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리탕 없는 세상을 겨우겨우
보신탕을 먹으면 술 생각이 나지만 다슬기탕을 먹으면 마음이 오롯해진다. 다슬기탕 그 파란 물 빛깔같이 마음이 더할 수 없이 정갈해진다. 그것이 바로 다슬기탕의 마력이다.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계절, 칠팔월. 이열치열의 계절, 칠팔월. 에어컨은 아예 상상도 못하고 선풍기도 부잣집에만 있던 시절, 더위를 쫓는 도구라고는 손부채가 유일했던 시절, 부채질하는 것도 힘에 겨워 더우면 아예 그냥 땀 흘리고 말았던 시절, 그런 시절에 남정네들은 당산나무 밑에 모여 앉아서들 이열치열하겠다고 동네 고샅 아무데나 실례를 하던 황구를 어떻게 해볼까나 궁리하기 바쁘던 바로 그때, 아낙네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다슬기였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의아해할 사람들도 있겠으나, 단호히 말하건대, 다슬기는 확실히 여름 음식이다. 보신탕에 대적할 유일한 여름 음식. 그러니 물속에서 꼬물대는 그 조그만 다슬기가 여름 한철 비명횡사의 운명에 처한 수많은 견공들의 목숨을 보전해준 은인이 되겠다는 말씀. 왜냐하면 다슬기탕 한 그릇 먹고 나면, 그래서 팥죽 같은 땀 흠씬 쏟고 나면 보신탕은커녕 일체 다른 잡생각 같은 건 ‘금도 망도 없이’ 달아나버린 후이므로, 보신탕을 먹으면 술 생각이 나지만 다슬기탕을 먹으면 마음이 오롯해진다. 다슬기탕 그 파란 물 빛깔같이 마음이 더할 수 없이 정갈해진다. 그것이 바로 다슬기탕의 마력이다.
별이 총총한 밤, 손가락을 넣어 조약돌을 젖히면
다슬기는 주로 밤에 잡으러 나가곤 했다. 미꾸라지는 필시 남자들이 잡는 것이지만 다슬기는 여자들이 잡는다. 다슬기는 ‘잡는다’라고 하지 않고 ‘줍는다’고 한다. 내 고향에서는 다슬기를 ‘대사리’라 했다. 대사리 주우러 가는 밤. 대사리를 먹이로 삼는 반딧불이가 반딱반딱하는 밤. 동네 언니들, 고모들(집성촌이므로 나보다 나이 많은 시집 안 간 처녀들은 모두 언니, 고모들이다)을 따라 나는 호야등(*남포등.)을 들고 냇가로 갔다.
대사리 줍는 여름밤. 찰랑찰랑 찰찰찰. 냇물이 조약돌 씻는 소리. 어둠 속에서 듣는 냇물 소리. 처녀들은 짙은 어둠 속에서 치마를 훌러덩 속곳 속으로 집어넣는다. 그래야 허리를 숙였을 때 치마가 냇물에 젖지 않고 대사리 줍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처녀들은 조용히 허리를 구부린다. 조약돌을 젖힌다. 대사리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처녀들은 오로지 손가락에 닿는 감각으로 그것이 모래인지, 돌인지, 대사리인지를 판별한다. 대사리가 바구니에 절반도 안 찼는데 허리보다 장딴지가 먼저 뻣뻣해진다. 누군가는 장딴지에 쥐가 오른다. 그래서 일껏 잡은 대사리 바구니가 엎어지기도 한다.
허리도 다리도 손가락도 손목도 목덜미도 머리도 꼼짝할 수 없으리만치 딱딱해져 오면 처녀들은 물에서 나온다. 그리고 낮에 불볕으로 데워진 냇가 바위 위로 올라간다. 아직도 뜨듯한 바위에 올라앉아 처녀들은 나직나직 노래 부른다.
“해당화아 피고 지이는 서엄마으으래…….”
물에 젖은 ‘다후다’(*광택이 있는 얇은 견직물.) 속곳은 언제 마른 줄도 모르게 꼬실꼬실 말라 있다. 처녀들은 속곳 속에서 치마를 꺼낸다. 치마는 붉거나 파란 월남치마다. 옷도 말랐겠다. 이제들 돌아갈 때도 되었겠다 싶은데도 처녀들은 도무지 일어설 줄을 모른다. 나는 그예 처녀들의 노랫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고, 대사리 주우러 가던 그 밤에 나는 언제나 내가 집에 어떻게 온 줄도 모르고 오게 마련이었다. 그 중 ‘등어리’ 넓은 처녀 등에 업혀온 것이지마는. 그런데 그 야심한 여름밤에 그 처녀들은 뭣 한다고들 그렇게 냇가 바위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던 것일까. 누구를 기다리느라고, 별이 총총한 그 밤에 말이다.
