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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 환자, 마약중독자 탐정 이야기 - 셜록 홈즈 시리즈

많은 이들에게 ‘탐정’ 하면 아직까지는 그리섬의 냉철한 눈빛보다는, 콜롬보의 더벅머리보다는 홈즈의 파이프담배가 먼저 생각날 것입니다. 워낙 유명해서 거의 실존 인물처럼 여겨지기까지 하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오늘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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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한 빵모자에 파이프담배, 돋보기와 지팡이라는 네 가지 사물로도 벌써 많은 분들은 ‘셜록 홈즈 이야기겠거니’ 하실 겁니다. 항상 찌뿌둥한 날씨 속의 안개 낀 런던 거리 한구석의 하숙방이자 탐정사무소인 작은 방에서, 친구 왓슨과 난롯가에 앉아 다채로운 추리로 독자를 경탄시키는 명탐정 셜록 홈즈는 지금까지도 전형적인 사립탐정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가 등장한 지도 꽤나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추리라는 장르도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사건 현장의 미세한 혈흔과 DNA로 범인을 잡는 과학수사의 결정판 <CSI>, 오직 유골만으로 범인의 행적까지 추적해 내는 <Bones>와 같은 과학 추리물 외에도 명탐정과 명범죄자의 대립을 판타지적 요소에서 풀어내는 『데스노트』, 밀실 살인사건이라는 추리소설의 고전적 주제를 깊게 파고드는 『소년탐정 김전일』처럼 다양한 방식의 추리물이 넘쳐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에게 ‘탐정’ 하면 아직까지는 그리섬의 냉철한 눈빛보다는, 콜롬보의 더벅머리보다는 홈즈의 파이프담배가 먼저 생각날 것입니다. 워낙 유명해서 거의 실존 인물처럼 여겨지기까지 하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오늘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산업혁명의 중심 도시이자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수도였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쯤의 런던은 당시 세계수도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명성을 자랑했던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의 뉴욕이라고 해야 할까요? 번창했던 산업과 정치경제의 중심 도시이자 영국 특유의 신사적인 이미지로 포장된 런던은 가장 세련된 도시의 샘플이었습니다.

그 런던의 어느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베이커 가라는 거리에 위치한 작은 하숙집에는 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시리즈의 화자인 왓슨은 의사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영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병으로 귀국한 의사 청년입니다. 딱히 방을 구할 데가 없어 난처해하던 그에게 좀 괴팍한 친구와 같이 하숙방을 쓸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그렇게 왓슨이 머물게 된 하숙방에는 주인공 셜록 홈즈가 살고 있었습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회 격인 『주홍색 연구』에서 등장하는 셜록 홈즈의 첫인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탐정스러운’ 모습과는 좀 다릅니다. 한참 이상한 화학 실험에 몰두해 있는 그는 혼자 무언가를 발견해 내고는 펄쩍펄쩍 뛰면서 같이 살게 되었다고 찾아온 의사 친구에게는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괴짜 같은 모습을 보여 줍니다.

탐정으로서의 홈즈는 단순 실험광으로만 보이던 그의 사무실에 경찰들이 찾아오면서 나타납니다. 알고 보니 런던 경시청의 어지간한 형사들은 홈즈와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사건의 여러 난제들이 발생하면, 형사들은 홈즈에게 찾아와 도움을 청하고 홈즈는 아무런 대가 없이 그 사건에 뛰어들어 범인과 동기를 밝혀냅니다. 사건 현장에 가서는 홈즈는 탐정의 상징인 ‘돋보기’를 꺼내들며 비로소 탐정다운 모습을 드러내며, 특유의 여유만만하고 거만한 자세로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 갑니다.

홈즈의 돋보기는 단순히 액세서리로서의 아이템만은 아니며, 홈즈 추리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차별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런던 경시청의 형사들이 사건을 접하고 그 범인과 동기를 추리함에 있어 대단히 가시적인 증거와 맥락에 집중한 반면, 홈즈는 돋보기를 꺼내 들고 사건 현장의 곳곳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이러한 관찰은 곧 가능성의 범주를 열어두는 작업입니다. 눈에 보이는 맥락만이 전부는 아니며, 그 내면에서 작동한 또 다른 논리―범인의 진실―가 반드시 감추고 싶었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 홈즈가 범인을 추적하는 핵심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경시청 경감들이 ‘아니, 왜 이런….’이라는 목적과 동기에 먼저 손을 댈 때, 홈즈는 아무것도 묻거나 말하지 않고 우선 현장을 샅샅이 둘러보며 시작합니다.

추리가 일반화, 보편화되고 그 일반적인 패턴조차 다양하게 진화한 21세기 지금에서야 대단한 의미가 아니지만, 과학이 이론의 범주를 넘어 일상생활과 정치사회적 영역으로 넘어 들어오기 시작할 때인 19세기 말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중요한 차별점입니다. 이른바 ‘과학적 방법론’이라 불리는 일련의 사고와 추리 과정은 사건 현장에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더 엄밀한 도구가 됩니다.

