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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로부터 버림받은 도시를 가다

내 평생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처참한 장면들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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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관통하는 좁은 강이 있는데, 들이닥친 물길이 물러가며 교각에 기다란 나무들이 연이어 걸렸다. 차곡차곡 켜켜이 쌓여가는 건물더미들. 그 위에 아체인들의 시체가 휩쓸려 있다.

살면서 뜻하지 않게 목도한 사건이 평생을 두고 뇌 한켠에서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차치하고라도 단지 그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져 버리는 것이다. 사건을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우리 직업은 언제나 사건의 중심에서 관찰자로 머물러 있는 것인데, 누군가 나에게 혹은 우리 직업에 대해 작은 관심이라도 보일라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펼쳐 보이는 나만의 이야기보따리는 늘 하나였던 것 같다. 천일야화는 아니지만 나는 그 하나에게 무척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잔인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그릇된 떠벌리기다. 내가 매일 그림을 찍어대지만 이런 건 그림이 아니다.

불과 얼마 안 되는 시간을 기점으로 세상이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사망자에 대한 정확한 집계도 애매하다. 한 도시의 인구 3분의 1이 하루아침에 명을 달리했다. 바다에 인접해 바다를 터전 삼아 삶을 꾸려가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땅과 물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나버린 그곳,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2004년 12월 26일, 진도 8.9의 강진으로 발생한 쓰나미(지진해일)의 영향을 온몸으로 맞닥뜨린 곳이다.

나는 대재앙의 거대한 공동묘지로 향했다. 12월 29일, 출장 명령이 떨어졌다. 쓰나미 발생 2, 3일 후였지만 내게는 해일만큼 갑작스러운 명령이었다. 애써 감추려 했지만 긴장한 빛이 역력했고 어깨는 출렁였다. 많은 시간이 주어지진 않았다. 필요한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필요 장비만을 챙겨본다. 송출기, 위성전화기, 충전기 등. 모든 게 방송 위주의 식단 같다. 일행의 안전에 대한 준비는 늘 뒷전이고 사치다.


난 카메라만을 믿는다. 카메라는 배신한 적이 없다. 일단 움직이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며 재빨리 이동해야 한다. 현장에서의 우리는 전투에서의 야전사령관과 닮아 있다면 과장일까. 우리 직업이 약간은 무모하게 보일 때가 있고 가끔은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니 말이다. 천생 부나방이다. 무엇이 나를 이다지도 용감하게 만들어 가는지 모르겠다. 어깨에 카메라를 들쳐매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샘솟는 용기. 사실 보도에 대한 의무인가, 아니면 그 어떤 소명인가? 모를 일이다.

끔직했다. 도시는 참담했던 상흔을 간직한 채 쓰러져 있었다. 해안가로부터 2킬로미터까지의 모든 건물들이 파도에 휩쓸려 무너져버렸다. 도저히 걸어서는 해안가에 다다르지 못할 것 같았다. 어디가 길이었던가. 고도 35미터 이하의 모든 건축물들이 물에 휩쓸렸다. 10만 명이 넘는 영혼이 물에 휩쓸려 바다로 갔거나, 이 폐허에 묻혔거나, 그것도 아니면 여기저기에 그냥 보인다. 과연 내가 이곳을 제대로 취재해 보도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제아무리 좋은 화면인들 이곳의 아픔을 전하기에는 애당초 불가능해 보였고, 제아무리 뉴스인들 사실 보도라는 명목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방송한다는 건, 턱도 없다.

