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어느 날 무엇이 젊은 베르테르를 죽였는지 알게 되었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의 경험은 이제 하나도 색다를 것 없으면서도 또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우리의 보편적인 수수께끼인데 그 수수께끼는 젊음의 암호이기도 하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가끔 고전을 읽다가 곤혹스러울 때가 있는데 나의 경우 이를테면 로렌스의 경우 아무리 생각해봐도 『채털리 부인의 연인』보다는 『무지개』가, 토마스 하디의 경우 『테스』보다는 『이름 없는 주드』가, 괴테의 경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보다는 『이탈리아 기행』이나 『파우스트』가 좋으니 아무리 뛰어난 명작이라도 무엇이 더 많은 인기를 끌게 되는지 가늠키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전에 대해 더 극단적으로 나가보자면, 나의 경우 제인 에어를 만나기 전의 로체스터의 삶이 제인 에어를 만난 후의 삶보다 아직도 훨씬 더 궁금하며, 내가 웬디라면, 우리들의 엄마가 돼달라는, 키스도 할 줄 모르는, 밤마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피터 팬 옆에 단 하루라도 붙어 있었을까 의심스러우며(사실은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내가 요 모양 요 꼴로 불멸의 여인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나라면 쇠고랑을 달고서도 피아노를 치는 거친 남자 후크의 내면과 자아에 반드시 호기심을 품을 것 같으니 거기에 기대할 수밖에),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가 28년 몇 개월이 흐른 뒤에 꼭 고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는지, 내가 로빈슨 크루소라면 답답한 마음에 금화라도 던져보거나 타로점이라도 쳐보고 싶어 했을 것 같다(다행히 세계적인 석학인 미셀 투르니에도 나 같은 고민 끝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지었다는 것을 알고 씩 웃으며 허겁지겁 읽어 봤었다. 그 글은 읽고 봤더니 대단히 충격적이고 세계사적인 사건이라 할 만한 글이었다). 그리고 에스메랄다를 갖고 싶어 눈까지 지옥불처럼 빨개지던 『노트르담의 꼽추』의 끌로드 부주교가 인간적으로 그렇게 나쁜 놈인지 매번 고민이 되는데, 이렇게 시작하는 시가 있다.

성범죄로 기소된
델라웨어의 국회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마이크를 향해 똑바로 그 일을 또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크다고


인용된 글은 토니 호글랜드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의 앞 첫 연인데 얼마 전에 닉 혼비가 『닉 혼비 런던 스타일 책읽기』란 책에서 소개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딱 여기까지만 읽고 다음 연을 읽을 때까지 잠시 쉬어야 했는데, 왜냐하면 논란을 일으키는 행동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줄 지어 마이크 앞에 서서ㅡ마릴린 먼로와 존 F. 케네디, 돈 콜레오네, 히틀러, OJ 심슨, 소말리아 해적까지도 눈앞에 지나갔다ㅡ사실은 그 일을 또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크다고 고백을 하고, 그때 세계사는 뒤죽박죽 주물럭주물럭 밀가루 반죽 덩어리가 되었다가 입자 물리학이 제시하는 바로 그 세계관, 질서라는 표면 아래 이글이글 우글우글 잠복한 카오스 그 자체의 세계로 직선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줄 지어 우리가 누구를 소환해야 할까?

신부의 몸으로 집시 소녀를 사랑한 끌로드 부주교? - 그 일을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큽니다.
도박에 빠졌던 도스토예프스키? - 그 일을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큽니다.
부적절한 사랑을 한 클린턴? - 그 일을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큽니다.
이라크전을 일으킨 부시? - 그 일을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큽니다.
그렇다면 사랑에 절망해 권총 자살해 버린 베르테르라면? - 그 일을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사실 내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이유는, 우리들이 우수와 몽상 속에서 상상하듯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과연 너무나 갈망하는 여인과의, 지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그만 이승의 삶을 거둬버리는 청년(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죽어서 피맺힌 울음을 토해내는, 가슴털이 붉은 한 마리 새가 되고픈)에 대한 글일까, 자꾸만 다른 생각이 들어서다.

