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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대부분의 철학사 관련 개설서, 교과서에서 근대 인식론의 시초로 꼽는 책이 『방법서설』이고, 철학서 치고는 그 흐름이나 내용도 크게 어렵지 않은 수준입니다.
철학이 뭐냐고 물었을 때 들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지식에 대한 탐구’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현상 자체를 탐구하고, 거기서부터 지식이란 무엇인지를 이끌어내고, 그 지식을 더욱 지혜롭게 만들기 위한 방법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마도 철학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식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개념은 심하게 뜬구름을 잡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우선 지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할뿐더러, 결국 철학도 지식의 한 갈래인데 지식으로 지식을 다룬다는 것이 마치 망치로 망치를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순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근대라고 불리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 철학에서도 근대철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책 한 권이 등장합니다. 앞서 말한 뜬구름식의 이야기를 최대한 배제하고, 정말 명백한 지식을 알고 습득하는 방법을 소개하기 위해, 그것도 대중 전반에 알리기 위해 라틴어 대신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쓴(당시 대부분의 지식서적은 라틴어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목표했던 명백한 지식을 탐구하는 길을 안내하는 효과 외에도, 철학사적으로 새로운 사조를 열어젖혔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까지도 철학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입니다.
『방법서설』이란 제목 그대로 책은 방법을 소개합니다. 그 방법이란, 명확한 진리를 찾고자 하는 탐구자가 써야 하는 탐구 방법, 일종의 노하우입니다. 진리를 명확하게 탐구하는 방법이 책으로 나온 이유는, 당대의 지식이 그만큼 명백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방법서설』이 출간되던 1637년의 유럽은 올바른 과학적 방법론이 절실했던 시기였습니다. 완전히 중세 초기처럼 암흑의 시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합리적 사고가 도입된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아직까지 당대 학문과 인식의 주류는 종교철학에 기반한 사유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아랍에서 넘어온 과학기술과 르네상스로 인해 재발견된 고대 그리스의 수학적 지식과 같은 새로운 학문적 방법론들에 의해 큰 도전을 맞던 시기였습니다.
재미있는 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이 금창약 개념입니다. 연금술의 일파로 분류되는 이 기술은 전쟁에서 얻은 상처를 치료하는 방식 중 하나인데, 예를 들어 한 병사가 칼에 베어 상처를 입은 경우, 상처가 아닌 ‘찌른 칼’에 약을 바르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상처를 준 무기 자체에 약이 영향을 주어 입힌 모든 상처를 치료한다는 개념입니다. 이런 개념들이 매우 당연하게 통용되던 시대가 그 시대였습니다.
『방법서설』은 그래서 데카르트의 개인적 노작이라기보다는, 종교와 과학이 인식론을 두고 대립했던 시기에 일종의 정리자로서 등장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입니다. 화학과 연금술이 대립하고, 철학과 미신이 마주했던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방법서설』은 합리성이라는 흐름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맡은 책이었습니다.
데카르트가 진리를 사고하기 위해 생각하는 방식의 기초는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이었습니다. 수학과 기하는 모두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로부터 또 다른 사실을 이끌어 내는, 이른바 연역적 추리의 방식을 사용합니다. ‘1 1=2’라는 자명한 전제로부터 시작되는 수학은 단순 사칙연산으로부터 시작해서 방정식, 함수, 기하공식, 제곱과 제곱근, 미분과 적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엄밀한 공식들을 개발해 내며 과학의 한 축을 담당해 왔습니다.
이런 수학적인 연역 방식이 일상의 사고에서도 적용 가능하리라 믿은 데카르트는 이를 위해 수학과 마찬가지로 가장 엄밀하고 의심받을 수 없는 사고를 찾아낸다면, 그 사고로부터 연역을 통해 ?리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고 중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100% 진실인 사고 하나를 찾기 위해 그가 먼저 꺼내 든 개념은 판단 중지입니다.
명증된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일상에서의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중지된 상태에서 우선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진리를 찾기 위해 모든 것에 대한 회의만을 거듭하는 것이 그 첫 단추입니다. 이를 가리켜 ‘방법론적 회의’라고 하는데, 고대 그리스의 회의와 달리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는 회의 자체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절대 진리를 찾기 위한 도구로서의 회의에 무게를 둡니다.
데카르트는 스스로 이 방법을 통해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완벽한 명제를 찾아내는데, 이것이 바로 ‘회의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라는 점입니다. 유명한 ‘코기토 COGITO ERGO SUM’의 의미이기도 한 이 구절은, 결국 모든 판단을 중지한 채 자명한 사실이 무엇인지를 사고하는 자아 자신의 존재 여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부정할 수 없다는, ‘나는 존재한다’라는 인식론의 출발점이 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사조에서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지점이 됩니다. 중세의 철학에서 주체는 신이었습니다. 진리는 신의 뜻, 신이 구현한 세상이었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 또는 철학자는 단지 현상을 인식하는 인식자였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개념부터는 인식론의 근본이 달라집니다. 이제 진리는 주체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것을 회의하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확정된 진리이고, 주체는 이를 기점으로 하여 모든 탐구를 시작합니다. 인식의 출발점은 주체이고, 주체가 스스로의 존재를 먼저 인식한 뒤에 세계와 신이 따라오는, 순서의 병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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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저/<이현복> 역12,600원(10% + 5%)
데카르트의 초기사상을 엿볼 수 있는 철학서. 정신지도 규칙과 데카르트의 철학적 사유방법으로서의 방법 서설 등이 설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