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다음 포털 검색)
양주동의 시 「어머니 마음」에 이흥렬이 곡을 붙인 <어버이 찬가>의 일부다. 이 노래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깊은 정을 헤아리고 있으나, ‘어머니날’이 ‘어버이날’이 되면서 아버지는 ‘무임승차’했다. 자식 된 나는 <스승의 노래>와 멜로디가 비슷한 이 노래를 부르길 꺼렸고, 부모 된 지금은 별로 듣고 싶지 않다. 노래 가사도 그렇거니와 곡조 역시 엄숙, 비장해서다. 이 노래보다는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양희은이 다시 부른 <부모>가 한결 낫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부모」 전문, 『원본 김소월 전집』(오하근 엮음, 집문당, 1995) 수록작품을 요즘말로 표기)
부족한 아비
나는 이제 부모 9년차다. 조카 녀석 둘이 제법 자란 우리 형님 내외는 저녁식사 후 느긋하게 TV를 시청한다지만, 우리 부부, 아니 아내는 애들 뒤치다꺼리하느라 하루가 빠듯하다. 우린 언제쯤 안일한 일상을 누리게 될까?
사실, 이것보다는 애들이 커갈수록 부모 노릇 하기가 여간 아닌 게 더 걱정이다. 나만 하더라도 그리 좋은 아버지는 못 되는 것 같다. 우선, 애들에게 다정다감한 편이 아니다. 애들은 나를 무서워한다. 우리 집은 ‘아동학대 가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이 나라 가정에서의 아동학대 실태, 굉장히 심각하다. “여성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전국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7 전국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발생한 아동 학대는 66.9%에 달했다. 아동 10명 가운데 7명이 부모로부터 폭력 등의 학대를 당하는 셈이다.”(《강원일보》 2008년 4월 14일자, 인터넷 검색)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지금 나처럼 스스로 아동학대 혐의점을 공표해도 수사선상에 오르거나 비난받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이다. 학대의 정도가 경미하므로, 증거가 불충분하니까? 아무튼 제 자식을 공공연히 학대하는 부모들이, 누군가가 제 자식의 버릇없는 행동을 나무라기도 하면 질색한다. 자기 아이 기죽이지 말란다.
“불행히도 아이들은 부모가 가르쳐준 대로 행동할 만큼 고분고분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아이들이 보고 배울 만한 구석이 없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삶의 가르침들을 하나하나 자력으로 배워나가게 되는 것입니다.”(『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75쪽)
고든 리빙스턴의 통찰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나는 그래도 아이들은 부모를 닮는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은 아이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많이 부족한 아버지다. 내게 부모 자격이 있을까?
부모자격 시험
한효석의 『우리 아이 마음을 알 수 있는 부모자격 시험문제』(홍승우 그림, 옹기장이, 2006)는 ‘일일고사용(一日考査用)’이다. 1교시에서 6교시까지 50문항을 풀게 하고, ‘쉬는 시간’에는 각 교시별 중점사항을 간추려놓았다. ‘조회시간’에 문제출제자는 우리가 “부모자격시험문제를 풀어야 하는 까닭”을 들려준다.
“이 글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과 아이들 문제를 함께 논의해 보자는 뜻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70년대 10월 유신을 거쳐 1980년대 광주민중항쟁과 서울 올림픽을 겪은 세대가 어떻게 자녀를 키울 것인지를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또한 출제자는 다음과 같은 유의사항을 덧붙인다.
“이 책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아이로 키우려는 부모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아이로 키우려는 부모를 전제로 하였습니다. 재주가 뛰어난 아이로 키우는 것보다 더불어 사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더 힘들지도 모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며 동료, 이웃, 친구들과 더불어 자녀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험난한 시대에 좋은 부모로 사는 계기를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아홉 문제가 출제된 제1교시 생활탐구영역에선 세 문제밖에 틀리지 않았다. 틀린 문제다. 문제 02, ‘내가 없으면 우리 집안은 엉망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십니까? ① 생각해 본 적 없다, 고 했다. 나는 정말 그랬다.
문제 06도 틀렸다. 유치원에 다니는 다음 아이들 중에서 과연 천재라고 할 만한 아이는 누구일까요? 나는 ‘천재는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뤄진다’는 격언을 떠올려, ② 공기를 가르쳐줬더니 잘할 때까지 밤새우며 연습하는 아이를 꼽았지만, 답은 ③ 어떤 대중가요든 리듬을 타고 쉽게 따라 부르는 아이란다. 나는 “대중가요”가 걸렸다.
