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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사막의 모래폭풍

한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최종 예선전을 취재하기 위해 도착한 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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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코란, 사막의 낙타, 오아시스, 열사의 땅, 우리를 능가하는 백의민족(남자들은 흰 옷만 입고 다닌다.), 눈만 드러낸 여자들. 대표하는 모든 단어가 신비로운 곳,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최종 예선전을 취재하기 위해 도착한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과 코란, 사막의 낙타, 오아시스, 열사의 땅, 우리를 능가하는 백의민족(남자들은 흰 옷만 입고 다닌다.), 눈만 드러낸 여자들. 대표하는 모든 단어가 신비로운 곳, 사우디아라비아. 중동 진출이 한창일 때는 연 15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이곳에 상주했다는데, 현재는 2천 명 정도만 체류를 하고 있단다. 알고 보니 이곳은 북한 가기보다 어려운 나라다. 초청장이 없으면 입국이 불가능하단다. 참 가기 힘든 그곳을 축구가 인연이 되어 2005년 원정 경기에 이어 이번 최종 예선전 때도 다녀왔다.


24년 만에 치러진 지난 경기의 경험이 있어, 나름 취재보다는 촬영한 화면을 어떻게 시간 내에 송출할 수 있을지에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첫날부터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리야드 공항에 도착해보니 여섯 개의 짐 중 두 개가 오지 않았다. 차라리 개인 짐이었다면 나으련만 송출 장비가 들어 있는 짐과 트라이포드가 없는 것이다. 짐은 저녁 비행기로 올 수도 있고 못 올 수도 있다. 잠시 후면 카타르에서 평가전을 마친 대표팀이 도착해 몸 풀기 훈련을 시작한다. 이 그림을 어떻게 해서든 한국으로 보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경기 때 승리에 취한 사우디 응원팀의 광기 어린 모습이 떠오르며 이 나라에 대한 험담만 더해간다. “꼬리 꼬리(코리아 코리아).” 하며 비아냥거리는 손짓을 하며 우리가 탄 차를 뒤엎을 듯 과격했던 그들. 결국 아침 뉴스로 내보내야 할 화면을 사우디 현지에서 보내지 못하고 말았다.


사우디를 떠날 때까지 장비가 안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다행히 다음날 아침 공항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는 저녁 뉴스를 위해 촬영한 화면을 인터넷을 통해 한국으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느려터진 이곳 인터넷이 사람 여럿 잡을 모양이다. 모뎀을 쓰던 시절보다 속도가 더 느리니 정말 답답할 지경이다. 원본을 편집해 열한 개 파일로 나누어 전체 길이 2분가량의 파일을 올리는 데 무려 아홉 시간이나 걸렸다. 중간에 인터넷이 끊기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눈이 벌겋도록 노트북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종교적인 제재가 강하고 사람들이 즐길 만한 문화도 별로 없고 예배 의식인 쌀라 외에 여럿이 모일 수가 없는 이곳에서 운동경기, 특히 축구경기는 이들에게 해방구나 다름없다. 지난 대회 때의 담맘 스타디움과 이번 경기가 치러진 킹파드 스타디움은 흰색 물결 그 자체다. 경기장엔 오로지 남자들만 들어올 수 있다. 응원 도구는 녹색 깃발 외에는 별다른 게 없지만 광적인 그들의 박수 응원과 함성은 상대의 기를 압도한다. 지난번에는 붉은 악마 여자 응원단이 몇 명 함께 왔는데 막판까지 사우디 측에서 입장을 시켜주지 않아 애를 태우다 겨우 응원단에 합류할 수 있었다.


경기가 열린 날, 이번엔 현지에 거주하는 우리 여성 교민들도 얼굴을 가린 검은색의 아바야라는 그곳 여성들의 옷을 입고 응원에 나섰다. 흰색 물결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우리 축구 대표팀은 19년간 이겨보지 못한 앙갚음이라도 하듯 사막의 모래폭풍을 잠재우며 완승을 거뒀다. 사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걱정도 있었다. 자기네 팀이 이겼을 때도 광란에 가까웠는데 지면 얼마나 오죽할까 싶었다. 운동장을 빠져나와 세 시간 후에 출발할 서울행 비행기를 제대로 탈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경기가 그들의 패배 쪽으로 기울어가자 힘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흰 물결을 보며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평안함도 잠시, 시련은 또 찾아왔다. 경기가 끝나고 운동장에서 이뤄지는 감독과 선수들의 인터뷰를 중계해주기로 했던 사우디 방송사가 경기가 끝나자 중계를 끊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감독 인터뷰 하나라도 비행기를 타기 전에 송출해야 했다. 그런데 경기장 프레스 룸에서마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다. 정말 난감하다. 결국 우리가 묵던 게스트 하우스로 달려갔다. 6초짜리 인터뷰 화면을 거실에 있는 컴퓨터로 올리며 주인아주머니에게 신신당부했다. “이거 끊기나 안 끊기나 봐주세요. 끊기면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됩니다.” 비행기를 타야만 하기에 내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파일이 무사히 올라갔다는 주인아주머니의 밝은 목소리가 전해졌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면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편히 잠들 수 있었다.

| 조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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