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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맛]따뜻한 음식의 요리사 마리오 바탈리

바보Bab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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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Babbo는 맛과 따뜻함을 모두 지닌 식당이다. 부담스러운 기교가 없으면서 소박하지만 열정적으로 자신의 요리를 사람들에게 건네는 모습이 TV에서 보면서 상상했던 음식 맛을 그대로 보여주어 두 달간의 기다림도 모두 만족시켜 주었다.


음식을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요리사의 손끝을 보고 있으면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처럼 리듬을 타고 물 흐르듯 흘러 하나의 요리를 완성한다. 그런 요리를 하는 모습은 푸드 네트워크Food Network라는 미국의 유명한 음식 채널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데 이름 그대로 하루 종일 요리나 음식에 관련된 내용을 볼 수 있었다. 41번이라는 채널에 거의 항상 고정이 되어 여러 음식 이야기들을 보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무언가를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만히 감동이 벅차올라 나도 모르게 음식이 만들고 싶어졌다.

 

여러 가지 방송 중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아이언 셰프Iron Chef라는 프로였다. 원래 일본에서 제작되어 푸드 네트워크에서 자막 방송으로 방영되었던 것이 인기를 끌자 미국에서 아예 아이언 셰프 어메리카Iron Chef America를 제작하였다. 미국판도 일본판과 비슷한 구성으로 네 명의 미국을 대표하는 셰프가 아이언 셰프이고, 매 주 새로운 도전자가 한 셰프를 지정하여 한 시간 동안 요리 대결을 하는 내용인데 박진감 넘치는 구성과 신기한 요리법으로 무척 즐겨 보았었다. 네 명의 아이언 셰프 중 한명인 마리오 바탈리Mario Batali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타 셰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어색할 수 있는 ‘스타셰프’라는 것은 뛰어난 요리 솜씨를 가진 셰프가 연예인처럼 유명한 것을 말한다. 또한 TV활동이나 집필 등 사회 다방면으로 활동을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두바이의 권영민 셰프가 스타 셰프의 시작인 것 같다. 마리오 바탈리는 아이언 셰프뿐 아니라 개인 요리쇼 <몰토 마리오>를 몇 년 째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4~5여 권의 책을 냈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TV에서 처음 본 마리오 바탈리는 굉장히 체구가 크고 배가 나온 아저씨로, 항상 너무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시끌벅적한 말투로 이탈리아 요리를 하고 있어 마치 시칠리 동네 골목에서 작은 음식점의 주인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항상 이야기를 하면서 물 흐르듯 척척 썰고, 척척 볶아, 따끈하고 기분 좋아 보이는 음식을 만들어 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뉴욕에만 7군데로 제각각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모두 바탈리의 색이 묻어 있다는 것이다. 유명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이는 소탈한 웃음은 특히 그의 작은 레스토랑들―바보Babbo, 에스카Esca, 루파Lupa 등―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대표가 되는 음식점이 바보Babbo로 재미있게도 발음이 우리나라식으로 ‘바보’다. 이곳은 무척 인기가 많아 2달 이상 전에 예약을 해야만 겨우 갈 수 있는 곳으로, 몇 달 전부터 벼르고 별러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뉴욕을 대표하는 레스토랑 가이드 자갓Zagat의 인기 순위로는 4위지만 레스토랑 규모 때문인지 예약하기 어려운 걸로는 1위를 쉽게 차지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레스토랑 대부분은 예약이 되지 않더라도 가서 기다리면 자리가 난다. 예약을 하고 방문하지 않는 고객 때문에 직접 방문객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에서, 그것도 바보Babbo같이 항상 사람이 가득한 레스토랑에서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아예 받지를 않는다. 철저히 100% 예약제를 실시하여 직접 레스토랑을 찾아온 고객에게도 정중히 자리가 없으니 다음번에 예약을 하고 방문해달라고 부탁한다.

2층 테이블 모습. 1, 2층 모두 가운데 나무가 장식되어 있다.

