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칼럼에 소개된 모든 서점은 직접 다녀온 실제로 존재하는 뉴욕의 서점입니다. 그러나 구성된 이야기는 픽션으로 혼동 없으시길 바랍니다. 칼럼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소설을 쓰기 전까지 꾸며진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책을 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영화를 보든가, 굳이 책을 사야 한다면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사는 게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문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었고 수학과 물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기본 원칙이라고 믿었다. 무엇이 나를 홀리게 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기들이 결혼을 하고 안정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이에 나는 이렇게 뉴욕의 서점을 방황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도서관을 태우다』라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라지만 그것보다 뭔가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서점에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결국엔 내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걸 꺼내볼 용기가 없어서 서점을 뒤지는 것은 아닐까?
희귀 도서의 가치는 무엇인가?
레프트 뱅크 서점(Left Bank Books)
중고 서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최근에 출판되고, 다른 사람의 손에 쥐여졌다가 주인의 손을 떠나 가게로 흘러들어온 책을 파는 곳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고 서점으로 소설을 위주로 다양한 책을 반 가격 정도에 살 수가 있다. 또 하나는 희귀 중고 서적(Rare & Used)을 파는 가게로 초판본이나 사인본의 책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이 두 가지를 겸하고 있는 중고 서점이 대부분이지만 서점 나름대로 중심을 두는 것이 있다. 레프트 뱅크 서점은 이중에도 희귀 중고 서점, 그중에서도 문학 초판본을 다룬다.
| 레프트 뱅크 서점 쇼윈도에 있는 초판 희귀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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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처음 웨스트 빌리지의 뱅크 스트릿에 원래 주인인 아서 페리에(Arthur Farrier)가 문을 열 당시 곳곳에 중고 서점이 있었단다. 그러나 현재로는 남아있는 유일한 중고 서점이다. 그는 초기 사진, 예술, 영화 위주의 책을 다루었고, 2005년 헤르징거(Herzinger) 씨가 가게를 인수하면서 문학 위주의 희귀 중고 서적도 함께 겸하게 된다. 영문학 교수로 반세기 이상 지낸 그가 희귀 문학 서점을 열었다는 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나는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등의 초판을 보물로 여기는 이유에 대해 물어 보았다.
“작가가 처음 책을 출판했을 때, 만졌던 그대로의 책이라고 생각해봐. 초판의 가치는 거기에서 출발하는 거지. 게다가 초판이 재판보다 비싼 건 아니잖아. 그런데 초판을 사서 갖고 있으면 가격은 재판보다 훨씬 오르게 되지. 또,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이나 연예인들이 그 책을 갖고 있었다고 하면 가격은 더 올라. 그런 것이 책 수집가들이 이런 작은 사점을 찾는 이유야……. 어디 처박혀져 있는 보물이 없나 싶어서. 뭐, 돈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작가의 초판본을 간직한다는 건 북러버들의 가장 기본적인 책 사랑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하드커버가 출판되고 그다음 페이퍼백이 출판되는 시스템도 아니라 초판본의 가치가 그만큼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모든 것의 가치는 그것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달라진다. 그러므로 그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만큼 가격은 높아지겠지. 웨스트 빌리지의 뱅크 스트릿에 쓰러져 가는 비좁은 이 서점이 살아남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걸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책을 찾고 있지?”
주인장이 두꺼운 안경을 매만지며 물어 보았다.
“책이 아니라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나는 북 원더러(Book Wanderer)의 명함을 건넨다. 그리고 며칠 전에 이런 명함을 건넨 동양인 아가씨가 있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본 것 같기도 하고, 보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요즘엔 내가 몇 살인지도 가물가물하거든.”