배경이 더구나 영국 런던이기에, 우리는 인식론 기초에서 배우는 ‘영국 경험론’과 ‘대륙 합리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찰과 경험에 기초하지 않는 지식을 배격하고 근본을 증거에서 찾는 과학수사, 증거중심주의의 전통은 영국 경험론의 철학적 전통과 맞닿아 있고, 런던의 탐정 홈즈는 그러한 영국 철학의 전통을 돋보기에서 시작하는 명쾌한 추리와 결론 도출로 살려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 전통의 맥을 잇는 캐릭터치고는 홈즈의 모습은 좀 부족해 보이는 부분 또한 많습니다. 왓슨의 묘사에 따르면, 홈즈는 관심있는 분야 외의 것에 대해서는 천박할 정도로 낮은 지식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당대 신사들의 격식이자 품위였던 문학에서의 인용과 같은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고, 천문학과 같은 과학의 분과에 대해서도 그는 관심이 없거나 모릅니다. 그의 관심은 탐정수사에 관련된 학문들과 화학인데, 지질학이나 지리학에선 아예 영국 각 지역의 흙먼지를 구별할 수 있는 수준이고, 화학은 거의 혼자 신물질의 합성을 해낼 정도로 탁월합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캐릭터의 특성은 복싱과 펜싱이라는 분야입니다. 홈즈는 실제로도 괴력을 자랑하는 몇 번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데, 단순히 실험실에 처박혀 사는 백면서생의 느낌이 아니라 건장하고 힘깨나 좀 쓰는 스타일로서의 이미지가 더 어울립니다. 게다가 런던 빈민가의 어지간한 부랑아들의 두목 노릇까지도 하고 있는 홈즈의 모습은 일반적인 교양을 갖춘 신사와는 사실 거리가 멀고, 매우 실용적이고 거침없는, 좀 활달한 건달 스타일의 탐정이라고 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소설 속의 홈즈에 일치하는 이미지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홈즈는 조울증 환자입니다. 그는 무언가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을 땐 한없이 흥분하여 고양된 상태로 지내지만, 막상 사건도, 실험도, 암호도 없는 무료한 시간이 오면 온몸이 축 늘어지고 기분도 나빠집니다.

그는 이러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모르핀과 같은 마약을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마약중독자이기도 합니다. 19세기말의 마약에 대한 입장은 지금보다는 덜 엄격해서 어느 정도의 통용은 이루어진 편이었지만, 그래도 마약을 상용하는 케이스는 홈즈의 시대에선 그렇게 고급스러운 풍속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체적인 홈즈의 캐릭터를 종합해 보면, 그는 똑똑하기는 하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부 분야에 편중된 매니악한 취향을 가지고 있고, 육체적으로 강건하지만 조울증에 마약중독자라는, 품격이 크게 떨어지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물의 성격은 앞서 언급한 영국 경험론의 전통을 잇는 탐정으로서의 모습과 겹치면서 그의 캐릭터를 다분히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무엇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그는 이런 모든 모습을 종합한 셜록 홈즈라는 자기 개체에 대해 무한한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있어 왓슨의 충고 따위는 늘 한 계단 위에서 느긋하게 내려다보는 모습까지도 보여줍니다.

명석하고 날카로운 탐정 캐릭터의 이러한 다중적이고 부족한 면을 포함하는 모습은 추리소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추리라는 구조상 추리의 주인공인 탐정은 완벽한 모습을 갖출 수밖에 없는데, 아시다시피 이렇게 완벽한 캐릭터는 그리 친숙하지 않고 마치 ‘3류 무협지스러운’, 이른바 ‘먼치킨’ 캐릭터로 비웃음을 살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탐정물은 탐정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는 특징이나 단점을 비춰 줍니다. 인기 드라마 <명탐정 몽크>의 주인공은 소심하고 결벽증세를 보이며, 『데스노트』의 명탐정 L 은 자폐증세를 보이는 다크서클 보유자입니다. 홈즈 또한 이런 면이 단점으로까지 부각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명석함’에 상반되는 캐릭터의 특징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그런 홈즈의 모습에 균형을 주는 왓슨의 존재가 그래서 중요해집니다. 왓슨은 홈즈 곁에 있어서 어벙해 보일지는 몰라도 엘리트인 의사 출신 전직 군인입니다. 그는 어찌 보면 단조로울 수 있는 홈즈의 추리를 가끔 넘어서는 파격적인 제안과 새로운 쇼크로서, 그리고 사건 전체를 풀어가는 시점에서의 관조자로서 소설 전체를 딱딱한 추리와 공감대 사이에 적당하게 위치시키는 큰 공헌을 합니다.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대중적인, 애거서 크리스티가 화낼지언정 ‘추꺸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셜록 홈즈 시리즈를 지금 다시 읽어 본다면 사실 많은 분들이 그 추리의 빈약함과 어설픔에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DNA까지 대조해 가며 수사하는 지금의 과학적 방법론은 당대를 훨씬 능가해 거의 마법의 경지에 도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산업화, 제국화의 심장에서 뿌연 스모그 속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헤치고 다니는 어느 괴팍한 탐정의 모습만큼은 세월이 흐르고 수사기법이 진전해도 매력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CSI>의 호레이쇼 반장 선글래스는 팔지 않아도, 홈즈의 담배 파이프는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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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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