바보Babbo는 웨스트 빌리지west village의 어지러운 골목 중에 한가한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데 명성에 비해 생각보다 작고, 입구 또한 아담하다. 한적한 동네에 위치해서 조그마한 불빛을 비추며 따뜻하게 서 있는 모습이 바탈리 같은 푸근함이 느껴졌다. 조용한 골목을 뒤로하고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갑자기 만원 지하철처럼 사람이 너무 많아 어떻게 ‘뚫고’ 들어가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시끌시끌한 사람들 사이로 겨우 내 테이블을 안내받아 한숨을 돌리자 친절해 보이는 웨이터가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들어오면서부터 빠진 기운을 내게 해주려고 하는지 채 주문하기도 전에 아뮤즈 부쉬amuse bouche와 빵을 내어 주었다.

amuse bouche - Chickpea Pesto Bruschetta 칙피 페스토 부르스케타

아뮤즈 부쉬는 영어로 ‘웰컴 디쉬welcome dish’라는 뜻으로 원래는 단골들에게 식전에 서비스하는 요리사의 작은 성의에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으로 바보Babbo에서는 칙피 페스토 부르스케타Chickpea Pesto Bruschetta를 주었다. 올리브와 허브의 담담하고도 친근한 맛이 기교란 볼 수 없게 접시 위에 털털하게 담겨 있어, TV에서 보여주었던 바탈리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

Sour dough bread and extra virgin olive oil 빵과 올리브 오일

러스틱하게 구워 나온 사워도우는 속은 촉촉하고 겉은 조금 탄 듯이 익어, 몰캉한 빵 속만 골라 올리브 오일을 찍어먹기에 그만인데, 그 올리브 오일 맛이 정말 기가 막혔다. 올리브 오일은 다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기름을 추출하고, 또 몇 번째 추출하였는지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좋은 올리브 오일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extra virgin olive oil이라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좋은 것일수록 향이 푸르고 점도가 높으며, 혀에 감기는 맛이 탁월하다. 요즘 사람들은 올리브 오일이 건강에 좋다고 모든 요리에 사용하는데, 정제되지 않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은 발연점이 낮아 볶음이나 튀김 요리에 쓰기에는 좋지 못할뿐더러 본래의 맛과 향이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올리브 오일은 담백한 빵에 찍어 그 자체의 맛을 즐기며 먹는 편이 좋다. 올리브 오일과 담담한 빵의 조화는 서로의 장점을 가장 살려주는 최고의 만남 중 하나일 것이다.

빵과 올리브 오일 맛만으로도 음식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웨이터에게 메뉴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실패하지 않으려면 웨이터에게 시그네처 디쉬signature dish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그만 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것조차 어렵다면 코스 메뉴로 시키는 것도 그 레스토랑을 안전하게 맛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Grilled Octopus with “borlotti marinati” and spicy limoncello vinaigrette
그릴에 구운 문어 다리

문어는 보통 일본 요리를 제외하고는 쉽게 볼 수 없는 재료인데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바보Babbo의 가장 인기 있는 애피타이저라고 웨이터가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어떤 요리일지 무척 궁금한 가운데 나온 문어는 다리 두 개가 포개어 얇게 저며진 무 피클에 덮혀 있었다. 살은 매우 부드럽게 조리가 되어있으면서도, 제거하지 않은 빨판은 오독오독한 식감으로 단조롭지 않았다. 거기에 곁들여진 새콤한 붉은 양파 절임과 부드러운 하얀 콩의 조화는 문어의 맛을 무척이나 돋보여 주었다. 제일 두꺼운 부분은 부드럽게 감싸주며, 맨 끝은 말린 오징?처럼 바삭한 식감으로 전부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Garganelli with “funghi trifolati” 버섯 가르가넬리 파스타

버섯 파스타는 고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웨이터의 강력한 추천이 아니었다면 시키지 않았을 텐데 결국에는 이 요리가 가장 맛있었다. 가르가넬리garganelli는 식도라는 뜻으로 생김새가 닭목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만두피처럼 얇게 편 파스타 면을 정사각형으로 잘라 세로로 촘촘히 파인 판에 놓고 연필 두께로 말아서 만드는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손이 많이 가기에 레스토랑에서 생으로 만든 가르가넬리를 만나기는 참 힘들다. 크게 확대해놓은 펜네와도 비슷한데, 펜네에 비해 얇지만 커서 맛과 향을 담기에 더 좋은 느낌이다.

진한 갈색의 버섯은 오븐에 오랫동안 구운 것인지 살짝 말라있으면서도 고소한 맛이 가득해서 마치 고기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버섯과, 버터에 소테saute한 가르가넬리는 무척이나 기가 막히게 잘 어우러져서 두 접시도 거뜬히 비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Beef Cheek Ravioli with crushed squab liver and black truffles 소고기 볼살 라비올리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소고기 볼살 라비올리는 너무나도 궁금한 메뉴였다. 삼각형의 라비올리로 가득한 디쉬는 볼살의 모양조차 가늠할 수 없게 뭉근히 익힌 스튜 같은 것이 그것마저도 라비올리 안에 감춰져 나왔다. 통으로 아낌없이 주는 트러플truffle에 감동했지만, 아주 진한 소고기 스튜의 맛이 검은 트러플black truffle의 향을 살짝 죽이는 것 같아 약간은 아쉬웠다. 차라리 트러플보다 조금 더 가벼운 재료를 써주었다면 무거운 스튜에 어울렸을 것 같다.

