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큰집에서는 추어탕을 끓인다
사실 우리 집에서 추어탕을 끓인 기억은 한 번도 없다. 왜냐, 우리 집은 딸만 셋이기 때문에. 아니, 딸만 있는 집이라고 어째서 추어탕을 못 끓여 먹는단 말인가? 그러나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실 우리 집에서 추어탕을 끓인 기억은 한 번도 없다. 왜냐, 우리 집은 딸만 셋이기 때문에. 아니, 딸만 있는 집이라고 어째서 추어탕을 못 끓여 먹는단 말인가? 그러나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미꾸라지는 가시내들이 잡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하여간 그랬기 때문에. 미꾸라지 잡는다고 그 하얀 종아리 흙탕물에 넣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촌가시내들이라도 소녀랍니다! 그래서 우리 가시내들은 머시매들이 흙탕물 범벅을 하고 미꾸라지 잡는 논둑에서 새침하게 구경만 한답니다. 우리가 구경하고 있으면 머시매들은 흙탕물 못 뒤집어써서 안달이랍니다. 우린 미꾸라지보다 흙탕물 못 뒤집어써 안달이 난 그 머시매들 구경이 더 재미났지요!). 각설하고, 아무리 맑은 웅덩이도 미꾸라지 한 마리만 떴다 하면 금방 흙탕물이 되고 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혹은 ‘미꾸라지 같은 한 놈 땜에’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추어탕을 안 끓여주면 미꾸라지도 불에 그슬려 먹을 놈들
미꾸라지는 손으로 잡으려면 아마 영원히 잡히지 않을 것이다. 미꾸라지는 손에 잡힐 만하면 진짜 미끄럽게 잘도 빠져나간다. 미꾸라지 잡는 머시매들을 보고 있으면 내 속이 다 답답하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먹을거리 중 대다수는 여자들, 혹은 우리같이 여자아이들 손에서 채취되어 밥상에 올랐다. 그런데 이제야 남자들 혹은 남자아이들에 의해 거두어진 먹을거리에 대해 쓰게 되었다. 그러나 또 그것을 요리하는 것은 엄마들이나 우리 여자들 몫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남자들, 더군다나 머시매들은 여자들 아니면 굶어죽게 생겼다.
그래도 머시매들은 어떡하든 안 굶어죽으려고 그랬는지 어쨌는지, 언젠가 보니까 뱀을 잡아서 신문지에 싸가지고 불에다 구워 먹더라니. 그러고 또 언젠가는 옛날 문둥이들이 살다 간 굴에서 연기가 나기에 들여다보니 머시매들이 나무에 토끼를 꿰어 바비큐를 해먹고 있더라니. 하긴, 즈이 엄마나 누나나 여동생이 추어탕을 안 끓여주면 미꾸라지도 그냥 불에다 그슬려 먹을 놈들이다,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다. 종철이, 승택이, 준택이, 정택이…… 나는 너희들이 통명산 작은 정재나무 굴속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추어탕 없으면 가을은 없다
추어탕이라는 말도 있듯이 미꾸라지가 가장 맛있을 때는 가을철이다. 추수를 하려고 논에 물을 빼면 미꾸라지들이 논바닥에서 누렇게 파닥거렸다. 그걸 그냥 주워 담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미꾸라지는 워낙 미끄럽고 뻘 같은 논바닥 속으로 잽싸게 몸을 잘 피해 그러지는 못하고, 웅덩이를 파고 삼태기로 건져올렸다. 그걸 집에 가져와 소금으로 숨을 죽인 다음에 폭 고아서 얼개미에 내린 다음에 씰가리(*시래기.)를 넣고 된장기도 좀 하고 확독에다 쌀과 생고추와 마늘을 함께 갈아 붓고 거기에 젬피가루를 넣으면 걸쭉한 추어탕이 완성된다.
가을걷이 때가 되면 날은 으실으실 춥고 몸은 사방이 안 아픈 데 없이 아프고, 아침에 눈뜨면 손가락이 펴지지 않을 만큼 날마다 고되기만 하다. 그럴 때 추어탕 한 솥 끓여놓으면 가을걷이 일꾼들 먹을거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일꾼들은 멀건 된장국 먹고는 일을 못 한다. 고깃국은 못 줘도 추어탕 정도는 끓여줘야 한다. 그러고 보면 가을의 농부들이 몸을 의지하는 것은 추어탕이다. 추어탕을 안 먹고는 나락도 못 베고 콩도 못 거두고 고구마도 못 캔다. 추어탕 없으면 가을은 없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햅쌀밥에 구수한 추어탕 한 그릇.
아, 몸과 마음에 꽉 찬 가을, 꽉 찬 행복! 그 정도는 먹어야 ‘아, 우리가 먹고 살려고 일을 하는구나.’ 실감이 난다. 적어도 햅쌀밥에 미꾸라지 살 톱톱한 추어탕 정도 먹으라고 우리가 그렇게 일을 하고 살았구나, 하고. 일꾼들에게 추어탕은 일 년 농사의 부상이다. 쌀은 본상이고 미꾸라지는 부상이다. 부상은 일종의 보너스다. 보너스는 많을수록 기분 좋다.
선옥아, 저녁에 추어탕 끓일 텡게 와서 불 좀 때도라
우리 집은 논이 없었다. 아버지는 논을 사기 위해 객지로 돈을 벌러 갔고, 아들이 없는 우리 집은 그래서 추어탕 먹기가 어려웠다. 논도 없고 아들도 없고 아버지도 없으니 추어탕을 끓일 만한 여건도 아니고, 추어탕 끓여놔도 누가 먹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미꾸라지는 주로 남자 아이들이 잡고 추어탕은 주로 남자 어른들이 먹었다. 그러니 나나 우리 가족들이 먹은 내 기억 속의 추어탕은 거의 우리 집에서 끓인 추어탕이 아니라 남의 집에서 끓인 것들이다. 딸이 없는 집들이 얻어먹은 돈부죽이랄지, 봄철 나물 반찬들이 거의 다른 집들에서 온 것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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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이 먹고 자란 것들을 둘러싼 환경들, 밤과 낮, 바람과 공기와 햇빛, 그것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몸짓과 감정들이 실린 스물여섯 가지 먹을거리 이야기을 담은 음식 산문집. 봄이면 쑥 냄새를 좇아 들판을 헤매고, 땡감이 터질듯 무르익는 가을이면 시원한 추어탕 한 솥을 고대하던 지난시절의 기억들을 소복한 흰 쌀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