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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감정들의 10중 추돌사고 - 『공포의 외인구단』

야구를 다루었지만 야구 이상의 것을 품었던, 80년대를 휩쓴 한국 대중문화사의 큰 발자국인 『공포의 외인구단』을 오늘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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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프로야구 시즌이 열리면서 올해는 또 새로운 변수들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만년 꼴찌라며 ‘꼴데’ 소리를 듣던 롯데자이언츠는 감독이 바뀌면서 폭발적인 기세를 보여주고 있고,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재창단한 우리히어로즈는 후줄근한 목동 구장에서 동네 주민들의 민원 속에 경기하고 있습니다.

1982년 처음 그 시작을 열었던 한국 프로야구는 군사독재정권의 우민정책이라는 일각의 비판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첫해부터 꽤나 큰 인기를 모았던 한국 프로야구는 이후 야구에 관련된 다양한 컨텐츠들을 쏟아내는 기폭제가 되는데, 그중 가장 손꼽힐 만한 작품이 오늘 함께 읽을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입니다.

만화가 이현세를 스타의 반열에 올린 출세작이자 ‘만화=애들이나 보는 것’으로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작품인 『공포의 외인구단』은 단순히 프로야구의 인기를 만화로 옮겨놓은 것 이상의 평가를 받습니다. 야구를 다루었지만 야구 이상의 것을 품었던, 80년대를 휩쓴 한국 대중문화사의 큰 발자국인 『공포의 외인구단』을 오늘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프로야구라는 열광적이면서도 생소한 스포츠를 배경으로 한 청춘드라마입니다. “누군 한때 눈물 젖은 빵 한번 안 먹어 본 사람 있냐?”는 질문에 “죽어본 적 있어?”라고 맞받아치는 주인공 오혜성의 대사로 서막을 여는 『공포의 외인구단』은 ‘죽어본 적 있는’, 말 그대로 극단까지 치고 올라간 사람들이 펼치는 감정의 격랑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당장 주인공인 오혜성의 캐릭터부터가 단순하기에 극한에 다다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릴 때부터 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란 오혜성은 세상의 냉대 속에 자신을 아껴주었던 오직 한 사람, 엄지에게 연정을 느낍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국민학생 시절, 우연찮게 엄지가 던진 한마디에 야구 선수가 되기로 결심하는 오혜성의 마음은 만화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한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가수 정수라가 불러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 OST로도 대히트를 친 바 있는 이 문장이야말로 주인공 오혜성의 모든 것을 담아 버리는 한마디입니다. 엄지의 한마디에 야구선수가 되었고, 그것도 그냥 야구선수가 아닌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가 되어 버리는 것이 오혜성의 캐릭터입니다. 단순하지만 목표를 향한 그의 강한 집착은 어마어마해서,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서는 것은 다반사이고 가끔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까지 합니다.

단순히 주인공만 극단으로 치닫는 캐릭터여서는 드라마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의 연적이자 라이벌인 마동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오혜성처럼 한 여자에 대한 감정에 집착하는 고집쟁이는 아니지만, 승부와 결과에 끔찍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오혜성과의 대립각을 세웁니다.

마동탁은 고교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천재 타자로, 국내 최정상급의 대우를 받으며 최강팀 유성구단의 스타로 자리매김합니다. 자부심 강한 톱스타이지만, 자신의 연인인 엄지를 사랑한다는 오혜성이라는 시골 뜨내기 투수와의 대결에서 처참한 퍼펙트 패배를 당한 뒤, 그는 모든 것을 오혜성 타도에 걸어 버립니다. 그 순간의 마동탁에게는 연인인 엄지마저도 2순위가 되며, 오직 승리를 향한 불타는 의지만이 그를 지배합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두 남자의 대립 사이에서 갈등을 만드는 엄지라는 여주인공의 감정은 강인하다기보다는 끝없이 흔들린다는 점에서 또 다른 극단의 꼭짓점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분명히 마동탁의 연인이지만,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던지는 오혜성의 불같은 마음에 흔들리며, 그러면서도 오혜성의 잠적기간 동안 100연속 안타 프러포즈로 다가온 마동탁의 구애를 끝내 뿌리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결혼 후에 오직 승부에만 집착하는 마동탁을 보며 자신에 대한 구애 또한 결국 오혜성을 이기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 속에 그녀슴 다시 갈등하며 서서히 몰락해 갑니다.

극단이라는 공통점을 빼고는 닮은 점을 찾을 수 없는 세 주인공과 함께 등장하는 오혜성의 주변 인물들은 외인구단의 또 다른 특징, ‘외인성’을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일본 야구 최고의 선수였던 손병호 감독이 만든 15년 집념의 걸작 ‘외인구단’은 등장 이후 페넌트레이스 전 경기 승리라는 대업을 달성하는데, 그 주역인 외인구단 멤버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입니다.