나의 여자 베르테르 시절 이야기를 하자면, 그 출발은 이렇게 될 것 같다. 에스프레소 커피의 소용돌이가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내 몸이 별에서 합성된 원소들로 이뤄졌단 생각과 내 꿈이 오로지 북극성의 장력의 영향만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언제고 고향의 청보리밭과, 기품 있게 드넓은 논과, 우물 옆에 파와 사루비아, 맨드라미, 수국, 제비꽃이 자라던 아기자기한 작은 마당과, 오래전에 나의 집안 할머니가 지팡이를 꽂아놓고 떠난 뒤 그 지팡이가 자손을 지키는 신령한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나무가 자라는 언덕과, 망둥어 낚시꾼이 몰려들던 개천과, 어느 해 살았던 집의 포도나무 우거진 마당과, 그 포도나무에서 후두둑 떨어지던 쐐기와, 잉어가 놀던 연못과, 그 잉어에게 폐백용 오징어나 리본을 단 갈비를 뜯어 먹이던 동생과, 화분에 물을 주고 9시 뉴스를 보고 일찍 잠들던 아빠와, 자기의 만년필로 멋진 필체를 뽐내며 일기를 쓰던 엄마와, 고무장갑과 빗자루, 연탄과 공책을 팔던 구멍가게와, 그리고 그 가게에서 쭉 이어지던 신작로가 산 너머에서 둥글게, 마치 커피 잔의 소용돌이처럼 휘어지며 서서히 아득하게 사라져 가던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감정은 마치 커피의 색깔이 그런 것처럼 ‘매혹’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남들이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는 동안, 우리 엄마는 「산 너머 남쪽에는」을 불렀고 나는 「오버 더 신작로」를 생각했다. 그 신작로를 따라 무작정 걷다가 길을 잃고, 갓 쓰고 비취색 도포 입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 수 년 뒤 밤에 고이 잠든 부모 몰래 거실의 책장 앞에 서서 책을 고를 때, 언제나 선량한 나의 공모자, 나의 오빠는 손전등으로 나의 책과 나를 비춰 줬었다. 그때 조금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와 책장이 날렸던가? 많은 날들 그랬던 것 같다. 그 창문 너머로 나를 둘러싼 사물들이 다 같이 윙크를 날리며 이렇게 수런수런 소곤댔었다. “가야 해. 뭔가 있어.”

세 번 두드려야 열리는 문, 구석구석 사람의 피를 바르는 6미터 높이의 기둥을 만드는 고무나무, 첫 생리 후 2주간 격리되어 절대로 우유를 마시면 안 되는 소녀들이 살던 오두막, 첫 생리를 한 소녀가 누에고치처럼 누워 있어야 했다는 해먹.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통과의례에 관한 것들이었고, 근사하고 잔인하고 요란한 성년식이 없는 우리들은, 찬란한 사춘기의 밤마다 나름대로 소녀들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전쟁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눈부신 어른이 되는 것. 내 삶이 변화하는 동안 세계도 내 맘 같이 변하는 것이 초현실주의적인 꿈이란 걸 그때는 전혀 몰랐었다.

우리의 젊은 베르테르도 한가로운 날, 세상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확대경 유리를 들고 나에게 보여준 것은 도취된 사랑과 우수 어린 깊이도 있었지만 또 다른 것도 있었다.

그것은 1771년 6월에 시작된 일이었다. 우리의 베르테르는 여관집 아주머니가 포도주와 맥주와 커피를 따라주는 곳, 무엇보다 좋은 것은 두 그루의 보리수나무가 활짝 펼친 나뭇가지로 교회 앞 조그만 광장을 뒤덮고, 그 조그만 광장을 다시 농가들과 창고들, 뜰들이 에워싸고 있는 점인, 바로 그곳에서 작은 테이블과 의잘 하나 내다 놓고서 커피를 마시며 호메로스를 읽곤 했었다. 그때 그는 좁은 생의 테두리 안에서 고요하게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겨울이 온다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말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날 그는 작은 무도회에 초청을 받았다. 일행 중 하나가 그에게 경고했다.

“당신은 아름다운 아가씨를 알게 될 거예요. 조심해야 할 거예요.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왜냐하면 그녀는 약혼한 몸이니까요.”

그는 그 말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본 아가씨의 첫 모습은 이러했다. 팔과 가슴에 핑크빛 리본을 달고 소박한 모양의 흰옷을 입고 중키에 자태가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가씨를 두 살에서 열한 살 사이의 어린애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 빵 하나를 들고 어린아이들에게 빵을 떼어주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로테였다. 마차를 타고 갈 때 나눈 그 둘의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는 순식간에 몽유병자처럼 로테에게 정신이 팔려 버렸고 그녀와 춤을 한바탕 추고 나서는 “내 평생 그렇게 춤을 잘 춰 본 적은 없어.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여인을 안고 주변의 모든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번개처럼 이리저리 휙휙 날아다니다니…… 나는 때가 낮인지 밤인지 구분 못하고 온 세상이 사라져 버린 것 같다고 느꼈어.”라고 말한다.