Grilled Lamb Chops "Scottadita" with eggplant "in scapece" and lemon yogurt
양갈비 구이

처음 접시를 보는 느낌은 푸짐하다는 것뿐일 정도로 접시에 가득 차있었다. 대부분의 고급 레스토랑은 음식을 푸짐히 주지 않기에 기대보다 많은 양에 놀랐다. 여섯 조각이나 되는 양 구이lamb chop는 오븐에서 오래 구운 부드러운 양파와 감자, 요거트 소스 그리고 민트잎과 함께 나온다. 신기하게도 양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고(정말 하나도) 살짝 단맛까지 감돌아 sous de vide로 절였거나했거나 훈제 처리를 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양고기를 못 먹는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양고기 향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곁들여진 양파와 감자는 맛을 돋워주기에 충분했고, 민트잎은 민트젤리보다도 더 상큼하게 입맛을 ?셔주었다.

Brussels Sprouts with pancetta 싹양배추 판체타 구이

사이드 디쉬로 맛본 싹양배추sprout은 안타깝게도 소금간이 너무 많이 되어 있었다. 코스의 뒤로 갈수록 소금간이 더 강하게 되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너무 짜서 아무래도 바다 소금sea salt과 식탁용 소금table salt을 착각하고 간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바다 소금과 식탁용 소금은 같은 양이라도 짠맛을 내는 정도가 다르다) 최고급 판체타pancetta의 풍미를 즐기기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더 이상의 불평은 그만 두었다.

Pistachio and Chocolate Semifreddo 세미프레도

가장 인기 있는 메뉴라고 추천해준 세미프레도semifreddo는 아이스크림에 가까울 정도로 차가운 이탈리안식 무스 디저트로 헤이즐넛hazelnut과 피스타치오pistachio의 조화를 보여주는 맛이었다. 살짝 차갑게 얼린 세미프레도 위에 뿌린 초콜릿의 조화는 차가우면서도 부드럽게 식사를 마무리해주었다. 마지막까지 바탈리스러운 스타일의 털털하지만 풍부한 맛에 숨도 쉴 수 없게 부른 배를 토닥이게 해주었다.

이렇게 훌륭한 맛에 기분 좋음까지 어우러지기 때문에 예약이 두 달씩 밀려있는 걸까. 맛이 있는 식당과, 기교가 있는 식당, 분위기가 좋은 식당, 그리고 따뜻한 식당. 좋은 식당의 요소는 많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맛과 따뜻함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기교가 좋은 식당이라고 해도 따뜻함이 없다면 다시 찾고 싶지 않으니까. 그것이 바탈리가 닮고 싶어 했던 할머니의 맛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빵을 썰고 있는 웨이터.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더 준다.

바보Babbo는 맛과 따뜻함을 모두 지닌 식당이다. 부담스러운 기교가 없으면서 소박하지만 열정적으로 자신의 요리를 사람들에게 건네는 모습이 TV에서 보면서 상상했던 음식 맛을 그대로 보여주어 두 달간의 기다림도 모두 만족시켜 주었다. 또한 다른 비슷한 명성의 레스토랑에 비해 인심이 좋아 양도 푸짐하다. 웨이터는 끝까지 열심히 빵을 썰고 손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져다주려고 노력하였다. 굳이 이탈리아에 가지 않고도 마치 이탈리아에서 맛보는 듯한 음식과 그 햇살을 느끼는 것과도 같은 따뜻함을 주는 바탈리와 그의 음식에 고마움이 스몄다. 예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귀찮은 일이겠지만, 뉴욕에서 인기 있는 레스토랑을 맛보려면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전화 한 통으로 최고의 이탈리안 음식을 만날 수 있으니 이참에 버릇을 들여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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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원

대학 시절 4년간 심리학을 공부하며 내 자신에 대해, 인생의 맛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 끝에 결정한 요리 유학은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홀로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며 뉴욕과 함께 농밀한 데이트를 보냈던 1년이었다. 객관적인 시간으로는 1년이라는 것은 결코 길지 않지만 주관적인 시간으로는 10년과도 같이 지냈던 그 해를, 함께 가지 못했던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심을 모자란 글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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