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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타워가 조금만 더 예쁘게 생겼더라면

일본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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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타워를 바라보며 초고추장에 찍어 먹던 노리마키의 맛은 턱 언저리가 찡하게 울릴 만큼 맵고 시었다.


나는 평소 가끔씩 서랍 속 여권을 꺼내서 한 장 한 장 들춰 볼 때가 있다. 특별히 뭔가 확인할 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동안의 내 발자취를 돌아보는 게 재미있어서 여권에 찍힌 도장을 꼼꼼하게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비록 손바닥 만한 여권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스탬프 대부분이 ‘JAPAN’이라는 글자지만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갔던 거야, 싶은 생각에 곰곰이 떠올려 보니 워킹 홀리데이로 1년 동안 체류했던 것을 포함해 예닐곱 번 정도.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고도 할 수 있는 애매한 횟수지만, 난생처음 일본 여행을 떠났던 대학 시절과 비교해 보면 여권에 찍힌 도장 수만큼 여행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나도 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럴 때면 무의식 중에 “마~이 컸다~”라는 말이 툭 뱉어져 나오기도 한다.

요즘도 그런 여행 상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부산에서 배로 후쿠오카까지 가서 후쿠오카에서부터는 ‘청춘18 티켓’이라는 열차 티켓을 가지고 일주일 가량 일본 열도를 여행하는 상품이 있었다. 가격도 상당히 합리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뱃삯과 열차 티켓 그리고 도쿄에서의 1박 호텔비를 더해 29만원 정도. 물론 지금이야 밤도깨비 여행이니 뭐니 다양한 일본 여행 패키지들이 즐비하니, 가격이 제아무리 싸다 해도 이렇게 고생스러운 여행을 떠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불과 몇 년 전이기는 해도 당시 일본은 확실한 거리감이 존재하는 ‘해외’였기 때문에 이런 저렴한 여행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장마가 지나고 이제 슬슬 여름도 안녕을 고할 즈음, 나와 여행에 동참한 두 명의 친구들은 각자의 배낭을 하나씩 둘러메고 서울역에 집합했다. 저녁 나절 부산항을 떠나는 배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우리는 출항 전 항구 근처 슈퍼마켓에서 고추장이며 밤새 타고 갈 배 위에서 먹을 주전부리 등 간단히 장을 본 후 배에 오르기 위한 수속을 밟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또래들이 눈에 많이 띄었고, 상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도 커다란 짐과 함께 군데군데 섞여 있어 여객터미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뭔가 이대로 밀입국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라는 시답잖은 내 말에 친구들은ㅡ식상한 표현이지만ㅡ허파에서 바람 빼는 소리를 내며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그후로도 기왕 허파에서 바람이 빠질 거라면 묘한 긴장감도 좀 같이 빠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별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쉬지 않고 주절댔다.


날이 저물고 모든 탑승 수속이 끝나자 배가 우렁찬 기합 소리를 내며 천천히 그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갑판에 나와 물결을 일으키며 육지와 멀어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때때로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손 인사를 건네며.

배가 후쿠오카 하카타 항에 당도한 것은 다음날 오전 8시경. 짐을 챙겨 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오자 짠 내 가득한 낯선 공기가 몸을 휘감는 듯했다. ‘오! 정말 일본에 왔네!’라는, 스스로가 기특하게만 느껴지는 심정으로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겨 주고 일본 땅을 힘차게 꽉꽉 밟아 줬다. 이로써 나의,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은 매일 밤 야간열차에서 비좁게 새우잠을 자야 했던 탓에 적잖은 체력을 필요로 했지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선정해 둘러보자는 계획에 맞춰 각 지역마다 관광지를 비롯한 지역 먹거리, (가능하다면)온천 등을 순회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PC통신 커뮤니티를 통해 일본인 유학생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교토대학 학생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 온 나의 첫 일본인 친구였다. 나는 여행을 가기 전 몇 번이고 그를 만나 교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고도古都의 고즈넉한 풍광이 남아 있는 도시를 떠올리며 교토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올랐다. 더욱이 기차 여행 스케줄 표에 나와 있는 대로라면, 교토는 상하행 두 번을 정차하게 되어 있으니 도시를 둘러볼 시간은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사카에서 교토에 당도했을 때는 다음 열차로 갈아타기까지 불과 한두 시간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다. 때문에 교토 관광은커녕 슈퍼마켓에서 반값에 구입한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고 다시 야간열차에 올라타야만 했다. 교토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 교토 타워를 바라보며 초고추장에 찍어 먹던 노리마키のり卷き의 맛은 턱 언저리가 찡하게 울릴 만큼 맵고 시었다. 내용물은 거의 없는 시큼한 초밥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불 밝힌 교토 타워를 바라보는데 목이 조금 메일 것 같았던 건 다 그 묘하게 맵고 시던 노리마키와 초고추장 탓이다. 교토 타워가 조금만 더 예쁘게 생겼더라면 아마 눈물도 찔끔 흘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엔 교토 타워가 좀 무미건조하게 생겼다. 그 후의 교토 이야기는 『카페 오사카 ? 교토』에 살짝 언급해 두었으니 여기서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벌써 7~8년 전 일인데 요즘도 종종 대학 친구들과 모이면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평범하게 비행기를 타고 갔다 온 여행이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회자되지 않았을까? 그래, 물론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우리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순수함이 가져다 주는 향수에 젖고 싶은 것뿐인지도 모른다. 처음 사귄 일본인 친구, 그에게서 전해 듣는 교토 이야기, 투덜대며 먹던 도시락, 밋밋한 교토 타워 등 처음이었기에 더욱더 소중한 추억들이니까.

