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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에 카메라 여섯 대의 무게가 실렸다

흔히 취재 현장은 생물(生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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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처럼 수시로 변하고 의외의 상황이 많이 펼쳐진다는 뜻이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취재를 통해 이 말을 그 어느 때보다 실감할 수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8시 뉴스> 편집 때문에 늦은 퇴근을 한 후 종일 흐른 땀 때문에 짠내 가득한 몸을 씻고 있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샤워기의 물살을 뚫고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몸을 대충 닦고 부리나케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회사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리나?” 전화기 넘어 들려온 데스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택시를 타면 20분 내로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단기선교를 하던 중 탈레반에게 납치되었다 풀려난 샘물교회 신도들을 취재하기 위해 나는 두바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이미 스물세 명의 선교단 중 배형규 목사를 포함한 두 명이 살해된 상황으로,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취재를 안전상의 이유로 금지시켰다. 그렇다면 과연 취재는 가능하기는 할까?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검은 구름처럼 선교단의 목숨도, 취재도 어둡기만 한 상황이다.

흔히 취재 현장은 생물(生物)이라고 한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처럼 수시로 변하고 의외의 상황이 많이 펼쳐진다는 뜻이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취재를 통해 이 말을 그 어느 때보다 실감할 수 있었다.

취재가 금지될 것이라던 걱정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공동 취재단이 구성되면 정부가 카불에 있는 선교단원들에 대한 직접적인 취재를 허용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회사와 수차례 통화하면서 카불에 들어간다 만다를 반복했다. 타사 카메라기자들은 두바이에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외교부가 우리만 들여보내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예상도 빗나갔다. 공동 취재단이 카불에 들어가 풀려난 피랍자들과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정됐고, 그 중에 내가 여섯 개 방송사(SBS, KBS, MBC, YTN, MBN, KTV)의 영상 취재 대표로 들어가게 됐다. 갑작스레 내 어깨 위에 ENG 카메라 여섯 대의 무게가 실리게 된 것이다. 숙소에서 급하게 집을 꾸려 아프가니스탄 비자를 받기 위해 두바이의 아프가니스탄 영사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KBS, MBC, 연합, 한겨레 등 타사 기자들을 만나 함께 비자 신청을 했다. 세 시간이 넘게 기다린 끝에 비자를 발급받은 우리는 다음날 새벽 비행기로 함께 카불에 들어가기로 했다.

현지 시간 8월 31일 새벽, 두바이 국제공항 제2터미널. 샌드위치로 간단한 식사를 한 공동 취재단 일곱 명은 6시 40분 카불행 아프가니스탄 국적기에 탑승했다. 비행기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아프가니스탄의 황량한 민둥산을 보면서 카불에서의 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현장에서 어떤 그림을 찍어야 할까? 뉴스 시간에 맞춰 기자회견 취재 및 촬영, 그리고 송출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다급한 경우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까? 머릿속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예상 스토리보드를 계속 그리고 있었다.

두 시간여의 긴장된 비행 끝에 드디어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출입문을 나서는데 코끝으로 맵싸한 포연이 느껴졌다.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 공항의 군 출입문 입구에서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해 다섯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카불에서 전쟁은 그렇게 현재 진행형이었다.


