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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연재종료 > 설화 속 동물 인간을 말하다
여름철 보양식의 선두주자로 장어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이로운 영양소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스태미나를 키우는 데 제격이라는 것이다. 유달리 장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히 풍천장어를 많이 찾는다. 선운사를 향해 가다 보면 주변 곳곳에 ‘풍천장어’라는 간판이 많아서 그곳이 풍천장어로 유명한 곳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여기서 오해가 생겨, 장어를 먹으려면 역시 풍천에서 먹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풍천이 어디냐고 물으면 선운사 근처, 그러니까 고창군 풍천면이라고 제법 구체적인 지명까지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지도를 펴놓고 찾아보아도 고창군에는 풍천면이라는 곳이 없다. 사실 풍천은 지명이 아니다. 한자로 ‘風川’이니까 ‘바람 강’이라는 의미이다. 선운사 앞에 있는 인천강은 바다와 인접해 있어서 하루 두 번씩 바닷물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이때 장어의 움직임이 대단해서 장어가 바닷물과 함께 바람을 몰고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풍천장어라는 이름은 이렇게 붙여졌다.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곳이라서 특히 플랑크톤 등의 양분이 많아 고기가 살지고, 물살의 흐름을 역류하는 힘찬 움직임으로 인해 담백하고 구수한 맛을 자랑한다. 이 정도만 해도 우리가 그동안 장어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 무척 적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우리와 자주 접하는 동물에게도 이처럼 알지 못하는 숨겨진 사연들은 많다. 이왕 장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으니 여기에 장어와 얽힌 숨겨진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본다.
요즘만큼이나 나라 살림이 어려웠던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라님께서 친히 난국을 헤쳐 나갈 빼어난 인물을 백방으로 찾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추천되어 올라왔다. 늘 그렇듯이 명문가의 유수한 자제들 이름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나라님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암행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 즈음이었다.
며칠 밤을 타고 이곳저곳을 쫑긋해보았다. 그런데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여러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 사람의 이름을 뇌는 것이었다. 이력도 특이했다. 서당을 잠깐 다닌 것이 유일한 정규교육이었고, 이후로는 심산유곡을 찾아 수십 년 동안 스스로 학문을 깨우쳤다는 것이다. 마음에 들었다. 물어물어 그 사람의 집을 찾으니, 예상했던 대로 초라한 삼간초옥이었다.
마주 앉아 몇 마디만 오고 갔을 뿐인데도 사람의 크기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하였다. 비로소 나라님의 표정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명을 받들어 인재를 천거하는 임무를 맡은 관료라네. 자네, 이 나라를 위해 일해 볼 생각 없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나라님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은근히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리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공인으로서 일할 만한 덕성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겸손의 뜻인 줄로만 알았다. 한참의 실랑이를 한 후에야 그 속사정을 듣게 되었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심산유곡에서 독학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한밤중에 밖에서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하던 걸음이 차츰 무디어졌다. 여인의 목소리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문을 열어달라는 것이었다. 만약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하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문 앞에서 여인이 죽어 있을 경우 자신이 의심받는 것이 걱정되었던 선비는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문이 열리고 나니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서, 결국 두 사람은 그렇게 격정의 밤을 보내고야 말았다.
혼자서 이 선비를 흠모하던 그 여인은 그렇게 자신의 욕망을 잠재울 수 있었겠지만, 이 선비는 문을 열어준 자신의 행동을 두고두고 곱씹었던 모양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욕정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 자신의 행동은 충분히 부도덕해 보였던 것이다.
“모름지기 관료란 자신을 위한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덕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료가 되기에는 저의 부끄러움이 너무 큽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나라님이 입을 떼기 시작했다.
“이 사람아, 와우(蛙憂, 개구리의 근심)일세.”
“??????.”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아주 먼 옛날, 하루는 저 바다의 용왕님께서 큰 잔치를 베풀었다네. 아마 환갑잔치 정도 되었던가 보네. 워낙 큰 잔치라서 바다의 물고기는 물론이고 민물에 사는 고기까지 모두 용궁으로 초대를 했었지. 좁은 민물에서만 살다가 넓은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갖은 진미에 향긋한 술까지 마음껏 즐기게 되니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민물고기들이 말일세. 그중에서 제일 탄력을 많이 받은 고기가 바로 뱀장어였다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는 둥, 조건만 허락된다면 당장 바다 쪽으로 이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둥,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까지는 그래도 보아 넘길 만했지. 대형 사고는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춤판이 벌어졌을 때 발생했다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뱀장어가 그만 그 긴 꼬리로 용왕님의 용안을 세차게 후려갈기고야 만 것이야.
용왕님이 생각하기에 괘씸하단 말이야. 기껏 잔치를 베풀어 대접을 해주었더니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하다니 기가 막힐 뿐이었어. 곧바로 숙청 작업에 들어갔겠지. ‘민물에 사는 꼬리 달린 놈들은 모두 잡아들이라’고.
민물 세계가 난리가 난 것이지. 뱀장어 때문에 민물 세계가 거의 초토화될 지경에 이른 것일세. 그런데 정작 범인인 뱀장어는 이 소식을 듣고 바위틈에 숨어 꼬리는 뒤로 감추고 주둥이만 뻐금뻐금 내밀고서는 지나다니는 고기들에게 일일이 말을 걸면서 딴죽을 피고 있었다는 거지. 자기에게는 꼬리라는 것이 도대체 없다는 듯이 말일세.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물 위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풀쩍 뛰어들어온단 말일세. 표정을 보니 영 말이 아니었다네.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고 가슴은 벌렁거리고 있었다네. 뱀장어가 물었지. ‘자네 왜 그러나?’ ‘아니 소식 못 들었나? 용왕님께서 꼬리 달린 놈들을 다 잡아들이라 했다고 하지 않나?’ ‘자네도 꼬리가 있나?’ 남 사정은 알지도 못하고 그런다는 표정으로 삐죽거리며 대답하는 말이, ‘나 어릴 적에 꼬리가 있었지 않았나!’”
“??????.”
나라님의 이와 같은 간곡한 설득으로 마음을 고쳐먹은 이 선비는 비로소 나라의 큰 일꾼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동물에 관한 이야기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항상 그 동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뒷받침되어 있다. 이 이야기도 예외는 아니다. 장어는 낮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밤에만 움직인다고 한다. 일단 이러한 장어의 습성이 옛 선인들에게는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밝은 낮보다 컴컴한 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구린 구석이 있게 마련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유추하여 장어에게도 무슨 피치 못할 구린 사연이 있어서 낮은 피하고 밤에만 활동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그 피치 못할 사연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장어는 활동을 접고 조용히 지내는 낮 동안은 주로 바위틈이나 모래 속에 꼬리를 숨기고 머리만을 내놓고 있다. 낮에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이하지만 그 낮 동안 바위틈이나 모래 속에 숨어서 머리만을 내밀고 조용히 버티고 있는 모습은 더욱 특이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장어는 왜 꼬리를 숨겨야만 했을까? 답은 간단하게 마련될 수 있다. 무엇인가를 숨기는 건 그것을 숨겨야 하는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장어는 꼬리로 죄를 지어서 그것을 숨기고 있다는 설정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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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김경희> 등저/<문찬> 그림13,3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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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주제로 삼고 있는 옛이야기로 구성된 『설화 속 동물 인간을 말하다』. 책 속의 수많은 동물들은 자체로 동물이면서 또한 사람이기도 하다. 인간사와 꼭 닮은 동물들을 등장시켜 사람 사는 문제를 맛깔나게 풀어내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기회를 제공한다. 옛이야기 속 동물들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