그 첫 만남 이후에 로테를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동안 그의 일상은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졌고 그의 감성은 팽창했다. 여관집 정원에서 완두콩을 직접 따서 완두콩의 심줄을 제거하는 사이사이에 호메로스를 읽고, 조그만 부엌에서 직접 냄비를 골라 완두를 불 위에 얹고 그 옆에 앉아 가끔씩 저어주는, 그런 평범한 한 끼의 식사 준비에서도 오비디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의 간 큰 구혼자들이 황소와 돼지를 잡아 칼로 저며 불에 굽던 광경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마당의 양배추를 먹으면서도 자기가 직접 키운 양배추를 식탁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의 소박하고도 무해한 기쁨을 느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좋은 날들, 양배추를 심던 그 화창했던 아침과 양배추에 물을 주던 그 부드럽던 저녁, 그리고 양배추가 자라는 것을 보며 기뻐했던 날들,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여태껏 이렇게 행복해 본 적이 없다네.’라고 고백을 하는 동안 조그만 돌맹이, 어린 풀 잎사귀에 이르기까지 그의 민감한 감각 안에서 아름다움으로 휘감기지 않은 것은 없었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이유,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을 자야 하는 이유! 오로지 로테에게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 ‘아! 오늘은 그녀를 만날 거야!’ 태양을 바라보며 이렇게 외치고 나면 그날 하루는 다른 소망 없이 모든 것이 그녀를 만난다는 한 가지 기대 속으로만 얽혀 들어가는 그런 나날들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모임에서 그녀의 이름이 언급될 때면 내가 얼마나 멍청한 바보가 되는지 자넨 보아야 할 걸세. 특히, 누군가가 내게 그녀를 좋아하느냐고 물을 때면 더욱 그렇다네. 좋아하냐고! 나는 이 말이 죽도록 싫다네. 도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이 모든 감각과 느낌이 그녀에게로 쏠리지 않고서 로테를 그냥 좋아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건드리거나 식탁 밑에서 우리의 발이 우연히 서로 마주치면 아, 마치 나의 핏줄 사이로 전기가 흐르는 것 같다네. 나의 모든 감각이 현기증을 느끼지.”

흠모하는 이의 가벼운 뿌리침 한 번만으로도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되는, 너무나 가련하고 나약한 몸뚱어리가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 관능 그 자체였던, 그런 어린 날을 알고 있는 우리는 아직도 이 문장의 그 수줍고 질긴, 통제불능 관능에 엄지발가락부터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순진무구한 사랑은 평온함을 대가로 요구하고, 몰두하는 사람은 반드시 우울해지나니, 그는 서서히 고뇌에 빠진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기 시작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할 때는 우리가 그냥 행복한 망상 속에서 춤추게 놔둘 때이다.”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내 자신이 소중해졌네. 그녀가 날 사랑하게 된 뒤로 나는 내 자신을 숭배하게 되었네.” 이렇게 들떠 있던 그에게 마침내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졌으니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토가 돌아온 것이다. 베르테르는 떠날 결심을 하고 “우리가 자신을 잃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씁쓸한 탄식을 한다. 그는 차라리 가파른 산에 올라 길이 없는 숲 속을 헤치며 앞으로 나가다가 덤불에 스쳐 상처를 입거나 가시에 찔려 살갗을 찢기는 걸 기쁨으로 알고 은자의 쓸쓸한 독방, 거친 털옷, 가시 허리띠만이 자기 몫이라고 느끼지만 결국 로테 곁을 떠난다. 도시로 나간 그는 추밀 고문관-공사를 목표로 삼아 멋진 인생행로를 펼칠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또 B양이란 사랑스러운 아가씨를 사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위에 대한 욕심으로 서로 남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 격식을 차리는 데나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지쳐버린다. 그는 오비디우스가 훌륭한 인품의 돼지치기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는 장면을 읽거나 “한 귀한 혈통의 말이 너무 지치도록 달려서 체력의 고갈이 극에 달하면 본능적으로 핏줄을 물어뜯어 스스로 숨통을 틔운다는 거야. 나도 그렇게 핏줄을 열어 내 자신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고 싶다네.” 같은 내용의 어쩐지 앞날을 예견하는 듯한 불길한 편지를 친구에게 띄운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모든 생활을 접고 유랑의 길을 떠나는데 어느 날 고향의 보리수나무 앞에 어린 날 그랬던 것처럼 서 본다. 미지의 세계를 그리워하며 그 세계에 가면 목마름에 시달리는 가슴을 채워줄 영양분과 기쁨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던 그때는 얼마나 천진난만했던가, 그는 비애감에 젖어 이런 글을 쓴다.

