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봉석의 만화이야기
후루야 미노루는 흥미로운 작가다. 『이나중 탁구부』와 『크레이지 군단』 등에서 엽기적인 개그의 절정을 보여주더니, 근래에는 『두더지』『시가테라』『심해어』 등으로 지지부진한 일상이 미묘하게 흔들리다가 어디론가 치닫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해 보면 『이나중 탁구부』『크레이지 군단』 역시 그저 단순한 개그였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엽기나 황당무계한 놀이에 빠져드는 것은, 어쩌면 일상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너무나 무거워서, 엽기적이고 의미 없는 장난으로 일관했던 것은 아닐까? 『두더지』『시가테라』『심해어』로 이어지는 후루야 미노루의 행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후루야 미노루의 신작 『심해어』의 주인공은 야간에 경비업무를 보는 32살의 독신 남자 토미오카다. 대학을 나오고 회사에 들어가는 등의 일반적인 행로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인생의 패배자 같은 처지다. 그런데도 토미오카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크게 명예나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성공을 바라지도 않는다.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돈을 벌고 있고, 혼자 고즈넉하게 지낼 수 있는 야간 경비라는 직업도 좋다. 친구 없이 혼자 지내는 나날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토미오카는 평범한 자신에게 자족하며, 목적 없이 살아가는 남자다. 토미오카 같은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아니, 꽤 많이 있다. 별 것 아닌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은 적당히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이들은 남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는 법도 없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살고 있어도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언제나 변화의 시기가 온다. 토미오카도 그렇다. 큰 이유나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문득 생각해보니, 자신의 인생이 너무 얄팍한 것이다. 그래서 시야를 좀 넓혀본다. 어딘가에 친구가 없을까, 한심한 나와도 친구가 되어줄 누군가는 없을까. 딱히 그런 결심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 후로 이상한 사건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너는 1년 후에 죽는다’는 내용의 괴편지가 날아든다. 노숙자와 우연히 친해져 방에 들여놓았다가 야쿠자들의 방문을 받게 된다. 회사에 두 명의 신입 경비가 들어와 평온한 밤의 왕국을 흐트러뜨리더니, 끔찍한 사건에 연루되게 된다. 갖가지 기묘한 사건들이 코미오카를 둘러싸고 연달아 일어난다.
제목처럼, 토미오카는 심해어다. 아무도 없는 깊은 심해에서, 홀로 불을 켜고 살아가는 심해어. 혼자 있어도 딱히 외롭지는 않다.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하지만, 정작 다가오면 두려워한다. 그렇다고 해서 심해에서 완전히 바다 표면으로 올라갈 수도 없다. 심해의 환경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면 압력 때문에 죽어버린다. 그냥 자신의 위치에서, 조용히 무엇인가를 상상하며 기다릴 뿐이다. 그렇다. 옆집에 사는 여성 하다가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도, ‘정말일까’라고 의심하며 토미오카는 뒷걸음치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기묘하다. 토미오카는 강하다. 자신은 심약하고, 야망도 없고, 잘생기거나 매력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강하다. 혼자인 자신을 지켜오면서도 망상이나 강박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토미오카는 강하다. 토미오카를 무시하거나, 일반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 같은 보통 사람들이, 사실은 더 약하고 한심하다. 『심해어』에 등장하는 토미오카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은 토미오카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보다 보면, 토미오카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마음대로 타인에게 해를 입히고, 그러면서도 절대로 뉘우치거나 반성하지 않는 인간들. 아니 죄의식조차 없는, 보통 사람들.
처음에는 하다가 토미오카를 좋아하는 것이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한심한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부상이라고. 하지만 『심해어』를 보고 있으면 왜 하다가 토미오카를 좋아하는지 알 것만 같다. 토미오카는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토미오카는 보통의 삶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고독한 ‘심해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