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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된 육체, 그러나 자유로운 영혼 <잠수종과 나비>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화려한 패션잡지의 편집장이라는 직업에서 보듯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었고 영화는 그것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봉인된 육체, 그러나 자유로운 영혼 <잠수종과 나비>
프랑스판 《엘르》의 편집장인 장 도미니크 보비(매튜 아말릭)는 막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분주하게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의료진의 모습을 발견한다. 서서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아가는 장. 그는, 자신의 뇌는 생생하게 살아있으나 몸은 전혀 움직일 수 없으며 사용할 수 있는 신체 기능이 오직 왼쪽 눈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언어치료사에게 배운 의사소통법인 눈 깜빡임을 통해 간신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된 장. 그는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을 기회로 자신의 삶 전체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게 된다. 한편 장은 눈을 깜빡이는 방법으로 사고 전에 출판사와 계약했던 책 집필을 진행하기로 결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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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영화는 주말에 몰아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난주에는 도저히 집중해서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영화를 능가하는 거대한 스펙터클이 또는 현재진행형인 역사의 현장이 웹상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려는 권력에 맞서 디지털 미디어로 중무장한 시민들은 그렇게 새롭게 역사를 쓰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누군가는 들뢰즈의 ‘리좀’ 개념을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개념을 말하기도 하지만 무엇으로 설명하든 이들 디지털 ‘촛불’ 시민들의 모습은 놀라움을 준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인터넷 생중계를 보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이며 그로 인해 난 일종의 자괴감에 휩싸인 주말을 보내야만 했다. 이런 생각들 속에서 엉뚱하게도 필자는 스스로가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육체가 속박되어버린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생각났다. 그 영화는 줄리앙 슈나벨의 <잠수종과 나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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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의 전반부 30여 분의 시간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관객을 매우 불편하게 한다. 감독 줄리앙 슈나벨과 촬영 감독 야누스 카민스키는 영화의 전반부를 철저하게 주인공 장 도미니크 보비의 왼쪽 눈의 시선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그려냈다. 앞의 줄거리에서 설명한 것처럼 장 도미니크 보비는 사고 후에 왼쪽 눈의 시력만을 사용할 수 있을 수 있었고, 그의 시각을 영화 속에서 재연한다는 것은 곧 관객들이 장 도미니크 보비의 시각을 대리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다. 당연하게도 그의 한쪽 눈의 시각과 시야는 관객들에게 답답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한정적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작진의 이런 모험적인 시도는 꽤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잠수종과 나비>의 전반부는 분명히 관객을 불편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스란히 관객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비록 한쪽 눈의 기능만이 살아있을 뿐이지만 뇌의 기능이 온전한 주인공의 생각은 관객에게 내레이션을 통해 도달하며 영화의 상당 분량이 그의 시선을 유지하게 되면서 관객은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에 화들짝 놀라는 아픔과 아름다운 치료사들의 외모에 반해 ‘여기가 천국인가?’라고 말하는 천연덕스러움을 지닌 이 문제적 환자의 생의 모든 것에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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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화려한 패션잡지의 편집장이라는 직업에서 보듯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었고 영화는 그것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의 하나뿐인 시선도 종종 여인네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데 사용되고 있으며 그의 상상력이 표현되는 장면들 속에는 자신을 돕고 있는 여인들과의 사랑을 꿈꾸는 장면들이, 유머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그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기 때문에) 유장하게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한없이 자유로웠던 한 남자는 갑작스럽게 육체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나비’가 되어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한다. <잠수종과 나비>는 그래서 심금을 울린다. 장 도미니크 보비는 불치병에 걸려 온갖 것들을 양보하고 죽어가는 기존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천사’와 같은 인물은 결코 될 수 없다. 심지어 이 영화의 막바지에서 장은 자신의 아내가 (아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자신의 연인에게 ‘(연인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끝내 하게 할 만큼 이기적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모습 역시 그의 한 부분인 것이다.
<바스키야>와 <비포 나잇 폴스> 등 이미 성공적인 예술가 전기 영화를 발표한 바 있는 미국 감독 줄리앙 슈나벨은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슈나벨은 할리우드의 흔한 휴머니즘 영화와는 사뭇 다른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부각시킨다. <잠수종과 나비>에서 장 도미니크 바비를 연기한 마티유 아말릭의 얼굴은 영화의 절반 가량이 주인공의 시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어떨 때는 회상 장면에서 보여지는 그의 온전한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마티유 아말릭은 왼쪽 눈에 투영되는 미세한 감정과 따뜻한 감정이 담긴 내레이션으로 누구보다 삶과 여인들을 사랑했던 한 남자의 복잡다단한 내면의 밑바닥을 훌륭하게 표현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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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의 서플먼트 인터뷰에 담긴 내용처럼 <잠수종과 나비>는 비록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보고 나면 살고 싶어지는 영화다. 누구나 그렇듯 장 도미니크 보비의 회상은 온갖 회한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스스로 되뇌는 것처럼 ‘상상력과 기억’으로 남은 생을 돌파해 나아가는 보비의 외형은 비극적이지만 때로는 강인한 생명력이 넘쳐난다. <잠수종과 나비>의 미덕은 흔히 수동적이고 착한 인물로만 묘사되는 환자 캐릭터나 가족주의로 회귀되는 결말 등 고답적인 휴머니즘 영화의 틀을 벗어나 한 인간의 내면을 깊숙하게 드러내는 데 영화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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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종과 나비>는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몽환적인 느낌의 필름 질감이 두드러진 영화다. 영화의 상당 분량은 주인공의 상상의 공간이기도 하고 1인칭 시점을 유지하기 위해 핸드헬드 카메라의 사용이 빈번하기에 영상 질감이 아주 깔끔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의도된 영상이 본래 그러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겠다. 표현되는 영상 퀄리티의 수준은 비교적 저예산 영화로서 평균 수준은 상회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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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체감되는 표현은 역시 풍성하게 사용된 음악들이다. U2의 노래부터 클래식까지 다양하게 사용된 음악들은 풍성하게 표현되어 청자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기본적으로 강렬하게 사용되는 음향은 거의 없으며 프랑스어 특유의 리듬감 있는 대사 표현들이 잘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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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플먼트로는 20여분의 <감독 인터뷰>와 <예고편> 그리고 <베를린 영화제 프로모>로만 구성되어 있어 조금 단촐한 편이다. 칸 영화제 감독상, 골든글러브 수상, 아카데미 노미네이션 등 화려한 수상 결과와 호평 등을 감안한다면 많이 아쉬운 구성이기는 하다. <감독 인터뷰>의 경우에는 프랑스에서 진행된 줄리앙 슈나벨 감독의 인터뷰 클립으로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에 대해서 잘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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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앙 슈나벨>7,160원(7%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