또 하나는 답이 세 개나 되는 데도 틀렸다. 답에 부가된 설명이 먼저 와 닿는다. “말조차 하기 싫을 때, 말을 먼저 건네려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입니다.” 7지선다형 문제 08은 부부 싸움을 한 뒤, 어떻게 하십니까? 이고, 내가 고른 오답은 ④ 꼴 보기 싫어 말 안 한다.
나의 학창 시절은 그리 밝지 못했다. 여덟 문항이 출제된 2교시 학교탐구영역에서 두 문제라도 맞춘 게 다행이다. 내가 맞춘 문제다. 문제 15, 아이가 작년 담임교사에게 선물하겠다고 돈을 달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① 준다. 내가 아이에게 돈을 주겠다고 한 것은 대가성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 16, 아이들이 친구를 심하게 때리는 교사를 폭력 교사라며 경찰서에 신고하였습니다. ① 그럴 수 있다-오죽하면 그랬겠어. 답에 덧붙인 출제자의 설명이 미덥다. “‘오죽하면’ 이라는 말 속에는 그 학교의 수많은 교사들 중에서 아이들이 믿고, 어려운 일을 같이 논의할 교사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즉, 아이들은 문제가 내부에서 해결될 가능이 없다고 판단하여, 외부로 눈을 돌린 것입니다.”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17번 문제는 나를 시험한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싸웠는데, 옷이 찢어진 상태로 코피를 흘리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무슨 말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① 왜 싸웠냐? ② 넌 바보같이 맞고 다니냐? ③ 맞는 쪽이 차라리 뱃속 편하다. ④ 그 애가 누구냐? 그냥 놔두지 않겠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정)답은 ①이지만, 내 속마음은 ④→②→③ 순이다.
3교시에서 6교시까지 교육?위기?대화?미래 탐구영역에도 좋은 문제와 괜찮은 답이 꽤 많다. 문제 21, 다음 중 우리 아이와 사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아이는 누구입니까? “사고방식이 긍정적이고 양보할 줄 아는 아이”다.
문제 22, 우리 아이가 “주경야독(晝耕夜讀, 어렵게 공부함)이 무슨 뜻이에요?”하고 물었는데, 이 말뜻을 정확히 모르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잘 모르겠다”라고 해야 한다.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라는 말인데, ‘쉬지 말라’는 뜻이야”라는 식으로 어설프게 아는 체 해선 곤란하다.
빚이 있다고 솔직히 말하고(문제 25), 일단 빚을 내서라도 해결하며(문제 26), 학생 폭력의 근본 원인은 이성(理性)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 있다는 인식에 공감한다. 하지만 고주망태가 되어 밤늦게 들어온 아이에게 야단을 치는 대신, 콩나물 해장국을 끓여주라는 것은 낯설다. 또 나는 책을 귀하게 여겨 받들진 않지만, 아이들이 책을 함부로 다뤄선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종례시간’, 귀담아들어야 할 선생님 말씀이다.
“남들이 똑같이 몰려다닐 때,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나 그쪽을 보세요. 정말 다른 세상이 보일 겁니다. 예를 들어 남들이 모두 자기 아이를 대학에 보내려고 할 때, 우리 아이는 대학에 안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다른 집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여 가정에 안주할 때, 우리 아이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도록 부모가 나서서 자극해야지요.”
부모학교
나는 대학을 다시 다닐 생각이 결코 없으나, “평등, 존중, 이해, 믿음, 자유, 관용, 지지, 지도” 등을 자녀교육의 원칙으로 제시하는 『부모대학』(추이화팡?리윈 지음, 김락준 옮김, 휘닉스, 2008)은 예외다. 이 대학의 교훈은 아래와 같다.
- 모두 다 자녀를 위한 것이니, 자녀를 열심히 사랑하고 교육하라!
- 자녀를 교육하는 것은 부모의 직업이다!
- 열정과 노력을 다해 자녀의 앞길을 밝게 비추어라!
조기교육, 품행교육, 전통교육, 과학교육 등으로 학년별 교육과정을 설정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근검절약정신을 심어주고 도덕과 인성 교육에 힘쓰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치게 아이를 책망하지 말라는 것도.
마르크스를 공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은 이런 종류의 책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마르크스는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교육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단연 최고는 당신의 행동이다.’고 말했고 중국의 대교육자인 공자는 ‘자식을 가르치려면 먼저 자신부터 바르게 하라.’고 말했다.”
어쨌든 부모는 자식 키우는 법을 잘 알아야 한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