일주일 정도가 지났는데도 그레이스는 집으로 오지 않았다. 로버트에게 물론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미래에서 온(혹은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뿐만이 아니라 먼저 한 명 더 있었다고 말이다. 그레이스는 아예 우리 집에서 같이 머물며 미래에 가지고 갈 책을 찾으러 다녔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혹시 그레이스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느냐고 묻자, 로버트는 자기도 그녀가 누군지 궁금하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때 나는 둘 중 한 명은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아니면 둘 다 정신이상이거나, 내가 정신이상이거나. 로버트는 헤어질 때 100달러짜리 지폐를 두 장 손에 쥐여 주었다. 소설은 꼭 써야 한다고.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반드시 전화를 해 달라고…….
뉴욕 도서관에서 잠시 잠에 빠졌을 때, 꿈에서 본 소설 원고를 기억해 가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문단이라도 제대로 된 글을 써본 지가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한동안은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이 너무 형편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그것마저 지긋지긋해졌던 것이다. 돈은 떨어지고 원고 마감 날은 지나버렸다. 여자 친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빽빽이 적은 메일을 보낸 뒤로는 연락을 뚝 끊어 버렸다. 메신저에도 보이지 않는다. 줄띄움 하나 없는 메일이라 다시 읽어봐도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자 친구는 나에게 ‘실망’했으며, 더 이상 기다리기도 지쳤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곳에 어떤 ‘여자’가 있는지는 몰라도 더 이상 감출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아마 그 ‘여자’는 그레이스를 말하는 것 같았다. 메신저에서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뭔가 해명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지만 당장 무슨 내용을 써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멍하니 거실 벽만 바라볼 뿐이었다. 뉴욕 맨하탄에 있는 서점을 색깔별로 표시해 놓은 지도 말이다.
그렇다. 그레이스가 사라지기 직전에 어떤 서점을 방문했는지 안다면 혹시 그녀의 행방을 추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레이스가 방문한 곳은 내가 방문한 곳과는 다른 색으로 날짜가 기입되어 있었다. 그녀가 사라지기 직전에 방문한 곳은 주로 웨스트 빌리지의 서점들이었다. 나는 그녀가 무척 걱정되었다.
매그놀리아 컵케이크를 방문한다면 이곳에도 들르자
바이오그래피 북샵(Biography Bookshop)
전기나 자서전, 그리고 회고록(Memoir) 장르의 책을 전문으로 한다지만, 딱히 전문서점이라기보다는 동네 주민을 위한 서점에 가깝다. 야외에는 할인 도서를 팔고 있고, 삼사십 평 되는 가게 안에 거의 모든 종류의 책들이 구색을 갖추고 있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서점들은 바로 이런 작은 동네 서점이다. 아마도, 웨스트 빌리지의 한 귀퉁이에 아직까지는 대형서점이 들어서지 않아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일 수도 있고, 관광객보다는 주민들이 많은 동네라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쉽기 때문에 아직까지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끈질기게 이 서점이 살아남은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다들 너무 바쁘게 일하고 있어서 구체적으로 물어볼 엄두를 못 냈다. 그레이스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길 건너편의 매그놀리아 컵케이크 가게에 줄을 서 있는 관광객들이 한번은 이곳에 찾아와 할인 도서라도 한 권 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컵케이크는 달기만 하고 살이 찔 뿐이다. 마음의 양식으로 살을 찌우는 건 책만 한 것이 없으니까.
