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치지 않은 책으로 공부해야 성적이 오른다
해마다 11월 대입 수능시험일이 다가오면 이런저런 정보가 쏟아지고 학생들 사이에선 이른바 ‘족보’라는 것이 오가기도 한다. 합격을 보장해준다는 책이나 노트 같은 족보가 선배들로부터 전해져 친구들끼리 돌려보게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그 족보에 밑줄이 마구 그어져 있다면, 그것은 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바로 그 밑줄 때문에 될 공부도 안 될 테니까.
1997년 비키 실버즈와 데이비드 크레이너라는 과학자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114명의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 다음 첫 번째 그룹에는 올바르게 밑줄 친 자료를 주고, 두 번째 그룹에는 틀리게 밑줄 친 자료를, 세 번째 그룹에는 밑줄을 치지 않은 깨끗한 자료를 주었다. 그리고 세 그룹에게 각각 자료를 20분간 읽게 한 다음 이해도를 테스트한 결과, 놀랍게도 가장 좋은 성적을 보인 것은 밑줄 없는 깨끗한 자료를 받은 학생들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내용에 밑줄이 쳐진 자료를 읽은 학생들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좋지 않은 성적을 보였다. 더 놀라운 것은 중요한 내용에만 밑줄 친 자료를 본 학생들 역시 별 다를 게 없었다는 점이다.
실험을 주도한 과학자들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밑줄이 그어진 자료는 산만해서 내용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밑줄이 쳐진 족보를 읽으면 밑줄 친 부분에만 집중하게 되어 밑줄이 쳐지지 않은 부분은 소홀히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밑줄이 쳐진 부분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파악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암기하는 자세로만 받아들이게 되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밑줄이 쳐지지 않은 책이나 노트를 읽으면서 스스로 밑줄을 치려고 노력하면 좀 더 적극적으로 독해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해도가 크게 증가하게 된다. 때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에 밑줄을 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남의 손을 거친 지식보다는 스스로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중요한 부분에 직접 밑줄을 칠 때 그것이 진정한 공부라는 이야기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스티브 구디어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의 최고 황금기는 자기가 스스로 선택할 때이다.”
대학 입학이란 기회를 붙들기 위해 애쓰는 수험생들에겐 더욱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슬플 때 집중력이 높아진다왠지 예감이 좋은 날! 뭐든지 척척 잘될 것만 같은 날! 데이트를 할 때도, 나들이를 갈 때도 그런 기분이 좋을 것 같지만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는 그런 기분이 좀 곤란한가 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심리학자 애덤 앤더슨 교수는 최근에 좋은 기분과 일의 능률에 대한 상관관계를 밝히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보면 우리의 선입견을 뒤집는 내용이 담겨 있다. 뭔가 집중력 있게 일하기 위해서는 좋은 기분보다는 살짝 슬픈 기분이 더 낫다는 것이다.
실험은 학생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쪽 그룹에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을 들려주고, 또 다른 그룹에는 슬픈 음악을 들려준 다음 몇 가지 단어를 테스트했다. 그랬더니 밝은 음악을 들은 학생들의 성적이 슬픈 음악을 들은 학생들의 성적보다 40% 정도 낮게 나왔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분이 좋아서 들뜨게 되면 시야가 넓어지고 산만해진다. 반면 울적하게 가라앉은 기분은 시야를 좁게 만드는 대신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연인과 다투거나 이별을 한 다음 상대방이 했던 말이나 행동을 곱씹으면서 미치도록 집중했을 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유쾌한 기분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컨디션이 좋으면 창조적인 일을 활발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한다.
이런 실험을 한 연구팀은 기분에 따라 하는 일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분이 좋아서 들떠 있을 때는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기분이 좀 가라앉는다 싶을 때는 치밀한 계산이나 오랜 시간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괜찮은 제안이다 싶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기분이 좋건 나쁘건, 들뜨건 가라앉건, 해야 할 일은 늘 비슷비슷하니까 말이다. 그야말로 ‘밥벌이의 괴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