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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놓친 특종 - 괌 여객기 추락사고
하늘이 내려준 특종을 눈앞에서 놓친 그 참담함이라니.
정말 그 기분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빠르게 송출하지 못한 아쉬움이 사건의 크기만큼이나 큰 무게로 남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만은 아니다.
“현지 기상 사정으로 비행기가 잠시 연착하오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축축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공항을 울리는 마이크 소리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다. 괌에서 일주일간의 휴가를 마친 나와 가족들은 새벽 2시에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한 번 울리는 공항의 안내 멘트. 이상하다. 직업의식에 따른 직감이랄까, 뭔가가 어색하다.
같이 휴가를 온 후배 기자의 얼굴을 봤다. 무언가 있다. 그때부터 우리는 몸에 배인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가지고 있던 가정용 8mm 카메라를 장전하고 오디오를 체크하면서 사방을 살폈다. 데스크 저쪽 기둥 뒤에 한 무리의 항공사 여직원들이 보였다. 슬며시 다가가 보니 울먹이는 모습,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보인다. 분명 무슨 사고가 난 것이 틀림없다. 후배 기자가 공항 스케치 촬영을 하는 동안 나는 괌 현지에 사는 매제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 본사로 사고 소식을 알려 달라고 전하고 사고 위치를 찾는 데 주력했다. 얼마 후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국인을 태운 우리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비극적인 사건이 슬픈 일임엔 틀림없지만, 그건 분명 최대의 기삿거리가 될 수 있었다. 그것도 전 세계적인 특종 말이다.
뒷목으로 찌르르 올라오는 묘한 느낌에 점점 흥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은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차량이 필요했다. 사고가 워낙 대형인 만큼 우리는 보다 더 능동적이고 침착해야 했다. 이 사고현장에 기자라고는 우리 둘뿐이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항공사에서 정해준 호텔로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있을 즈음 여동생 내외가 차를 가져왔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아니 하기도 싫었다. 우리는 가족들을 모두 태운 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사고현장을 찾아 주변 산 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얼마를 갔을까.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저쪽 산등성이에서 하얀 빛과 연기가 보이는 듯했다. 마음은 점점 더 급해지고 차량의 속도도 빨라졌다. 내리는 비에 불길이 사그라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를 잠깐 세웠다.
멀기는 하지만 현장을 한 컷이라도 찍어두자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마한 8mm 카메라를 들었다. 뷰파인더에 현장이 차츰 가까이 보이자 첫 장면을 촬영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빨리 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더 거세게 마음을 짓눌렀다. 우리는 다시 달렸다. 운전을 하는 매제도, 가족들도 불안한 모습이 역력하다. 살면서 아빠가 이렇게 서두르고 땀 흘리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인지 아이들 또한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얼마나 또 갔을까. 어느 고갯길에 차량 몇 대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들도 지금 막 도착한 듯 차량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등 부산스럽다. 무작정 뛰어가 어찌된 영문인지를 물어보니 한 교민이 누구냐고 되묻는다. 하긴 그때의 우리 복장은 비에 흠뻑 젖은 반바지에 티셔츠, 거기에 아이들까지 있어 영락없이 길 잃은 휴가객의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괌 한인회장이었고, 우리가 휴가 온 기자라고 신분증을 보여주니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어떻게 한국 기자가 벌써 왔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때 언덕 밑에서 군용차가 올라오고 군인들이 장비를 들고 뛰어오는 게 보였다. 무조건 찍었다. 한인회장이 첫 번째 구조대가 지금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조대보다 더 일찍 현장에 도착한 셈이다.
사고현장에 접근하기 위해 서둘렀다. 1차 통제선은 통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통제선이 나왔다. 한인회장이 우리를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를 더 가자 마지막 통제선이 나왔다. 이제 이곳만 지나면 저 아래 어딘가에 추락한 비행기가 보인다고 했다.
이런 행운이. 솔직히 슬픔이나 걱정은 뒷일이었다. 카메라를 잡은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 통제선을 지나 들어오는 구조대 및 관계자들을 촬영하는데 아까부터 깜빡이고 있던 배터리 표시등이 꺼져버렸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소리라도 막 지르고 싶었다. 무조건 카메라부터 구해야 했다. 베이스캠프에 있던 한인회 관계자들과 매제에게 카메라를 구해 달라고 사정했다. 그때 시간이 새벽 네다섯 시 사이, 내가 생각해도 황당했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사이 CNN, 괌 케이블 TV 등 외국 취재진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허탈했다. 우리가 그네들보다 30분 정도는 빨리 도착을 했는데 카메라가 없다니. 그때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방송용 카메라는 구할 수 없고 가정용 비디오 VHF 카메라는 두 대 빌릴 수 있단다. 천만다행이었다. 이젠 최대한 빨리 가져오는 게 급선무였다. 잠시 후 서둘러 카메라가 오고 다시 한번 현장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해봤지만 철저한 통제로 모든 출입이 제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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