2008년 봄, 나는 다시 교토를 찾았다. 귀국 후 꼭 1년 만에 찾는 교토였다. 길잡이 친구 밋짱이 없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주변을 살피며 걸어야 한다는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1년 전이나 지금이나ㅡ혹은 수년 전이나ㅡ크게 변하지 않은 거리에 나는 금세 익숙해졌다. 이번 여행은 『카페 오사카 ? 교토』에 들어갈 사진과 보충 취재를 겸한 것이었기에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주변을 탐색할 겸 산책을 나왔다. 교토 시청에서 그대로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온祇園으로 접어드는 시조四□에 당도한다. (나는 버스 대신 걸어서 교토 시내를 돌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늦은 저녁 시간인데도 여전히 북적대는 인파와 섞여 걷다 보니 어느새 야사카 신사八坂神社(붉은 문이 상징적인 교토의 대표적 신사) 근처까지 와 버렸다. 신사 앞은 늘 사람이 많았지만, 그날은 전에 왔을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가 보니 때 이른 봄을 알리는 등불 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그래, 숙소를 나오기 전 틀어 놨던 텔레비전에서 그런 뉴스를 봤던 것 같기도 하고…….’라고 생각하며 신사에 들어서자 노점상과 관광객들이 신사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신사 주변을 터벅터벅 걷다 뒷문으로 나가 보니 등불이 수놓아진 길을 따라 사람들의 행렬도 길게 이어졌다.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등불을 따라 걷고 있노라니 이국적인 교토의 정취가 물씬 풍겨 온다. 밤이 깊어갈수록 어둠이 깔린 길목을 밝히는 불빛은 더욱 영롱하게 빛났다.


저녁도 먹지 않고 한참을 걷다 보니 허기가 진 나는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야끼소바やきそば를 먹기 위해 노점상으로 향했다. 터프한 아가씨가 볶아 주는 야끼소바는 그저 그런 평범한 맛이었지만, 시원시원한 관서 지방 사투리로 말하며 호탕하게 웃던 모습만은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교토 여행은 옛 추억의 밑그림에 색을 입혀 나가듯 새로운 추억이 하나씩 쌓여 간다.

여행도 종반으로 접어든 어느 날. 저녁나절 숙소로 돌아가기 전, 카페 ‘엘리펀트 팩토리’로 향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아늑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엘리펀트 팩토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비가 올 듯 축축하게 내려앉은 하늘을 살피며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카페 마스터 하타 상이 말을 걸어온다. 다음날 그곳 단골들과 술자리를 가질 예정인데 나도 그곳에 오라는 것이다. 하타 상 외에는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내가 가도 괜찮은 건지 살짝 망설여지긴 했지만, 하타 상은 그런 건 전혀 걱정하지 말라며 꼭 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다음날은 줄곧 비가 내렸다. 저녁 영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코끼리 공장에 가 보니, 단골 몇몇은 카페 뒷마무리를 도우며 자리를 옮길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의 등장에 하타 상이 다가와 그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모두 내게 잘 왔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인 단골들. 그들과 어울려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해둔 하타 상 단골 주점으로 이동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례차례 술과 안주가 나왔다. 그 주점은 하타 상이 대학 시절부터 다니던 곳으로, 허름한 실내와는 달리 싸고 맛있는 안주가 일품이라 했다. 과연, 앞에 놓인 안주들 모두 먹음직스러웠다. 커다란 소주병이 테이블을 오가며 첫 만남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흥에 겨워 연거푸 잔을 기울였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교토를 찾았지만, 교토는 갈 때마다 새로운 얼굴로 나를 맞이해 준다. 때로는 노신사 같은 인자한 얼굴일 때도 있고, 때로는 마이코舞妓 상의 걸음걸이만큼이나 새침한 얼굴일 때도 있지만, 그런 다양한 얼굴과 표정을 한 교토 중에서 나는 관서 지방 특유의 넉살 좋은 푸근한 교토를 가장 사랑한다.

웃음소리마저 형상화되어 눈에 보일 듯한 하타 상, 내가 자신과 동갑이라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하이파이브와 술잔을 권하던 동갑내기 친구,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소년 그리고 내게 꼭 교토에 와서 살라던 참기름 박사 부부 등 여행의 끝자락은 얼큰하게 취한 그날 밤처럼 또 그렇게 살가운 사람들의 온기로 깊어져 간다.


임윤정
『카페 오사카 ? 교토』
7월 여름밤, 복작복작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일어일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작은 광고 회사에서 조감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모 기업의 웹 매거진에 여행과 문화에 관한 글을 쓰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가 들었다던 ‘먼 북소리’가 내 귓가에서도 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북소리에 이끌려 1년 간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단순히 눈으로 훑어 취재한 정보가 아닌 경험과 추억으로 무장한 『카페 오사카 ? 교토』에는 마음에 드는 카페에 몇 번씩 찾아가고, 그곳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고 추억을 만들며 건져 올린 따뜻한 이야기가 가득 숨쉬고 있다.
오사카 ? 고베 ? 나라 ? 교토
편집부 저 | 시공사
가만히 거닐다

전소연 저 | 북노마드
일본에 먹으러 가자!

까날 저 | 니들북
인조이 오사카

최영민 저 | 넥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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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오사카 ·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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