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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변화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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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의문을 풀기 위한 많은 탐구 작업은 기원origin에 대한 연구량을 늘렸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괄목할 성과를 보인 것이 바로 『종의 기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라는 것이, 단순히 3차원의 공간좌표 외에도 시간이라는 잣대가 작용하는지라 우리의 인식은 우리가 겪은 시간 안에 한정되곤 합니다. 인류는 그 한계를 넘기 위해 기록을 통해 역사를 만들었고, 점술 같은 미래를 향한 시도도 해보았습니다. 타임머신 같이 실제 시간을 뛰어넘는 기술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특히 과거와 기원을 연구하는 방식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더듬어 가기에 매우 유용한 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존재의 의문을 풀기 위한 많은 탐구 작업은 기원origin에 대한 연구량을 늘렸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괄목할 성과를 보인 것이 바로 『종의 기원』입니다. 진화론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인류는 단순히 생물학에서의 발상 전환뿐 아니라 인간이 구성하고 있는 사회와 학문 전 분야에서 새로운 사고의 계기를 맞았습니다.

‘종의 기원’에서 ‘종’이란 한자로 ‘種’자를 쓰며, 영어로는 ‘spices’라고 쓰는 생물학 용어입니다. 아마 정규교육 생물학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종속과목강문계’라고 불리는 생물 분류표에 들어 있는 일종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종’이라는 개념의 기원을 탐색한 이 책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분석하고 분류하는 기법을 사용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조의 흐름을 먼저 더듬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연재했던 <다시 보고 싶은 책>에서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언급(☞ 보러 가기)했는데, 그 말미에서 합리론과 경험론의 발전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중 영국 경험론은 존재하는 사건과 현상으로부터 진리를 추론해 내는 귀납적 방식을 강조했고, 이는 주요 자연과학의 기초적 접근 방식이 됩니다.

자연상에 널려 있는 사건과 현상은 분류와 구분을 통해 체계화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흩어져 있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이면의 법칙을 찾아냅니다. 이 작업을 처음 체계화한 것이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였고, 린네에 의해 생물을 분류하면서 발견해 낸 일련의 법칙을 통해 인간은 ‘종’이라는 분류의 특징과 그 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갖기 시작합니다.

『종의 기원』은 바로 이러한 지식배경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흩어진 현상을 주체가 알아보기 쉽게 분류하고, 기준을 세워 구분하는 것을 통해 인류는 세계의 이면에서 돌아가는 나름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종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저자 찰스 다윈은 박물학자이자 생물학자로, 애초에 전공을 분류학으로 삼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존에 구축된 생물 분류 체계를 공부했고, 새로운 생물의 발견과 분류를 위해 군함 비글 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섬이라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섬을 찾았다가 신기한 특징들을 발견해 냅니다. 거기서부터 힌트를 얻은 다윈은 애초에 종의 분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냅니다.

『종의 기원』 제1장 제목은 ‘사육 재배하의 변이’입니다. 다윈은 종들이 변화하고 새로운 종이 생겨나는 지점 중 가장 찾기 쉬운 지점, 인간의 생물 재배를 먼저 건드립니다. 실제로 인간과 함께 사는 동물들의 종은 정말 다양하고 놀랍습니다. 당장 애완동물이자 반려동물인 개는 크기와 털 모양부터 시작해서 정말 천차만별의 종들이 나타나 있는 상태입니다. 이는 고양이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 닭 같은 동물의 경우에는 매일같이 병아리가 되지도 않는 무정란을 낳는 종도 나타났습니다. 벼나 밀 같은 곡물의 경우, 야생종은 현재의 개량종에 비해 이삭의 낱알 수가 1/5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인간과 함께 사는 종들은 대개 인간에게 걸맞은 형태로 변화, 분화되어 왔습니다.

다윈은 이러한 생물의 변화에 개입한 인간의 손길로부터 변화의 원인을 찾아냅니다. 아마도 인간은 인간에게 유리한 특성을 가진 종들을 더욱 번식시켰을 것입니다. 수정 없이도 매일 알을 낳는 닭을 ?러 마리 키운다면 달걀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으니 당연히 그런 닭을 위주로 개체수를 늘리는 작업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특정 조건에 맞는 종은 그 개체수와 생존력을 보장받게 됩니다.