“내가 아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으니, 내가 유일하게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이 가슴뿐일세.” 그리고 결국 이미 결혼한 로테 곁으로 돌아온다. 로테 곁에 돌아온 그는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이 구멍, 여기 이 가슴에 만져지는 이 끔찍한 구멍이여! 나는 자꾸만 이렇게 생각해본다네. 그녀를 단 한번만 이 가슴에 안아볼 수 있다면, 이 구멍은 완전히 다 메워질 것이다.”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결정적으로 베르테르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절의 베르테르에 관해선 이런 문장이 생각난다.

“인간은 즐거움을 가져야 한다. 인간이 즐거움을 가지지 못할 때 그에게는 다른 인간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한 연인을 끔찍이 사랑할 수도 있고, 연인을 안을 수도 있고, 연인을 성찰하거나 별처럼 매일매일 관찰하거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거나 연인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밤이고 낮이고 물을 수 있지만, 연인을 유일한 해결책이나 전지전능한 인생의 목표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 연인들은 획득 가능한 사물이 아니라 늘 살아있는 현재고, 늘 새로워지는 기억이고, 오른쪽, 왼쪽을 가리키는 방향등이고, 강 너머 저쪽이라기보다는 강에 걸린 다리고, 언제나 두 갈래인 길이고, 수많은 주석이 달린 텍스트고 읽을 때마다 뉘앙스가 다른 한 권의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베르테르는 그렇게 좋아하던 호메로스 대신 오시안을 읽는다.

“오시안이 내 마음속에서 호메로스를 내쫓았네. 창백한 달빛이 비치는 자욱한 안개 속 조상들의 혼령을 이끌어가는 귓가에 윙윙대는 폭풍 소릴 들으며 황야를 가로질러 가노라. 고귀하게 전사한 애인의 이끼로 뒤덮인 네 개의 비석 주위에는 숨이 넘어가도록 슬퍼하는 소녀들의 통곡소리, 그 음유 시인은 어디에 있는가? 핑갈의 그 훌륭한 아들은? 그의 발자국은 내 무덤을 지나가리라, 그는 이 지상에서 나를 헛되이 찾으리라. 나는 당장 고귀한 전사처럼 나의 칼을 뽑아 나의 영웅을 오랫동안 서서히 죽어가는 생의 미칠 듯한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리라.”

오시안에 대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지은이인 괴테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시안은 우리를 지구의 끝까지 유혹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끝없이 펼쳐진 무서운 벌판 위에서 이끼 낀 묘비들 아래를 거닐면서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주변의 풀밭과 구름이 무겁게 덮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달빛에 의해 칼레도니아의 밤은 환해졌다. 사라져 간 영웅들과 전성기를 지난 소녀들이 우리 주위에 떠돌았고 우리는 마침내 무시무시한 모습을 단 로다의 망령을 실제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충족되지 않는 열정에 괴로워하고 외부로부터 가치 있는 행동으로의 자극을 전혀 받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무의미한 시민적 삶을 견지해야 한다는 전망밖에는 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은 불만을 품고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싫어지면 마음대로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생각과 친숙해졌으며 그럼으로써 하루하루의 불만과 권태를 간신히 견뎌나갔다. 이런 분위기가 보편화되어 있었으므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큰 효과를 일으켰다. 이 작품은 어디서나 마음을 울리고 병든 젊은이의 망상의 내면을 노골적으로 알기 쉽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열광한 사람들은) 뜻 깊은 삶을 활동적으로 이끌고 위대한 제국이나 지유를 위해 일생을 보내고 그들의 사상이 현세에서 사라져서 저 세상에서까지 추구하려 해도 나쁘게 여겨지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의 지극한 평화로운 상태에 살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요구로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이다.”

괴테의 마지막 끝 문장 네 줄은 올림픽이나 프리미어리그, 갈라쇼 말고는 특별히 열광할 일이 없으면서도, “어떤 예술가도 현실을 용납하지 못한다.”라고 니체가 말한 바 마치 예술가처럼 세상이 절대적으로 순결하지 않고 내가 꿈꾸는 모습과 완벽한 일치를 보이지 않아서 고통스러워 죽을 지경이라고 말하는 우리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그래서 나는 베르테르에 관한 한 이보다 더 적절한 문장을 찾지 못하겠다(사실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 문장이다).