| Biography Bookshop 400 Bleeck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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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빌리지는 맨하탄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젊고 소박한 지역이다. NYU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높은 빌딩들이 즐비한 다운타운과 미드타운의 중간에서 숨 쉴 틈을 주는 곳이다. 길가에 번잡한 가게들과 자동차들이 있다가도 한 블록만 들어가면 한적한 타운하우스 주택가가 있다. 지금은 그런 집들마저 가격이 비싸지만 예전엔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살기도 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관광지가 아닌 본토박이 뉴요커들을 위한 작은 레스토랑과 바, 가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이오 그래피 북샵을 지나 사선으로 주욱 남쪽으로 나 있는 블리커 스트릿을 걸어 내려오면서 거리 중간 중간에 거의 숨어 있는 가게들을 많이 발견하였다. 다음 찾아갈 서점도 주택가에 숨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손님의 취향을 파악하는 정성
쓰리 라이브즈 & 컴패니
굉장히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붉은 벽돌의 건물은 1840년대에 지어졌다고 했다. 정말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겨운 느낌도 살아 있다. 주위에 눈에 띄는 음식점도, 가게도 없는 곳에 이런 코너에 작은 서점이 있다니 관광객들은 쉽게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동네 주민들이 절대로 알려주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서점이었다. 이 근처를 수십 번도 들락거렸을 법한데 도무지 서점을 본 기억이 없었다. 정확한 주소와 인쇄된 지도를 봐 가며 찾아갔을 때, 떡 하니 서점이 자리 잡고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 쓰리 라이브즈 앤 컴패니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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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분명,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기 위해 위장술을 쓰는 서점일 거야.’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삐거덕거리는 마룻바닥과 원목으로 된 책장, 전통적인 초록색 독서등으로 가득 채워진 서점 안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의 거실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아늑하다. 대부분의 손님은 관광객이 아니라 근처에 사는 주민으로 보였다. 친근하고 점원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를 보고 점원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제이미라는 청년이다.
“어떤 책을 찾고 있어?”
“글쎄…… 날 보면 딱,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생각나지 않아?”
제이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책을 한 번 찾아본단다. 그가 이곳에서 하는 일 중 가장 자신 있는 것이 책 추천하기란다. 그런데 가끔 가다가 “제 아들이 보라색을 좋아하는데 생일선물로 좋은 책은 어떤 것일까요?” 같은 곤혹스러운 질문도 받는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상상력을 총동원에서 책을 골라주지만 “요즘 웃긴 책은 어떤 것이죠?”라는 질문을 받으면 정말 난감하단다.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웃긴 책이 있기 때문이라나.
그는 책 하나를 건넨다. 수키 킴의
『번역자Interpreter』)다. 뉴욕에서 사는 한국인 2세가 쓴 흥미진진한 소설이라고 한다.
"이상한 사람은 만나지 않아? 서점에서 일하면 말이야."
"아, 많이 만나지. 가령 작년 크리스마스 날, 여기 건너편의 바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술이 깨기 위해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씩 사갔어. 술 한 잔 마시고 쉬는 시간에 다시 돌아와서 계속 책을 사갔지. 다음 날 아침에 자기가 산 책들을 보고 좀 당황스러웠을 거야. 그리고 연말에 한 중년 여자가 책을 한가득 사서ㅡ서른 권은 넘었을 거야ㅡ택시를 잡아 가더군. 나는 신참이라 잘 몰랐는데 일 년에 꼭 두세 번은 들르곤 하는 단골이래. 우리한테는 산타클로스나 다름없었지."
"낭독회를 하기엔 좁지 않아?"
"가끔씩 해. 여기 중간 매대를 좀 치우고 말이야……. 사람들이 북적거리면 문을 살짝 닫을 수밖에 없을 정도야. 이 동네에 사는 작가들이 꽤 많아. 단골손님 중에 퓰리처 문학상을 받은 마이클 커닝햄도 있는걸?"
이곳에서 낭독을 한 수많은 작가리스트를 보니 내가 좋아하는 데이빗 리빗, 에이미 햄펠, 레이먼드 카버도 있다. 이런 작은 서점에 가히 역대 스타작가들이 총 출동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서가에는 주로 최근에 주목받는 문학이 주욱 진열되어 있다. 한편에는 여행 관련 서적, 요리와 역사책도 마련되어 있다. 물론 컴퓨터나 경제 관련 책, 길거리에서 파는 잡지는 보이지 않는다.
| 쓰리 라이브즈 앤 컴패니 서점에 산책하러 온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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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주인과 함께 서점으로 산책을 나온 개가 보였다. 다른 서점 같았으면 개는 출입 금지였겠지만 제이미는 서랍에서 개가 먹는 쿠키를 하나 던져준다. 점점 테마파크화 되는 뉴욕에도 아직도 웨스트 빌리지가 있고, 이런 서점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기쁘다. 지금까지 잘 숨겨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너무 많이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나는 그레이스에 대해 물어봤다.