이는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의 손을 타는 것보다는 느리지만, 결국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종들이 ‘자연’이라는 선택의 손에 의해 분류되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자연은 인간만큼의 속도와 의지는 아니지만 분명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그 자연의 조건에 맞는 특질을 가진 종들은 자연 상태하에서 번식과 생존의 폭을 넓혀 새로운 주종이 됩니다. 바로 이 논리가 자연 선택설이라는 다윈 진화론의 핵심 개념이 됩니다.

『종의 기원』은 요약하면 이렇게 단순한 논리가 될 수 있는 주제를 자연과학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과 자세를 총동원한 논리로 풀어냅니다. 다윈은 생물의 자연선택이 자연조건에 의해 걸러진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군과 대조군을 비교하고, 일반상황과 특수상황에서의 동일 조건을 다루며, 표본조사에 의해 세워진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샘플을 조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설이 포함하는 오류들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기까지 합니다.

『종의 기원』이 갖는 학문적 가치는 바로 이러한 점입니다. 『종의 기원』은 현대 수준까지의 과학철학이 아닌 시대에 집필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과학하는 자세’의 모범답안이 무엇인지를 책 전체에서 실천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서적입니다. 아직까지도 진화론은 특히 종교 쪽에 의해 끝없이 오해에 가까운 공격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고 성실한 과학의 자세로 세워진 튼실한 기초 덕분에 한 번도 근본까지 흔들리지 않은 채 꾸준히 스스로 진화에 의해 거듭나고 있습니다.

찰스 다윈
(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
다윈의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단지 생물학에만 머무르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발견을 통해 사람들은 사건과 현상이 시간 내에 그저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한평생에 100년이 채 안 되는 인간의 시간 인지 범위를 넘어선 변화가 지구상에 존재했고, 그리고 모든 사물과 현상이 그 법칙에 기대지 않는 곳이 없다는 발견은 인식의 대전환을 불러옵니다. 다윈의 발견 이후에는 심지어 영원할 것 같았던 지구의 대륙마저도 움직여 왔고 또 움직이고 있다는 대륙이동설이 발견되었고, 인간과 인간 집단 사이에서도 서로 빚어내는 갈등과 경쟁을 통해 선택적인 문명의 흥망이 이루어져 왔다는 새로운 역사관도 시작되었습니다. 또, 모든 종이 이러한 경쟁에 의해 결국 최적자만 살아남는다는 방법론에 기대어 인류 스스로가 우월성과 열등성을 각자 가지고 있다는 편견에 의해 인간 우생학이 나치에 의해 오용되기도 했고, 이러한 흐름은 후일 자민족중심주의, 민족제일주의, 스킨헤드나 KKK 같은 사회적 현상의 원인이 되기까지도 합니다.

그렇기에 생물학도가 아닌 일반인이 교양서로 『종의 기원』을 읽을 때는 이러한 사상사 전반에서의 변화 흐름에 보다 집중해서 읽는 것이 교양 목적의 독서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사실 『종의 기원』이 다루는 주제는 그다지 흥미로운 주제까지는 가기 어려우며, 게다가 사용하는 용어나 텍스트의 구성 또한 지루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생물학에 기초 지식이 없는 상황이라면 정말 헤맬 수도 있는 좀 어지러운 텍스트들이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쉬엄쉬엄 스킵하면서 ‘진화’라는 개념을 보다 거시적으로 바라본다면 인류 사상의 흐름에 한 획을 그은 놀라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종의 기원』으로부터 시작된 진화론은 유명한 일화처럼 애초 발표시점부터 격렬한 논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논박과 ??박, 오랜 토론 끝에 진화론은 스스로의 모습까지도 조금씩 진화시키며 현재까지 생물의 기원을 말하는 가장 강대한 논거로서 살아남았고, 그 스스로의 생존을 통해 오히려 진화론의 거시적 의미 자체를 부각시키는 기능까지도 수행해 왔습니다. 생물학 고전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현상과 사물이 인간이 인지하기 어려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흥망한다는 거시적 진리의 개념으로 접근할 때 『종의 기원』은 보다 풍부한 의미를 담는 책입니다. 올해가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이자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입니다. 사방에서 다윈과 진화론에 관련된 기념행사들도 많으니 한번쯤 되새겨볼 만한 시즌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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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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