키가 작다는 신체적 결함을 가진 유격수 최경도, 흑인 혼혈로 천대받는 하국상, 큰 덩치와 느린 신경으로 낙제점인 백두산, 천재타자 마동탁의 연습용 투수로 천대받던 조상구, 아예 한쪽 팔이 없는 야구선수 최관에 프로 등판 첫 경기에 부상을 당하고 다시는 공을 던질 수 없게 된 폐인 오혜성이 합류합니다.

야구의 낙오자를 넘어 사회의 낙오자로까지 불릴 만한 이들을 모으고 훈련시킨 감독 손병호는 오히려 이런 외인성에서 가능성을 봅니다. 정신력이란 가끔씩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데, 그 상황을 만들어내는 정신력은 오히려 가장 밑바닥에서 수모만 겪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손 감독의 지론입니다. 그는 수년 간의 물색 끝에 가슴 속에 응어리를 품은 여섯 명의 가능성을 찾아 무인도에서 지옥훈련에 던져 넣고, 그들을 이끌고 돌아와 야구의 새 역사를 쓰겠다고 선언해 버립니다.

요즘 유행어로 ‘막장’이라 불릴 만한 인물들이 펼쳐내는 극단적 감정의 과잉이야말로 『공포의 외인구단』이 주는 재미의 원천입니다. 세상 끝에 서 있는 밑바닥 인생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분노, 그 분노와 독기를 “강해져라!”라는 주문으로 승화시키는 집념에 미친 광기의 감독, 오직 한 여자에 대한 사랑만으로 치닫는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을 꺾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라이벌의 이야기는 여섯 권의 만화가 흘러가는 동안 단 한순간도 눈길을 뗄 수 없게 합니다. 특히, 그 감정의 과잉이 빚어내는 충격적인 결말에서의 충격은 만화가 나온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독자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겨 줍니다.

어찌 보면, 감정의 과잉이라는 표현 방식이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요즘의 트렌드에서 『공포의 외인구단』은 조금 촌스러운 면이 없지 않습니다. 80년대식 신파라고 해야 할까요, 간혹 지나치게 오버스러운 설정과 대사들이 21세기의 독자들에겐 조금 닭살스러운 접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촌스럽다는 이유로 많이 사라진 이유에서일까요, 20여 년 만에 다시 들춰 보는 ‘외인구단’의 강렬함은 오히려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욱 뜨거운 화상을 남깁니다. 분노에 가득 차 시속 200km로 달려 나가 절벽 구석에 고꾸라져버리기 직전의 쾌감이랄까요, 어느 정도 예견된 비극을 향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눈 감고 달려 나가는 주인공들의 불같은 이야기는 촌스럽기보다는 무척 간만이라는 반가움입니다.

배경인 80년대라는 시대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촌스러움보다는 정겨움이라는 감정이 더 앞서기도 합니다. 당시의 밑바닥 인생을 대표하는 외인구단 6명이 만화 속에서 받는 천대는 명백한 천대이지만, 적어도 21세기 지금 한국 사회에서의 천대와는 조금 다른 뉘앙스를 가집니다. 할 거 없으면 각목과 비닐 주워다가 포장마차라도 만들던 인물들의 80년대와, 그나마도 접근하기 어려워진 지금의 모습은, 명백하진 않지만 그 20년간의 성장이 가져다 준 자본주의 고도화의 냉혹한 변화를 살짝 보여주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 사소하지만 사람 체온이 느껴지는 뉘앙스들이 『공포의 외인구단』 구석구석에서 나타나는 것은 당시에는 의도하지 않았던, 20년 후의 독자만이 맛보는 시대의 선물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군사독재라는 시대적 상황이 암울했기에 사람들은 더욱 정감 넘쳐 보이고, 프로야구는 더욱 열광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었을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극단의 대척점에 선 주인공들의 집념과 오기의 대결, 그 주위를 둘러싼 밑바닥 인생들의 독기, 광란에 가까울 정도의 이러한 서사의 격류는 앞서 말한 사람 냄새와 섞이면서 드라마의 생동감을 이끌어냅니다. 덜렁 주인공 세 사람만 놓고 보면 광기의 오버극이 될 수도 있었던 분위기는 비로소 안정되며, 이 이야기가 결코 동떨어진 상상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들을 일상 속의 영웅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 또한 담보합니다.

우연찮게 들은 소식으로는 『공포의 외인구단』은 올해 중 공중파 드라마로 꺸메이크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무려 황미나라고 하는군요.) 80년대, 청년들의 감정 속에 격렬한 용오름을 만들었던 만화가 시대가 바뀐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사뭇 기대가 됩니다. 80년 당시 ‘외인구단’에 열광했던 젊은이들은 이제 서서히 세상에서 굴러먹으며 모난 부분 다 닳아 가는 중늙은이가 되었겠지만, 만화로든 드라마로든 다시 오혜성과 그 인물들의 뜨거웠던 열기를 접한다면 한번쯤 자신도 품었을 법한 뜨거움에 대해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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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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