“아, 기억나지. 처음엔 관광객이 길을 잃은 줄 알았다니까. 서가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가 버렸어. 좀 이상한 여자이긴 했는데…… 누구야? 네 걸프렌드야?”
그레이스가 쓰리 라이브즈 앤 컴패니 서점에서 뒤진 것이 뭔지는 나도 안다. 분명 『도서관을 태우다』의 원고 일부일 것이다. 그녀는 내가 그 원고를 보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앞으로 쓸 소설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행적을 따르면서 왠지 그런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이런 게 아니었을까? 나를 다른 서점에 방문하게 해 놓고는 자신이 어떤 서점에 돌아다니며 원고를 수집하고, 불에 태워버린다. 내가 방문하는 서점은 원고를 찾을 수 없는 서점이고 그녀가 간 곳은 원고가 있거나 있을 가능성이 높은 서점이다. 만약 그렇다면 왜 그녀는 내가 미리 원고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미리 보면 원고를 더 쓰기 쉬워질 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레이스는 내가 소설을 절대로 완성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맥주 한잔이 마시고 싶어졌다. 웨스트 빌리지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맥주 바 블라인드 타이거가 가까이에 있다. 술집으로 가는 길에 블랏닉 서점이 보였다. 예전에 한두 번 들렀던 곳인데 지나칠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빵이 구워져 나올 것 같은……
보니 슬랏닉 서점(Bonnie Slotnick Bookstore)
서점을 지키는 개 플러피가 죽었다는 소식을 홈페이지를 통해 들었다. 내가 처음 보니 슬랏닉 서점을 찾았을 때, 플러피는 뒷다리에 보조기구를 달고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다. 서점 입구에 플러피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스크린까지 쳐져 있어서 이곳이 서점인지 가정집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하기야, 서점 자체가 웨스트 빌리지의 타운 하우스 1층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계단을 올라가 1층 오른쪽 가정집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 보니 슬랏닉 서점의 플로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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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슬랏닉 서점은 요리 관련 희귀 서점이다. 원래 어퍼 이스트에 있는 요리 전문 서점인 키친 아트& 레터스에서 일하던 보니 씨가 이곳에 내려와 새로운 둥지를 열었다. 18세기 희귀 요리 도서부터 뉴욕 레스토랑과 음식 가이드, 이제는 사라진 요리법, 식사 에티켓, 가사 매뉴얼, 빵 굽기 책, 유태인 음식 책, 레스토랑 엽서, 핸드메이드 초대 엽서 등등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다.
| 보니 슬랏닉 서점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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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말이야…… 오래된 일본 요리책이 하나 있거든.”
내가 서점에서 두리번거리자 보니 할머니는 서가 한 귀퉁이에서 책을 찾아 준다. 아마 내가 일본 사람이라고 착각했나 보다. 할머니는 가게 한쪽에서 전화를 받아 조곤조곤히 이야기한다. 이제는 사라진 18세기 이탈리아 파스타 요리법에 관한 책을 찾아달라는 주문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우리나라에 고려시대에 어떤 음식이 있었는지에 대한 책이 있었던가 생각해 본다. 없다면 한번 만들어볼 만하지 않은가? 요리법은 기록되지 않는다면 사라져 버리기 쉬울 테니까. 플러피는 힘든 몸을 이끌고 내게 다가와 몸을 비빈다. 서가 한편에는 영화에서 나올 법한 오래된 요리 기구들도 놓여져 있어서 금방이라도 오븐에서 노릇노릇한 빵이 구워져 나올 것만 같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