 간 가슴에 내려야 할 빗물이다.

글 / 조아름 (curtzzo@naver.com)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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