내 평생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처참한 장면들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도시를 관통하는 좁은 강이 있는데, 들이닥친 물길이 물러가며 교각에 기다란 나무들이 연이어 걸렸다. 차곡차곡 켜켜이 쌓여가는 건물더미들. 그 위에 아체인들의 시체가 휩쓸려 있다. 아마도 지독한 시체 썩는 냄새와 넋을 잃고 바라보는 아체인이 없었다? 내가 그걸 그리 쉽게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족히 이삼백여 구는 되어 보였다. 충격적이었다. 촬영을 했던가? 기억도 모호하다. 분명 찍었던 것 같은데, 찍어야만 할 것 같았는데, 제정신이었는지가 아리송하다. 왜 방치해두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경찰서 유치장에, 병원에, 건물 더미 속에, 그리고 길가에 널브러진 시신들을 생각해보니 강가의 그들이 언제 구조의 대기표를 받을지는 아득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 같았다. 매일 쏟아지는 시신들은 신원 확인 절차도 생략한 채 서둘러 매장된다. 전염병에 대한 우려도 있고, 무더운 날씨에 부패가 심해 확인이 어렵다고 한다. 아울러 지인들이 모두 함께 죽은 이도 많다는데, 그 불쌍한 영혼에 대한 통곡과 애도는 어느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지, 죽은 자도 산 자도 서로가 원망스러울 상황이다.

사실 이번 쓰나미는 인도네시아 아체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아체는 중심 도시이고 피해가 집중되어 있어 돋보일 뿐, 아체 이남의 모든 해안가 마을이 초토화되었다. 구조도 구호도 요원한 작은 마을들. 비행기 안에서 인도네시아 여성과 결혼한 한국인을 만나 들은 얘기로는, 처갓집 식구 50여 명에 대한 생사여부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단다. 도로는 끊겨 접근이 불가능해 헬리콥터를 알아보고 있다는데 비관적이라고 한다. 슬픔을 넘어선 담담함에 가슴이 아팠다.


아체에 숙소라고 할 만한 곳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처음 이틀은 숙소도 잡지 못해 차에서 보냈다. 더위를 피하자니 모기가 괴롭히고, 씻는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래도 호사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바나나잎에 쌓여 있는 도시락을 구입해 차에 싣고 다니며 끼니를 때우곤 했는데, 예상을 넘어선 취재 환경에 지치고 예민해질 무렵 <민박>이라는 그 간단한 여행의 ABC를 생각해냈다. 다행히 주민들은 해외 취재진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접이 우리로 하여금 막무가내식의 취재 준비를 관행으로 만들어온 건 아닌지.

대낮의 긴장과 피로에 지친 심신을 뉘여 느긋이 인도양의 파도 소리에 귀기울인 밤. 길고 고요함 밤이었다. 밖에 나가본들 반기는 이도 있을 리 만무하고, 제아무리 길가의 시신들이 일상으로 다가온다 한들 감히 나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저 쥐 죽은 듯 내일의 태양을 기다릴 즈음, 태어나 처음 지진의 생경함을 체험했다. 호러 영화를 봤을 때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차디찬 오싹함과 비슷하다. 너무 당황해 잠결에 벌떡 일어나니 어둠 속에서 현지 가이드가 발을 툭 치며 그냥 누워 자라고 한다. 나름의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야외에서 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마저도 나를 소심하게 볼 게 뻔한 남들 이목에 무관심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간밤의 여진은 진도 6에 가까웠다는데, 간담이 서늘하다.

지구로부터 버림받은 듯한 도시의 처절한 절규와 세상을 관통하는 비명을 들었다. 모든 희망은 희생자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묻혀버린 곳. 자포자기의 기운이 너무 만연해 회복 가능성이 의심스러워 보이는 땅. 난 그곳을 5일 만에 빠져나왔다. 더 이상 뉴스로서의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부나방이 달려들 이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2월 26일 아침. 죽음의 파도 앞에선 아체인들도 비몽사몽했을 것이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나 역시 긴장의 끈을 놓으니 피곤이 덮치며 몽롱해진다. 그런 나를 역행하며 가는 기다란 구호물자의 트럭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갈 때처럼 두렵지 않았다. 각국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피해민들에게 커다란 힘을 주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고통을 딛고 일어설 아체인과 함께 비를 맞을 각오로 사지를 방문하는 것이다. 인류애의 쓰나미가 일고 있었다.

| 임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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