“이 위대한 사람은 단지 자신의 열정, 자신의 자유의지만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사실은) 보편적인 것이었으며, 이것이 그의 페이소스이다.” 그러므로 베르테르는 어느 시대에서나 ‘우리 시대의 가장 적합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슬픈 사랑에 관한 한, 나는 괴테의 다른 말을 더 좋아한다. 괴테는 어느 날 스피노자를 알게 되고 그를 진실로 좋아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스피노자에겐 ‘사심 없는 정신’이란 게 있어서 그렇단 것이다. 그 결과 스피노자는 “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신이 자신을 사랑하기를 원해서는 안 된다.”라고 쓰기에 이르렀고 이 말은 괴테의 온 사고를 가득 채워 그는 스피노자식으로 인생을 설계했다. “사랑과 우정에 있어서 가장 사심 없어지는 것이 나의 최대의 욕구이며 원리이며 실천이었다.” 그래서 훗날 괴테는 사랑에 관해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해도 그것이 네게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런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역시 아름다운 책이다. 괴테 시절에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란 책이 나왔는데 내용은 황폐해진 베르테르가 죽음을 준비할 때, 현명한 정신과 의사가 총알 대신 닭의 피가 채워진 권총을 베르테르의 손에 밀어 넣어 줌으로써 더러운 소동이 벌어졌으나 다행히도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로테는 베르테르의 아내가 되고 대체로 사건은 만족적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 책에 어이없어 하던 괴테는 조용히 복수를 하는데 아예 베르테르 이야기 전체를 한바탕 희곡으로 바꿔 써 본 것이다. 베르테르는 닭의 피 덕분에 살아남은 게 좀 나쁜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는 살아남기는 했는데 총으로 자신의 눈을 쏘았던 것이다. 닭의 피로 공격을 받은 그는 시력을 잃었고 이제 로테의 남편이 되고도 베르테르는 그녀를 볼 수 없어서 다시 한 번 깊은 절망에 빠진다.

베르테르의 경험은 이제 하나도 색다를 것 없으면서도 또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우리의 보편적인 수수께끼인데 그 수수께끼는 젊음의 암호이기도 하다. 이 암호는 ‘순결한 자의식을 가진, 여러모로 아직도 젊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무기력과 권태에 빠져들지 않으면서(나는 권태의 본질은 고통에도 행복 못지않게 무감각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고유성을 이 세상에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에 관한 암호가 될 것이다. 동시에 베르테르의 이야기는 자신이 어디에 놓이면 행복할지 알고 있지만 그 자리를 갖지 못했던 인간의 이야기고,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깊이를 갖고 싶어 했던 낭만적인 인간의 이야기고, 자기가 사랑한 아름다움을 위해 치명적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계속 사랑하려 했던 인간의 이야기다. 『처녀들, 자살하다』란 책에서는 기어이 최선을 다해 자살해버린 네 명의 처녀들을 알고 있는 젊은이가 자살이라고는 한번도 꿈꿔 본 적이 없는 아가씨들과 허리를 끌어안고 밤새 춤을 추고 돌아오는 새벽녘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장면이 늘 여러모로 쓸쓸하다.

지금은 새벽 세 시다. 부드러운 베개가 너무나 그리운 시간이다. 그래서 “베르테르, 당신 그 일을 또다시 하고 싶은 거야?”라고 묻는 마이크 앞에 세우기 전에 한 문장만 읽어주고 그도 재워주고 나도 자고 싶다.

“내 영혼의 위대한 여행에 비추어볼 때 당신은 그림자 혹은 미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두 눈은 내가 가끔 들러 물을 떠 마시는 옹달샘, 당신 유방 사이의 갈라진 틈은 내가 잠시 눈 붙였다가 깨어나는 부드러운 베개, 나를 땅에 묶어 놓으려 하지 마십시오. 위대한 수수께끼는 당신의 허리춤이나 커다란 눈 속에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양팔은 너무 작고 허약하여 나의 온 영혼을 담지 못합니다. 저기 하늘의 별들 위에는 나를 잡아당기는 천상의 자석이 있습니다. 그 자석은 커다란 향수와 엄청난 동경 덕분에 그 장력을 유지합니다. 별들 위에 있는 천상의 누군가가 나를 잡아당깁니다. 나를 땅에 묶어 놓으려 하지 마십시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사랑보다 높고 인생의 즐거움보다 고귀합니다.”

- 카잔차키스, 「뱀과 백합」 중에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7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볼프강폰 괴테> 저/<박찬기> 역7,200원(10% + 5%)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 청년 괴테의 대표작 청춘의 열병,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상징이 된 이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최초의 독일소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필연인 것일까?” 괴테는 25세 되던 해 봄, 이미 약혼자가 있었던 샤로테 부프를 사..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