다슬기가 대사리지만 대사리를 다슬기라고들 하니까
대사리를 가장 맛없게 먹는 방법은 소금물에 삶은 것을 대꼬챙이로 빼먹는 것. 소금물 대신 짠 된장 물에 삶은 것이 그나마 좀 낫다. 그러나 그 고생해서 그렇게밖에 먹지 못할 거면 대사리 같은 거 아예 줍지도 않았을 것이다. 땀 쪽쪽 흘리고 먹지 못할 거, 그 고생할 필요가 없다.
도시의 유원지 같은 데서 번데기랑 함께 놓고 파는 ‘고둥’이라고 하는 것을 먹어봤는데 중부 지방을 넘어서면 고둥이라든가 다슬기는 전부 그렇게 이쑤시개로 파먹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듯했다. 어디서도 대사리탕 하는 집을 보지 못했다. 예전에는 남쪽에서도 대사리탕 같은 건 내놓고 파는 음식이라고는 여기지 못했던 듯하다. 아무리 먹을 것 없다 해도 어찌 뒤꼍에서 ‘쪼글치고’ 먹는 음식인 대사리탕을 다 판다냐,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다가 최근에는 더러 다슬기탕이라고 간판을 단 집을 보았다(하긴, 옛날에는 창피하다고 내놓지도 못하던 보리밥집이 깔린 세상이니). 그러나 대사리탕집은 아직도 없다. 그러니까 다슬기가 대사리지만, 대사리를 다슬기라고들 하니까 차마 대사리탕이라고 못하고 다슬기탕이라고 써 붙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나는 끝?지 대사리탕을 끓여 먹고 싶다. 누가 그게 그거라고 해도 나는 다슬기탕 말고 대사리탕을 끓일 테다.
푸른 대사리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어
처녀들은 대사리는 잘 잡지마는 끓일 줄은 모른다. 그런데 또 희한한 것은 대사리만 잘 잡던 그 처녀들이 시집을 가서는 또 그들의 엄마들처럼 대사리탕 잘 끓이는 아낙이 저절로 되었던 것인데, 하여간 딸들이나 시누이들이 잡아온 대사리를 끓이는 것은 언제나 엄마들이나 할머니들이다. 그러고 보니 엄마들이나 할머니들은 여름밤 냇가에서 더 이상 기다릴 사람이 없어서들 대사리를 주우러 가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여름 낮에 대발 쳐진 방에서 베를 짜던 엄마는 점심때가 되기 전 방에서 나와 차가운 옹기에 담긴 대사리를 확독에다 들들 간다. 확독에다 가는 그것이 참으로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너무 세게 갈아버리면 대사리 껍질뿐 아니라 알맹이까지 모두 갈아져서 대사리는 생채로 죽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너무 힘을 안 주고 슬슬 갈면 대사리 껍질과 알맹이를 좀처럼 분리시킬 수가 없다. 시집온 이래로 해마다 여름이면 평생을 해왔던 솜씨로 대사리를 갈아서 물에 씻어 체에 밭치면 푸른 대사리 살만이 남는다.
대사리탕에 넣는 것은 여러 가지다. 미역을 넣기도 하고, 호박잎을 손으로 비벼 보드랍게 해서 쭉쭉 찢어 넣기도 하고, 다 끓을 때쯤 방아잎(*배초향.)을 넣기도 하고, 매운 청양고추를 넣기도 한다. 굵은 감자를 도마 없이 그냥 손으로 ‘짜개’(쪼개는 게 아니라) 썰어 넣기도 하고, 그러나 공통적으로 들어갈 것은 밀가루 수제비다. 푸른 대사리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어 넣는다. 소금으로 간하지 않고 맑은 청장으로 간하면 더 맛있다.
그러고 보니, 옛날 여자들이 만든 음식 중에 내가 맛있다고 여겼던 것은 거개가 도마, 칼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음식들이었던 것 같다. 뭐든지 그냥 손에서 짜개고 찢고 분질러서 뚝뚝뚝 만든 음식. 그리고 또 내가 맛있다고 여기는 음식은 파, 마늘 같은 양념을 넣지 않은 음식. 그냥 원재료만으로 된 음식. 미역과 대사리 혹은 호박잎과 대사리, 그리고 밀가루와 간장만 있으면 대사리탕 끝이다. 그리고 거기에 엄마의 땀 몇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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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이 먹고 자란 것들을 둘러싼 환경들, 밤과 낮, 바람과 공기와 햇빛, 그것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몸짓과 감정들이 실린 스물여섯 가지 먹을거리 이야기을 담은 음식 산문집. 봄이면 쑥 냄새를 좇아 들판을 헤매고, 땡감이 터질듯 무르익는 가을이면 시원한 추어탕 한 솥을 고대하던 지난시절의 기억들을 소복한 흰 쌀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