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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의 세계관, 다양한 느낌의 배트맨들 - 『배트맨: 허쉬』『배트맨: 악마의 십자가』
일본 만화와는 다른, 미국만의 독자적인 캐릭터와 이야기 그리고 장면연출까지 미국 코믹스, 그래픽 노블은 전혀 새로운 감흥을 안겨준다. 아직 미국만화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모든 이에게 『배트맨: 허쉬』를 권한다.
미국의 만화 시스템은 일본이나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캐릭터의 저작권이 작가가 아니라 DC 코믹스, 마블 코믹스 같은 회사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트맨>의 밥 케인과 <스파이더맨>의 스탠 리처럼 창조자가 있다 해도, 저작권이 회사에 있기 때문에 한 작가가 계속해서 만화를 발표하는 대신 다양한 스토리 작가와 작화가가 투입되어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반면 일본에서는 하나의 캐릭터와 작품을 다른 작가가 재창조하는 경우는 좀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원작자가 죽거나 완전히 손을 뗀 경우 혹은 오마주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몽키 펀치의 『루팡 3세』가 다른 작가에 의해 새로 그려지거나, 나가이 고의 『데빌맨』을 존경하는 다수의 작가가 참여하여 『네오 데빌맨』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발표하거나, 데츠카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의 일부 에피소드를 우라사와 나오키가 『플루토』로 재창조하는 것처럼.
어느 것이 낫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일본이 ‘작가’를 우대하는 반면 미국은 지나치게 공장 시스템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하나의 캐릭터를 다양한 개성의 작가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재창조했을 때, 캐릭터가 더욱더 확장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좋아하는 캐릭터라면, 하나의 작품이 끝난 후에도 새로운 이야기로 계속해서 보고 싶다. 『마스터 키튼』의 이야기도 계속해서 보고 싶고, 『코브라』의 새로운 모험도 만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의 캐릭터를 끊임없이 돌리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미국 시스템의 장점도 명확하다. 또한 하나의 캐릭터를 그대로 끌고 나가는 것을 넘어서, 공통의 세계관 속에서 자유롭게 캐릭터를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번에 나온 『배트맨: 허쉬』와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를 보고 있으면, 그런 미국의 시스템에도 대단한 장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본 <배트맨> TV시리즈와 애니메이션, 팀 버튼의 영화 2편과 조엘 슈마허의 2편,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에서 만났던 배트맨의 모습과는 또 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스토리 작가 제프 로브와 작화가 짐 리가 만든 『배트맨: 허쉬』는 2003년에 발표되어, 1986년 발표된 프랭크 밀러의 『다크나이트 리턴즈』 이후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이 되었다.
『배트맨: 허쉬』는 허쉬라는 수수께끼의 악당과 싸우면서, 그의 정체를 쫓아가는 배트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허쉬라는 인물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킬러 크록, 스케어크로우, 포이즌 아이비, 리들러, 조커, 라스 알 굴, 투 페이스 등 기존의 악당들을 총동원하며 배트맨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허쉬는 배트맨의 모든 행동을 예측하고, 마치 그의 내면에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그의 마음을 읽어낸다. 그런 허쉬를 쫓아가기 위해, 배트맨은 자신의 진정한 내면과 조우해야만 한다.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읽어야만, 직면해야만 허쉬의 다음 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배트맨과 캣우먼의 관계,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가 그렇듯이 선과 악의 관계는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를 인정하면서 완성되어 간다. 어둠의 존재를 자처하며 사회의 정의를 위해 싸워나가는 ‘다크 나이트’로서의 배트맨의 면모는 『배트맨: 허쉬』에서도 잘 드러난다.
『배트맨: 허쉬』에는 배트맨과 기존의 조연들과 악당들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DC 유니버스를 기반으로, 슈퍼맨과 메트로폴리스도 등장하여 복잡한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DC의 대표적인 캐릭터 슈퍼맨과 배트맨은, 각각 보이스카우트와 탐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단순한 선을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올곧게 싸워 나가는 ‘보이스카우트’ 슈퍼맨. 그 단순함 때문에 거짓에도 쉽게 넘어갈 수 있지만,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는 분명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 반면 배트맨은 항상 선과 악의 경계에서 배회한다. 필름 누아르의 주인공처럼, 세계의 비극성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때로 악당이 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블 코믹스의 ‘데어데블’처럼 막 나가지는 않지만, 배트맨은 ‘다크 나이트’로서 언제나 회의하는 존재다.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는 화가이기도 한 조지 프랫이 그린 작품이다.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에서 배트맨이 싸워야 하는 존재는, ‘악마’다. 그냥 악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악마 그 자체인 것이다. 조지 프랫은 베트남전의 악몽을 끌어들여, 연쇄살인범을 쫓는 배트맨의 추적을 또 하나의 완벽한 악몽으로 재구성한다. 결코 읽기에 편하지는 않지만, 배트맨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배트맨: 허쉬』와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는 그림체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배트맨: 허쉬』가 역동적이면서도 세밀한 대중적인 그림체라면,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는 회화를 보는 것처럼 강렬한 느낌이다. 때로는 형체를 파악하기도 힘든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의 그림은, 그것만으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인적으로는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보다 『배트맨: 허쉬』가 끌린다. 단지 알기 쉽다는 것만이 아니라, 짐 리가 연출한 그림은 각 캐릭터의 개성을 확실하게 잡아낸다. 그들의 얼굴 표정과 그들의 액션을 잡아내는 컷 구성도 눈에 확 들어온다.
『왓치맨』에 이어 『배트맨: 허쉬』와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까지 미국 코믹스의 걸작을 연이어 만나는 느낌은 각별하다. 일본 만화와는 다른, 미국만의 독자적인 캐릭터와 이야기 그리고 장면연출까지 미국 코믹스, 그래픽 노블은 전혀 새로운 감흥을 안겨준다. 아직 미국만화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모든 이에게 『배트맨: 허쉬』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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