카불에 도착하기 전에는 석방된 피랍자 열아홉 명 전체가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고 외교부가 약속했으나 공동 취재단에 끼지 못한 타 언론사의 압력이 거세 결국 피랍자 두 명만 인터뷰하는 간담회 형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간담회 장소인 호텔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췌한 모습의 피랍자 유경식 씨와 서명화 씨가 나타났다. 유경식 씨는 수염을 깎지 않아 실제보다 나이가 훨씬 많이 들어보였고, 가냘픈 모습의 서명화 씨는 얼굴 가득 두려움이 실려 있었다. 현지 시간으로 오전 11시쯤 시작된 기자간담회는 취재단의 예상보다 훨씬 밀도가 높았다. 유경식 씨는 납치 경위와 피랍 후 생활 등을 조근조근 설명해 그 동안 국내에서 증폭된 궁금증과 소문의 진상을 풀어주었고, 서명화 씨는 납치되어 있는 동안 자신의 흰색 바지 안쪽에 몰래 기록한 일지를 공개했다. 그러다 보니 테이프는 처음 예상보다 20분이나 많은 50분 이상을 돌려야 했고 그만큼 영상 송출 시간에 압박을 받게 되었다. 송출 시간은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한 시간이 잡혀 있었는데 12시 반이 지나서야 간신히 방송 3사쟀 기자 스탠드업과 오디오 녹음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게다가 외교부가 석방 당시의 모습을 찍었다는 6mm 테이프를 찾지 못해 호텔에서 조금 더 지체해야만 했다.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위성 송출 포인트인 터키 통신사 IHA로 출발할 수 있었다. 보내야 할 영상은 내가 찍은 원본과 외교부의 6mm 테이프 촬영분을 포함해 한 시간 반에 가까운 분량이었지만 송출 시간은 한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어 마음은 점점 다급해져만 갔다. 그 와중에 서울에서 기자 오디오에 문제가 있다는 연락이 오고, KBS 두바이 특파원이 기사가 바뀌었다며 스탠드업을 다시 촬영해야 한다고 달려왔을 때는 긴장감에 혀가 바싹 마를 정도였다. 다행히 즉석에서 송출 시간을 30분 늘렸고 몇몇 부분은 뛰어넘는 방식으로 2시 30분(한국 시간 오후 7시)에야 가까스로 송출을 완료했다. 뉴스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가 보내줬다는 김밥을 먹으며 잠시 한숨을 돌렸다. 이제 풀려난 피랍자들과 함께 두바이로 돌아갈 때까지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됐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카불에서의 정말 위급한 상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호텔 정문 앞에서 석방된 피랍자들이 버스에 탑승해 카불 국제공항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곧이어 우리도 뒤를 따라 공항으로 가려 하는데 호텔에 우리를 태울 차량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나와 오디오맨만 남겨놓고 모두 출발해버린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이 워낙 다급하게 피랍자와 취재진을 이동시키느라 촬영을 하고 있는 우리를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잠시 동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때마침 호텔 앞에는 수많은 외신기자들이 석방된 피랍자들을 태운 버스를 쫓아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무작정 눈앞에 보이는 차량을 세워 “에어포트!”라고 외쳤다. 차를 세운 외신기자는 나를 슬쩍 훑어보더니 오른손에 들려 있는 ENG 카메라를 확인하고는 승차를 허락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연신 “땡큐!”를 외쳤다.

외신기자들의 취재 열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버스를 대여섯 대의 외신차량이 쫓아가면서 6mm 카메라를 계속 들이댔다. 그들에게 과속은 기본이었으며, 급커브에 역주행까지 하면서 아슬아슬 다른 차들과 사람들을 비껴가는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방불케 했다. 그렇게 위험하게 달려가는 상황에서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차량 밖으로 몸을 반 이상 내밀고 촬영을 하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 와중에도 난 어떻게든 공항에 도착만 하면 별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순진한 생각에 불과했다. 석방된 피랍자와 우리 측 사람들을 태운 두바이행 비행기가 UN 특별기여서 UN 관할구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허가된 차량만 출입이 가능했다. 카불 국제공항 앞에 도착해 이미 정문 바리케이드를 통과한 한국 기자단과 합류하려 했으나 달랑 ENG 카메라만 들고 있던 나는 경찰들에 의해 출입을 제지당했다. 그들에게 “코리안 저널리스트!”라고 외쳐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바리케이드를 통과하기 위해 계속 밀어붙이자 여러 명의 경찰들이 나를 둘러싸고 총을 들이대며 뒤로 물러설 것을 요구했다. “철컥 철컥.” 기관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폭탄이 터지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본능적?로 몇 걸음 뒤캷 물러선 후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여권도 비행기 티켓 때문에 외교부 직원에게 넘겨준 데다 지갑마저 없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돌아가지 못하고 카불의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동 취재의 책임을 맡은 기자로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피랍자들을 끝까지 촬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낭패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바로 그때,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 측 외교부 직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우리를 통과시키기 위해 경찰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최대한 간절한 모습을 보이는 것뿐이었다. 외교부 직원이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경찰과 실랑이를 한참 한 후 가까스로 통과를 허락받았다.

드디어 UN 특별기가 카불 국제공항을 이륙했다. 그제야 굳은 표정으로 사지를 떠나는 열아홉 명의 석방된 피랍자들의 얼굴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긴장과 안도,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였던 그들의 눈빛. 카메라를 쥐고 있는 내 심정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행기 창밖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의 황량한 민둥산들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 주용진

※ 운영자가 알립니다.
<그때 카메라가 내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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